7화(5,331자)

서른 해 전 나루

객잔을 지키는 고수 노부부 · 하청오

청매는 해 뜨기 전에 마구간에 들어갔다⁠. 먹보가 콩 자루에서 머리를 들고 청매를 보았다⁠. 마구간 짚더미에서는 소추와 아이들이 아직 자고 있었다⁠. 청매는 먹보 앞에 쭈그려 앉아 목소리를 낮췄다⁠.

“⁠영감⁠, 할 말이 있소⁠.⁠”

먹보가 귀를 한 번 털었다⁠.

“⁠서른 해 전 나루의 밤 말이오⁠. 내가 영감을 강 건너로 끌고 간 것은⁠.⁠” 청매는 말을 멈췄다⁠. “⁠아니⁠, 이렇게 시작하면 안 되오⁠. 영감은 앞부분에서 벌써 국자를 내려놓을 거요⁠.⁠”

먹보가 콧김을 뿜었다⁠. 청매는 다시 시작했다⁠.

“⁠영감⁠, 차 한 잔 하겠소⁠? 첫 잔은 쓰고 두 번째 잔은 달고⁠.⁠”

먹보가 하품을 했다⁠. 이빨이 누렇게 다 보였다⁠.

“⁠너도 지루하냐⁠?⁠”

“⁠할머니⁠, 먹보한테 무슨 얘기 해요⁠?⁠”

짚더미에서 소추가 눈을 비비며 일어나 있었다⁠. 청매는 일어나 저고리 자락을 털었다⁠.

“⁠먹보가 콩을 너무 먹는다고 혼냈다⁠.⁠”

“⁠먹보가 할머니한테 미안하대요⁠?⁠”

“⁠먹보는 서른 해 동안 미안하다는 말을 한 번도 안 했다⁠.⁠” 청매가 마구간 문을 열었다⁠. “⁠그건 나를 닮았다⁠.⁠”

*

화운은 부엌에서 턱에 동여맨 수건을 풀며 의기양양했다⁠. 밤새 한 번도 코를 안 골았다고 아묵이 증언했다⁠. 아묵은 계단 세 번째 칸에서 밤을 새웠다고 했다⁠. 왜 거기서 밤을 새웠느냐고 물으니⁠, 형한테 국수를 주고 늦게 올라와서 사부님 코 고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자려 했는데 소리가 안 나서 못 잤다고 했다⁠.

“⁠사부님 코 고는 소리가 안 나니까 집에 도둑 든 것 같았습니다⁠.⁠”

“⁠금슬이 좋아지는 소리다⁠. 익숙해져라⁠.⁠”

아묵이 솥에 장작을 넣으며 물었다⁠. “⁠마님은 주무셨습니까⁠?⁠”

“⁠임자는 밤새 뒤척이더라⁠. 내가 코를 안 고니까 잠이 안 온다고⁠.⁠”

“⁠그럼 오늘 밤에는 다시 고십시오⁠.⁠”

“⁠그럼 금슬이 나빠진다⁠.⁠”

“⁠금슬이 좋으면 잠을 못 자고⁠, 금슬이 나쁘면 잠을 잡니까⁠?⁠”

화운은 국자로 아묵의 이마를 톡 쳤다⁠. “⁠서른 해 살아 보면 안다⁠.⁠”

뒷문으로 아탄이 소금 자루를 지고 들어왔다⁠. 어제 낙등 길에서 흙이 섞인 소금이었다⁠. 아탄은 자루를 장독대에 내려놓고 말없이 돌아가려 했다⁠. 아묵이 국수 그릇을 들고 쫓아갔다⁠.

“⁠형⁠, 아침⁠.⁠”

“⁠형이라고 부르지 말랬지⁠.⁠”

“⁠아탄 형님⁠, 아침⁠.⁠”

아탄이 국수 그릇을 보았다⁠. 받지 않았다⁠. 받지 않았지만 가지도 않았다⁠. 화운은 국자로 솥을 젓는 척하며 형제를 보았다⁠. 아묵이 그릇을 내밀고⁠, 아탄이 그릇을 보고⁠, 둘 사이에 국수 김이 올라갔다⁠. 사흘째 저러고 있었다⁠.

청매가 부엌에 들어왔다⁠. 찻잔 셋과 찻주전자를 쟁반에 받쳐 들었다⁠. 삼도차였다⁠. 서른 해 동안 청매가 화운에게 삼도차를 낸 것은 혼례 날 한 번이었다⁠.

“⁠영감⁠, 차 한 잔 하겠소⁠?⁠”

화운은 국자를 멈췄다⁠. 긴 눈썹 밑에서 눈이 커졌다⁠.

“⁠임자가 나한테 차를⁠?⁠”

“⁠첫 잔은 쓰오⁠.⁠”

“⁠알고 있소⁠.⁠”

“⁠두 번째 잔은 다오⁠.⁠”

“⁠알고 있소⁠. 세 번째 잔은⁠…⁠.⁠”

“⁠세 번째 잔을 마실 때 할 말이 있소⁠.⁠”

화운이 첫 잔을 받았다⁠. 쓴맛에 얼굴을 찡그렸다⁠. 청매가 두 번째 잔을 따르려는데 대청에서 발소리가 났다⁠. 사람 하나의 발소리였다⁠. 발소리는 대청을 지나 부엌 문턱에서 멈췄다⁠.

방칠이 문턱에 서 있었다⁠. 등에 칼이 없었다⁠.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 가면만 쓰고 있었다⁠.

“⁠형님⁠.⁠” 방칠이 말했다⁠.

화운의 손에서 찻잔이 기울었다⁠. 쓴 차가 바닥에 몇 방울 떨어졌다⁠.

방칠이 가면의 끈을 풀었다⁠. 가면이 방칠의 손으로 내려왔다⁠. 얼굴의 왼쪽 반이 붉게 오그라들어 있었다⁠. 눈썹이 없었고⁠, 귓바퀴가 녹아 있었다⁠. 오른쪽 반은 마흔 줄 사내의 평범한 얼굴이었다⁠. 오른쪽 눈 밑에 작은 점이 있었다⁠.

화운은 점을 보았다⁠. 서른 해 전 금사강 나룻배에서 장대를 쥐던 열여섯 살 막내의 눈 밑에도 점이 있었다⁠. 막내는 이름 대신 일곱 번째로 들어온 놈이라고 칠이라 불렸다⁠. 화운이 칠이에게 장대질을 가르쳤다⁠. 길게 하나⁠, 짧게 둘⁠, 끝을 올리는 휘파람도 화운이 가르쳤다⁠.

“⁠칠아⁠.⁠”

“⁠예⁠, 형님⁠.⁠”

“⁠살아 있었구나⁠.⁠”

“⁠살아 있었소⁠. 형님이 나루에 돌아온 새벽에도 살아 있었소⁠.⁠” 방칠의 목소리는 낮고 고르게 나왔다⁠. “⁠갈대밭에 엎드려 있었소⁠. 얼굴이 타서 소리를 못 냈소⁠. 형님이 불탄 배 사이를 다니며 우리 이름을 부르는 걸 다 들었소⁠. 노각이 형⁠, 메기 형⁠, 장대야⁠. 내 이름도 불렀소⁠. 칠아⁠, 칠아⁠. 나는 대답을 못 했소⁠. 형님은 한참 부르다가 갔소⁠. 점창 여자 손에 끌려서⁠.⁠”

청매는 쟁반을 든 채 서 있었다⁠. 두 번째 잔이 쟁반 위에서 식어 갔다⁠.

*

아묵은 아탄 옆에 서서 방칠의 얼굴을 보았다⁠. 형도 방칠의 맨얼굴은 처음 보는 눈치였다⁠. 아탄의 손이 아묵의 국수 그릇을 저도 모르게 받아 들고 있었다⁠.

“⁠형님은 금사방을 버린 게 아니오⁠. 나도 그건 아오⁠.⁠” 방칠이 말했다⁠. “⁠서른 해 동안 그렇게 믿었소⁠. 형님은 그날 밤 점창 여자와 칼을 겨루다 강 건너까지 갔고⁠, 돌아와 보니 나루는 불탔고⁠, 관군이 형님을 잡으러 오니 달아났다고⁠. 운이 나빴다고⁠. 형님 탓은 아니라고⁠.⁠”

“⁠칠아⁠, 그건⁠…⁠.⁠”

“⁠어제 사계 상단에서 사람이 왔소⁠.⁠” 방칠이 말을 끊었다⁠. “⁠행수가 보낸 사람이오⁠. 서른 해 전 점창 사당에서 명을 전한 사람이 바로 자기라더이다⁠. 그날 밤 점창은 관군과 짜고 금사방 나루를 칠 참이었소⁠. 칠 때 금사방에서 제일 센 칼잡이가 나루에 있으면 안 되었소⁠. 그래서 점창의 제일 센 검객한테 명을 내렸소⁠. 금사방 칼잡이를 붙잡고 동이 틀 때까지 나루에서 떼어 놓으라고⁠.⁠”

방칠이 처음으로 청매를 보았다⁠. 맨얼굴의 두 눈이었다⁠. 한쪽은 눈꺼풀이 오그라들어 다 감기지 않았다⁠.

“⁠할멈이 그 검객이오⁠?⁠”

부엌이 조용해졌다⁠. 솥 밑의 불이 탁탁 튀었다⁠. 장독대 너머 마구간에서 먹보가 콩 자루를 쳤다⁠.

화운이 청매를 보았다⁠. 서른 해 동안 매일 아침 마주 본 얼굴이었다⁠. 마주 보고 자서⁠, 눈을 뜨면 맨 먼저 보이던 얼굴이었다⁠.

“⁠임자⁠.⁠” 화운이 말했다⁠. “⁠알았소⁠?⁠”

청매는 쟁반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세 번째 잔은 아직 따르지 않았다⁠. 찻주전자 뚜껑이 쟁반 위에서 달그락거렸다⁠. 손이 떨려서가 아니었다⁠. 청매는 뚜껑을 손바닥으로 눌렀다⁠.

“⁠알았소⁠.⁠”

방칠이 숨을 길게 뱉었다⁠. 화운보다 방칠이 먼저 무너진 얼굴이었다⁠.

“⁠행수가 그러더이다⁠.⁠” 방칠이 말했다⁠. “⁠이 말을 내가 형님한테 전하면 형님은 할멈하고 갈라설 거라고⁠. 갈라서면 땅은 마을로 가고⁠, 마을은 상단에 팔 거라고⁠. 그러니 나더러 이 말을 하지 말고⁠, 땅은 상단과 나눠 먹자고 하더이다⁠. 상단이 역참을 쥐고⁠, 내 식구 몇십은 짐꾼으로 써 주겠다고⁠.⁠”

“⁠그런데 왜 왔느냐⁠?⁠” 화운이 물었다⁠.

“⁠형님이 알아야 할 일이니까⁠.⁠” 방칠이 가면을 손에 쥐고 돌렸다⁠. “⁠이 말을 하면 내 식구 땅이 날아가는 것도 아오⁠. 그래도 서른 해 전 갈대밭에서 대답을 못 한 걸 오늘은 하고 싶었소⁠. 땅은 따로 가져가겠소⁠. 칼로⁠.⁠”

“⁠칠아⁠.⁠”

“⁠형님은 이제 금사방 형님이 아니오⁠. 국자 영감이오⁠. 나도 칠이가 아니오⁠. 삼백 식구의 방칠이오⁠.⁠”

*

서른 해 전⁠, 청매는 금사강 나룻배 위에서 화운의 칼을 받고 있었다⁠. 달이 밝았다⁠. 강물이 여울에서 하얗게 부서졌다⁠. 청매의 검이 운롱으로 내려가면 화운의 칼이 탄두로 올라왔다⁠. 청매가 창랑으로 흐르면 화운이 대각선으로 눌렀다⁠. 서른 합⁠, 쉰 합⁠. 배가 여울을 타고 내려갔다⁠. 청매는 일부러 배를 아래로⁠, 아래로 몰았다⁠. 나루에서 멀어지라고⁠.

명을 받을 때 옥교는 이렇게 말했다⁠. 동이 틀 때까지만요⁠, 사저⁠. 무슨 일이 있는지는 묻지 말래요⁠. 청매는 묻지 않았다⁠. 물으면 알게 될까 봐 묻지 않았다⁠. 사당 앞 돌계단에서 관군의 말 수십 필이 강가로 내려가는 소리를 듣고도 묻지 않았다⁠.

강 건너 갈대밭에 배가 닿았을 때 화운의 칼이 청매의 은비녀를 잘랐다⁠. 머리가 풀려 내려왔다⁠. 화운이 칼을 거두고 웃었다⁠. 이긴 사람의 웃음이 아니라⁠, 이제 그만하자는 웃음이었다⁠. 청매는 화운의 웃음을 보고 검을 거뒀다⁠. 그리고 상류 쪽 하늘이 붉게 물드는 것을 보았다⁠.

화운이 몸을 돌렸다⁠. 청매가 화운의 소매를 잡았다⁠. 가면 죽는다고 했다⁠. 화운은 소매를 뿌리치고 갔다⁠. 청매는 따라갔다⁠. 따라가서⁠, 불탄 배 사이에서 이름을 부르는 화운의 등을 보았다⁠. 화운이 이름을 다 부를 때까지 기다렸다⁠. 관군의 횃불이 강둑을 따라 오는 것을 보고서야 화운의 팔을 잡아끌었다⁠. 나루가 불탄 새벽부터 청매는 점창에 돌아가지 않았다⁠. 화운에게 등을 보이지도 않았다⁠. 등을 보이면 화운이 등에 대고 물을 것만 같았다⁠. 달 밝은 밤에 왜 배를 아래로만 몰았느냐고⁠.

*

화운은 쓴 차가 반쯤 남은 찻잔을 탁자에 놓았다⁠. 찻잔 옆에 국자를 놓았다⁠. 국자 손잡이를 솥 쪽으로 돌려놓았다⁠. 서른 해 동안 화운은 부엌을 나갈 때 국자를 허리에 꽂았다⁠. 국자를 두고 나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칠아⁠, 천막에 솥이 몇 개냐⁠?⁠”

방칠이 맨얼굴로 화운을 보았다⁠. “⁠넷이오⁠.⁠”

“⁠삼백에 솥 넷이면 모자라다⁠.⁠”

화운은 부엌 구석에서 큰 무쇠 냄비 둘을 꺼내 지게에 얹었다⁠. 쌀자루 하나를 냄비 위에 얹었다⁠. 지게를 지고 뒷문으로 갔다⁠. 청매를 지나칠 때 청매를 보지 않았다⁠. 청매도 화운을 붙잡지 않았다⁠. 서른 해 전처럼 소매를 잡지 않았다⁠.

“⁠사부님⁠.⁠” 아묵이 불렀다⁠.

“⁠솥 불 꺼뜨리지 마라⁠.⁠” 화운이 뒷문을 나가면서 말했다⁠. “⁠서른 해 동안 안 꺼졌다⁠.⁠”

방칠이 가면을 다시 썼다⁠. 끈을 묶는 손이 느렸다⁠. 방칠은 청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화운을 따라 나갔다⁠. 아탄이 국수 그릇을 든 채 둘을 보다가⁠, 아묵을 한 번 보고⁠, 국수 그릇을 아묵에게 돌려주고 뒤따라 나갔다⁠.

부엌에 청매와 아묵만 남았다⁠. 솥이 끓었다⁠. 탁자 위에 쓴 차 반 잔⁠, 식은 단 차 한 잔⁠, 따르지 않은 세 번째 잔⁠, 그리고 쇠 국자가 있었다⁠.

“⁠마님⁠.⁠” 아묵이 말했다⁠.

청매는 국자를 집었다⁠. 무거웠다⁠. 서른 해 동안 남이 쥔 것만 보아서 무게를 몰랐다⁠. 청매는 국자로 솥을 저었다⁠. 화운이 하던 대로 바닥까지 긁었다⁠.

“⁠아묵⁠, 오늘 국수에 소금은 얼마나 치니⁠?⁠”

“⁠사부님은 한 줌 치셨습니다⁠.⁠”

“⁠나는 반 줌 치라고 서른 해 동안 말했다⁠.⁠”

“⁠예⁠.⁠”

아묵은 대청 창으로 고갯길을 내려다보았다⁠. 사부님이 지게를 지고 비탈을 내려가고 있었다⁠. 두 걸음 뒤에 가면을 쓴 방칠이⁠, 다시 두 걸음 뒤에 형이 따라갔다⁠. 돌계단 맨 아래에는 운매 반쪽 간판이 사흘째 벽에 기대어 있었다⁠. 사부님이 안고 자던 간판이었다⁠. 사부님은 간판을 지나치면서 돌아보지 않았다⁠.

“⁠마님⁠, 사부님이 운매를 두고 가셨습니다⁠.⁠”

“⁠객잔도 두고 갔다⁠.⁠” 마님이 솥을 저으며 말했다⁠. “⁠국자도 두고 갔다⁠. 영감은 다 두고 갔다⁠.⁠”

“⁠그럼 언제 오십니까⁠?⁠”

마님은 대답하지 않았다⁠. 국자를 솥 가장자리에 탁 쳐서 국물을 털었다⁠. 사부님이 하던 소리와 똑같았다⁠.

청매는 소금 단지에서 한 줌을 쥐었다⁠. 반을 덜어 내려다가⁠, 덜지 않고 다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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