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436자)

사계 장날

객잔을 지키는 고수 노부부 · 하청오

화운은 노새 먹보의 고삐를 쥐고 고개를 내려가면서 세 번 투덜거렸다⁠. 한 번은 먹보가 길가 풀을 뜯느라 멈췄을 때⁠, 한 번은 청매가 먹보 등에 올라타겠다고 했을 때⁠, 한 번은 청매가 올라탄 뒤 먹보가 화운 쪽으로만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먹보가 나를 보오⁠.⁠” 화운이 말했다⁠. “⁠봐라⁠, 먹보는 나를 따른다니까⁠.⁠”

“⁠영감 손에 콩이 있어서 그렇소⁠.⁠”

화운은 손바닥을 폈다⁠. 콩이 세 알 있었다⁠. 화운은 콩을 얼른 제 입에 넣었다⁠. 먹보가 화운을 원망스럽게 보았다⁠.

“⁠사계까지 가면서 금슬 좋은 척은 안 해도 되오⁠?⁠” 화운이 콩을 씹으며 물었다⁠.

“⁠사계 사람들은 우리를 모르오⁠.⁠”

“⁠그럼 원래대로 하겠소⁠.⁠”

“⁠원래대로가 뭐요⁠?⁠”

“⁠임자가 먹보 타고 내가 고삐 잡는 거⁠. 서른 해 동안 그렇게 다녔소⁠.⁠”

청매는 먹보 등에서 화운의 정수리를 내려다보았다⁠. 묶어 올린 흰머리 매듭이 어제보다 단정했다⁠. 청매가 빗겨 준 자리였다⁠. 청매는 빗겨 준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사계 장터는 고개 셋을 넘은 골짜기 안에 있었다⁠. 차마고도의 오래된 장이었다⁠. 붉은 흙벽의 집들이 네모난 광장을 둘러쌌고⁠, 광장 한쪽에 지붕이 날아갈 듯 처마가 들린 옛 놀이마당이 있었다⁠. 토번 사람들이 털옷을 입고 소금을 흥정했고⁠, 나시족 아낙들이 쪽빛 옷을 입고 버섯을 팔았다⁠. 말과 노새가 서로 엉덩이를 부딪치며 방울을 울렸다⁠.

광장 입구 흙벽에 관의 방이 붙어 있었다⁠. 사람들이 방 앞에 몰려 있었다⁠. 화운은 돋보기 대신 수정 알 하나를 꺼내 눈에 댔다⁠. 화운은 수정 알 없이는 글자를 못 읽었고⁠, 청매는 수정 알을 쓰는 화운을 서른 해 동안 놀렸다⁠.

「⁠운령 고갯마루에 소금 세관을 둔다⁠. 소금 한 짐에 세 푼⁠. 삼월가 첫날부터⁠.⁠」

“⁠세 푼이면 짐꾼 하루 품삯이오⁠.⁠” 화운이 수정 알을 내렸다⁠. “⁠짐꾼은 짐을 지고 넘으면서 하루 품을 관에 내는 거요⁠.⁠”

“⁠상단은 세를 짐꾼한테 떠넘기겠지요⁠.⁠”

토번 털모자 우두머리가 방 앞에서 둘을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영감님⁠! 마님⁠! 아직 안 갈라서셨소⁠?⁠”

“⁠갈라서는 중이오⁠.⁠” 둘이 동시에 대답했다⁠.

털모자가 웃었다⁠. “⁠그럼 내기 아직 안 끝난 거네⁠.⁠”

광장 끝에서 길이 두 갈래로 나뉘었다⁠. 한 길은 상단 객청이 있는 큰 집으로⁠, 한 길은 서쪽 산을 넘어 낙등 염정으로 가는 새 소금 길이었다⁠. 청매가 먹보에서 내렸다⁠.

“⁠영감은 어디 가오⁠?⁠”

“⁠낙등 길 좀 보고 오겠소⁠. 방칠이 말하는 새 길이 어떤지⁠.⁠”

“⁠혼자⁠?⁠”

“⁠아묵이 천막에서 들었소⁠. 오늘 방칠네 짐꾼들이 처음으로 낙등에 소금 지러 간다고⁠.⁠” 화운이 먹보의 고삐를 다시 쥐었다⁠. “⁠임자는 사매 만나시오⁠. 사매한테 차 얻어 마시고 오시오⁠.⁠”

“⁠영감 혼자 가면 등뼈 나가오⁠.⁠”

“⁠먹보가 있소⁠.⁠”

*

청매는 상단 객청의 손님방에서 단옥교와 마주 앉았다⁠. 방은 넓고 서늘했다⁠. 창밖으로 상단의 마당이 내려다보였다⁠. 마당 가득 소금 자루가 쌓였고⁠, 노새 백여 마리가 여물을 씹었다⁠. 마방 사내들이 소금 자루를 노새 등에 동여매면서 노래를 불렀다⁠.

옥교는 찻잔을 손수 데웠다⁠. 손놀림이 서른 해 전 사당 뒤 차밭에서 찻잎을 덖던 손놀림 그대로였다⁠. 은빛 머리를 높이 틀어 올렸고⁠, 손가락마다 옥가락지를 꼈다⁠. 가락지가 찻잔에 닿을 때마다 짤랑거렸다⁠.

“⁠사저는 하나도 안 변하셨어요⁠.⁠”

“⁠너는 많이 변했다⁠. 손가락이 무거워 보인다⁠.⁠”

“⁠상단 행수는 가락지로 말을 해요⁠. 저걸 보면 상대가 값을 덜 깎아요⁠.⁠” 옥교가 웃었다⁠. “⁠사저는 아직 유선을 검으로 자르세요⁠?⁠”

“⁠누가 그러더냐⁠?⁠”

“⁠천총 나리가요⁠. 국수 먹고 와서 한참 웃더라고요⁠.⁠”

청매는 찻잔을 들었다⁠. 점창 고산 녹차였다⁠. 혀끝이 서늘해졌다⁠.

“⁠용건을 말해라⁠.⁠”

“⁠둘이에요⁠.⁠” 옥교가 손가락을 하나 폈다⁠. 옥가락지가 반짝였다⁠. “⁠하나⁠. 점창에서 사저의 이름을 돌려 드리겠대요⁠. 금사방 사내와 달아나서 지운 이름이요⁠. 장문 사형께서 올해 일흔이세요⁠. 죽기 전에 사저 이름을 다시 문파 족보에 올리고 싶대요⁠. 사저가 이해 고향에 가시면 점창이 집을 지어 드릴 거예요⁠.⁠”

“⁠둘은⁠?⁠”

“⁠객잔 땅이요⁠. 사저 반만이라도요⁠. 상단이 사겠어요⁠. 관이 주는 값의 두 배로요⁠.⁠”

청매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내 반은 안 판다고 했다⁠.⁠”

“⁠영감님이 안 파셔서요⁠?⁠”

“⁠영감은 영감 마음대로 하고⁠, 나는 내 마음대로 한다⁠.⁠”

“⁠사저⁠, 서른 해 동안 영감님 마음대로 하셨잖아요⁠. 밥 퍼 주고 외상 주고⁠. 사저는 옆에서 소금만 덜 치라고 하시고⁠.⁠” 옥교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이번에도 영감님은 비적 아이들한테 밥 퍼 주느라 땅을 붙드는 거예요⁠. 사저는 왜 같이 붙드세요⁠?⁠”

청매는 대답하지 않았다⁠. 옥교는 창밖의 마당을 가리켰다⁠.

“⁠저 사람들 보세요⁠. 마방 식구가 이천이에요⁠. 낙등 소금을 토번까지 나르는 사람들이요⁠. 운령 고개로 새 길이 나면 사흘이 줄어요⁠. 사흘이면 노새 먹이가 사흘 치 줄고⁠, 사람 품삯이 사흘 치 줄어요⁠. 그 돈이 마방 식구들 집으로 가요⁠. 방칠네 삼백도 불쌍하지요⁠. 그런데 저는 이천을 먹여야 해요⁠.⁠”

“⁠방칠의 삼백도 짐꾼이다⁠. 너희 마방에 넣으면 되지 않느냐⁠?⁠”

“⁠흑도 무리를 상단에 넣으면 관이 상단을 쳐요⁠.⁠” 옥교가 차를 따랐다⁠. “⁠사저⁠, 강호는 서른 해 전이랑 똑같아요⁠. 이름 있는 사람은 이름 없는 사람을 넣어 주지 않아요⁠.⁠”

*

화운은 낙등으로 넘어가는 새 길 중턱에서 먹보를 멈췄다⁠. 비탈 아래에서 고함이 올라왔다⁠.

길은 산허리를 깎아 낸 지 얼마 안 되어 흙이 붉었다⁠. 소금 자루를 진 사내들이 열 명쯤 길가에 엎드려 있었다⁠. 방칠네 짐꾼들이었다⁠. 푸른 옷 점창 호위 넷이 칼집으로 짐꾼들의 등을 내려치고 있었다⁠. 소금 자루가 터져 하얀 소금이 붉은 흙 위에 쏟아져 있었다⁠.

“⁠이 길은 상단이 낸 길이다⁠! 흑도 놈들이 무슨 낯으로 상단 길에 발을 들여⁠!⁠”

짐꾼들 맨 앞에서 아탄이 두 팔을 벌리고 있었다⁠. 칼집이 아탄의 어깨를 쳤다⁠. 아탄은 맞으면서도 뒤의 짐꾼들을 감쌌다⁠. 등 뒤에서 열두어 살 된 사내아이가 소금 자루를 붙들고 울었다⁠.

화운은 먹보 고삐를 소나무에 감았다⁠. 허리띠에서 국자를 뽑았다⁠. 비탈을 내려가는데 무릎이 먼저 소리를 냈다⁠. 화운은 무릎에게 조용히 하라고 했다⁠.

“⁠거기⁠, 젊은이들⁠.⁠”

점창 호위 넷이 돌아보았다⁠. 국자를 든 노인을 보고 셋이 웃었다⁠. 하나는 웃지 않았다⁠. 며칠 전 밤 객잔 마당에서 청매에게 손목을 맞은 녀석이었다⁠. 녀석의 손목에 아직 붕대가 감겨 있었다⁠.

“⁠국자 영감이다⁠.⁠” 붕대 녀석이 말했다⁠.

“⁠맞소⁠. 국수 먹으러 오시오⁠. 대신 저 사람들은 놔두시오⁠. 소금은 길에 쏟으면 못 쓰오⁠. 쓰지도 못할 걸 왜 쏟소⁠?⁠”

“⁠영감은 상관 마시오⁠.⁠”

“⁠상관은 없소⁠. 그런데 저 아이가 우오⁠.⁠”

“⁠우는 애는 영감 애요⁠?⁠”

“⁠우리 객잔 국수를 먹은 애요⁠. 내 국수 먹은 애가 울면 내 국수가 맛이 없었다는 소리가 나오오⁠.⁠”

호위 하나가 칼집을 휘둘렀다⁠. 화운은 물러나지 않았다⁠. 국자로 칼집 끝을 걸어 아래로 눌렀다⁠. 칼집이 땅을 찍었다⁠. 다른 호위가 칼을 뽑았다⁠. 점창의 창랑 초식이었다⁠. 화운의 몸이 저절로 탄두로 갔다⁠. 서른 해 동안 마당에서 청매의 검을 막던 국자가⁠, 오늘은 막을 사람을 제대로 찾았다⁠. 칼날이 국자 바닥에 미끄러지고 호위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남은 둘이 함께 들어왔다⁠. 화운은 하나를 막고⁠, 하나는 막지 못했다⁠. 막지 못한 칼집이 화운의 옆구리를 쳤다⁠. 화운의 숨이 턱 막혔다⁠. 무릎이 꺾이려는데⁠, 등 뒤에서 무언가가 화운의 등을 받쳤다⁠.

아탄이었다⁠. 아탄이 화운의 등에 제 등을 대고 지게 작대기를 들었다⁠. 작대기 끝을 낮게 휘두르고 비틀어 올렸다⁠. 금사강 뱃사람의 장대질이었다⁠.

화운은 등에 닿은 젊은 등이 뜨겁다는 것을 알았다⁠. 청매의 등과는 달랐다⁠. 청매의 등은 반 박자 먼저 기울어 무게를 받았다⁠. 아탄의 등은 반 박자 늦게 밀었다⁠. 늦게 미는 등이라도 등은 등이었다⁠. 화운은 국자를 내질렀고 아탄은 작대기를 비틀었다⁠. 점창 호위 넷이 비탈 아래로 굴러 내려갔다⁠.

호위들이 달아난 뒤 아탄이 먼저 등을 뗐다⁠. 화운을 보지 않고 쏟아진 소금을 손으로 쓸어 담았다⁠. 붉은 흙이 섞인 소금이었다⁠.

“⁠흙 섞인 소금은 못 팔아⁠.⁠” 아탄이 말했다⁠. “⁠오늘 품삯은 날아갔어⁠.⁠”

“⁠객잔으로 가져오너라⁠. 흙 섞인 소금은 장 담그는 데 쓰면 되오⁠. 우리 마님이 어제 장독을 하나 깨먹었소⁠.⁠”

아탄이 고개를 들었다⁠. 화운의 옆구리를 보았다⁠. 화운이 옆구리를 짚고 있었다⁠.

“⁠영감님⁠, 왜 끼어들었어⁠?⁠”

“⁠아묵이 매일 밤 너한테 국수를 지고 가잖소⁠. 너희 형제가 국수 그릇 사이에 두고 앉아 있는 거 봤소⁠. 형이 맞아 죽으면 아묵이 국수를 누구한테 지고 가오⁠?⁠”

아탄은 대답 없이 소금 자루를 동여맸다⁠. 동여매는 손이 느렸다⁠.

*

청매는 찻잔이 세 번 비고 세 번 채워지는 동안 옥교의 말을 다 들었다⁠. 세 번째 잔을 비웠을 때 옥교가 찻주전자를 내려놓았다⁠.

“⁠사저⁠, 마지막으로 하나만 여쭐게요⁠.⁠”

“⁠말해라⁠.⁠”

“⁠그 가면 쓴 사내⁠, 방칠이요⁠. 누군지 아세요⁠?⁠”

청매의 손가락이 찻잔 굽에 닿은 채 멈췄다⁠.

“⁠흑수곡 유민 우두머리라고 들었다⁠.⁠”

“⁠방칠은 금사방 막내예요⁠. 서른 해 전에 금사강 나루에서 살아남은 아이요⁠. 그날 밤 불 속에서 기어 나와서 갈대밭에 숨어 있다가 뱃사람한테 구해졌대요⁠. 얼굴 반쪽이 탔대요⁠. 그래서 가면을 쓰는 거예요⁠. 열여섯 살이었대요⁠.⁠”

옥교는 찻잔을 손바닥으로 감쌌다⁠. 옥가락지가 찻잔에 부딪혀 맑은 소리를 냈다⁠.

“⁠사저⁠, 그날 밤 제가 사저한테 전한 명 기억하세요⁠? 금사방 칼잡이를 동이 틀 때까지 나루에서 떼어 놓으라는 명이요⁠. 사저는 떼어 놓으셨지요⁠. 칼을 겨루면서 강 건너까지 데려가셨지요⁠. 그사이에 점창과 관군이 나루를 쳤고요⁠.⁠”

청매는 찻잔을 놓았다⁠. 찻잔이 탁자 위에서 반 바퀴 돌다 멈췄다⁠.

“⁠방칠은 그걸 몰라요⁠. 아직은요⁠.⁠” 옥교가 말했다⁠. “⁠그런데 언젠가 알게 되겠지요⁠. 금사방 형님이 그날 밤 점창 여자랑 칼을 겨루다 같이 사라졌다는 것까지는 이미 알거든요⁠. 사저⁠, 땅을 파세요⁠. 이해로 가세요⁠. 방칠이 다 알게 되기 전에요⁠.⁠”

청매는 일어났다⁠. 허리가 찌릿했다⁠. 청매는 허리를 짚지 않았다⁠.

“⁠차 잘 마셨다⁠.⁠”

“⁠사저⁠.⁠”

“⁠네 잠버릇은 고쳤느냐⁠?⁠”

옥교가 눈을 크게 떴다⁠.

“⁠서른 해 전에 너는 자다가 내 이불을 걷어찼다⁠. 겨울에도⁠.⁠” 청매가 문을 열었다⁠. “⁠나는 그 이불을 다시 덮고 잤다⁠. 너한테 한 번도 뭐라 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뭐라 하겠다⁠. 내 이불 걷어차지 마라⁠.⁠”

청매는 상단 객청을 나와 광장으로 걸었다⁠. 토번 사람들이 소금을 흥정하는 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광장 입구에 화운이 먹보 고삐를 잡고 서 있었다⁠. 옆구리를 짚고 있었고⁠, 먹보 등에는 흙 섞인 소금 자루가 실려 있었다⁠.

“⁠사매가 차 맛있게 주더이까⁠?⁠” 화운이 물었다⁠.

청매는 화운의 옆구리를 보았다⁠. 화운은 청매의 얼굴을 보았다⁠. 둘 다 무엇을 물어야 할지 알았고⁠, 둘 다 묻지 않았다⁠.

“⁠영감⁠, 내일 아침에 할 말이 있소⁠.⁠”

“⁠오늘은 안 되오⁠?⁠”

“⁠오늘은 먹보가 소금을 지고 있소⁠. 무거운 날 무거운 말을 하면 먹보가 주저앉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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