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443자)

본주 앞의 땅

객잔을 지키는 고수 노부부 · 하청오

아묵은 솥뚜껑을 방패처럼 들고 마당 한가운데 서 있었다⁠. 새벽안개가 우물가에 낮게 깔려 있었다⁠. 사부님은 국자를 들고 동쪽에⁠, 마님은 검을 들고 서쪽에 있었다⁠. 둘 사이가 열 걸음이었다⁠.

“⁠아묵이 적이오⁠.⁠” 마님이 말했다⁠. “⁠아묵이 들어오면 둘이 같이 받소⁠. 내가 초식 이름을 부르면 영감이 맞는 초식을 내시오⁠.⁠”

“⁠왜 임자가 부르오⁠?⁠”

“⁠내 초식이 열아홉이고 영감 초식이 열여덟이니까⁠. 많은 사람이 부르는 거요⁠.⁠”

“⁠적은 사람이 불러야 빨리 끝나오⁠.⁠”

아묵은 솥뚜껑 뒤에서 한숨을 쉬었다⁠. 해가 뜨기도 전에 벌써 두 판째였다⁠.

결국 마님이 불렀다⁠. 사부님이 졌다기보다⁠, 사부님은 부르는 동안 숨이 차서 국자를 휘두를 수가 없었다⁠.

“⁠운롱⁠.⁠”

마님의 검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왔다⁠. 사부님의 국자가 아래에서 위로 올라왔다⁠. 국자가 검을 쳐냈다⁠. 아묵이 솥뚜껑을 들고 끼어들 틈도 없이 두 노인의 쇠붙이가 서로를 튕겨 냈다⁠.

“⁠영감⁠! 아묵을 치라니까 왜 내 검을 치오⁠?⁠”

“⁠임자 검이 운롱으로 오면 내 국자는 저절로 탄두로 가오⁠. 탄두가 운롱을 깨는 수요⁠. 서른 해 전에 그렇게 배웠소⁠.⁠”

“⁠다시⁠. 창랑⁠.⁠”

검이 옆으로 흘렀다⁠. 국자가 대각선으로 들어와 검의 가운데를 눌렀다⁠. 또 서로를 막았다⁠. 아묵은 솥뚜껑을 내렸다⁠.

“⁠사부님⁠, 마님⁠. 제가 보기에는 두 분이 저를 안 보십니다⁠.⁠”

“⁠너는 보이지도 않는다⁠.⁠” 사부님이 국자를 늘어뜨렸다⁠. “⁠눈이 저 검을 따라가오⁠.⁠”

“⁠내 눈은 영감 국자를 따라가오⁠.⁠” 마님이 검을 거두었다⁠. “⁠서른 해 전에 영감 칼을 막으려고 만든 검이라⁠, 검이 영감을 찾아가오⁠.⁠”

둘이 말을 멈추고 서로를 보았다⁠. 아묵은 두 노인이 같은 생각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 상대를 막으려고 평생 다듬은 초식은 상대 말고는 아무도 겨누지 않았다⁠. 마당에서 칼을 들면 둘의 몸은 아직도 서로를 찾았다⁠.

“⁠어젯밤에는 됐잖아요⁠.⁠” 아묵이 말했다⁠. “⁠등을 대니까요⁠.⁠”

“⁠어젯밤에는 깜깜했소⁠.⁠” 마님이 말했다⁠.

“⁠깜깜하면 서로 안 보이니까 되는 거요⁠.⁠” 사부님이 말했다⁠.

“⁠그럼 눈 감고 하시면 되겠네요⁠.⁠”

두 노인이 동시에 아묵을 보았다⁠. 아묵은 솥뚜껑을 다시 들었다⁠.

눈을 감자 처음에는 사부님이 장독대를 걷어찼고 마님이 우물 두레박에 이마를 박았다⁠. 세 번째에는 아묵의 솥뚜껑이 국자와 검에 한꺼번에 맞아 징처럼 울렸다⁠. 아묵은 엉덩방아를 찧고 웃었다⁠. 두 노인은 웃지 않았다⁠. 눈을 뜨고 서로를 보는 얼굴이 이상했다⁠. 둘 다 무언가를 찾았다는 얼굴이었다⁠.

“⁠사매라는 사람⁠.⁠” 사부님이 국자를 허리에 꽂으며 물었다⁠. “⁠점창 사람이오⁠?⁠”

“⁠옛날 일이오⁠.⁠” 마님이 검을 꽂았다⁠. “⁠영감 휘파람만큼 옛날 일이오⁠.⁠”

사부님은 더 묻지 않았다⁠. 마님도 더 말하지 않았다⁠. 안개가 걷히고 고개 아래 첫 굽이에 상단의 천막이 보였다⁠. 가마는 아직 거기 있었다⁠.

*

청매는 운령촌 본주묘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공기가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본주묘는 운령촌 사람들이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사당이었다⁠. 백족 마을마다 저마다의 본주가 있었고⁠, 운령촌의 본주는 붉은 얼굴에 산초 가지를 든 산신이었다⁠. 마을의 혼례도 장례도 땅 나누기도 본주 앞에서 했다⁠.

마당에 마을 사람이 마흔 명쯤 모여 있었다⁠. 평소에는 청매가 들어오면 다들 고개를 숙이고 외상 이야기부터 꺼냈다⁠. 오늘은 아무도 외상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다들 팔짱을 끼고 있었다⁠.

“⁠비적 애들을 마구간에 재운다며⁠?⁠” 대장간 사내가 먼저 말했다⁠.

“⁠아이들이오⁠.⁠” 화운이 말했다⁠.

“⁠비적 애들이지⁠. 관군이 삼월가에 쳐들어온다던데⁠, 고개에서 싸움 나면 우리 마을까지 불똥이 튀어⁠. 영감님 국수 맛있는 거야 알지만⁠, 국수 먹다 마을 불타면 안 되지⁠.⁠”

“⁠상단에서 소금을 준다더구먼⁠.⁠” 콩비지 파는 아낙이 말했다⁠. “⁠고갯마루를 상단이 쥐면 짐꾼 쉬는 데에서 나는 돈을 마을이랑 나눈대⁠. 해마다 소금 한 수레씩⁠. 소금 한 수레면 우리 애 사계 서당 보내고도 남아요⁠.⁠”

“⁠나도 들었소⁠.⁠” 청매가 말했다⁠. “⁠상단 행수는 말을 잘하오⁠. 말을 깎아서 하니 귀에 잘 들어가오⁠.⁠”

“⁠마님은 왜 상단 편을 안 드세요⁠? 어차피 갈라서서 이해 가신다면서요⁠.⁠”

마당이 웃음으로 술렁였다⁠. 청매는 이 마을에서 서른 해를 살았다⁠. 서른 해 동안 마을은 두 노인의 다툼을 날씨처럼 이야기했다⁠. 오늘은 운매객잔 영감이 국자를 던졌대⁠, 오늘은 마님이 검으로 상추를 잘랐대⁠. 화리서를 촌장 할멈에게 맡긴 날에도 마을은 술렁였다⁠. 화리서를 맡기던 날의 술렁임은 이야기거리였다⁠. 오늘의 술렁임은 장삿속이었다⁠.

“⁠조용들 하시오⁠.⁠”

본주 상 앞의 낮은 의자에서 촌장 할멈이 지팡이로 바닥을 찍었다⁠. 여든이 넘은 할멈은 허리가 반으로 굽었고⁠, 눈은 맑았다⁠. 할멈은 서른 해 전에도 촌장이었다⁠. 젊은 두 칼잡이가 피투성이로 고개를 넘어왔을 때 땅을 내준 사람이 할멈이었다⁠.

“⁠서른 해 전 얘기를 해 주지⁠.⁠” 할멈이 말했다⁠. “⁠이 둘이 고개를 넘어왔을 때⁠, 남자는 칼을 녹이고 있었고 여자는 칼을 안 놓고 있었어⁠. 둘이 고갯마루에 객잔을 짓겠다길래⁠, 내가 본주 앞에 세웠지⁠. 고갯마루 땅은 마을 땅이야⁠. 마을 땅을 남한테 줄 때는 본주 앞에서 줘⁠. 본주는 부부한테 주는 땅만 받아⁠. 둘이 해마다 봄 제삿날에 같이 와서 차를 올리면 땅은 둘 거고⁠, 한 사람이라도 안 오면 마을로 돌아온다⁠. 그게 본주 앞에서 정한 약속이야⁠.⁠”

청매는 화운을 보았다⁠. 화운도 청매를 보았다⁠. 둘 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서른 해 동안 제삿날이면 둘은 그냥 같이 갔다⁠. 같이 안 가면 안 되는 줄은 몰랐다⁠. 같이 가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니까⁠.⁠” 대장간 사내가 손뼉을 쳤다⁠. “⁠두 분이 갈라서면 땅이 마을로 오는 거네⁠!⁠”

마당이 환해졌다⁠. 아낙들이 서로 팔을 잡았다⁠. 청매는 서른 해 동안 이렇게 밝은 마을 사람들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제 이혼을 마을 사람 마흔 명이 반기는 얼굴이었다⁠.

“⁠촌장님⁠.⁠” 화운이 천천히 말했다⁠. “⁠화리서는 촌장님이 갖고 계시지요⁠?⁠”

“⁠갖고 있지⁠. 본주 앞에서 태우면 그때 갈라선 거야⁠. 아직 안 태웠어⁠.⁠”

“⁠언제 태우오⁠?⁠”

“⁠너희가 태워 달라고 하면⁠. 아니면 제삿날에 한 사람이 안 오면⁠, 그날 밤 내가 태우고⁠.⁠”

“⁠제삿날이 언제요⁠?⁠”

“⁠열흘 뒤⁠. 삼월가 열리기 사흘 전이야⁠.⁠”

“⁠같이 가면요⁠?⁠” 청매가 물었다⁠.

할멈이 지팡이로 본주 상을 가리켰다⁠. 상 위에 찻잔 두 개를 올리는 나무 받침이 있었다⁠. 받침 가운데가 오목하게 닳아 있었다⁠. 서른 해 동안 두 노인이 올린 자국이었다⁠.

“⁠둘이 한 받침에 잔을 올려⁠. 둘이 같이 들고 같이 내려놔⁠. 차를 쏟으면 본주가 안 받은 거야⁠. 서른 해 동안 너희는 한 번도 안 쏟았어⁠. 싸우면서도 잔은 안 쏟더라⁠.⁠”

*

화운은 본주묘에서 객잔으로 올라오는 길 내내 뒤통수가 따가웠다⁠. 마을 사람들이 줄줄이 따라 나와 두 노인을 배웅했다⁠. 배웅이 아니었다⁠. 콩비지 아낙은 이삿짐 쌀 때 쓰라며 새끼줄을 한 타래 쥐여 주었다⁠. 대장간 사내는 이해까지 가는 길에 쓰라며 짚신 두 켤레를 들고 왔다⁠. 한 켤레는 마님 것⁠, 한 켤레는 영감 것⁠. 따로 묶어서⁠.

“⁠영감님⁠, 창산 차밭 가실 때 우리 사위가 지게 져 드릴게요⁠.⁠”

“⁠고맙소⁠.⁠” 화운이 짚신을 받았다⁠. “⁠사위가 지게를 지면 아낙은 뭘 지오⁠?⁠”

“⁠저는 소금 받으러 사계 가야죠⁠.⁠”

청매가 옆에서 콧소리를 냈다⁠. 화운은 청매의 콧소리가 웃음인 줄 알았다⁠. 옆을 보니 청매는 웃지 않았다⁠. 입술을 꼭 다물고 있었다⁠.

객잔 돌계단에 닿았을 때 계단 위에 꾸러미가 셋 놓여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먼저 올라와 놓고 갔다⁠. 엿 한 판⁠, 말린 감 한 꾸러미⁠, 그리고 쪽지가 꽂힌 소금 한 봉지⁠. 쪽지에는 서툰 붓글씨로 「⁠갈라서시는 날 국수 한 그릇씩 부탁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건 이별 선물이오⁠.⁠” 청매가 엿판을 들었다⁠. “⁠우리가 서른 해 동안 외상 준 국수가 몇 그릇인데⁠.⁠”

“⁠엿은 맛있겠소⁠.⁠”

“⁠영감⁠!⁠”

“⁠엿은 죄가 없소⁠.⁠”

화운은 엿 한 조각을 떼어 입에 넣었다⁠. 청매가 노려보다가 엿판을 낚아채 한 조각을 떼어 입에 넣었다⁠. 둘은 돌계단에 나란히 앉아 엿을 씹었다⁠. 이가 엿에 붙어 한동안 아무도 말을 못 했다⁠.

*

청매는 엿을 다 씹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열흘이오⁠.⁠”

“⁠알고 있소⁠.⁠”

“⁠열흘 동안 우리가 싸우면⁠, 마을 사람들이 제삿날 본주 앞에서 우리 차가 쏟아지기를 기다릴 거요⁠. 한 사람이 쏟으면 끝이오⁠. 아니⁠, 쏟을 필요도 없소⁠. 우리가 본주 앞에서 서로 노려보기만 해도 촌장 할멈이 본주가 안 받았다고 할 거요⁠. 마을 사람 마흔이 그걸 원하오⁠.⁠”

“⁠그럼 안 싸우면 되오⁠.⁠”

“⁠영감이 안 싸울 수 있소⁠?⁠”

“⁠임자가 먼저 시비를 안 걸면⁠.⁠”

“⁠그것 보시오⁠. 벌써 걸었소⁠.⁠”

화운은 국자를 무릎에 얹었다⁠. 고개 아래로 마을의 지붕들이 보였다⁠. 저 아래 본주묘 마당에서 아직 사람들이 모여 웃고 있었다⁠. 마을 너머에 상단의 천막이 있었고⁠, 더 아래 골짜기에 방칠의 천막들이 있었다⁠. 마구간에서 소추가 먹보에게 콩을 주며 노래를 불렀다⁠.

“⁠갈라서려던 사람들이 열흘 동안 금슬 좋은 척을 해야 하오⁠.⁠” 화운이 말했다⁠.

“⁠마을 앞에서는⁠.⁠”

“⁠손도 잡아야 하오⁠?⁠”

“⁠잡는 척만⁠.⁠”

“⁠임자⁠, 서른 해 동안 우리가 남들 앞에서 손잡은 적이 있소⁠?⁠”

청매가 생각했다⁠. 한참 생각했다⁠. “⁠혼례 날⁠. 촌장 할멈이 억지로 잡게 했소⁠.⁠”

“⁠그럼 한 번은 해 봤소⁠.⁠”

“⁠그날 영감 손에 땀이 났소⁠.⁠”

“⁠임자 손이 차가웠소⁠. 칼 쥐던 손이라⁠.⁠”

마구간에서 소추가 콩 바가지를 든 채 뛰어왔다⁠. 맨발이 돌계단을 콩콩 밟았다⁠.

“⁠할아버지⁠, 할머니⁠. 우리 아저씨가 말 전하래요⁠.⁠”

“⁠너희 아저씨가 누구냐⁠?⁠” 화운이 물었다⁠.

“⁠가면 아저씨요⁠. 아까 개울에서 그랬어요⁠. 두 분 싸우지 말래요⁠. 땅이 마을로 가면 마을이 상단에 판대요⁠. 상단이 가지면 우리는 또 쫓겨난대요⁠.⁠” 소추가 숨을 쉬고 덧붙였다⁠. “⁠그러니까 땅은 두 분이 갖고 있다가 아저씨한테 파시래요⁠.⁠”

청매가 소추의 콩 바가지에서 콩 두 알을 집어 하나를 입에 넣었다⁠. 날콩이었다⁠. 청매는 얼굴을 찡그리고 콩을 씹었다⁠.

“⁠네 아저씨한테 전해라⁠. 우리가 싸우든 말든 네 아저씨가 참견할 일이 아니라고⁠.⁠”

“⁠참견 말고 뭐라고 해요⁠?⁠”

“⁠그냥 고맙다고 해라⁠.⁠” 화운이 말했다⁠.

소추가 고개를 갸웃하고 마구간으로 뛰어갔다⁠. 청매가 화운을 노려보았다⁠.

“⁠우리를 쫓아내러 온 사람한테 고맙다고 하오⁠?⁠”

“⁠우리 갈라서지 말라는 사람은 서른 해 동안 저 사람이 처음이오⁠.⁠”

청매는 대답 대신 손에 남은 날콩을 마저 씹었다⁠. 둘은 또 말을 멈췄다⁠. 서른 해 전 혼례 날 본주묘 마당의 땀과 찬 손이 둘 사이로 지나갔다⁠. 청매가 먼저 일어났다⁠. 허리를 짚었다⁠.

“⁠내일 아침부터 연습하오⁠. 마을 사람들이 장 보러 지나가는 시각에 돌계단에서⁠.⁠”

“⁠무슨 연습⁠?⁠”

“⁠금슬⁠.⁠”

화운은 국자를 쥔 채 청매를 올려다보았다⁠. 청매는 연한 매화색 저고리 소매를 털고 대청으로 들어갔다⁠. 문턱을 넘다가 한 번 돌아보았다⁠.

“⁠영감은 코 고는 거부터 고치시오⁠. 금슬 좋은 부부는 코를 안 고오⁠.⁠”

“⁠그런 법이 어디 있소⁠?⁠”

“⁠본주 앞에 있소⁠. 오늘 생겼소⁠.⁠”

4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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