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5,605자)

삼월가 마지막 날

객잔을 지키는 고수 노부부 · 하청오

청매는 의자 옆에서 가마가 멈추는 것을 보았다⁠. 옥교가 휘장을 걷고 내렸다⁠. 은빛 머리가 아침 안개에 젖어 있었다⁠. 옥교는 청매의 찢어진 소매와 저고리 자락의 핏자국을 보고⁠, 의자 위의 화운을 보고⁠, 흙에 박혔던 자국이 남은 방칠의 칼을 보았다⁠. 마지막으로 묶인 마부들 가운데 이마에 무명을 감은 늙은 마부를 보았다⁠.

“⁠외삼촌⁠.⁠”

늙은 마부가 고개를 들었다⁠. “⁠옥교야⁠, 나는 괜찮다⁠. 이 집 점소이가 사흘 내내 와서 이마를 꿰매 줬다⁠. 바느질이 엉망이더라⁠.⁠”

아묵이 장대를 쥔 채 얼굴을 붉혔다⁠.

마득곤이 말에서 내렸다⁠. 병사가 열이었다⁠. 마득곤은 비탈 아래 삼백을 둘러보고 손을 칼자루에 얹었다⁠.

“⁠귀면 방칠⁠, 마부와 소금을 내놓고 포박을 받으라⁠.⁠”

“⁠마부는 지금 풀겠소⁠.⁠” 방칠이 말했다⁠. 형님과 할멈에게 진 칼이라고 덧붙이지 않았다⁠. 아탄이 칼을 뽑아 마부들의 줄을 하나씩 끊었다⁠. 늙은 마부가 일어나 아묵의 어깨를 짚고 옥교에게 걸어갔다⁠. 옥교가 외삼촌의 손을 잡았다⁠. 가락지가 외삼촌의 손등에 닿아 짤랑거렸다⁠.

“⁠포박은⁠?⁠” 마득곤이 물었다⁠.

“⁠천총 나리⁠.⁠” 화운이 의자에서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등에서 피가 배어 솜이불을 적시고 있었다⁠. “⁠여기서 칠이를 묶어 가면 삼백이 나리를 막을 거요⁠. 나리는 병사가 열이오⁠. 이백이 오려면 장이 파해야 하오⁠. 오늘은 아무도 이기지 못하오⁠.⁠”

“⁠영감이 그걸 어떻게 정하오⁠?⁠”

“⁠정하는 게 아니오⁠. 다 같이 정하자는 거요⁠. 삼월가 마지막 날⁠, 장터에서⁠. 대리 사람들 다 보는 데서⁠.⁠”

청매가 품에서 나무 조각을 꺼냈다⁠. 낙인 찍힌 면을 마득곤에게 보였다⁠.

“⁠나리가 여기서 칼을 쓰시면⁠, 나는 여기서 이걸 보이겠소⁠. 삼백 앞에서⁠. 장터까지 기다리시면⁠, 장터에서 보이겠소⁠. 대리 사람 앞에서⁠. 어디서든 보이오⁠.⁠”

“⁠어디서든 보이면 왜 기다려야 하오⁠?⁠”

“⁠여기서 보이면 삼백이 칼을 들고⁠, 장터에서 보이면 대리 사람들이 말을 하오⁠. 칼보다 말이 덜 죽소⁠.⁠”

마득곤은 한참 나무 조각을 보았다⁠. 옥교를 보았다⁠. 옥교는 외삼촌의 손을 놓지 않았다⁠.

“⁠삼월가 마지막 날이오⁠.⁠” 마득곤이 칼자루에서 손을 뗐다⁠. “⁠그날 장이 파할 때까지⁠. 방칠은 제 발로 오시오⁠. 안 오면 그날 밤 이백이 오오⁠.⁠”

*

화운은 촌장 할멈 집 곁방에 다시 엎드려 누웠다⁠. 이튿날 밤이었다⁠. 청매가 등을 닦다가 수건을 대야에 담그고 말했다⁠.

“⁠영감⁠, 의논 좀 합시다⁠.⁠”

화운이 거적에서 고개를 들었다⁠. 등이 당겼다⁠. 그래도 고개를 들었다⁠.

“⁠임자가 지금 의논이라고 했소⁠?⁠”

“⁠했소⁠.⁠”

“⁠서른 해 동안 처음 듣는 말이오⁠.⁠”

“⁠서른 해 동안 영감이 의논 없이 밥을 퍼 줘서 내가 못 했소⁠.⁠” 청매가 수건을 짰다⁠. “⁠고갯마루 땅 말이오⁠. 본주가 한 해 더 우리 거라 했소⁠. 객잔은 탔소⁠. 우리 둘이 다시 지어서 국수를 삶을 수도 있소⁠. 영감 등이 나으면⁠.⁠”

“⁠임자 생각은⁠?⁠”

“⁠영감 생각부터 말하시오⁠. 의논은 그렇게 하는 거라고 촌장 할멈이 그러더이다⁠.⁠”

화운은 한참 거적에 이마를 대고 있었다⁠.

“⁠칠이네한테 주고 싶소⁠.⁠”

“⁠알았소⁠.⁠”

“⁠그게 다요⁠? 안 싸우오⁠?⁠”

“⁠나도 그 생각이었소⁠. 영감이 먼저 말하게 하려고 기다렸소⁠.⁠” 청매가 화운의 등에 수건을 얹었다⁠. “⁠서른 해 동안 영감이 먼저 퍼 주고 나는 따라갔소⁠. 이번에는 같이 퍼 주는 거요⁠. 순서만 바꿨소⁠.⁠”

“⁠그럼 우리는 어디 사오⁠?⁠”

“⁠그건 내일 의논합시다⁠. 하루에 하나씩⁠.⁠”

화운은 웃다가 등이 당겨 신음했다⁠. 청매도 웃었다⁠. 이를 다 보이게⁠.

*

아묵은 장터에 들어서자마자 귀가 먹먹해졌다⁠. 대리 삼월가는 창산 기슭 넓은 들판에서 닷새 동안 열렸다⁠. 마지막 날이라 사람이 가장 많았다⁠. 백족 아가씨들이 머리에 흰 깃을 꽂고 지나갔다⁠. 토번 사내들이 털옷 소매를 걷고 말을 팔았다⁠. 약초 장수가 곰 쓸개를 흔들었고⁠, 버섯 장수가 송이를 바구니째 쌓았다⁠. 들판 한쪽 둑길에서는 말달리기가 한창이었다⁠. 말이 지나갈 때마다 흙먼지가 솟고 함성이 터졌다⁠.

아묵과 형은 의자 장대를 메고 사람들 사이를 헤쳤다⁠. 사부님은 의자 위에서 솜이불을 두르고 국자를 쥐었다⁠. 나흘 동안 마님이 등을 닦고 의원이 다시 꿰맸다⁠. 사부님은 의원에게 다음에는 촘촘히 꿰매 달라고 했다⁠. 아묵의 바느질을 보고 나서 한 말이었다⁠.

“⁠사부님⁠, 사람들이 다 봅니다⁠.⁠”

“⁠의자 위에 노인이 앉아서 국자를 들고 있으니 보지⁠.⁠”

“⁠국자를 내려놓으시면 안 봅니다⁠.⁠”

“⁠그럼 내가 누군지 모른다⁠.⁠”

마님은 의자 옆에서 걸었다⁠. 저고리를 빨아 입었다⁠. 매화색 위에 핏자국이 연하게 남았다⁠. 마님은 핏자국을 지우려 하지 않았다⁠.

털모자 우두머리가 말 시장에서 둘을 알아보고 뛰어왔다⁠.

“⁠영감님⁠! 마님⁠! 객잔 탔다면서요⁠! 내기는요⁠?⁠”

“⁠아직이오⁠.⁠” 둘이 동시에 말했다⁠.

“⁠아직도요⁠? 이제 객잔도 없는데 뭘 나눠요⁠?⁠”

“⁠차병이 있소⁠.⁠” 둘이 또 동시에 말했다⁠.

털모자가 은전을 한 닢 더 꺼내 아묵의 손에 놓았다⁠. “⁠마님에게⁠. 아니⁠, 영감님에게⁠. 아니다⁠, 둘 다에게⁠.⁠”

장터 한가운데 관의 단이 있었다⁠. 삼월가를 여는 날 대리부 관리들이 서서 장을 여는 자리였다⁠. 오늘은 마득곤이 단 위에 있었다⁠. 옆에 옥교가 있었다⁠. 단 아래로 운령촌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촌장 할멈이 대장간 사내의 등에 업혀 왔다⁠. 콩비지 아낙은 죽 단지를 들고 왔다⁠. 왜 죽 단지를 들고 왔느냐고 물으니 장터에서 오래 서 있으면 배고프다고 했다⁠.

해가 창산 봉우리를 향해 기울 무렵⁠, 장터 어귀에서 사람들이 길을 비켰다⁠. 방칠이 걸어왔다⁠. 가면을 쓰지 않았다⁠. 등에 큰 칼을 메고⁠, 뒤에 흑수곡 사람 서른을 데리고 왔다⁠. 소금 자루를 진 노새 마흔 마리가 따라왔다⁠. 장터 사람들이 방칠의 얼굴을 보고 수군거렸다⁠. 아이 하나가 울려다가⁠, 옆의 소추가 손을 흔드는 것을 보고 그쳤다⁠.

*

화운은 의자에 앉은 채 단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청매가 의자 옆에 섰고⁠, 방칠이 반대편 옆에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이 둘러쌌다⁠. 장터의 소리가 조금씩 잦아들었다⁠.

“⁠천총 나리⁠, 행수⁠.⁠” 화운이 말했다⁠. “⁠여기서는 다 같이 이야기합시다⁠. 칼은 안 뽑기로 하고⁠.⁠”

“⁠영감 국자는⁠?⁠” 마득곤이 물었다⁠.

“⁠국자는 칼이 아니오⁠.⁠”

“⁠어제 흑수곡에서는 칼이었소⁠.⁠”

“⁠어제는 어제고⁠.⁠”

청매가 나무 조각을 단 위로 올려 보였다⁠. 낙인을 사람들 쪽으로 돌렸다⁠. “⁠흑수곡 비탈 위 바위에 화약 구멍이 열두 개 있었소⁠. 이건 그 자리에서 나온 상자 조각이오⁠. 사계 상단 표식이오⁠. 지난가을 새 소금 길을 내려고 바위를 깼고⁠, 사흘 뒤 비가 와서 산이 무너졌소⁠. 마을 셋이 묻혔소⁠.⁠”

장터가 술렁였다⁠. 마득곤이 손을 들었다⁠.

“⁠관 문서에는 산사태라고 올라가 있소⁠. 나무 조각 하나가 문서를 뒤집지는 못하오⁠.⁠”

“⁠나무 조각만 있는 게 아니오⁠.⁠”

옥교 옆에서 늙은 마부가 앞으로 나왔다⁠. 이마에 아묵이 꿰맨 자국이 삐뚤게 남아 있었다⁠.

“⁠화약은 내가 날랐소⁠.⁠” 늙은 마부가 말했다⁠. “⁠노새 여섯 마리로 열두 상자⁠. 낙등에서 흑수곡 위 공사터까지⁠. 비가 그쳤다길래 날랐소⁠. 화약 다루는 사람들이 바위에 구멍을 뚫고 넣었소⁠. 나는 노새를 끌고 내려오다가 땅 밑에서 울리는 소리를 들었소⁠. 열두 번⁠. 같은 간격으로⁠.⁠” 늙은 마부가 옥교를 보았다⁠. “⁠행수는 내 조카요⁠. 그래도 들은 건 들은 거요⁠.⁠”

옥교는 외삼촌을 보았다⁠. 오래 보았다⁠. 그리고 앞으로 한 걸음 나왔다⁠. 말을 깎지 않았다⁠.

“⁠맞습니다⁠. 상단이 화약을 썼습니다⁠. 비가 다시 올 줄 몰랐습니다⁠. 알고 나서는 덮었습니다⁠. 덮지 않으면 새 길이 막히고⁠, 새 길이 막히면 마방 이천이 굶습니다⁠. 그 이천에 우리 외삼촌도 있습니다⁠.⁠” 옥교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흑수곡 사람들한테는 이름 없이 쌀을 보냈습니다⁠. 그것으로 됐다고 여겼습니다⁠. 됐을 리가 없지요⁠.⁠”

“⁠행수는 무엇을 내놓겠소⁠?⁠” 화운이 물었다⁠.

“⁠새 길은 못 닫습니다⁠. 닫으면 이천이 굶습니다⁠. 그 대신⁠.⁠” 옥교가 방칠을 보았다⁠. “⁠흑수곡 삼백을 상단 짐꾼으로 받겠습니다⁠. 상단 마방과 같은 품삯으로⁠. 흑수곡 비탈은 상단이 파서 묻힌 사람들을 수습하겠습니다⁠. 운령촌에는 길 내준 몫으로 해마다 소금 한 수레를 내겠습니다⁠. 점창은 저를 내칠 겁니다⁠. 사저처럼요⁠.⁠”

장터가 조용해졌다⁠. 마득곤이 투구를 벗었다⁠. 이마에 투구 자국이 붉었다⁠.

“⁠행수가 그렇게 하면 내 문서가 틀린 게 되오⁠.⁠”

“⁠틀렸잖소⁠.⁠” 청매가 말했다⁠.

마득곤은 청매를 보았다⁠. 한참 뒤에 투구를 단 위에 내려놓았다⁠.

“⁠내가 올린 문서는 내가 고치겠소⁠. 대리부에 내가 가서 말하겠소⁠. 천총 자리를 잃을 거요⁠. 잃으면 잃는 거요⁠.⁠” 마득곤이 방칠을 보았다⁠. “⁠그래도 소금 행렬을 친 죄는 남소⁠. 마부가 다쳤고⁠, 관의 방이 붙은 뒤의 일이오⁠. 비적으로 다스리면 목이오⁠.⁠”

*

방칠은 장터 사람들의 눈이 제 얼굴에 모이는 것을 느꼈다⁠. 덴 반쪽과 성한 반쪽⁠. 방칠은 등에서 큰 칼을 뽑았다⁠. 장터 사람들이 물러났다⁠. 병사들이 창을 들었다⁠.

방칠은 칼을 단 아래 흙에 내려놓았다⁠. 손잡이를 마득곤 쪽으로 돌려서⁠.

“⁠죄는 내가 지오⁠. 행렬을 친 것도⁠, 마부를 묶은 것도 내가 시켰소⁠. 내 식구들은 내 말을 들었을 뿐이오⁠. 목이 필요하면 가져가시오⁠. 대신 식구 삼백은 행수의 짐꾼으로 보내 주시오⁠.⁠”

“⁠칠아⁠.⁠” 화운이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려 했다⁠. 청매가 화운의 어깨를 눌렀다⁠. 화운은 앉은 채로 말했다⁠.

“⁠천총 나리⁠, 칠이의 목 말고 다른 걸 받으시오⁠.⁠”

“⁠무엇을⁠?⁠”

“⁠고갯마루 땅⁠.⁠” 화운이 청매를 보았다⁠. 청매가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이 말을 나흘 동안 곁방에서 의논했다⁠. 서른 해 만에 처음으로 의논이라는 것을 했다⁠. “⁠본주가 우리한테 준 땅이오⁠. 우리가 삼백한테 내주겠소⁠. 거기에 역참을 짓게 하시오⁠. 칠이네 사람들이 꾸리고⁠, 상단 짐꾼도 쉬고⁠, 토번 마방도 쉬고⁠, 운령촌 사람도 쉬게⁠. 아무나 쉬는 자리로⁠. 관은 거기서 세를 받으시오⁠. 한 짐에 한 푼⁠. 세 푼이면 토번 사람들이 옛길로 돌아가오⁠. 한 푼이면 다 운령을 넘소⁠. 많이 넘으면 세 푼보다 많이 걷히오⁠.⁠”

털모자 우두머리가 사람들 틈에서 소리쳤다⁠. “⁠한 푼이면 우리 넘소⁠!⁠”

“⁠칠이는 곤장을 맞히시오⁠. 그리고 역참을 짓는 동안 칠이 등에 짐을 지우시오⁠. 칠이가 다시 칼을 들면⁠.⁠” 화운이 숨을 골랐다⁠. “⁠내 목을 가져가시오⁠. 내가 칠이 형님이오⁠. 서른 해 전에 못 선 자리에 이번에 서겠소⁠.⁠”

마득곤은 땅바닥의 칼을 보았다⁠. 의자 위의 노인을 보았다⁠. 촌장 할멈을 보았다⁠. 할멈이 대장간 사내의 등에서 지팡이로 단을 쳤다⁠.

“⁠본주 땅이야⁠. 본주는 부부한테 준 땅을 부부가 내주겠다면 받아⁠. 내가 본주 앞에서 약속하지⁠.⁠”

마득곤이 단 위에서 내려왔다⁠. 방칠의 칼을 집어 들었다⁠. 무거웠는지 두 손으로 들었다⁠.

“⁠곤장 삼십⁠. 역참을 다 지을 때까지 짐꾼⁠. 칼은 관이 가져가오⁠.⁠” 마득곤이 화운을 보았다⁠. “⁠영감 목은 맡아 두겠소⁠.⁠”

“⁠목 맡기는 김에 국수도 맡기겠소⁠. 역참이 문을 열면 나리 국수는 덤이오⁠.⁠”

“⁠두 번째 잔도 덤이오⁠?⁠”

“⁠두 번째 잔은 아묵이 주오⁠. 아묵은 쓴 잔부터 주오⁠.⁠”

장터 어디선가 누가 웃었다⁠. 콩비지 아낙이었다⁠. 죽 단지를 끌어안고 웃었다⁠. 방칠은 웃지 않았다⁠. 빈 등에 손을 대 보았다⁠. 서른 해 만에 칼이 없는 등이었다⁠. 가벼웠다⁠. 가벼워서 어디에 손을 둘지 몰랐다⁠. 아탄이 방칠 옆으로 왔다⁠. 아묵이 아탄 옆에 붙었다⁠. 청매는 의자 등받이에 손을 얹었다⁠. 해가 창산 봉우리에 닿았다⁠. 장이 파하는 징 소리가 들판을 건너왔다⁠.

14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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