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5,323자)
등 맞댄 집
객잔을 지키는 고수 노부부 · 하청오
아묵은 질화로 뚜껑을 열고 재를 헤쳤다. 재 밑에서 불씨가 붉게 숨을 쉬었다. 한 달 전 객잔이 탄 새벽, 아묵은 무너진 부엌 숯 더미에서 쇠솥 밑의 불씨를 집게로 집어 질화로에 옮겼다. 촌장 할멈 집 부엌 구석에 두고 아침저녁으로 숯을 갈아 넣었다. 서른 해 동안 꺼진 적 없는 불이었다. 아묵이 지키다 꺼뜨리면 사부님 얼굴을 볼 낯이 없었다. 마님 얼굴은 더 볼 낯이 없었다.
“아묵, 아직 안 꺼졌냐?” 형이 들보를 어깨에 메고 지나가며 물었다.
“안 꺼졌어요.”
“한 달 내내 화로 끼고 자더니.”
“형도 한 달 내내 저 국수 다 먹었잖아요.”
형은 대답 대신 들보를 고쳐 멨다. 형은 이제 국수 그릇을 받으면 받은 자리에서 먹었다. 국물까지 먹었다. 먹고 나서 그릇을 돌려줄 때 꼭 한마디를 했다. 짜다, 싱겁다, 면이 불었다. 아묵은 형의 한마디를 날마다 기다렸다.
운령 고갯마루에 역참이 올라가고 있었다. 탄 객잔 자리였다. 흑수곡 사람들이 나무를 베어 오고, 운령촌 대장간 사내가 못을 대고, 사계 상단이 기와를 보냈다. 옥교가 보낸 기와였다. 기와와 함께 쪽지가 왔다. 「사저, 점창에서 저도 이름이 지워졌어요. 이제 둘이 같아요. 기왓값은 안 받아요.」 마님은 쪽지를 읽고 콧소리를 냈다. 이번에도 웃음이었다.
들보를 지는 사내들 가운데 방칠이 있었다. 웃통을 벗고 있었다. 등에 곤장 자국이 줄줄이 아물어 갔다. 서른 대였다. 방칠은 매를 맞고 이틀을 엎드려 있다가 사흘째에 들보를 졌다. 덴 얼굴을 드러낸 채였다. 가면은 흑수곡 비탈의 흰 천 조각들 사이에 그대로 꽂혀 있었다.
마당 한가운데 돌계단 열한 칸은 불에 그을렸지만 멀쩡했다. 계단 위로 새 문틀이 올라갔다. 문틀 위에 간판 자리가 비어 있었다.
“간판은 뭐라고 써요?” 소추가 물었다. 소추는 이 역참에서 먹보를 돌보는 일을 맡았다. 먹보는 소추가 주는 콩만 먹었다. 이제 먹보는 소추의 노새였다.
“운령역참.” 형이 말했다.
“재미없어요.”
“운매.” 아묵이 말했다.
“운매는 할아버지 할머니 이름이잖아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가게 주인 아니잖아요.”
“그럼 너는 뭐라고 하고 싶은데?”
소추가 들보를 내려놓고 쉬는 방칠을 보았다. 방칠의 반쪽 얼굴을 보았다. 고개 위 대숲 아래 새로 지은 작은 집을 보았다. 사부님과 마님이 사는 집이었다.
“반반이요.”
들보 위에서 쉬던 사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형이 이마를 짚었다.
“객잔 이름을 반반으로 하면 사람들이 뭘 반 주는 줄 알아.”
“반 주면 되잖아요. 할머니가 소금 반 줌만 넣으라고 했잖아요.”
“국수를 반 그릇 주면 장사가 안 돼.”
“그럼 국수는 한 그릇 주고 소금만 반 줌 넣어요.”
방칠이 들보에서 내려와 소추 앞에 쭈그려 앉았다. 소추는 방칠의 덴 반쪽 얼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가, 성한 반쪽을 가리켰다.
“아저씨도 반반, 할아버지 할머니도 반반, 노새도 반반이에요. 먹보는 반은 할아버지 거고 반은 할머니 거였잖아요. 이제 제 거지만요.”
“네 거면 반반이 아니잖냐.” 방칠이 말했다.
“먹보는 반반 아니어도 돼요. 노새니까요.”
방칠은 한참 소추를 보다가 일어났다. 장작더미에서 대패질 안 한 판자 하나를 골라 들었다.
“판자는 내가 고르고, 이름은 소추가 정했다. 다들 불만 있으면 소추한테 말해라.”
아무도 소추에게 말하지 않았다. 아묵은 질화로 뚜껑을 닫으며 웃었다. 사부님과 마님이 들으면 둘 다 반대할 이름이었다. 둘 다 반대하면, 둘이 같은 편이 되었다.
*
청매는 본주묘 마당에 화운과 나란히 들어갔다. 이번에는 한 칸 떨어지지 않았다. 화운은 지팡이를 짚었다. 등의 상처가 아물었지만 의원이 한 달은 지팡이를 짚으라고 했다. 화운은 지팡이 끝에 국자를 매달았다. 지팡이를 짚을 때마다 국자가 달그락거렸다.
“영감, 그 국자 좀 떼시오.”
“지팡이만 짚으면 늙어 보이오.”
“국자 달린 지팡이를 짚으면 미쳐 보이오.”
촌장 할멈이 본주 상 앞의 낮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없었다. 둘이 조용히 오라고 했다. 할멈은 품에서 화리서를 꺼냈다. 서른 해 만에 둘이 함께 쓴 종이였다. 한 달 전 갈라서겠다고 쓰고 손도장을 찍었다. 손도장 둘이 종이 아래에 나란히 있었다.
“태워 달라고?”
“예.” 둘이 동시에 말했다.
“태우면 갈라선 거야. 본주 앞에서.”
“알고 있소.”
할멈은 둘을 오래 보았다. 그러다가 웃었다. 이가 다 빠진 잇몸이 보였다.
“땅도 내줬겠다, 객잔도 탔겠다, 붙어 있을 까닭이 하나도 없구나.”
“하나도 없소.” 청매가 말했다.
“그러니 태워 주시오.” 화운이 말했다.
할멈이 화리서를 본주 상의 촛불에 댔다. 종이 귀퉁이가 검게 말렸다. 불이 손도장 둘 쪽으로 번졌다. 두 손도장이 함께 탔다. 재가 본주 상 위의 오목하게 닳은 받침 자리에 떨어졌다.
“갈라섰다.” 할멈이 말했다. “이제 너희는 남남이야.”
청매는 재를 보았다. 서른 해가 재 한 줌이었다. 손바닥 하나에 다 담겼다. 청매는 재를 손바닥으로 쓸어 담지 않았다. 바람에 날리게 두었다.
화운이 지팡이를 짚고 한 걸음 나왔다. 국자가 달그락거렸다.
“촌장님, 하나만 더 부탁하겠소.”
“뭘?”
“이 사람하고 혼례를 올리고 싶소.”
할멈이 눈을 끔벅였다. 청매가 화운을 보았다. 화운은 청매를 보지 않고 본주를 보았다.
“방금 갈라섰는데?”
“그래서 하는 거요. 서른 해 전에는 칼끝으로 장가들었소. 피투성이로 고개를 넘어와서, 땅이 필요해서, 촌장님이 시켜서 손을 잡았소. 이번에는 땅도 없고 객잔도 없소. 아무도 안 시켰소.” 화운이 그제야 청매를 보았다. “임자, 아니 청매. 나랑 혼례 올리겠소?”
청매는 대답하지 않았다. 팔짱을 꼈다.
“조건이 있소.”
“말하시오.”
“국수 소금은 반 줌.”
“좋소.”
“코는 골되 내 얼굴에 대고 골지 마시오.”
“그럼 어디에 대고 골라는 거요?”
“벽에. 등 돌리고 자시오. 나도 등 돌리고 자겠소.”
화운의 긴 눈썹이 올라갔다. 서른 해 동안 마주 보고만 잤다. 원수였던 시절의 버릇이었다. 등을 보이면 칼이 들어온다고 몸이 배웠다.
“등을 맞대고 자자는 거요?”
“서른 해 동안 얼굴은 볼 만큼 봤소. 이제 등을 대고 자 보겠소. 영감 등이 따뜻한지 차가운지 아직 모르오.”
“흑수곡에서 의자 등받이 너머로 대 봤잖소.”
“의자 등받이는 나무였소.”
화운은 지팡이를 짚은 채 한참 웃었다. 웃다가 등이 당겨 허리를 폈다. 할멈이 지팡이로 본주 상을 두 번 쳤다.
“본주가 같은 사람 둘을 두 번 묶는 건 처음이다. 본주도 웃겠다.” 할멈이 찻잔 두 개를 받침에 올렸다. 한 잔은 금이 가 있었다. 청매가 소매에 넣어 온 잔이었다. “같이 들어. 이번에는 손 안 떨리지?”
화운의 손은 떨리지 않았다. 청매의 손도 떨리지 않았다. 둘은 받침을 함께 들어 본주 상에 올렸다. 찻물이 금 간 자리까지 차올랐다가 가라앉았다.
*
화운은 해 질 녘 역참 돌계단에 앉아 대바구니에서 차병을 꺼냈다. 대나무 껍질이 그을린 차병이었다. 서른 해 동안 들보 위에 있었고, 불 속에서 청매의 품에 안겨 나왔다. 한 달 동안 새집 시렁에 있었다.
“뜯겠소?” 화운이 물었다.
“뜯읍시다.”
“누가 뜯소?”
청매가 차병의 한쪽 끝을 잡았다. 화운이 반대쪽 끝을 잡았다. 둘이 함께 비틀었다. 서른 해 묵은 차병이 둔한 소리를 내며 반으로 갈라졌다. 갈라진 면에서 묵은 냄새가 올라왔다. 흙 냄새와 대나무 냄새와 들보 위 서른 해의 연기 냄새가 섞여 있었다.
“반반이오.” 청매가 말했다.
“반반이오.” 화운이 말했다.
둘은 갈라진 반쪽을 하나씩 들고 있다가, 둘 다 한 주전자에 넣었다. 아묵이 질화로의 불씨로 다시 살린 부엌 쇠솥에서 물을 떠 왔다. 서른 해 동안 꺼지지 않은 불로 끓인 물이었다.
첫 잔은 썼다. 화운이 얼굴을 찡그렸고 청매도 찡그렸다. 서른 해 묵은 쓴맛이었다. 두 번째 잔에 아묵이 꿀과 호두를 넣었다. 달았다. 단맛 밑에 쓴맛이 아직 남아 있었다.
역참 마당에서 사람들이 오갔다. 토번 마방이 노새를 매었다. 털모자 우두머리가 역참 어귀의 관 서리에게 한 푼을 내고 소금 자루를 내렸다. 서리는 마득곤이었다. 천총 투구 대신 낮은 벼슬의 두건을 썼다. 대리부에 가서 문서를 고친 대가였다. 마득곤은 한 푼을 받을 때마다 붓으로 적고, 쉬는 참에 아묵에게 두 번째 잔만 달라고 했다. 아묵은 쓴 첫 잔부터 주었다.
“영감님! 마님!” 털모자가 계단 아래에서 소리쳤다. “내기는 어떻게 됐소? 갈라섰소, 안 갈라섰소?”
“갈라섰소.” 둘이 동시에 대답했다.
“그런데 왜 같이 앉아 있소?”
“다시 혼례 올렸소.”
털모자가 은전 주머니를 통째로 아묵에게 던졌다. “다 가져라! 이런 판은 아무도 못 맞힌다!”
들보 위에서 방칠이 웃었다. 맨얼굴로, 성한 반쪽으로 웃었다. 덴 반쪽도 조금 따라 움직였다. 방칠은 들보에서 내려와 계단 아래로 왔다. 손에 대패질한 판자 하나를 들고 있었다. 새 간판이었다. 방칠이 판자를 돌려 보였다. 서툰 글씨가 깊게 파여 있었다.
「반반객잔」
“소추가 정했소. 나는 파기만 했소.” 방칠이 말했다. 그리고 청매를 보았다. 처음으로 청매를 똑바로 보았다. “형수님, 글씨 괜찮소?”
청매는 방칠이 부른 말을 입속에서 한 번 굴렸다. 서른 해 동안 아무도 청매를 그렇게 부르지 않았다. 금사방 사람들은 모두 나루에서 죽었으니까.
“반 자가 삐뚤어졌소.” 청매가 말했다. “왼쪽 반이.”
“오른쪽 반은?”
“오른쪽 반은 영감 글씨보다 낫소.”
화운이 콧소리를 냈다. 방칠이 간판을 들고 계단을 올라갔다. 아탄이 사다리를 붙잡았고, 아묵이 못을 건넸다. 형제가 사다리 양쪽을 하나씩 잡았다. 간판이 문틀 위에 올라갔다. 소추가 먹보 등에 올라타 손뼉을 쳤다.
해가 창산 너머로 내려갔다. 청매가 세 번째 잔을 따랐다. 생강과 산초를 넣었다. 잔은 하나였다. 금 간 잔이었다.
화운이 돌계단 위에서 몸을 돌렸다. 대리로 내려가는 길을 보고 앉았다. 청매도 몸을 돌렸다. 사계로 넘어가는 길을 보고 앉았다. 두 등이 닿았다. 화운의 등은 따뜻했다. 새 흉터가 옛 흉터 옆에 있었다. 청매는 두 흉터를 등으로 알았다.
청매가 잔을 어깨 너머로 건넸다. 화운이 어깨 너머로 받았다.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어깨 너머로 돌려주었다. 청매가 한 모금 마셨다. 생강이 혀를 쏘고, 산초가 혀끝을 저리게 했다. 생강 맛 밑에서 서른 해 묵은 쓴맛과 꿀의 단맛이 한꺼번에 돌아왔다.
두 사람 위에서 「반반객잔」 간판이 저녁 바람에 조금 흔들렸다. 대리 쪽 길에서는 소금 짐을 진 흑수곡 사내들이 올라오고 있었고, 사계 쪽 길에서는 토번 노새의 방울 소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부엌 쇠솥 밑에서 서른 해 묵은 불이 탁 튀었다. 두 노인은 등을 맞댄 채 잔 하나를 몇 번이고 어깨 너머로 주고받았다. 잔이 빌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