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336자)

등을 닦는 밤

객잔을 지키는 고수 노부부 · 하청오

청매는 무명 수건을 더운물에 적셔 화운의 등을 닦았다⁠. 촌장 할멈 집 곁방이었다⁠. 방은 좁았고⁠, 등잔 하나가 벽에 그을음을 올렸다⁠. 화운은 거적 위에 엎드려 누워 있었다⁠. 화살은 어젯밤 마을 의원이 뽑았다⁠. 어깨뼈 아래 상처를 꿰매고 쑥을 짓이겨 붙였다⁠. 의원은 화살이 한 치만 더 들어갔으면 숨 쉬는 주머니를 뚫었을 거라고 했다⁠. 뼈가 막아 줬다고 했다⁠.

“⁠뼈가 막았다니⁠, 내 뼈가 쓸모가 있었소⁠.⁠” 화운이 거적에 얼굴을 묻은 채 말했다⁠.

“⁠가만있으시오⁠.⁠”

“⁠엎드려 있으니 임자 얼굴이 안 보이오⁠.⁠”

“⁠서른 해 동안 봤으면 됐소⁠.⁠”

“⁠코를 골면 임자 얼굴에 대고 고는 게 아니라 거적에 대고 고니까⁠, 오늘은 마음 놓고 골겠소⁠.⁠”

청매는 수건을 짜서 화운의 등에 다시 얹었다⁠. 등잔불에 화운의 등이 드러났다⁠. 청매는 서른 해 동안 화운의 등을 이렇게 오래 본 적이 없었다⁠. 마주 보고 잤으니 등은 늘 화운의 뒤에 있었다⁠. 옷을 갈아입을 때도 화운은 청매를 향해 돌아서서 갈아입었다⁠. 등을 안 보이려고⁠.

등에 흉터가 많았다⁠. 청매는 수건으로 닦으며 하나씩 세었다⁠. 왼쪽 옆구리에 길게 하나⁠. 금사강 뱃사람들 칼부림에서 생긴 거라고 화운이 언젠가 말했다⁠. 오른쪽 날갯죽지에 동그랗게 하나⁠. 창에 찔린 자리였다⁠. 등 한가운데 척추 옆에 짧게 비스듬히 하나⁠.

청매는 수건을 멈췄다⁠.

“⁠이건 내가 낸 거요⁠.⁠”

“⁠어느 거⁠?⁠”

“⁠등 한가운데 비스듬한 거⁠. 나룻배에서⁠. 오십 합째였소⁠. 내 검이 영감 등을 스쳤소⁠. 영감이 돌아서 피하다가⁠.⁠”

“⁠그거 임자가 낸 거였소⁠?⁠” 화운이 고개를 들려다가 상처가 당겨 도로 엎드렸다⁠. “⁠나는 서른 해 동안 금사방 형님들한테 맞은 줄 알았소⁠.⁠”

“⁠영감은 서른 해 동안 제 등을 한 번도 안 봤소⁠?⁠”

“⁠등은 제가 못 보는 데요⁠. 그러니 등이지⁠.⁠”

청매는 수건으로 비스듬한 흉터를 천천히 닦았다⁠. 서른 해 묵은 흉터는 하얗고 매끄러웠다⁠. 청매는 흉터를 손가락 끝으로 따라 그었다⁠. 화운의 등이 움찔했다⁠.

“⁠간지럽소⁠.⁠”

“⁠참으시오⁠.⁠”

“⁠서른 해 만에 처음 만지는 등이라 간지러운 거요⁠.⁠”

방문 틈으로 소추와 아이들의 눈이 줄줄이 보였다⁠. 문틈 아래에서 킥킥 소리가 났다⁠. 청매가 돌아보자 눈들이 사라졌다⁠. 조금 뒤에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촌장 할멈의 눈도 있었다⁠.

*

해가 뜨자 마당이 시끄러워졌다⁠. 청매가 곁방 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마을 사람들이 마당에 서 있었다⁠. 콩비지 아낙은 죽 단지를⁠, 대장간 사내는 짚신 두 켤레를 들고 있었다⁠. 이번에는 짚신이 한 줄에 묶여 있었다⁠.

“⁠마님⁠, 어젯밤 고갯마루 불 다 봤어요⁠.⁠” 콩비지 아낙이 죽 단지를 내밀었다⁠. “⁠영감님이 애들 안고 나오시는 것도요⁠. 마을에서 다 봤어요⁠. 우리는 불구경만 했고요⁠.⁠”

“⁠불구경은 원래 그렇게 하는 거요⁠.⁠”

“⁠영감님 등에 화살 맞으셨다고⁠…⁠.⁠”

“⁠뼈가 막았소⁠.⁠”

대장간 사내가 짚신을 마루에 놓았다⁠. 짚신 한 켤레는 크고 한 켤레는 작았다⁠. 끈이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

“⁠지난번 건 따로 묶었잖아요⁠. 이건 같이 묶었어요⁠. 이해 가시든 창산 가시든⁠, 같이 가시라고요⁠.⁠”

“⁠우리는 아무 데도 안 가오⁠.⁠”

“⁠땅은 관이 거둔다던데요⁠.⁠”

마루 끝에서 촌장 할멈이 지팡이로 마루를 쳤다⁠.

“⁠관이 거두든 말든 본주가 받은 땅이야⁠. 어제 제삿날에 둘이 잔을 안 쏟았어⁠. 본주 앞에서 정한 일은 대리부 공문보다 먼저야⁠. 내가 여든 넘도록 본주 땅을 관에 내준 적 없어⁠.⁠” 할멈이 품을 두드렸다⁠. “⁠화리서도 아직 여기 있어⁠. 아까 사계 상단에서 사람이 와서 그거 자기한테 맡기라더라⁠. 소금 두 수레 준다고⁠. 내가 지팡이로 쫓았어⁠.⁠”

“⁠촌장님⁠, 소금 두 수레면 사계 서당이⁠…⁠.⁠” 콩비지 아낙이 말을 꺼냈다가 할멈의 눈을 보고 삼켰다⁠.

대장간 사내가 머리를 긁었다⁠. “⁠마님⁠, 그럼 다음 제삿날에도 차 올리러 오세요⁠. 저 이번에는 안 걸게요⁠.⁠”

“⁠뭘 걸었었소⁠?⁠”

“⁠영감님 안 오신다는 데에 짚신 열 켤레요⁠. 다 잃었어요⁠.⁠”

청매는 웃었다⁠. 이를 반만 보이게 웃었다⁠. 대장간 사내가 이번에는 물러나지 않았다⁠.

*

아묵은 곁방 문지방에 무릎을 꿇었다⁠. 사부님은 엎드린 채 고개만 돌렸다⁠. 마님은 수건을 대야에 담갔다⁠.

“⁠뒷문은 제가 열었습니다⁠.⁠”

마님이 대야에서 손을 뺐다⁠. 사부님은 고개를 돌린 채 아묵을 보았다⁠.

“⁠형이 길을 물었습니다⁠. 저는 사부님이 내신 길을 알려 줬습니다⁠. 능선까지 따라갔습니다⁠. 소금 행렬 치는 것도 봤습니다⁠. 마부 아저씨가 이마가 터지는 것도 봤습니다⁠. 객잔에 불이 붙는 건 능선에서 봤습니다⁠. 제가 연 문으로 관군이 들어왔습니다⁠.⁠” 아묵은 숨을 쉬었다⁠. “⁠사부님 등의 화살도 제가 연 문으로 들어왔습니다⁠.⁠”

방이 조용했다⁠. 등잔 심지가 탁 튀었다⁠.

“⁠아묵⁠.⁠” 사부님이 말했다⁠. “⁠그 길은 내가 서른 해 전에 냈다⁠. 관군을 피하려고⁠. 내가 피하려고 낸 길을 오늘은 칠이가 피하려고 썼다⁠. 길은 쓰려고 내는 거다⁠.⁠”

“⁠사부님⁠, 그건⁠…⁠.⁠”

“⁠네 형이 굶는 사람들 데리고 관군 피하는 데 내 길을 썼다⁠. 내가 서른 해 전에 금사방 형제들을 두고 그 길로 달아났으면⁠, 칠이가 갈대밭에서 혼자 그 불을 안 봤을 거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너는 형 등 뒤에 붙었다⁠. 마님이 그러라고 했다며⁠.⁠”

아묵은 마님을 보았다⁠. 마님이 대야의 물을 보고 있었다⁠.

“⁠나는 혼낼 거다⁠.⁠” 마님이 말했다⁠. 목소리가 낮았다⁠. “⁠영감은 영감 식으로 하고⁠, 나는 내 식으로 한다⁠. 아묵⁠, 마부 아저씨 이마는 누가 꿰매 주더냐⁠?⁠”

“⁠모릅니다⁠. 흑수곡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럼 네가 꿰매러 가라⁠. 형한테 국수 들고 가던 대로⁠. 이번에는 바늘하고 실 들고⁠. 마부들 다 꿰맬 때까지 올라오지 마라⁠. 그게 네 벌이다⁠.⁠”

아묵은 고개를 들었다⁠. 마님은 아묵을 보지 않고 사부님의 등에 수건을 얹었다⁠.

*

옥교는 사계 상단 객청에서 마득곤에게 첫 잔을 따랐다⁠. 쓴 차였다⁠. 마득곤이 얼굴을 찡그렸다⁠.

“⁠행수⁠, 나는 쓴 차를 안 마시오⁠.⁠”

“⁠천총 나리⁠, 오늘은 쓴 차부터 드세요⁠. 단 차를 마실 날이 아니에요⁠.⁠”

마득곤은 잔을 비웠다⁠. “⁠소금 노새 마흔 마리⁠, 마부 열둘이 흑수곡에 잡혀 있소⁠. 삼월가가 내일모레 열리오⁠. 삼월가 동안 관군은 장터를 지켜야 하오⁠. 대리 백성이 다 모이는 장이오⁠. 삼월가 마지막 날 장이 파하면 흑수곡을 치겠소⁠. 이백이면 하루요⁠.⁠”

“⁠마부 열둘이 다쳐요⁠.⁠”

“⁠비적 삼백이 다 죽는 것보단 낫소⁠.⁠”

옥교는 두 번째 잔을 따르지 않았다⁠. 창밖 마당의 노새들을 보았다⁠. 노새가 마흔 마리 비어 있었다⁠.

“⁠나리⁠, 흑수곡 비탈 이야기가 나올 거예요⁠. 사저가 화약 상자 조각을 갖고 있어요⁠.⁠”

“⁠나무 조각 한 개요⁠.⁠” 마득곤이 투구를 만지작거렸다⁠. “⁠관 문서에는 산사태라고 적혀 있소⁠. 나무 조각 하나로 대리부 문서가 뒤집히지 않소⁠. 행수가 입을 다물면⁠.⁠”

“⁠제가 입을 다물면요⁠.⁠” 옥교가 첫 잔을 하나 더 따랐다⁠. 제 잔이었다⁠. 옥교는 쓴 차를 단숨에 마셨다⁠. “⁠마부 열둘 가운데 늙은 마부가 제 외삼촌이에요⁠. 열여섯에 저를 점창에 데려다준 사람이요⁠.⁠”

마득곤이 옥교를 보았다⁠. 옥교는 웃지 않았다⁠. 말을 깎지도 않았다⁠.

“⁠삼월가 마지막 날이요⁠.⁠” 옥교가 말했다⁠. “⁠그 전에 사람을 빼낼 길이 있으면⁠, 저는 그 길로 가겠어요⁠.⁠”

*

청매는 자정에 흑수곡 천막 어귀에 닿았다⁠. 혼자였다⁠. 허리춤에 검을 찼고⁠, 품에 화약 상자 조각을 넣었다⁠. 천막 어귀의 흑수곡 사내들이 작대기를 들었다가⁠, 청매를 알아보고 내렸다⁠. 청매가 천막 솥에 반 줌 소금을 친 노인이라는 것을 다들 알았다⁠.

방칠은 무너진 비탈 아래⁠, 흰 천 조각을 묶은 나뭇가지들 사이에 앉아 있었다⁠. 가면을 벗어 무릎에 놓고 있었다⁠. 청매를 보고도 가면을 쓰지 않았다⁠.

“⁠영감은⁠?⁠” 방칠이 물었다⁠.

“⁠살았소⁠. 뼈가 막았소⁠.⁠”

방칠의 어깨가 아주 조금 내려갔다⁠.

청매는 방칠 앞에 무릎을 꿇었다⁠. 흙이 차가웠다⁠.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청매는 허리를 굽히지 않고 무릎만 꿇었다⁠. 검을 칼집째 풀어 방칠 앞 흙 위에 놓았다⁠.

“⁠서른 해 전 나루의 일⁠, 나는 미안하다는 말을 할 줄 모르오⁠. 서른 해 동안 영감한테도 한 번 안 했소⁠.⁠” 청매가 말했다⁠. “⁠그러니 말 대신 이걸 놓겠소⁠. 내 목이 필요하면 가져가시오⁠. 대신 마부들을 풀어 주고⁠, 소금을 돌려주고⁠, 아이들과 아낙들은 마을로 보내시오⁠. 삼월가 마지막 날 관군 이백이 오오⁠.⁠”

방칠은 검을 보았다⁠. 손을 대지 않았다⁠.

“⁠할멈 목이 내 얼굴을 돌려주오⁠?⁠”

“⁠못 돌려주오⁠.⁠”

“⁠그럼 필요 없소⁠.⁠” 방칠이 검을 집어 청매 앞으로 밀어 돌려놓았다⁠. “⁠할멈⁠, 일어나시오⁠. 무릎 꿇은 사람하고는 흥정 안 하오⁠. 서른 해 전에 형님이 갈대밭에서 내 이름을 부를 때도 나는 엎드려 있었소⁠. 엎드린 사람은 대답을 못 하오⁠.⁠”

청매는 일어나지 않았다⁠. 일어나지 못했다⁠. 허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방칠이 청매의 허리를 보았다⁠. 방칠이 손을 내밀었다⁠. 청매는 방칠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화상 자국이 있는 손이었다⁠. 손바닥이 거칠었다⁠.

“⁠칼로 겨룹시다⁠.⁠” 방칠이 말했다⁠. “⁠형님하고 할멈⁠, 둘이서 나 하나하고⁠. 등 맞대는 그 합으로⁠. 사흘 뒤 해 뜰 때⁠, 이 비탈에서⁠.⁠”

“⁠영감은 등에 화살을 맞았소⁠.⁠”

“⁠그럼 할멈 혼자 오시오⁠. 둘이 이기면 마부들 풀고 소금 돌려주고⁠, 나는 관에 가겠소⁠. 내 목을 내고 식구들은 살려 달라고 하겠소⁠. 내가 이기면⁠.⁠” 방칠이 가면을 들었다⁠. “⁠형님은 금사방으로 돌아오시오⁠. 관군이 올 때 내 식구들 앞에 서서 막으시오⁠. 서른 해 전에 못 서신 자리에⁠.⁠”

청매는 방칠을 보았다⁠. 맨얼굴의 성한 반쪽이 웃지 않았다⁠. 덴 반쪽은 웃을 수가 없었다⁠.

*

청매가 촌장 할멈 집 곁방에 돌아온 것은 새벽이었다⁠. 화운은 엎드린 채 깨어 있었다⁠. 고개를 돌려 청매를 보았다⁠.

“⁠칠이를 만났소⁠?⁠”

“⁠사흘 뒤 해 뜰 때⁠, 흑수곡 비탈⁠. 칼로 겨루자 하오⁠. 둘이 하나랑⁠.⁠”

“⁠둘이⁠?⁠”

“⁠영감은 못 가오⁠. 나 혼자 가겠소⁠.⁠”

화운이 팔꿈치를 짚고 일어나려 했다⁠. 등의 상처가 당겼다⁠. 얼굴이 하얘졌다⁠. 화운은 다시 엎드렸다가⁠, 다시 팔꿈치를 짚었다⁠.

“⁠영감⁠!⁠”

“⁠아묵⁠.⁠” 화운이 문 쪽으로 불렀다⁠. 아묵이 바늘과 실 꾸러미를 들고 문지방에 나타났다⁠. 흑수곡으로 떠나려던 참이었다⁠. “⁠대장간 아저씨한테 가서 의자 하나 빌려 오너라⁠. 등받이 있는 걸로⁠. 그리고 장대 두 개⁠.⁠”

“⁠의자는 왜요⁠?⁠”

“⁠사흘 뒤에 흑수곡 간다⁠. 걸어서는 못 가니 의자에 실려서 간다⁠.⁠” 화운이 거적에 이마를 대고 숨을 골랐다⁠. “⁠칠이가 둘이랑 하나라고 했다⁠. 둘이서 간다⁠. 하나가 의자에 앉아 있어도 둘은 둘이다⁠.⁠”

청매는 화운의 등을 내려다보았다⁠. 쑥을 붙인 자리에 피가 조금 배어 나왔다⁠. 청매는 수건을 다시 더운물에 적셨다⁠.

“⁠의자에 앉으면 등을 못 대오⁠.⁠”

“⁠의자 등받이가 내 등이오⁠. 임자는 의자 등받이에 등을 대시오⁠.⁠”

문지방에서 아묵이 입을 막고 웃었다⁠. 웃다가 울었다⁠. 바늘 꾸러미를 쥔 채로⁠.

12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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