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449자)

화승총

용이 되기 싫은 이무기와 용이 되고 싶은 고양이 · 오달래

청울은 오솔길을 반쯤 내려왔을 때 기름 탄 냄새를 맡았다⁠. 대숲의 바람이 멈춘 자리에 냄새만 고여 있었다⁠. 청울은 머리를 들었다⁠. 대나무 사이에서 작은 불씨 하나가 흔들리다 멈췄다⁠.

소리보다 먼저 옆구리가 뜨거워졌다⁠. 달군 쇠꼬챙이가 비늘 사이를 뚫고 살 속으로 들어왔다⁠. 뒤이어 천둥이 대숲을 찢었다⁠. 청울의 몸이 저절로 휘었다⁠. 꼬리가 대나무 세 그루를 꺾었다⁠. 대숲 사이에서 사람 목소리가 터졌다⁠.

“⁠맞았다⁠! 맞았어⁠!⁠”

“⁠쌀 다섯 섬이다⁠!⁠”

청울은 비탈로 몸을 던졌다⁠. 마른 바위에 옆구리가 쓸렸다⁠. 쓸린 자리에서 피가 흘렀다⁠. 피는 돌 위에서 금세 끈적해졌고⁠, 청울이 지나간 바위마다 검은 줄을 남겼다⁠. 등 뒤에서 횃불이 하나⁠, 둘⁠, 다섯으로 늘었다⁠. 포수가 화약을 다시 재는 소리가 났다⁠. 쇠꼬챙이로 총구를 쑤시는 소리였다⁠.

청울은 산사 바로 아래 첫 번째 소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아홉 소 가운데 가장 높고 가장 깊은 소였다⁠. 바위가 둘러싸 그늘이 깊었고⁠, 물이 아직 이무기의 몸통을 덮을 만큼 남아 있었다⁠. 청울은 물속에 머리까지 잠갔다⁠. 옆구리에서 피가 물로 풀려 나갔다⁠. 차가운 물이 상처에 닿을 때마다 눈앞이 하얘졌다⁠. 혀 밑에서 구슬이 뜨겁게 뛰었다⁠.

천 년 전 처음 계곡에 들어오던 밤에는 돌이 날아왔다⁠. 오늘 밤에는 쇠가 날아왔다⁠. 사람들이 던지는 것이 천 년 사이에 돌에서 쇠로 바뀌었다⁠. 청울은 물속에서 눈을 떴다⁠. 붉게 흐린 물 너머로 횃불이 바위 그늘 위를 지나갔다⁠. 쌀 다섯 섬을 외치던 목소리 가운데 우물집 할미네 고샅에서 들은 목소리가 섞여 있었다⁠. 청울은 사내네 우물에도 물을 부은 적이 있었다⁠.

*

범벅은 총소리에 쇠문 앞에서 튀어 올랐다⁠. 털이 한꺼번에 솟구쳐 몸이 두 배가 되었다⁠. 다음 순간 범벅은 오솔길을 내달리고 있었다⁠. 대숲 아래에 꺾인 대나무가 쓰러져 있었고⁠, 바위마다 검은 줄이 그어져 있었다⁠. 범벅은 줄에 코를 댔다⁠. 쇠 냄새와 물 냄새가 섞인 피였다⁠. 이무기의 피였다⁠.

횃불을 든 사내들이 검은 줄을 따라 올라오고 있었다⁠. 맨 앞의 포수는 총을 거꾸로 메고 허리에 화약통을 찼다⁠. 범벅은 바위 뒤에 몸을 낮추고 검은 줄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보았다⁠. 줄은 첫 번째 소로 꺾여 들어가고 있었다⁠.

범벅은 앞발을 바위의 피에 꾹 눌렀다⁠. 끈적했다⁠. 발바닥에 피가 묻었다⁠. 범벅은 진저리를 쳤다⁠. 젖은 것도 싫은데 끈적한 것은 더 싫었다⁠. 그래도 범벅은 첫 번째 소와 반대로⁠, 계곡 아래로 내달리며 바위마다 앞발을 찍었다⁠. 피가 모자라면 돌아와 다시 묻혔다⁠. 한 번⁠, 두 번⁠, 세 번⁠. 검은 발자국이 계곡 아래로 줄지어 찍혔다⁠.

“⁠이리로 갔다⁠! 아래로 내려갔어⁠!⁠”

“⁠발자국이 작은데⁠?⁠”

“⁠이무기 발자국을 네가 봤냐⁠? 비늘 끝이 찍힌 거다⁠!⁠”

사내들이 계곡 아래로 몰려 내려갔다⁠. 포수만 잠깐 멈춰 서서 첫 번째 소를 올려다보았다⁠. 범벅은 포수 발치를 스쳐 지나가며 일부러 큰 소리로 울었다⁠. 포수가 범벅을 걷어차려다 헛발질을 했다⁠. 사내들이 아래에서 포수를 불렀다⁠. 포수는 혀를 차고 아래로 내려갔다⁠.

범벅은 첫 번째 소로 돌아갔다⁠. 바위 그늘 아래 물이 붉게 흐려져 있었다⁠. 물속에서 금빛 눈 하나가 떠올랐다⁠.

“⁠청울⁠.⁠”

“⁠구슬을 가져가시오⁠.⁠”

청울이 물 밖으로 턱을 내밀어 구슬을 바위 위에 내려놓았다⁠. 목소리가 물을 먹은 듯 탁했다⁠.

“⁠포수가 오면 구슬도 빼앗기오⁠. 사또 손에 들어가면 끝이오⁠.⁠”

범벅은 구슬을 내려다보았다⁠. 피 묻은 앞발이 저렸다⁠. 범벅은 구슬을 물지 않았다⁠. 대신 몸을 돌려 산사로 뛰었다⁠.

“⁠어디 가오⁠?⁠”

범벅은 대답하지 않았다⁠. 입을 벌리면 무슨 소리가 나올지 몰랐다⁠.

*

청울은 새벽빛이 바위 그늘을 비출 때까지 물속에 누워 있었다⁠. 옆구리의 구멍에서 피가 가늘게 계속 흘렀다⁠. 두꺼비가 세 번째 소에서 비탈을 기어 올라와 첫 번째 소 가장자리에 앉았다⁠. 두꺼비는 피에 흐려진 물을 들여다보고 혀를 찼다⁠.

“⁠이무기 양반⁠. 피 냄새에 가재들이 몰려오오⁠. 저리 가라⁠, 이놈들아⁠. 아직 살아 있는 몸이다⁠.⁠”

두꺼비는 가재 한 마리를 앞발로 밀어냈다⁠. 가재가 집게를 들었다⁠. 두꺼비가 가재보다 더 크게 입을 벌렸다⁠. 가재가 물러났다⁠. 청울은 웃으려다 옆구리가 당겨 그만두었다⁠.

바위 위에서 소란한 소리가 났다⁠. 사람 목소리였다⁠.

“⁠놔라⁠, 이놈아⁠! 놔⁠! 이거 하나뿐인 장삼이다⁠!⁠”

범벅이 노승의 장삼 자락을 물고 뒷걸음질로 끌고 있었다⁠. 노승은 넘어지지 않으려고 자락을 붙잡고 비탈을 내려왔다⁠. 맨발이었다⁠. 짚신 한 짝이 비탈 위에 떨어져 있었다⁠. 고양이는 장삼을 놓지 않았다⁠. 네 발로 버티며 노승을 바위 끝까지 끌고 와서야 입을 벌렸다⁠.

노승은 바위 끝에서 첫 번째 소를 내려다보았다⁠. 청울은 물 위로 머리를 들었다⁠.

노승은 달아나지 않았다⁠. 다리가 풀린 듯 바위에 털썩 주저앉았을 뿐이었다⁠. 입이 벌어진 채로 오래 있었다⁠. 범벅이 바위 위의 구슬을 앞발로 굴려 노승의 무릎 앞에 가져다 놓았다⁠. 노승은 붉은 구슬을 보았다⁠. 아궁이에서 나온 사리였다⁠. 물독에 넣었던 사리였다⁠.

“⁠사리가 아니었구나⁠.⁠”

노승은 구슬을 두 손으로 들었다⁠. 뜨거워서 손을 바꿔 들면서도 놓지 않았다⁠. 노승의 눈이 구슬에서 이무기로⁠, 이무기에서 옆구리의 피로 옮겨 갔다⁠.

“⁠너였구나⁠. 아랫마을 우물⁠.⁠”

청울은 대답했다⁠. 노승의 귀에는 물이 바위를 타고 흘러내리는 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노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들은 사람처럼 끄덕였다⁠.

노승은 바리때를 꺼내 첫 번째 소의 물을 떴다⁠. 물을 떠서 청울의 옆구리에 부었다⁠. 피가 씻겨 내려갔다⁠. 구멍 안에 납덩이가 박혀 검게 보였다⁠. 노승은 장삼 소매를 이로 물어 찢었다⁠. 길게 찢은 천을 물에 적셔 상처에 댔다⁠. 이무기의 옆구리는 노승의 팔로 둘러 감을 수 없었다⁠. 노승은 천을 상처에 눌러 대고 손바닥으로 오래 눌렀다⁠. 손바닥이 따뜻했다⁠. 청울은 천 년 동안 사람의 손을 많이 보았다⁠. 손이 비늘에 닿은 것은 처음이었다⁠.

“⁠하나뿐인 장삼이라더니⁠.⁠”

범벅이 옆에서 중얼거렸다⁠. 노승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

범벅은 해가 오르자 비탈 아래에서 사람들 목소리를 들었다⁠. 범벅은 바위 꼭대기로 뛰어올라 내려다보았다⁠. 이방과 포수였다⁠. 사내 셋이 따랐다⁠. 계곡 아래로 내려갔던 사내들이 발자국이 끊기자 돌아온 것이었다⁠.

“⁠핏자국이 여기서도 나오오⁠. 이리로 올라온 게 맞소⁠.⁠”

범벅은 노승의 장삼을 물고 당겼다⁠. 노승은 바리때를 내려놓고 일어났다⁠. 청울이 물속으로 머리를 감췄다⁠. 붉게 흐려진 물 위로 바위 그늘이 덮였다⁠. 노승은 장삼의 찢어진 소매를 등 뒤로 돌리고 비탈 위로 올라갔다⁠. 범벅이 노승의 발치에 붙어 따라갔다⁠.

“⁠스님⁠, 여기서 무얼 하시오⁠?⁠”

“⁠새벽 공양 물을 뜨러 왔소⁠.⁠”

“⁠맨발로⁠?⁠”

“⁠짚신이 떨어졌소⁠.⁠”

포수가 노승의 발을 내려다보았다⁠. 피 묻은 발이었다⁠. 노승은 발을 감추지 않았다⁠.

“⁠계곡에서 짐승 피를 밟았소⁠. 큰 뱀이 아래로 내려가더이다⁠. 해 뜰 무렵 내 눈으로 보았소⁠.⁠”

“⁠아래로⁠?⁠”

“⁠아홉 번째 소 아래 굴로⁠. 거기가 저놈 집이라 하더이다⁠.⁠”

이방은 노승의 얼굴을 오래 보았다⁠. 포수는 첫 번째 소를 향해 한 걸음 내디뎠다⁠. 범벅이 포수의 발목 앞으로 뛰어들어 털을 세우고 하악질을 했다⁠. 포수가 총 개머리로 범벅을 밀어냈다⁠. 범벅은 바위에 등을 부딪혔다⁠. 숨이 잠깐 막혔다⁠. 범벅은 다시 일어나 포수 앞을 막았다⁠.

“⁠고양이가 미쳤소⁠.⁠”

“⁠절 고양이는 원래 사납소⁠.⁠”

이방이 웃으며 포수의 팔을 잡았다⁠.

“⁠스님 말씀을 믿어야지⁠. 내려가세⁠. 스님⁠, 모레 밤이오⁠. 수레 다섯 대⁠. 열쇠 잊지 마시오⁠. 감영 실사가 코앞이오⁠.⁠”

노승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방과 포수가 비탈을 내려갔다⁠. 포수는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았다⁠. 핏자국보다 사람의 발을 먼저 보는 눈이었다⁠. 범벅은 포수의 등이 바위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털을 내리지 않았다⁠. 범벅은 바위에 부딪힌 등이 욱신거렸다⁠. 노승이 범벅을 안아 올렸다⁠. 범벅은 버둥거리지 않았다⁠.

*

청울은 해 질 녘까지 노승이 바위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노승은 무릎에 고양이를 얹고 구슬을 손에 쥐고 있었다⁠. 노승은 말이 많았다⁠. 고양이에게 하던 대로 이무기에게도 말했다⁠.

“⁠범벅이 내 끈을 갉더라⁠. 배가 고파서 그러는 줄 알았다⁠. 석굴에 다녀온 밤부터 그러더라⁠. 이놈은 다 알고 있었구나⁠. 쥐 냄새 묻혀 온 날부터⁠.⁠”

노승은 구슬을 손바닥에서 굴렸다⁠.

“⁠상좌 셋 묻은 해에도 부처님은 말씀이 없으시더니⁠, 이제 와서 아궁이에 구슬을 주시고 계곡에 이무기를 보내신다⁠. 늦게도 오신다⁠. 늦게 와서 이 늙은 중 등을 미신다⁠.⁠”

노승은 고개 너머 읍내를 내려다보았다⁠.

“⁠감영 실사가 오기 전에 열어야 사또가 섬을 못 옮긴다⁠. 실사가 오고 나면 섬은 나루로 가고 없다⁠. 나는 그걸 알면서도 보름 지나기만 기다렸다⁠.⁠”

노승은 구슬을 이무기 앞으로 들어 보였다⁠.

“⁠너는 이걸로 무엇을 하려느냐⁠? 하늘로 오르려느냐⁠?⁠”

청울은 몸을 일으켰다⁠. 옆구리가 당겼다⁠. 노승의 손에서 구슬을 혀로 받아 물었다⁠. 노승이 놀라 손을 거뒀다⁠. 청울은 세 번째 소를 향해 숨을 길게 내쉬었다⁠. 세 번째 소의 물이 바닥에서 떨어져 올라왔다⁠. 안개가 되고⁠, 구름이 되어 산허리에 떠 있던 네 덩이 곁에 붙었다⁠. 다섯 덩이였다⁠. 세 해 동안 비 한 방울 안 내린 하늘에 구름 다섯 덩이가 무겁게 떠 있었다⁠.

노승은 구름을 올려다보았다⁠. 고개 너머 읍내 하늘은 먼지 빛이었다⁠. 구름은 고개 앞에서 멈춰 있었다⁠.

“⁠저 구름이 고개를 못 넘는구나⁠.⁠”

청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노승이 끄덕이는 것을 보았다⁠. 노승의 목에서 무엇이 넘어가는 소리가 났다⁠.

머리 위로 열기가 지나갔다⁠. 붉은 비늘 빛이 구름 다섯 덩이 위를 스쳤다⁠. 휘광은 내려오지 않았다⁠. 노승은 하늘을 보며 몸을 떨었다⁠. 사람의 눈에는 저녁노을이 유난히 붉었을 것이다⁠.

*

범벅은 밤이 깊어 노승을 따라 대숲 오솔길을 올라갔다⁠. 노승은 등잔을 들지 않았다⁠. 달빛이 대나무 사이로 쏟아졌다⁠. 노승은 쇠문 앞에 멈춰 속곳 허리춤에서 열쇠를 풀었다⁠. 붉은 술이 달빛에 검게 보였다⁠.

“⁠범벅아⁠.⁠”

범벅은 노승의 발치에 앉았다⁠.

“⁠내일 아침에 종을 치마⁠. 고을 사람들 다 듣게 치마⁠. 절은 없어지겠지⁠. 나도 무사하지 못할 거다⁠. 너는 어디 가서 살래⁠? 아랫마을 우물집 할미가 고양이를 좋아하더라⁠.⁠”

범벅은 노승의 정강이에 머리를 비볐다⁠. 세게 비볐다⁠. 노승이 비틀거렸다⁠.

“⁠그래⁠, 안 간다는 거냐⁠? 마음대로 해라⁠.⁠”

노승은 열쇠를 자물쇠에 꽂았다⁠. 손이 떨려 한 번에 들어가지 않았다⁠. 두 번째에 들어갔다⁠. 노승은 열쇠를 돌렸다⁠. 자물쇠 안에서 쇠가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고리가 툭 튀어 올랐다⁠. 노승은 튀어 오른 고리를 손가락으로 다시 눌러 잠그고 열쇠를 빼 쥐었다⁠.

“⁠내일 아침에⁠.⁠”

범벅은 쇠문에 코를 댔다⁠. 이슬 한 방울 맺히지 않은 쇠가 밤바람에 식어 차가웠다⁠. 문틈으로 겨 냄새가 새어 나왔다⁠. 쥐들이 안에서 섬을 갉는 소리가 사각사각 들렸다⁠. 쥐들도 잠을 자지 않았다⁠.

노승은 쥔 열쇠를 가슴에 대고 오래 쇠문 앞에 서 있었다⁠. 산허리의 구름 다섯 덩이가 달을 가렸다가 놓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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