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366자)

석굴

용이 되기 싫은 이무기와 용이 되고 싶은 고양이 · 오달래

청울은 다섯 번째 소 바닥에 몸을 감고 횃불을 셌다⁠. 처음에는 셋이었다⁠. 고개에서 둘이 더 올라왔다⁠. 횃불은 계곡의 마른 바위를 하나씩 비추며 거슬러 올라왔고⁠, 불빛이 닿는 데마다 돌 틈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났다가 오그라들었다⁠.

“⁠이 근처다⁠. 바위에 비늘 긁힌 자국이 있어⁠.⁠”

“⁠쌀 다섯 섬이다⁠. 나눠도 한 섬씩이다⁠.⁠”

사냥꾼들은 손에 낫과 몽둥이를 들었다⁠. 하나는 그물을 둘러멨다⁠. 이무기를 그물로 잡겠다는 사내였다⁠. 맨 뒤에서 횃불 없이 따라오는 그림자 하나가 있었다⁠. 우물집 할미였다⁠.

“⁠가지들 마라⁠. 우물 채워 준 이가 용왕님이다⁠. 용왕님을 잡으면 우물도 끝이다⁠.⁠”

“⁠할매⁠, 용왕님이 어디 있소⁠? 계곡에 사는 건 큰 뱀이오⁠.⁠”

“⁠뱀이 우물을 왜 채우냐⁠?⁠”

“⁠할매가 봤소⁠? 우물 채우는 걸⁠?⁠”

“⁠물맛을 봤다⁠. 사람 손이 길어 온 물맛이 아니다⁠. 산 물맛이다⁠.⁠”

그물을 멘 사내가 웃었다⁠. 웃음 끝에 기침을 했다⁠. 목이 말라 웃음도 오래 못 가는 사내였다⁠.

“⁠할매⁠, 쌀 다섯 섬이면 할매 손주도 한 섬은 먹소⁠. 용왕님이 쌀을 주오⁠?⁠”

할미는 입을 다물었다⁠. 사내들은 걸음을 재촉했다⁠. 할미는 바위에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청울은 할미의 숨소리를 들으며 혀 밑의 구슬을 굴렸다⁠. 다섯 번째 소에는 무릎 높이의 물이 남아 있었다⁠. 두꺼비와 버들치와 가재가 거기 다 모여 살았다⁠. 청울은 두꺼비를 보았다⁠. 두꺼비는 말없이 청울의 머리 위로 기어올랐다⁠.

“⁠이번엔 머리요⁠. 입은 싫소⁠.⁠”

청울은 두꺼비를 머리에 얹은 채 버들치와 가재를 혀로 쓸어 담고 소의 물에 숨을 내쉬었다⁠. 물이 구름이 되지 않고 낮게 퍼졌다⁠. 안개였다⁠. 안개가 다섯 번째 소에서 넘쳐 계곡을 따라 아래로 흘러갔다⁠. 횃불이 안개 속에서 뿌옇게 번졌다⁠.

“⁠앞이 안 보인다⁠.⁠”

“⁠누구야⁠, 내 발 밟은 게⁠?⁠”

“⁠그물에 내가 걸렸어⁠!⁠”

사내 둘이 서로 부딪쳐 넘어졌다⁠. 그물을 멘 사내는 제 그물에 얼굴이 감겨 버둥거렸다⁠. 횃불 하나가 바위에 떨어져 꺼졌다⁠. 소란이 잦아들자 누군가 낮게 말했다⁠.

“⁠얼굴이 젖는다⁠.⁠”

사내들은 하나둘 걸음을 멈췄다⁠. 안개가 땀에 전 얼굴을 적셨다⁠. 세 해 만에 처음 맞는 축축함이었다⁠. 한 사내가 낫을 내려놓고 두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손바닥이 젖었다⁠. 사내는 손바닥을 혀로 핥았다⁠. 우물집 할미가 바위에 앉은 채 웃었다⁠. 청울은 안개를 산허리로 거두어 올렸다⁠. 구름이 세 덩이가 되었다⁠. 안개가 걷힌 뒤에도 할미는 바위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젖은 소매를 볼에 대고 오래 앉아 있었다⁠. 사내들은 꺼진 횃불을 주워 들고 말없이 고개로 내려갔다⁠. 그물을 멘 사내만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았다⁠.

*

범벅은 대숲 오솔길을 낮게 기어 올라갔다⁠. 석굴로 가는 길은 처음이었다⁠. 열 해 동안 노승의 말을 믿었다⁠. 귀신이 고양이 수염을 하나씩 뽑는다⁠. 범벅은 수염을 바짝 뒤로 붙이고 갔다⁠.

석굴 앞에 등잔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쇠문이 한 뼘쯤 열려 있었다⁠. 범벅은 문틈에 수염을 대 보았다⁠. 수염 끝이 양쪽 쇠에 닿지 않았다⁠. 고양이는 수염이 지나가는 데면 몸도 지나간다⁠. 범벅은 문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안은 서늘했다⁠. 바위가 낮의 열을 들이지 않았다⁠. 굴은 생각보다 깊었고⁠, 굴 안에 곡식 섬이 천장까지 쌓여 있었다⁠. 섬과 섬 사이에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길만 나 있었다⁠. 겨 냄새와 쌀 냄새가 콧속을 가득 채웠다⁠. 범벅은 섬 하나에 코를 대고 숨을 들이쉬었다⁠. 흰쌀이었다⁠. 사또의 고깃국 옆에 놓였던 흰쌀밥의 냄새였다⁠. 섬마다 거적 위에 먹으로 무언가 적혀 있었다⁠. 범벅은 글을 몰랐다⁠. 관아 곳간 판자에 남아 있던 네모난 자국을 떠올렸다⁠. 섬 하나가 자국 하나에 꼭 맞을 크기였다⁠. 범벅은 섬과 섬 사이를 걸으며 세어 보다가 그만두었다⁠. 고양이가 셀 수 있는 수보다 많았다⁠.

섬 위에서 작은 눈들이 반짝였다⁠. 쥐였다⁠. 관아 곳간의 늙은 쥐를 닮은 쥐들이 섬 꼭대기에 줄지어 앉아 있었다⁠.

“⁠관아 영감님이 말하더라⁠. 털이 뒤범벅인 고양이가 올 거라고⁠. 이 굴에서도 약속 지킬 테냐⁠?⁠”

“⁠조용히 해⁠.⁠”

굴 안쪽에서 사람 목소리가 났다⁠. 범벅은 섬 사이 그늘에 배를 붙였다⁠. 등잔 아래 세 사람이 서 있었다⁠. 이방과 수레꾼 하나⁠, 그리고 법운이었다⁠. 이방이 섬을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셌다⁠.

“⁠보름 전날 밤에 백 섬을 나루로 내리오⁠. 나머지는 감영 실사가 끝나고 옮기고⁠. 스님⁠, 수고가 많소⁠. 스님 몫으로 열 섬은 여기 두고 가리다⁠.⁠”

“⁠필요 없소⁠. 공납이나 빼 주시오⁠.⁠”

“⁠스님도 참⁠. 절 식구 굶는 건 매한가지 아니오⁠?⁠”

“⁠절 식구는 이 굴 쌀로 안 먹이오⁠.⁠”

법운의 목소리는 낮고 고르게 떨렸다⁠. 이방은 어깨를 으쓱하고 수레꾼과 함께 굴을 나갔다⁠. 법운은 혼자 남아 등잔을 들고 섬 사이를 걸었다⁠. 섬마다 손을 대고 지나갔다⁠. 굴 끝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걸음이 쌀 섬 하나 앞에서 멈췄다⁠. 노승은 이마를 섬에 댔다⁠. 오래 그러고 있었다⁠.

“⁠아미타불⁠.⁠”

노승은 섬 귀퉁이를 손가락으로 뜯어 쌀 한 톨을 꺼냈다⁠. 손바닥에 올려 등잔에 비춰 보았다⁠. 쌀알이 등잔 불빛에 하얗게 빛났다⁠. 노승은 쌀알을 입에 넣지 않았다⁠. 뜯은 귀퉁이에 도로 밀어 넣고 거적을 손바닥으로 눌러 펴 놓았다⁠. 범벅은 섬 사이 그늘에서 노승의 손을 보았다⁠. 아랫마을에서 바가지마다 물을 똑같이 나눠 담던 손이었다⁠.

섬 꼭대기의 쥐 하나가 범벅에게 속삭였다⁠.

“⁠잡을 테냐⁠, 고양이⁠? 우리 영감님이랑 한 약속은 관아 곳간 안에서만이라던데⁠.⁠”

“⁠이 굴 안에서도 안 잡아⁠.⁠”

“⁠왜⁠?⁠”

범벅은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 쥐를 잡으면 노승이 돌아볼 것이었다⁠. 노승이 돌아보면 범벅은 노승의 얼굴을 보아야 했다⁠.

노승은 쇠문 밖으로 나가 문을 닫았다⁠. 범벅은 섬 사이에서 뛰어나가 문이 닫히기 직전에 틈으로 빠져나왔다⁠. 노승은 고양이를 보지 못했다⁠. 허리에서 열쇠를 풀어 자물쇠에 꽂았다⁠. 붉은 술이 등잔 불빛에 흔들렸다⁠. 열쇠가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범벅이 새끼 때 잡겠다고 다리를 타고 오르던 술이었다⁠. 부엌 광 열쇠라고 했다⁠.

석굴 위 바위 틈에서 늙은 쥐의 사촌쯤 되는 쥐 하나가 고개를 내밀었다⁠.

“⁠네 영감이다⁠.⁠”

범벅은 쥐를 보지 않았다⁠. 노승의 등잔 불빛이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는 것만 보았다⁠.

*

청울은 산허리 안개 끝에서 작은 그림자가 비틀거리며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범벅이었다⁠. 털이 안개에 젖어 몸에 착 달라붙었고⁠, 고양이는 털을 털지도 않았다⁠. 범벅은 다섯 번째 소의 빈 바닥에 와서 청울의 턱 앞에 주저앉았다⁠.

청울은 묻지 않았다⁠. 범벅이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두꺼비가 청울의 머리 위에서 내려와 고양이 옆에 앉았다⁠. 두꺼비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석굴에 있어⁠.⁠”

범벅이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천장까지 있어⁠. 흰쌀이야⁠. 관아 곳간 바닥의 네모 자국⁠, 그거 다 거기 있어⁠. 이방이 보름 전날 밤에 백 섬을 나루로 내린대⁠. 그리고 열쇠는 영감이 갖고 있어⁠. 영감이 잠갔어⁠. 내가 봤어⁠.⁠”

“⁠알겠소⁠.⁠”

“⁠모르잖아⁠.⁠”

범벅의 꼬리가 젖은 땅을 쳤다⁠.

“⁠한 해 전부터 냄새가 났어⁠. 석굴에서 바람이 내려오면 겨 냄새가 났어⁠. 쥐 냄새도 났어⁠. 나는 귀신 냄새라고 했어⁠. 영감이 귀신 산다고 했으니까⁠. 고양이가 쥐 냄새를 모를 리가 있어⁠? 나 알았어⁠. 알고도 귀신 냄새라고 했어⁠.⁠”

청울은 턱을 땅에 내려 범벅과 눈높이를 맞췄다⁠. 고양이의 눈에 안개가 맺혀 있었다⁠. 청울은 이 눈을 오래 보았다⁠. 이백 년 전⁠, 청울도 알면서 모른 척한 일이 있었다⁠. 고개 너머 다른 고을에서였다⁠. 이백 년 전에도 가뭄이 들었고 곳간이 있었다⁠. 휘광이 말한 ‘⁠예전⁠’이었다⁠. 청울은 말하지 않았다⁠. 지금은 고양이의 밤이었다⁠.

동쪽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해 뜰 시각이 아니었다⁠. 휘광이 하늘 높이 지나가며 안개 끝을 말리고 있었다⁠. 오늘 밤의 안개가 사냥꾼을 돌려보낸 것을 휘광도 보았을 것이다⁠. 휘광은 내려오지 않았다⁠.

청울은 몸을 일으켰다⁠. 긴 몸이 안개를 가르며 산 위로 돌았다⁠. 머리가 대숲 오솔길을 향했다⁠.

“⁠어디 가⁠?⁠”

“⁠석굴로 가오⁠.⁠”

“⁠가서 뭐 하게⁠?⁠”

“⁠관아 문도 세 번에 부서졌소⁠. 쇠문은 다섯 번이면 될 거요⁠.⁠”

범벅은 이무기를 앞질러 뛰어가 오솔길 입구를 막았다⁠. 몸집이 이무기 눈알만 한 고양이가 길 한복판에서 네 발을 버티고 털을 부풀렸다⁠.

“⁠안 돼⁠.⁠”

“⁠비키시오⁠.⁠”

“⁠부수면 사또가 영감을 죽여⁠. 절도 태워⁠. 이방이 봤잖아⁠. 절에 이무기가 산다고 고을에 다 떠들었어⁠. 석굴 문이 부서지면 누가 했는지 다 알아⁠. 이무기하고 짜고 곡식 빼돌리려 했다고 영감을 묶어 갈 거야⁠.⁠”

“⁠안 부수면 아이들이 죽소⁠. 보름 전날 밤까지 닷새 남았소⁠. 백 섬이 나루로 가면 다시는 고을로 안 돌아오오⁠.⁠”

“⁠알아⁠!⁠”

범벅의 하악 소리가 대숲을 울렸다⁠.

“⁠다 알아⁠. 그래서 안 된다고⁠. 네가 부수면 사또는 쌀 다섯 섬 걸고 너를 잡고⁠, 영감을 묶고⁠, 절을 태우고⁠, 그러고도 곡식은 수레로 다시 실어 가⁠. 관아 곳간 문 부순 날 봤잖아⁠. 사람들이 누구 편을 들었는지⁠.⁠”

청울은 곳간 문을 부순 밤 개천 다리 밑에서 들은 목소리를 떠올렸다⁠. 이무기를 잡자⁠. 고양이의 말에는 틀린 데가 없었다⁠. 청울은 고양이를 내려다보았다⁠. 이무기가 한 번 몸을 틀면 고양이는 대숲 너머로 날아갈 것이었다⁠. 청울은 몸을 틀지 않았다⁠.

“⁠그러면 어찌하겠소⁠?⁠”

“⁠영감이 열게 할 거야⁠.⁠”

“⁠노승은 고양이 말을 못 알아듣소⁠.⁠”

“⁠알아⁠. 그래도 영감이 열게 할 거야⁠.⁠”

청울은 오래 대답하지 않았다⁠. 안개가 둘 사이를 지나갔다⁠. 구름 세 덩이가 산허리에서 무겁게 내려앉았다⁠. 청울은 머리를 거두었다⁠.

“⁠사흘이오⁠.⁠”

*

범벅은 새벽녘에 부엌으로 돌아왔다⁠. 깨진 물독 조각 옆에 노승이 누워 있었다⁠. 노승은 코를 골지 않았다⁠. 열쇠는 노승의 목에 끈으로 매달려 가슴 위에 놓여 있었다⁠. 허리춤에서 목으로 옮겨 놓은 열쇠였다⁠.

범벅은 아궁이 앞에 잠깐 앉았다⁠. 열 해 전 겨울⁠, 어미가 범벅을 부엌 뒷문에 두고 간 이튿날 아침에 노승이 이 아궁이 앞에서 범벅을 처음 보았다⁠. 노승은 제 보리죽 그릇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새끼 고양이는 죽에 코를 박았다가 뜨거워서 물러났다⁠. 노승은 웃으며 죽을 입으로 불어 식혔다⁠. 겨울 내내 노승의 죽 그릇은 둘로 나뉘었다⁠. 범벅은 노승이 죽을 불던 입김의 냄새를 아직 기억했다⁠.

범벅은 노승의 가슴 위로 올라갔다⁠. 앞발을 열쇠 옆에 가지런히 모으고 앉았다⁠. 노승의 가슴이 숨을 쉴 때마다 오르내렸다⁠. 범벅의 몸도 같이 오르내렸다⁠. 붉은 술이 범벅의 앞발에 닿았다⁠. 범벅은 술을 건드리지 않았다⁠.

“⁠무겁다⁠, 이놈아⁠.⁠”

노승이 눈을 감은 채 말했다⁠. 범벅은 내려가지 않았다⁠. 노승은 고양이를 밀어내지 않았다⁠. 한참 뒤 노승의 손이 올라와 범벅의 젖은 등을 쓸었다⁠. 등에 붙은 안개 물기가 노승의 손바닥에 묻었다⁠. 노승은 손바닥을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았다⁠. 대숲 냄새⁠, 안개 냄새⁠, 그리고 석굴의 겨 냄새였다⁠.

노승이 눈을 감은 채 말했다⁠.

“⁠너도 봤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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