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497자)

하늘 문

용이 되기 싫은 이무기와 용이 되고 싶은 고양이 · 오달래

범벅은 세 다리로 관아 옥 뒷담을 넘었다⁠. 꺾인 뒷다리는 땅에 닿을 때마다 불에 덴 듯 화끈거렸다⁠. 범벅은 꺾인 다리를 들고 다녔다⁠. 입에는 짚신 한 짝을 물었다⁠. 첫 번째 소 비탈에 떨어져 있던 노승의 짚신이었다⁠.

옥은 관아 뒤편 흙벽 집이었다⁠. 벽 높은 곳에 손바닥 두 개만 한 창살 구멍이 나 있었다⁠. 범벅은 담에서 처마로⁠, 처마에서 창살 턱으로 기어올랐다⁠. 창살 사이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짚 깔린 바닥에 노승이 엎드려 있었다⁠. 장삼 등판이 찢어져 붉은 줄이 드러났다⁠.

범벅은 짚신을 창살 사이로 밀어 넣었다⁠. 짚신이 노승의 머리맡에 툭 떨어졌다⁠. 노승이 고개를 들었다⁠. 짚신을 보고⁠, 창살을 보았다⁠.

“⁠너 왜 여기 왔냐⁠, 이 도둑놈아⁠.⁠”

목소리가 쉬어 있었다⁠. 노승은 팔꿈치로 몸을 끌어 창 아래로 왔다⁠.

“⁠다리는 왜 그러냐⁠? 걷어차였냐⁠? 그러게 사또 얼굴을 왜 긁어⁠. 밥은 먹었냐⁠?⁠”

“⁠영감은⁠?⁠”

“⁠신을 물어 왔냐⁠. 맨발로 끌려온 줄 어찌 알고⁠.⁠”

노승은 짚신을 끌어당겨 가슴에 안았다⁠. 웃다가 기침을 했다⁠. 기침 끝에 피가 섞였다⁠. 노승은 손등으로 입을 닦았다⁠.

“⁠보름이구나⁠. 백중인데 재도 못 지낸다⁠. 상좌들 밥 한 그릇 못 올리고⁠.⁠”

옥 앞에서 옥사장이 포졸과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감영 실사관이 내일 아침 고개를 넘는다는 이야기였다⁠. 사또가 오늘 밤 안에 석굴을 비우라고 불호령을 내렸다는 이야기였다⁠. 노승은 옥 밖의 말소리를 들으며 창살 위의 고양이를 올려다보았다⁠.

“⁠범벅아⁠. 오늘 밤엔 아무 데도 가지 마라⁠. 사또 눈에 띄면 너 죽는다⁠.⁠”

노승은 짚신을 베개 삼아 머리를 눕혔다⁠.

“⁠내가 여기서 나가면 부엌부터 다시 짓자⁠. 아궁이는 그대로 쓰고⁠. 장독 뚜껑은 깨졌더냐⁠? 깨졌으면 새로 하나 얻어 오마⁠. 너 올라가 잘 데는 있어야지⁠.⁠”

범벅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해도 노승은 야옹으로 들을 것이었다⁠. 범벅은 창살 턱에 오래 엎드려 노승의 숨소리를 들었다⁠. 숨이 고르지 않았다⁠. 들이쉴 때마다 갈비뼈에서 무엇이 걸리는 소리가 났다⁠. 옥사장이 창 아래를 지나가며 고양이에게 돌을 던졌다⁠. 돌은 빗나갔다⁠.

범벅은 창살 사이로 앞발 하나를 뻗었다⁠. 발끝이 노승의 이마에 겨우 닿았다⁠. 노승의 이마가 뜨거웠다⁠.

“⁠다녀올게⁠, 영감⁠.⁠”

“⁠또 운다⁠.⁠”

범벅은 창살 턱에서 내려왔다⁠. 세 다리로 담을 넘는 데 한참을 버둥거렸다⁠.

*

청울은 해가 기울 무렵 아홉 번째 소 앞에 있었다⁠. 고개에서 비가 쏟아지던 날⁠, 빗물이 계곡 아래로 흘러 아홉 번째 소와 여덟 번째 소에 한 뼘씩 고여 있었다⁠. 청울은 구슬 없이 왔다⁠. 구슬은 범벅에게 있었다⁠. 낮에는 범벅의 차례였다⁠.

범벅이 세 다리로 계곡을 내려왔다⁠. 구슬을 물고 있었다⁠. 범벅은 구슬을 청울 앞에 내려놓았다⁠.

“⁠오늘은 낮이어도 네 차례야⁠. 다 띄워⁠.⁠”

청울은 구슬을 혀 밑에 넣었다⁠. 아홉 번째 소를 띄웠다⁠. 여덟 번째 소를 띄웠다⁠.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 두 번째 소를 띄웠다⁠. 산허리의 구름이 여섯⁠, 일곱⁠, 여덟 덩이가 되었다⁠. 구름이 무거워 산허리가 아래로 처지는 것처럼 보였다⁠.

첫 번째 소 앞에서 청울은 멈췄다⁠. 첫 번째 소는 청울이 화승총을 맞고 숨었던 소였다⁠. 마지막으로 남은 물이었다⁠. 이 소를 띄우면 아홉 소에는 물이 한 방울도 남지 않는다⁠. 버들치와 가재와 두꺼비가 첫 번째 소 가장자리에 모여 있었다⁠.

두꺼비가 청울을 올려다보았다⁠.

“⁠다 띄우시오⁠.⁠”

“⁠다 띄우면 갈 데가 없소⁠.⁠”

“⁠두꺼비는 땅을 파고 들어가 비를 기다리오⁠. 우리 집안이 천 년 동안 해 온 일이오⁠. 버들치와 가재는 내가 진흙에 묻어 주리다⁠. 젖은 진흙이면 사흘은 버티오⁠.⁠”

두꺼비는 앞발로 진흙을 파기 시작했다⁠. 파다가 고개를 들었다⁠.

“⁠비가 안 오면 이무기 양반 탓이오⁠. 저승에서 따지겠소⁠.⁠”

청울은 첫 번째 소를 띄웠다⁠. 물이 바닥에서 떨어져 올라왔다⁠. 마지막 구름이 산허리의 여덟 덩이 위에 얹혔다⁠. 아홉 덩이였다⁠. 아홉 소 계곡은 바닥까지 말랐고⁠, 진흙 속에서 두꺼비의 눈 두 개만 밖을 내다보았다⁠. 청울은 혀 밑의 구슬을 꺼내 범벅에게 돌려주었다⁠. 범벅은 구슬을 물고 세 다리로 능선 길을 향해 갔다⁠.

청울은 첫 번째 소부터 아홉 번째 소까지 마른 계단을 내려다보았다⁠. 천 년 전 작은 이무기였을 때 사람들의 돌을 피해 숨어든 곳이 아홉 번째 소였다⁠. 오백 년 전 휘광과 나란히 물을 마신 곳이 여섯 번째 소였다⁠. 사흘 전 노승의 손이 비늘에 닿은 곳이 첫 번째 소였다⁠. 웅덩이마다 물이 빠진 자리에 청울의 몸이 누웠던 자국이 남아 있었다⁠. 바닥의 진흙이 몸 모양대로 우묵하게 꺼져 있었다⁠. 청울은 자국들을 하나씩 눈으로 짚고 고개를 들었다⁠.

*

범벅은 해 질 녘 나루로 가는 능선 길에 엎드려 있었다⁠. 수레 다섯 대가 석굴에서 내려와 능선 길로 접어들었다⁠. 섬을 가득 실은 수레였다⁠. 수레 옆에는 말을 탄 사또가 있었다⁠. 사또의 뺨에 발톱 자국 세 줄이 검붉게 말라붙어 있었다⁠.

구슬은 능선 바위 틈에 밀어 넣어 두었다⁠. 범벅 곁에 늙은 쥐가 있었다⁠. 쥐 뒤로 관아 곳간과 석굴의 쥐 떼가 바위 그늘마다 숨어 있었다⁠.

“⁠이게 마지막 흥정이다⁠, 고양이⁠.⁠”

“⁠뭘 원하는데⁠?⁠”

“⁠고양이 집안이 쥐 집안에 빚을 지는 거다⁠. 천 년 전 빚을 갚으라는 소리는 이제 안 한다⁠. 대신 이번 빚은 기억해라⁠.⁠”

“⁠기억할게⁠.⁠”

늙은 쥐가 찍 소리를 냈다⁠. 쥐 떼가 바위 그늘에서 쏟아져 나와 수레 바퀴를 타고 섬 위로 올라갔다⁠. 앞니가 거적을 갉는 소리가 능선 길을 덮었다⁠. 거적이 터졌다⁠. 쌀이 섬 밖으로 쏟아졌다⁠. 수레가 덜컹거릴 때마다 쌀이 길에 흘렀다⁠. 다섯 대의 수레가 하얀 줄을 그으며 능선을 내려갔다⁠.

“⁠쥐다⁠! 쥐 떼다⁠!⁠”

수레꾼들이 막대기를 휘둘렀다⁠. 쥐들은 섬과 섬 사이로 숨었다⁠. 수레 뒤를 따라오던 고을 사람들이 길에 흘린 쌀을 손으로 쓸어 담았다⁠. 할미가 치마폭을 벌렸다⁠. 아이들이 엎드려 쌀알을 주웠다⁠.

수레꾼 하나가 막대기로 아이들을 쫓았다⁠. 고개에서 비를 맞던 농부가 수레꾼의 막대기를 붙잡았다⁠.

“⁠흘린 걸 줍는 것도 도둑이오⁠?⁠”

“⁠사또 쌀이오⁠!⁠”

“⁠세곡이라더니 이제는 사또 쌀이오⁠?⁠”

수레꾼은 막대기를 놓고 수레 뒤로 물러났다⁠. 농부는 막대기를 길가에 던지고 엎드려 쌀을 주웠다⁠. 사람들이 하나둘 따라 엎드렸다⁠.

사또가 말을 돌렸다⁠. 길가 바위 위의 범벅을 보았다⁠.

“⁠저 고양이⁠! 저놈이다⁠!⁠”

사또의 채찍이 날아왔다⁠. 범벅은 세 다리로 바위에서 굴러 피했다⁠. 채찍 끝이 범벅의 귀를 스쳤다⁠. 귀에서 피가 났다⁠. 범벅은 바위 밑에서 사또를 올려다보며 하악거렸다⁠. 사또가 말에서 내리려는 순간 나루에서 고함이 올라왔다⁠. 경강 상인이었다⁠.

“⁠다 터진 섬을 어찌 싣소⁠? 쌀이 반은 길에 흘렀소⁠!⁠”

사또는 범벅을 버려두고 나루로 말을 달렸다⁠. 범벅은 귀의 피를 앞발로 닦았다⁠. 하늘을 보았다⁠. 보름달이 산마루로 올라오고 있었다⁠.

*

청울은 첫 번째 소의 마른 바닥에서 달을 보았다⁠. 달이 산마루를 떠나 아홉 소 계곡 위로 오르자 하늘 한가운데에 빛의 고리가 생겼다⁠. 처음에는 실처럼 가늘었다⁠. 고리가 점점 넓어졌다⁠. 고리 안쪽의 하늘이 달보다 밝게 빛났다⁠. 하늘 문이었다⁠.

공기가 바싹 말랐다⁠. 산허리의 구름 아홉 덩이 가장자리에서 김이 올랐다⁠. 휘광이 하늘 문 아래로 내려와 청울의 앞에 몸을 내렸다⁠.

“⁠때가 되었다⁠. 구슬은 어디 있느냐⁠?⁠”

“⁠여기 없소⁠.⁠”

“⁠고양이에게 맡겼느냐⁠? 어리석다⁠.⁠”

휘광의 앞발이 청울의 옆구리를 눌렀다⁠. 화승총 자리였다⁠. 청울의 몸이 뒤틀렸다⁠. 휘광의 비늘이 닿는 데마다 청울의 비늘이 말라 갈라졌다⁠.

“⁠올라와라⁠, 청울⁠. 고양이를 기다리지 마라⁠. 구슬은 내가 찾아다 주마⁠. 너는 문만 지나면 된다⁠.⁠”

“⁠나는 안 올라가오⁠.⁠”

청울은 몸을 틀어 휘광의 앞발에서 빠져나왔다⁠. 꼬리로 휘광의 목을 감았다⁠. 휘광의 몸이 뜨거웠다⁠. 감은 꼬리의 비늘이 타는 냄새가 났다⁠. 청울은 꼬리를 풀지 않았다⁠. 둘이 엉켜 마른 바닥을 굴렀다⁠. 산허리의 구름 아홉 덩이가 바람에 휘말려 하늘 문 아래에서 소용돌이쳤다⁠.

휘광이 청울을 바닥에 눌렀다⁠.

“⁠이백 년 전에도 너는 이랬다⁠. 아이들이 죽는다고⁠. 죽은 것은 이듬해 아이들이었다⁠.⁠”

“⁠이번에는 곳간이 열렸소⁠.⁠”

“⁠절반만⁠.⁠”

“⁠절반이라도⁠.⁠”

“⁠절반의 쌀로 고을이 한 해를 나겠느냐⁠? 남은 절반은 오늘 밤 배에 실린다⁠. 사또는 내일 빈 석굴을 실사관에게 보이고 웃을 것이다⁠.⁠”

“⁠그러니 재판정에 가야 하오⁠.⁠”

“⁠구슬도 없이⁠?⁠”

휘광의 콧김이 청울의 얼굴에 쏟아졌다⁠. 청울은 눈을 감지 않았다⁠.

*

범벅은 세 다리로 돌계단을 올라왔다⁠. 첫 번째 소에 닿았을 때 두 큰 몸이 엉켜 있었다⁠. 범벅은 능선 바위 틈에서 도로 꺼내 온 구슬을 문 채 바위 위로 뛰어올랐다⁠. 휘광이 고양이를 보고 청울을 놓았다⁠.

“⁠구슬을 내놓아라⁠. 고양이는 하늘 문을 못 지난다⁠.⁠”

범벅은 구슬을 바위에 내려놓았다⁠. 앞발로 구슬을 누르고 휘광을 올려다보았다⁠.

“⁠구슬 가진 자하고 그가 데려가는 자만 문을 지난다며⁠. 청울이 그랬어⁠. 하늘이 그렇게 정했다며⁠. 거기 고양이는 안 된다는 말 있어⁠?⁠”

휘광은 대답하지 않았다⁠. 휘광의 비늘이 한 번 붉게 일렁였다⁠.

“⁠없지⁠? 아무도 안 물어봐서 없는 거지⁠?⁠”

범벅은 구슬을 물었다⁠. 바위에서 청울의 머리 위로 뛰었다⁠. 세 다리로 뛰었다⁠. 발톱이 정수리 비늘 틈에 박혔다⁠. 범벅은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정수리를 꾹꾹 눌렀다⁠.

“⁠범벅⁠, 무엇을 하오⁠?⁠”

“⁠흡⁠, 흐읍⁠.⁠”

범벅은 구슬을 이빨 사이로 옮겨 물고 겨우 말했다⁠.

“⁠내가 데려간다⁠. 너를⁠.⁠”

“⁠나를⁠?⁠”

“⁠재판정 가야 하잖아⁠. 비 얘기는 네가 해⁠. 나는 말 못 해⁠. 나는 구슬 물고 있어야 하거든⁠.⁠”

청울의 몸이 떠올랐다⁠. 이무기가 하늘로 오른 것은 천 년 만에 처음이었다⁠. 몸이 오르는데도 청울은 제 힘으로 오른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정수리에 앉은 작은 무게가 끌어올렸다⁠. 구름 아홉 덩이가 청울의 몸을 따라 감겨 올라왔다⁠.

구름 속은 축축했다⁠. 범벅의 털이 순식간에 젖어 몸에 달라붙었다⁠.

“⁠으⁠, 으으⁠. 구름이 이렇게 젖은 거였어⁠?⁠”

“⁠구름이 물이오⁠.⁠”

“⁠말을 해 줬어야지⁠!⁠”

아래를 내려다본 범벅이 비명을 삼켰다⁠. 산사의 타 버린 부엌이 콩알만 했다⁠. 고개의 장승 둘이 쌀알만 했다⁠. 범벅은 정수리 비늘을 네 발로 꽉 끌어안았다⁠. 꺾인 뒷다리까지 끌어안았다⁠.

그래도 범벅은 눈을 감지 않았다⁠. 달빛 아래 산등성이들이 겹겹이 누워 있었다⁠. 열 해 전 어미가 넘어간 산등성이가 저 가운데 하나였다⁠. 용마루에서 해 질 때까지 보던 산등성이였다⁠. 높은 데서 보면 다 보일 줄 알았다⁠. 산등성이는 높은 데서 보아도 다 같은 검은빛이었다⁠. 범벅은 산등성이를 하나씩 눈으로 짚다가 그만두었다⁠.

“⁠높은 데 좋아한다며⁠?⁠”

“⁠이건 너무 높아⁠!⁠”

휘광이 아래에서 따라 올라왔다⁠. 막지 않았다⁠. 빛의 고리가 머리 위로 다가왔다⁠. 고리 안쪽의 빛이 청울의 비늘을 쓸고 범벅의 젖은 털을 쓸었다⁠. 따뜻했다⁠. 세 해 동안 땅에서 느낀 열기와 다른 따뜻함이었다⁠.

청울은 고리를 지났다⁠. 등 뒤에서 하늘 문이 소리 없이 닫혔다⁠. 앞에는 구름으로 지은 계단이 끝없이 이어졌고⁠, 계단 끝에 문 두 짝이 닫혀 있었다⁠. 문짝마다 구름 무늬 대신 빗방울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하늘 재판정의 문이었다⁠.

10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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