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304자)

직기 소리

IMF 전날로 회귀한 부장 · 노범우

구미 직물공장 직포동 문을 열자 소리가 벽처럼 밀려왔다⁠. 직기 백 대가 한꺼번에 돌아가고 있었다⁠. 쉭⁠, 탁⁠, 쉭⁠, 탁⁠. 바람이 씨실을 쏘아 보내는 소리와 바디가 실을 때려 박는 소리가 한 박자로 맞물려 바닥까지 울렸다⁠. 용준은 문간에서 눈을 감았다⁠. 서른 해 동안 원단 공장 문을 열 때마다 이 소리를 들었다⁠. 소리가 고르면 공장이 건강했고⁠, 박자가 하나라도 어긋나면 원단에 줄이 갔다⁠.

천장 형광등 아래로 실먼지가 눈처럼 떠다녔다⁠. 귀마개를 낀 직포반 사람들이 직기 사이를 오가며 끊어진 실을 이었다⁠. 사람들 사이로 마흔 중반의 여자가 뒷짐을 지고 천천히 걸었다⁠. 짧은 파마머리에 작업복 소매를 걷어 올렸고⁠, 귀마개를 목에 걸고 있었다⁠. 귀마개를 안 낀 사람은 여자 하나뿐이었다⁠.

여자가 용준을 보았다⁠.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곧장 걸어왔다⁠.

“⁠본사 양복이 밤에 뭐 하러 왔노⁠?⁠”

소리가 컸다⁠. 직기 소리를 뚫고 들리게 말하는 데 이골이 난 목소리였다⁠.

“⁠대책반장 편우곤입니다⁠. 하소례 반장님이시죠⁠?⁠”

“⁠대책반장인지 대책 없는 반장인지는 내가 볼 끼고⁠. 대구 공장장이 전화했다⁠. 본사에서 주식 서류 뺏으러 사람 온다꼬⁠.⁠”

“⁠뺏으러 온 게 아닙니다⁠.⁠”

“⁠그라믄 뭐 하러 왔노⁠? 우리 반 쉰두 명 서류는 내가 걷었다⁠. 내가 들고 있다⁠. 우리 반 사람들 돈이고 우리 반 사람들 이름이다⁠. 니가 뭔데 이래라저래라 하노⁠?⁠”

하소례는 용준의 넥타이를 위아래로 훑었다⁠. 자줏빛 넥타이에 대구 염색공장의 남색 물이 한 방울 튀어 있었다⁠.

“⁠넥타이에 물 들었네⁠. 대구서 얻어맞고 왔나⁠?⁠”

*

말을 더 하기 전에 소리 하나가 어긋났다⁠. 열일곱 번 직기였다⁠. 쉭⁠, 탁⁠, 쉭⁠, 탁⁠, 탁⁠. 바람 소리 하나가 빠지고 바디 소리만 두 번 났다⁠. 직기가 덜컥 멈추고 빨간 등이 켜졌다⁠. 직기를 맡은 젊은 직공이 달려와 덮개를 열었다⁠.

“⁠반장님⁠, 또 씨실 끊겼어예⁠. 오늘만 열한 번째라예⁠.⁠”

하소례가 혀를 찼다⁠.

“⁠정비 아재는 오늘 비번이다⁠. 실 다시 걸어라⁠.⁠”

직공이 실을 다시 걸고 단추를 눌렀다⁠. 직기가 돌아갔다⁠. 쉭⁠, 탁⁠, 쉭⁠, 탁⁠. 일 분도 안 되어 또 탁⁠, 탁⁠. 빨간 등이 켜졌다⁠. 용준은 열일곱 번 직기 옆으로 갔다⁠. 손바닥을 직기 몸통에 대고 눈을 감았다⁠. 손바닥으로 떨림이 왔다⁠. 쉭 소리가 다섯 번에 한 번씩 짧았다⁠.

“⁠씨실 쏘는 보조 노즐 하나가 막혔습니다⁠. 오른쪽에서 세 번째쯤⁠. 바람이 덜 나가서 실이 끝까지 못 가고 끊깁니다⁠.⁠”

하소례가 팔짱을 꼈다⁠.

“⁠본사 양복이 노즐을 아나⁠?⁠”

“⁠노즐 구멍에 풀 찌꺼기가 끼면 그렇게 됩니다⁠. 이 원단⁠, 경사에 풀 많이 먹였지요⁠? 고밀도라서⁠.⁠”

하소례의 팔짱이 조금 풀렸다⁠. 젊은 직공이 하소례를 보았고⁠, 하소례가 턱짓을 했다⁠. 직공이 공구통을 가져왔다⁠. 용준은 양복 저고리를 벗어 직기 옆 실타래 상자 위에 올려놓고 와이셔츠 소매를 걷었다⁠. 무릎을 꿇고 직기 밑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2027년이었다면 무릎을 꿇기 전에 한 번⁠, 일어서면서 한 번 끙 소리를 냈을 것이다⁠. 서른일곱 살의 무릎은 아무 소리 없이 접혔다⁠.

“⁠드라이버 작은 거⁠, 일자로요⁠. 그리고 가는 철사 있으면⁠.⁠”

하소례가 직접 철사를 건넸다⁠. 용준은 오른쪽에서 세 번째 노즐을 빼냈다⁠. 구멍에 누런 풀 찌꺼기가 단단히 굳어 있었다⁠. 철사로 살살 긁어내고 입으로 후 불었다⁠. 실먼지가 얼굴에 내려앉았다⁠. 노즐을 도로 끼우고 직기 밑에서 빠져나왔다⁠. 뿔테에 실먼지가 하얗게 붙어 있었다⁠.

“⁠돌려 보세요⁠.⁠”

직공이 단추를 눌렀다⁠. 쉭⁠, 탁⁠, 쉭⁠, 탁⁠. 일 분이 지나고 삼 분이 지났다⁠. 빨간 등은 켜지지 않았다⁠. 옆 직기 아주머니가 귀마개를 빼고 엄지를 들었다⁠. 하소례는 아무 말 없이 실타래 상자 위의 저고리를 집어 털어서 용준에게 건넸다⁠.

“⁠니 본사 사람 아이제⁠. 어느 공장에서 굴렀노⁠?⁠”

“⁠이것저것 오래 들었습니다⁠.⁠”

“⁠거짓말은 본사 사람답게 하네⁠.⁠”

용준은 이틀 사이에 같은 말을 두 번 들었다⁠.

*

열일곱 번 직기에서 나오는 원단은 촘촘했다⁠. 손가락으로 쓸면 매끄러웠고⁠, 빛에 비춰도 실 사이로 빛이 거의 새지 않았다⁠. 용준은 원단 끝을 엄지와 검지로 비벼 보았다⁠. 서른 해 전 12월⁠, 대구의 경쟁 회사 상무가 미국 바이어에게 내밀어 계약을 따낸 천과 같은 촉감이었다⁠. 경쟁 회사는 계약 하나로 살아났고⁠, 용준은 부도 다음 해부터 경쟁 회사에서 서른 해를 일했다⁠.

“⁠반장님⁠, 이 천 한 달에 얼마나 뽑습니까⁠?⁠”

“⁠야간조 다 돌리면 웬만큼 뽑는다⁠. 와⁠?⁠”

“⁠미국에서 이 천을 찾는 회사가 있습니다⁠. 다음 달 중순에 서울에 옵니다⁠.⁠”

하소례가 눈썹을 올렸다⁠.

“⁠니가 그걸 우째 아노⁠?⁠”

“⁠꿈에서 봤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내 꿈은 맨날 직기가 서는 꿈이다⁠. 니 꿈은 좋은 꿈이네⁠.⁠”

하소례는 웃지 않고 말했다⁠. 웃지 않고 하는 농담이 하소례의 말투였다⁠.

*

자정을 한 시간 앞두고 야식 시간이 되었다⁠. 직포동 옆 휴게실 석유난로 위에 큰 냄비가 올라갔고⁠, 라면 열 봉지가 한꺼번에 들어갔다⁠. 직포반 아주머니들이 용준을 난로 옆 의자에 앉혔다⁠. 열일곱 번 직기 소문이 벌써 돌았다⁠.

“⁠반장님 장가는 갔나⁠?⁠”

“⁠갔습니다⁠.⁠”

“⁠아이고 아깝다⁠. 우리 막내 동서가 노처녀라⁠.⁠”

“⁠안경은 와 그래 크노⁠? 그거 쓰고 노즐 구멍이 보이나⁠?⁠”

“⁠이 안경 쓰니까 다 보이더라고요⁠.⁠”

용준은 진심으로 말했다⁠. 돋보기 없이 노즐 구멍이 보였다⁠. 아주머니들은 용준이 하는 말마다 웃었다⁠. 하소례가 라면을 덜어 용준 앞에 놓고 나무젓가락을 쪼개 주었다⁠.

“⁠묵고 말해라⁠. 주식 사지 말라는 이유⁠.⁠”

휴게실이 조용해졌다⁠. 난로 위 냄비만 보글거렸다⁠. 용준은 라면 한 젓가락을 먹었다⁠. 국물이 짰다⁠. 하소례 뒤로 직포반 사람들의 얼굴이 보였다⁠. 부도라는 말을 하면 내일 아침 이 사람들이 다 사내 예금 창구에 전화를 걸 것이었다⁠.

“⁠회장님이 금요일 아침까지 신청서를 은행에 보내라고 하신 이유는⁠, 회사가 그 돈이 급해서입니다⁠. 급한 회사 주식을 빚내서 사면 안 됩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거기까지입니다⁠.⁠”

“⁠거기까지⁠?⁠”

“⁠예⁠. 거기까지 말하면 반장님은 알아들으시니까요⁠.⁠”

하소례가 국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젓가락을 냄비 위에 걸쳐 놓았다⁠.

“⁠내가 이 공장 열다섯 해다⁠. 사내 예금도 열다섯 해 넣었다⁠. 딸 대학 등록금 하고 남은 기 거기 다 있다⁠.⁠”

“⁠압니다⁠.⁠”

“⁠모르제⁠. 니는 오늘 처음 봤다⁠.⁠”

하소례는 휴게실 사람들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아주머니들이 하소례의 입만 보았다⁠.

“⁠우리 반 서류는 금요일에 안 보낸다⁠. 내 사물함에 둔다⁠. 회장님이 전화하시믄 내가 받는다⁠.⁠”

아주머니 하나가 손을 들었다⁠.

“⁠반장님⁠, 그라믄 우리 주식은요⁠?⁠”

“⁠다음 달에 사도 된다⁠. 주식이 도망 안 간다⁠. 그라고 니⁠.⁠”

하소례가 용준을 가리켰다⁠.

“⁠니 말이 틀리면 니 그 넥타이 내 꺼다⁠. 우리 신랑 제사 때 매고 절하게⁠.⁠”

휴게실에 웃음이 터졌다⁠. 용준은 넥타이 끝을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쉰두 장이 금고가 아니라 반장 사물함으로 갔다⁠. 백오십 장 가운데 쉰두 장이었다⁠.

*

야식이 끝나자 하소례가 용준을 탈의실로 데려갔다⁠. 철제 사물함이 벽을 따라 늘어서 있었고⁠, 사물함 문마다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하소례의 사물함은 맨 끝이었다⁠. 문 안쪽에 남자 사진 한 장이 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작업복을 입고 스패너를 든 남자가 직기 옆에서 웃고 있었다⁠.

“⁠우리 신랑이다⁠. 이 공장 정비였다⁠. 팔십구 년에 직기 밑에 들어갔다가 못 나왔다⁠.⁠”

하소례는 사진을 보지 않고 말했다⁠. 하소례가 사물함에서 노란 고무줄로 묶은 서류 뭉치를 꺼냈다⁠.

“⁠장례는 회장님이 다 치렀다⁠. 내를 직포반에 넣어 준 것도 회장님이다⁠. 그래서 내는 회장님 말은 다 듣고 살았다⁠. 오늘 처음 안 듣는다⁠.⁠”

하소례는 고무줄을 풀고 맨 위 한 장을 들어 보였다⁠. 아까 열일곱 번 직기를 맡은 젊은 직공의 신청서였다⁠. 글씨가 삐뚤빼뚤했다⁠.

“⁠이 아는 스물한 살이다⁠. 김천 사는 엄마한테 다달이 부친다⁠. 천만 원 빚지면 십 년 간다⁠. 내가 이 아 서류를 은행에 보내 놓고 니 말이 맞으면⁠, 내는 우리 신랑 사진 못 본다⁠.⁠”

탈의실 벽에 붙은 전화기가 울렸다⁠. 밤 열한 시 반이었다⁠. 하소례가 수화기를 들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느린 서울말이 새어 나왔다⁠. 용준은 회장의 목소리를 이 미터 밖에서도 알아들었다⁠. 인삼 사탕 냄새가 나는 목소리였다⁠.

“⁠예⁠, 회장님⁠. 아입니더⁠, 안 잤습니더⁠. 예⁠, 본사 반장님 왔다 갔습니더⁠. 서류요⁠? 금요일에 지가 직접 들고 올라가께예⁠. 화물차에 실으믄 비 맞을까 봐서예⁠.⁠”

하소례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용준을 보았다⁠. 표정이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금요일에 올라간다 캤다⁠. 몇 시에 올라간다고는 안 캤다⁠.⁠”

용준은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참았다⁠. 하소례가 서류 뭉치를 다시 고무줄로 묶어 사물함에 넣고 자물쇠를 채웠다⁠. 자물쇠 딸깍 소리가 사진 속 남자의 웃는 얼굴 앞에서 났다⁠.

*

밤 열두 시⁠, 공장 정문 앞 공중전화 부스에 수은등 불빛이 노랗게 떨어졌다⁠. 공단 도로에는 화물차 한 대 지나가지 않았다⁠. 직포동에서 직기 소리가 먼 빗소리처럼 넘어왔다⁠. 삐삐가 허리춤에서 떨렸다⁠. 「⁠010⁠」

용준은 편우곤의 지갑에서 전화카드를 꺼내 꽂았다⁠. 남은 금액이 이천팔백 원이었다⁠. 번호를 누르는 손가락이 이번에는 한 번도 틀리지 않았다⁠.

물속 같은 먹먹함 뒤로 기계 소리가 들어왔다⁠. 삑⁠, 삑⁠. 이틀 전보다 박자가 조금 느렸다⁠. 아내의 목소리가 가까웠다⁠. 수화기를 귀에 대고 있는 사람처럼 가까웠다⁠.

“⁠여보⁠. 당신 자꾸 잠꼬대해⁠. 금채⁠, 금채 그러는데⁠. 금채가 누구야⁠?⁠”

용준은 수화기를 쥔 채 굳었다⁠.

“⁠스물여덟 해 살면서 그런 이름 처음 들어⁠. 누구야⁠, 대학 때 여자야⁠? 일어나면 나한테 다 말해⁠.⁠”

아내의 목소리 뒤로 간호사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보호자분⁠, 어제 낮에는 아롬이 운동화 어쩌고 하셨어요⁠. 손녀분 이름이에요⁠?⁠”

“⁠우리는 손녀가 없어요⁠. 딸 하나밖에 없어요⁠.⁠”

아내가 대답하는 사이⁠, 수화기 안쪽 깊은 데서 다른 목소리가 났다⁠. 낮고 갈라진 목소리였다⁠. 쉰여덟 살 반용준의 목소리였다⁠. 용준이 서른 해 가까이 녹음 파일과 동영상에서 들어 온 자기 목소리였다⁠. 그런데 말투가 달랐다⁠. 끝을 흐리지 않는 서울말이었다⁠.

“⁠금채야⁠. 아롬이 운동화 밑창 떨어졌다⁠. 토요일에 시장 가자⁠.⁠”

딸깍⁠. 선이 끊겼다⁠. 전화카드 액정의 숫자가 이백 원 줄어 있었다⁠.

용준은 부스 유리에 이마를 댔다⁠. 유리가 차가웠다⁠. 이틀 동안 편우곤은 어디 있을까를 한 번도 묻지 않았다⁠. 몸을 빌린 사람은 몸 주인이 어디 갔는지 묻지 않았다⁠. 편우곤은 2027년 병실에서 쉰여덟 살 반용준의 몸에 누워⁠, 눈을 뜨지 못한 채 아내와 딸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수은등 아래서 용준은 자기 넥타이를 내려다보았다⁠. 편우곤의 넥타이였다⁠. 편우곤의 아내가 사 준 넥타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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