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364자)

생방송

망한 아이돌 그룹 막내로 빙의했다 · 윤솔채

리더가 내 어깨를 잡아 돌려세웠다⁠. 손힘이 셌다⁠.

“⁠누가 말하래⁠?⁠”

“⁠형⁠, 생방송이에요⁠. 왼쪽으로 신호 들어가면 형 또 놓쳐요⁠.⁠”

“⁠그러니까 누가 말하래⁠, 내 귀를⁠?⁠”

음향 감독이 콘솔 위 메모지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덮어도 소용이 없었다⁠. 음향 감독은 이미 무전기에 대고 말하고 있었다⁠. “⁠피디님⁠, 오버턴 리더 좌측 청력 문제 있대요⁠. 인이어 우측만 갑니다⁠.⁠” 무전기 너머에서 지직거리는 대답이 돌아왔다⁠.

복도 끝에서 구두 소리가 다가왔다⁠. 두 번에 한 번씩 끌리는 소리였다⁠. 모성곤이 검은 양복 차림으로 리허설 무대 옆까지 걸어와 멈췄다⁠. 무전기 소리를 들은 얼굴이었다⁠.

“⁠리더⁠.⁠”

리더가 내 어깨를 놓았다⁠.

“⁠언제부터냐⁠?⁠”

“⁠…연습생 때부터요⁠.⁠”

모성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계산기 앱도 켜지 않았다⁠. 리더를 위아래로 오래 보다가⁠, 리더의 왼쪽 귀를 봤다⁠. 리더가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버릇이었다⁠. 모성곤의 말이 왼쪽에서 왔다⁠.

“⁠사 년 동안 나한테 한 번도 말을 안 했네⁠.⁠”

“⁠말하면 잘리니까요⁠.⁠”

“⁠그래⁠. 잘랐겠지⁠.⁠” 모성곤이 입술을 깨물었다⁠. “⁠무대 빼⁠. 사십 분 남았다⁠. 넷이 해⁠.⁠”

“⁠합니다⁠.⁠”

리더의 목소리는 작았는데 말끝이 흐리지 않았다⁠.

“⁠제 귀예요⁠. 제가 합니다⁠. 오른쪽은 아직 들려요⁠.⁠” 리더가 나를 보지 않고 말했다⁠. “⁠막내가 감독님한테 오른쪽으로만 달라고 했잖아요⁠. 오른쪽으로 들으면서 하면 돼요⁠.⁠”

모성곤이 한참 리더를 보다가 몸을 돌렸다⁠. 구두 소리가 복도 끝으로 멀어졌다⁠. 리더는 끝까지 나를 보지 않았다⁠.

*

빨간 불이 켜졌다⁠.

조명이 한꺼번에 무대를 덮었다⁠. 뜨거웠다⁠. 막내의 몸은 이 열을 알았다⁠. 세 해 동안 객석에서 올려다본 조명은 무대 위 정수리에 이렇게 뜨겁게 내리쬐고 있었다⁠. 인이어로 「⁠손전등⁠」 전주가 들어왔다⁠. 전주 여덟 박⁠. 객석에서 응원법이 터졌다⁠.

“⁠오버턴⁠! 하나 둘 셋 넷 다섯⁠!⁠”

혼자가 아니었다⁠. 사전 녹화 줄 맨 끝에 서 있던 마닐라의 노란 우비 다섯과⁠, 방송국 앞에서 오버턴 이름을 처음 들었다는 사람들과⁠, 다른 그룹 응원봉을 든 채 따라 외치는 사람들⁠. 서른 명 남짓한 목소리가 하나로 뭉쳐 무대까지 밀려왔다⁠. 나는 응원법을 입속으로 웅얼거리지 않았다⁠. 객석이 외쳐 주니까 몸이 알아서 움직였다⁠.

후렴에서 다섯이 손바닥을 눈썹에 댔다⁠. 객석을 비추듯 고개를 돌렸다⁠. 화면 하단에 자막이 지나갔다⁠. 「⁠안무 — 오버턴 맏형⁠」 실장이 방송국에 넣어 둔 한 줄이었다⁠. 맏형의 손이 반 박자 늦게 떨어졌다⁠. 떨어지면서 맏형이 숨을 크게 들이켰다⁠.

2절 랩 파트에서 랩 담당이 첫 음절부터 사투리로 들어갔다⁠. 비상계단에서 녹음한 벌스였다⁠. 비 오는 골목⁠, 바다 냄새⁠. 객석의 마닐라 우비들이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부산⁠!⁠」을 외쳤다⁠. 내가 세 해 동안 혼자 외치던 자리였다⁠.

브리지⁠. 반주가 빠졌다⁠. 메인보컬이 무대 한가운데로 나갔다⁠. 오른손 엄지가 손바닥을 눌렀다가 펴졌다⁠. 첫 마디는 「⁠손전등⁠」이었다⁠. 넷째 마디에서 멜로디가 꺾였다⁠. 여덟 마디째에서 반음이 내려가는 곡⁠. 「⁠한 사람⁠」이었다⁠.

리더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인이어 오른쪽으로 제 노래가 들어가고 있었다⁠. 리더가 나를 봤다⁠. 처음으로 무대 위에서 나를 정면으로 봤다⁠. 눈이 커졌다가⁠, 좁아졌다가⁠, 젖었다⁠.

메인보컬이 원래 키로 「⁠한 사람⁠」 후렴을 질렀다⁠. 한 사람만 있어도 나는 부를 거야⁠. 갈라지지 않았다⁠. 두 번째 줄은 리더의 파트였다⁠. 우리 넷은 리더에게 두 번째 줄을 비워 두었다⁠. 리더가 마이크를 들었다⁠. 오른쪽 귀로 반주를 들으며⁠, 한 박자도 놓치지 않고 들어왔다⁠.

“⁠한 사람이 있어서⁠, 나는 부를 거야⁠.⁠”

맏형이 마지막 후렴의 손을 뒤집었다⁠. 다섯이 손바닥을 바깥으로 돌려 객석을 비췄다⁠. 객석 버전의 손전등⁠. 노란 우비가 맨 앞줄에서 하던 손이었다⁠. 객석의 노란 우비 다섯이 같은 손을 들어 무대를 비췄다⁠. 무대와 객석이 서로를 비추는 동안 마지막 음이 끝났다⁠.

*

대기실로 돌아오는 복도에서 실장이 휴대전화를 높이 들고 뛰어왔다⁠.

“⁠실시간 38위⁠! 38위⁠!⁠”

랩 담당이 실장을 끌어안고 복도 바닥에 같이 넘어졌다⁠. 메인보컬은 벽에 기대 주저앉았고⁠, 맏형은 땀에 젖은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리더만 서 있었다⁠. 리더는 복도 끝을 보고 있었다⁠. 모성곤이 휴대전화를 귀에 댄 채 걸어오고 있었다⁠.

통화 소리가 막내의 귀에 들어왔다⁠. 유통사 이사의 목소리였다⁠.

“⁠대표님⁠, 지금 장난하세요⁠? 솔로 타이틀로 잡은 곡이 그룹 무대에 먼저 나갔어요⁠. 생방송으로요⁠. 선공개는 끝났어요⁠. 이 곡은 이제 그룹 곡이에요⁠. 위에서 솔로 계약 보류하래요⁠. 다른 곡 찾을 때까지요⁠. 찾는다는 보장도 없고요⁠.⁠”

모성곤이 전화를 끊었다⁠. 내 앞에 멈췄다⁠. 모성곤의 얼굴이 처음으로 붉었다⁠.

“⁠막내야⁠. 니가 뭘 한 줄 아냐⁠?⁠”

“⁠리더 형 노래를 리더 형이 불렀어요⁠.⁠”

“⁠삼억을 날렸다⁠.⁠” 모성곤의 목소리가 떨렸다⁠. 계산기를 두드릴 때는 한 번도 떨리지 않던 목소리였다⁠. “⁠형들 빚 털 돈이었다⁠. 니가 직접 들고 와서 형들 빚부터 털어 달라고 빌던 돈이다⁠. 오늘 38위 찍었지⁠. 다음 주에 몇 위일 것 같냐⁠? 그다음 주는⁠?⁠”

“⁠올라갈 거예요⁠.⁠”

“⁠올라가면⁠? 빚이 내려가냐⁠?⁠” 모성곤이 복도 벽을 손바닥으로 짚었다⁠. “⁠나는 오늘 저녁에 은행 가서 무슨 말을 하냐⁠?⁠”

헤드셋을 낀 조연출이 복도를 뛰어왔다⁠. 손에 든 큐시트가 펄럭였다⁠.

“⁠오버턴 막내 솔로 빠집니다⁠! 유통사 요청이에요⁠. 다음 팀 당겨요⁠!⁠”

복도 끝 모니터에 무대가 비쳤다⁠. 스태프 둘이 무대 한가운데의 피아노를 밀어 내고 있었다⁠. 의자 하나가 혼자 남았다가⁠, 그것도 들려 나갔다⁠. 흰 셔츠 한 벌이 대기실 옷걸이에 걸린 채 흔들렸다⁠. 내가 입을 뻔한 셔츠였다⁠. 원래 막내가 입으려던 셔츠였다⁠.

대답하지 못했다⁠. 모성곤이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가 리더 앞에 멈췄다⁠.

“⁠리더⁠. 니 노래⁠, 니 손으로 그룹 곡 만들었다⁠. 이제 니 빚도 그 노래가 갚아야 돼⁠.⁠”

*

대기실 문이 닫혔다⁠. 모성곤이 나가고 다섯만 남았다⁠. 화장실 옆 창고를 비운 방이었다⁠. 거울 하나⁠, 의자 다섯⁠, 바나나 껍질 다섯⁠.

리더가 나를 봤다⁠.

“⁠내 귀⁠.⁠” 리더가 낮게 말했다⁠. “⁠나 너한테 옥상에서 처음 말했어⁠. 근데 너는 그 전부터 알았지⁠. 내 오른쪽에 서고⁠, 동선 바꾸고⁠. 언제부터 알았어⁠? 어떻게⁠?⁠”

“⁠형이 고개를 늘⁠…⁠…⁠.⁠”

“⁠그건 니가 옥상에서 한 말이고⁠. 그 전에⁠, 어떻게⁠?⁠”

랩 담당이 의자 위에서 막내의 휴대전화를 들고 있었다⁠. 생방송 때 무대 옆에서 찍겠다며 빌려 간 휴대전화였다⁠. 촬영을 끄고 사진첩을 열었다가⁠, 사진첩 옆에 열려 있던 앱을 눌렀다⁠. 내 클라우드 계정에 이어진 팬 계정이었다⁠. 로그아웃을 하지 않았다⁠.

랩 담당의 엄지가 화면을 밀어 올렸다⁠. 계정 이름이 화면 맨 위에 있었다⁠. 「⁠우비형⁠」

“⁠…이거 뭐고⁠?⁠”

랩 담당이 화면을 아래로 내렸다⁠. 세 해 치의 글이 쏟아졌다⁠. 맨 앞줄에서 찍은 사진⁠, 비 오는 골목⁠, 팬 사인회 영수증⁠, 「⁠오늘도 혼자 갔다⁠. 다섯이 나를 보고 웃었다⁠」 랩 담당의 엄지가 두 해 전 날짜에서 멈췄다⁠. 소리 내어 읽었다⁠.

“⁠「⁠리더는 말을 들을 때 늘 오른쪽으로 돌아선다⁠. 왼쪽 귀가 아픈 걸까⁠. 아무도 모르게 오른쪽에 서 주고 싶다⁠」⁠”

대기실이 조용해졌다⁠. 랩 담당이 화면을 계속 내렸다⁠. 「⁠메인보컬 쇼케이스 때 인이어 꺼진 거 내가 봤다⁠. 아무도 안 믿어 줄 것 같다⁠」 「⁠맏형이 올린 안무 영상 사십 분 만에 지워졌다⁠. 저장해 뒀다⁠. 언젠가 돌려줘야지⁠」 「⁠랩 담당 사투리 벌스 녹음했다⁠. 이게 제일 좋은데⁠」 「⁠막내 귀걸이 아직 내가 갖고 있다⁠. 다음엔 꼭 돌려줘야지⁠」

맏형이 내 앞으로 걸어왔다⁠. 맏형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 화가 난 얼굴과는 달랐다⁠. 모르는 사람을 보는 얼굴이었다⁠.

“⁠니 누구냐⁠?⁠”

나는 막내의 입을 열었다⁠. 막내의 목소리로⁠, 막내가 한 번도 하지 않았을 말을 했다⁠.

“⁠…우비 형이에요⁠.⁠”

아무도 웃지 않았다⁠. 랩 담당이 휴대전화를 의자 위에 내려놓았다⁠. 손이 떨려서 휴대전화가 의자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아무도 줍지 않았다⁠. 바닥에 엎어지지 않고 누운 화면에서 「⁠우비형⁠」 계정의 맨 위 사진이 우리를 올려다봤다⁠. 비 오는 골목에서 찍은⁠, 승합차로 걸어가는 다섯의 뒷모습이었다⁠.

“⁠4월 1일 아침에 연습실에서 눈을 떴어요⁠. 막내 몸으로요⁠. 제 몸은 구로 병원에 있어요⁠. 믿기 어려운 거 알아요⁠. 근데 형들이 저한테 물어본 것들⁠, 막내는 몰랐고 저는 알았잖아요⁠.⁠”

랩 담당이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다시 열었다⁠.

“⁠니가 우비 형이면⁠, 막내는⁠? 우리 막내는 어디 있는데⁠?⁠”

“⁠꿈에서 만나요⁠. 연습실 거울 안에서요⁠. 막내는 제가 이 몸으로 하는 걸 다 보고 있어요⁠. 형들이 오늘 무대에서 한 것도요⁠.⁠”

“⁠그 말을 우리가 믿으라꼬⁠?⁠”

“⁠안 믿으셔도 돼요⁠. 막내가 저한테 그랬어요⁠. 내 자리를 망치지 말라고⁠.⁠”

“⁠그래서⁠.⁠” 리더가 말했다⁠. “⁠그래서 우리 귀랑 목이랑 지운 영상이랑⁠, 니가 다 갖고 있었던 거네⁠. 삼 년 동안⁠.⁠”

“⁠형들 좋아해서요⁠.⁠”

“⁠좋아해서 우리 상처를 니 계정에 적었어⁠?⁠” 리더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좋아해서 그걸 하나씩 꺼내 썼어⁠? 맏형 영상⁠, 메인보컬 인이어⁠, 사투리⁠, 내 귀⁠. 우리가 니 덕질 노트였냐⁠? 내 귀가 니 무기였냐⁠?⁠”

메인보컬이 일어나 대기실을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작았다⁠. 맏형이 뒤따라 나갔다⁠. 랩 담당은 바닥의 휴대전화를 내려다보다가⁠, 나를 한 번 보고⁠, 나갔다⁠. 리더가 마지막이었다⁠. 리더는 문고리를 잡은 채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오른쪽 귀를 나에게 내주지 않으려고⁠, 일부러 반대로 돌렸다⁠.

“⁠「⁠한 사람⁠」 그 형한테 들려주고 싶었는데⁠.⁠” 리더가 문을 열었다⁠. “⁠직접 듣고 있었네⁠.⁠”

*

지하철 이호선 막차는 텅 비어 있었다⁠. 나는 맨 끝 칸 구석에 앉아 막내의 휴대전화를 무릎에 올려놓았다⁠. 화면이 금 가 있었다⁠. 대기실 바닥에 떨어질 때 금이 갔다⁠.

단톡방이 울렸다⁠. 금 간 화면 위로 글자가 떴다⁠.

「⁠랩 담당님이 막내님을 내보냈습니다⁠.⁠」

창밖 터널 벽이 지나갔다⁠. 어두운 유리에 은빛 머리와 오른쪽 귀의 은 고리 귀걸이가 비쳤다⁠. 나는 후드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지퍼백 속 귀걸이 한 짝이 손끝에 닿았다⁠. 세 해 동안 돌려주지 못한 귀걸이였다⁠. 오늘 밤에도 나는 아무것도 돌려주지 못했다⁠.

휴대전화가 한 번 더 떨렸다⁠. 엄마였다⁠. 「⁠병실 텔레비전에서 회사 분 봤어요⁠. 노란 우비 입은 사람들도 봤어요⁠. 우리 애가 깨어 있었으면 저기 맨 앞에서 목이 쉬게 소리 질렀을 거예요⁠」

나는 답장 칸에 손가락을 올렸다⁠. 「⁠어머니⁠, 저 이도예요⁠」라고 썼다가 지웠다⁠. 「⁠저도 봤어요⁠」라고 썼다가 또 지웠다⁠. 금 간 화면 위에서 커서만 깜빡였다⁠. 열차가 대림역에 멈췄다가 다시 출발했다⁠. 구로디지털단지역 안내 방송이 나왔다⁠. 나는 내리지 않았다⁠. 지금 이 얼굴로는 병실에 들어갈 수도⁠, 숙소 현관 비밀번호를 누를 수도 없었다⁠. 다음 역에서도 내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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