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401자)

형 아니었네

망한 아이돌 그룹 막내로 빙의했다 · 윤솔채

이호선을 두 바퀴 돌았다⁠. 순환선이라 내리지 않으면 끝이 없었다⁠. 새벽 한 시가 넘어 열차가 차고로 들어간다는 안내가 나왔을 때⁠, 나는 구로디지털단지역에 내렸다⁠. 결국 내린 곳이 여기였다⁠.

병원 응급실 옆문으로 들어가 육인실까지 계단으로 올라갔다⁠. 복도 불은 반만 켜져 있었다⁠. 커튼을 살짝 걷자 엄마가 보조 침대에서 모로 누워 자고 있었다⁠. 링거 거치대에 묶인 슬로건이 에어컨 바람에 조금씩 흔들렸다⁠. 「⁠손전등 켜 줄게⁠」 귀퉁이에 내가 막내의 손으로 한 사인⁠.

침대 위의 나는 그대로였다⁠. 볼이 조금 더 꺼졌고⁠, 수염이 조금 더 자랐다⁠. 이불이 오르내렸다⁠. 나는 보호자 의자에 앉아 내 손을 잡았다⁠. 차갑지 않았다⁠. 엄마 말대로 손가락 끝이 조금 따뜻했다⁠.

막내의 손과 내 손이 맞닿아 있었다⁠. 막내의 손은 크고 마디가 굵었고⁠, 내 손은 마르고 손톱이 짧았다⁠. 키보드를 하루 열 시간 두드리는 손이었다⁠. 세 해 동안 맨 앞줄에서 손바닥을 뒤집어 들던 손이었다⁠.

“⁠미안해⁠.⁠”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나도 몰랐다⁠. 의자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

꿈속 연습실에는 비가 내렸다⁠. 천장에서 내리는 비였다⁠. 마루가 젖었고⁠, 거울에 빗물이 줄줄 흘렀다⁠. 원래 막내는 거울 안에서 젖지 않고 앉아 있었다⁠.

“⁠봤지⁠?⁠”

“⁠봤어⁠.⁠”

“⁠형들은 다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제일 싫어해⁠. 대표님도 그래서 싫어하고⁠, 나도 그래서 말 안 했어⁠.⁠” 원래 막내가 무릎을 끌어안았다⁠. “⁠형도 이제 알았지⁠? 다 아는 거⁠, 아무것도 아니야⁠.⁠”

“⁠응⁠.⁠”

“⁠투표 날 새벽 세 시에 비켜⁠. 내가 돌아갈게⁠. 그다음은 내가 해⁠.⁠”

“⁠형들한테 묻지도 않고⁠?⁠”

원래 막내가 처음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빗물이 거울을 타고 흘렀다⁠. 거울 안의 원래 막내 얼굴 위로 빗물 줄기가 지나갔다⁠. 우는 것처럼 보였는데⁠, 원래 막내는 울지 않았다⁠.

“⁠알았어⁠.⁠” 내가 말했다⁠. “⁠세 시에 비켜 줄게⁠.⁠”

*

“⁠또 왔네요⁠, 회사 분⁠.⁠”

눈을 뜨니 엄마가 귤을 까고 있었다⁠. 창으로 아침 햇빛이 들어왔다⁠. 엄마가 귤 반쪽을 내 손에 쥐여 주었다⁠.

“⁠밤새 여기 계셨어요⁠? 회사는 안 가요⁠?⁠”

“⁠오늘은 쉬는 날이에요⁠.⁠”

“⁠아이고⁠, 쉬는 날에 남의 집 애 병실에서⁠.⁠” 엄마가 내 얼굴을 빤히 봤다⁠. “⁠어젯밤 텔레비전에 나온 거⁠, 회사 분 맞죠⁠? 가수 같다 했더니 진짜 가수네⁠.⁠”

나는 귤을 입에 넣었다⁠. 시었다⁠.

“⁠우리 이도는요⁠, 어릴 때부터 자기가 무대에 서는 건 싫다고 했어요⁠. 학예회 때도 맨날 뒤에서 커튼 줄 잡고⁠.⁠” 엄마가 귤껍질을 접었다⁠. “⁠근데 남이 무대에 서는 건 그렇게 좋아했어요⁠. 앞에서 박수 치는 게 제일 좋대요⁠. 이상한 애죠⁠?⁠”

“⁠안 이상해요⁠.⁠”

“⁠회사 분도 그런 사람 하나쯤 있어요⁠? 앞에서 박수 쳐 주는 사람⁠?⁠”

목이 막혔다⁠.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웃으며 귤 한 조각을 더 내밀었다⁠.

막내의 휴대전화가 떨렸다⁠. 실장이었다⁠. 「⁠애들이 옥상으로 오래⁠. 열한 시⁠」

*

옥상의 빨래 건조대는 접혀 있었다⁠. 고추 모종 화분 열두 개가 난간 쪽으로 몰려 있었다⁠. 넷이 옥상 한가운데 서서 나를 기다렸다⁠. 아무도 앉지 않았다⁠.

맏형이 먼저 말했다⁠.

“⁠물어볼 거다⁠. 막내만 아는 거⁠.⁠”

“⁠네⁠.⁠”

“⁠우리 첫 숙소 현관 비밀번호⁠.⁠”

몰랐다⁠. 팬카페에 첫 숙소 이야기는 올라온 적이 없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막내가 처음 운 날⁠. 연습생 때⁠.⁠”

몰랐다⁠.

“⁠막내가 리더한테 빌려 가서 아직 안 갚은 거⁠.⁠”

리더가 팔짱을 낀 채 나를 봤다⁠. 나는 몰랐다⁠. 맏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폰이다⁠. 막내가 리더 이어폰 한쪽을 빌려 갔어⁠. 왼쪽 거⁠. 리더가 어차피 왼쪽은 안 쓴다고 그냥 가지라고 했는데⁠, 막내는 빌린 거라고 꼭 돌려준다고 했다⁠. 막내 서랍에 아직 있어⁠.⁠” 맏형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막내가 리더 귀 몰랐다는 거⁠, 거짓말이다⁠. 리더가 말 안 해도 막내는 알았어⁠. 우리가 몰랐던 거지⁠.⁠”

리더가 고개를 돌렸다⁠. 왼쪽으로⁠.

랩 담당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이번엔 내가 묻는다⁠. 우비 형만 아는 거⁠.⁠”

“⁠네⁠.⁠”

“⁠첫 버스킹⁠. 스피커 죽고 우리가 마이크 없이 부른 거⁠, 두 번째 곡이 뭐였노⁠?⁠”

“⁠「⁠손전등⁠」 데모요⁠. 그때는 제목이 「⁠랜턴⁠」이었고⁠, 후렴 가사가 지금이랑 달랐어요⁠. 불 꺼진 데서 너만 보여⁠, 였어요⁠.⁠”

랩 담당의 입이 벌어졌다⁠.

“⁠내 랩 마지막 마디⁠.⁠”

“⁠행님 감기 걸리지 마이소⁠.⁠”

“⁠막내가 마지막에 뭐 했노⁠?⁠”

나는 후드티 주머니에서 지퍼백을 꺼냈다⁠. 포스트잇에 내 글씨가 적혀 있었다⁠. 「⁠막내 거⁠. 돌려줄 것⁠」 지퍼를 열어 귀걸이를 손바닥에 올렸다⁠. 작은 은 고리 귀걸이 한 짝이 햇빛에 반짝였다⁠.

“⁠인사하다가 이거 떨어뜨렸어요⁠. 왼쪽 거요⁠. 막내는 몰랐어요⁠. 제가 주워서 뛰어갔는데⁠, 승합차가 골목을 돌고 있었어요⁠.⁠”

넷이 귀걸이를 내려다봤다⁠. 메인보컬이 숨을 들이켰다⁠. 맏형이 손을 뻗어 귀걸이를 집으려다 말았다⁠.

“⁠막내 그 뒤로 귀걸이 한쪽만 했다⁠. 잃어버렸다고 한 번도 말 안 하고⁠.⁠” 맏형이 이마를 문질렀다⁠. “⁠팬들은 멋인 줄 알았지⁠. 우리도 그런 줄 알았고⁠.⁠”

맏형이 고개를 들어 나를 봤다⁠. 모르는 사람을 보는 얼굴이 조금 달라져 있었다⁠. 낯선 사람을 보는 얼굴에서 오래 본 사람을 다시 보는 얼굴로⁠.

“⁠우비 형⁠. 형⁠, 몇 살이에요⁠?⁠”

“⁠스물셋이요⁠.⁠”

정적이 흘렀다⁠. 랩 담당이 먼저 터졌다⁠.

“⁠스물셋⁠? 나랑 동갑이네⁠? 형 아니었네⁠!⁠”

“⁠형이라고 부른 적 없어요⁠. 형들이 그렇게 부른 거예요⁠.⁠”

“⁠삼 년 동안 동갑한테 행님⁠, 행님 했다고⁠?⁠” 랩 담당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메인보컬 형보다도 어리고⁠, 리더 형보다도 어리고⁠. 우리가 비 맞는 동생한테 감기 걸리지 마이소 했나⁠.⁠”

메인보컬이 웃었다⁠. 웃다가 손바닥으로 눈을 눌렀다⁠. 맏형은 하늘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리더만 웃지 않았다⁠.

“⁠니가 우리를 아는 건 무대 앞에서야⁠.⁠” 리더가 말했다⁠. “⁠무대 앞에서 본 걸로 무대 뒤를 다 안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내 귀를 감독님한테 말했고⁠.⁠”

“⁠네⁠.⁠”

“⁠변명 안 해⁠?⁠”

“⁠변명할 게 없어요⁠. 형한테 안 묻고 말했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리더가 입을 다물었다⁠. 메인보컬이 눈을 누르던 손을 내렸다⁠.

“⁠근데 리더야⁠. 쟤 아니었으면 나 아직 한 옥타브 내려 불러⁠.⁠” 메인보컬이 나를 봤다⁠. “⁠쇼케이스 날 인이어 꺼진 거⁠, 아무도 안 믿어 줬는데 객석에서 저 사람은 봤어⁠. 삼 년 동안 그거 하나 안 놓고 있었어⁠.⁠”

“⁠그것도 우리 상처 하나 갖고 있었던 거고⁠.⁠” 리더가 말했다⁠.

“⁠갖고 있다가 돌려줬잖아⁠.⁠”

리더와 메인보컬이 서로를 봤다⁠. 둘 사이에 고추 모종 잎이 바람에 흔들렸다⁠.

맏형이 헛기침을 했다⁠. 접힌 빨래 건조대를 펴서 난간 앞에 세웠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이었다⁠.

“⁠일단 숙소 들어와⁠. 막내 몸이 밖에서 자면 안 된다⁠. 감기 걸리면 막내가 돌아와서 고생해⁠.⁠” 맏형이 건조대 다리를 발로 툭 찼다⁠. “⁠우비 형 당신 때문이 아니라 막내 때문이다⁠.⁠”

“⁠단톡방은요⁠?⁠” 내가 물었다⁠.

“⁠단톡방은 막내 돌아오면 다시 넣는다⁠.⁠” 랩 담당이 휴대전화를 흔들었다⁠. “⁠니는 막내가 아니니까 못 들어온다⁠. 대신⁠.⁠” 랩 담당이 잠깐 화면을 두드리더니 내 쪽으로 돌렸다⁠. 새 방이 하나 열려 있었다⁠. 방 이름은 「⁠우비 형 감시방⁠」이었다⁠. 참여자는 넷과 나⁠, 다섯이었다⁠. “⁠여기서 니 감시한다⁠. 하루에 세 번 어디 있는지 보고해라⁠.⁠”

“⁠감시방 이름 꼭 그래야 돼요⁠?⁠”

“⁠불만 있으면 해체에 손 들어라⁠.⁠” 랩 담당이 말하고 나서 혼자 웃음을 참지 못했다⁠. 맏형이 랩 담당의 뒤통수를 쳤다⁠.

*

숙소 계단에 앉아 기사를 읽었다⁠. 「⁠삑사리 아이돌의 반전 무대⁠… 브리지 신곡 ‘⁠한 사람⁠’ 원곡자는 리더⁠」 기사 밑 댓글이 천 개를 넘었다⁠. 「⁠고음 듣고 소름⁠」 「⁠안무 맏형 자막 보고 울었음⁠」 「⁠사투리 랩 뭔데 계속 생각남⁠」 중간쯤에 이런 댓글이 있었다⁠. 「⁠리더 무대 내내 고개 오른쪽으로만 돌리던데 컨디션 안 좋았나⁠」 밑에 대댓글이 붙어 있었다⁠. 「⁠인이어 문제였대⁠. 그래도 끝까지 함⁠」

마닐라 계정은 생방송 무대를 세 가지 말로 자막 달아 올렸다⁠. 맨 위 고정 글은 바뀌어 있었다⁠. 「⁠노란 우비가 돌아올 때까지 우리는 계속 노란 우비를 입습니다⁠. 쇼케이스 표 예매 문의는 아래로⁠」 밑에 마닐라와 자카르타와 상파울루의 계정들이 노란 우비 사진을 하나씩 달고 있었다⁠.

차트 앱을 열었다⁠. 「⁠41위⁠」 하룻밤 사이 세 칸이 내려가 있었다⁠. 모성곤의 말이 맞았다⁠. 숫자는 내려가는 날도 있었다⁠.

*

오후 네 시⁠, 대표실⁠. 모성곤은 책상 앞에 앉아 휴대전화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화면에 은행 문자가 떠 있었다⁠. 「⁠담보 부동산 경매 진행 예정 안내⁠」 모성곤이 화면을 엎지 않았다⁠. 일부러 보라고 둔 것이었다⁠.

“⁠아파트다⁠. 이 회사 세울 때 잡혔다⁠.⁠” 모성곤이 말했다⁠. “⁠유통사가 연락 왔다⁠. 다른 곡으로 솔로 다시 하재⁠. 조건은 같다⁠. 투표 끝나면 바로 서명⁠. 해체 발표하고⁠. 이게 마지막이다⁠.⁠”

“⁠대표님⁠, 마닐라 쇼케이스 기획자가 개런티를 또 올렸어요⁠. 상파울루에서도 연락이 왔고요⁠. 어제 무대 영상이 하룻밤에⁠…⁠…⁠.⁠”

“⁠알아⁠. 다 봤다⁠.⁠” 모성곤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 숫자⁠, 거품이다⁠. 일주일이면 꺼져⁠. 니가 좋아하는 숫자는 다 그래⁠. 오르는 날만 숫자고⁠, 내려가는 날은 아무도 안 세⁠. 나는 거품 위에 애들 빚을 못 올린다⁠. 내 아파트는 내 거니까 날려도 된다⁠. 애들 빚은 애들 거다⁠.⁠”

“⁠그 빚⁠, 형들이 지겠대요⁠. 다섯이 나눠서⁠.⁠”

“⁠스물 몇 살짜리가 지겠다고 하는 빚이 어떤 빚인지 아냐⁠? 서른다섯에 아직 갚고 있는 빚이다⁠.⁠” 모성곤이 창가로 걸어갔다⁠. “⁠하나 더 묻자⁠. 리더 귀⁠. 니 알았지⁠? 알면서 생방송에 세웠지⁠?⁠”

“⁠…네⁠.⁠”

“⁠귀 아픈 애를 조명 밑에 세우는 게 니 꿈이었냐⁠?⁠”

대답하지 못했다⁠. 모성곤의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숫자도 틀리지 않았고⁠, 리더의 귀도 틀리지 않았다⁠. 내가 가진 것은 오르는 숫자와 노란 우비 다섯과 생방송 무대 사 분이었다⁠. 모성곤이 가진 것은 은행 문자와 십오 년 치 새해 문자였다⁠.

모성곤이 창밖을 본 채 덧붙였다⁠.

“⁠투표는 22일 열 시다⁠. 막내 표는 막내가 던져⁠. 니가 무슨 생각인지 몰라도⁠, 그 손은 막내 손이다⁠.⁠”

모성곤은 막내가 막내가 아니라는 것을 몰랐다⁠. 모르면서 또 맞는 말을 했다⁠.

*

대표실을 나와 비상계단으로 들어갔다⁠. 철문이 닫히자 사무실 전화벨 소리가 끊겼다⁠. 계단참에 리더가 앉아 있었다⁠.

리더가 이어폰 한쪽을 내밀었다⁠. 오른쪽 이어폰이었다⁠. 나는 받아서 오른쪽 귀에 꽂았다⁠.

「⁠한 사람⁠」이었다⁠. 피아노⁠, 여덟 마디째의 반음⁠. 이번에는 다섯 목소리가 들어 있었다⁠. 맏형의 낮은 화음⁠, 메인보컬의 원래 키 고음⁠, 랩 담당의 사투리 벌스⁠, 리더의 가이드⁠. 두 번째 후렴 앞에서 노래가 비었다⁠. 반주만 네 마디 흐르고⁠, 목소리가 하나도 없었다⁠.

“⁠막내 자리다⁠.⁠” 리더가 말했다⁠. “⁠비워 놨어⁠.⁠”

리더가 계단에서 일어났다⁠. 나에게서 이어폰을 돌려받지 않았다⁠.

“⁠이건 니 거 아니야⁠. 막내 거야⁠.⁠” 리더가 철문 손잡이를 잡았다⁠. “⁠막내한테 전해⁠.⁠”

10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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