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396자)
오른쪽 귀
망한 아이돌 그룹 막내로 빙의했다 · 윤솔채
토요일 아침 일곱 시, 리더가 소리 없이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이층 침대 위 칸에서 나는 운동화 끈 묶는 소리를 들었다. 오른발을 먼저 묶고 왼발을 나중에 묶었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평소보다 작았다. 문을 살살 닫는 사람은 어디 가는지 들키기 싫은 사람이다.
나는 후드티 모자를 뒤집어쓰고 따라 나갔다. 리더는 논현동 골목을 걸어 신사동 큰길로 나갔고, 큰길 모퉁이 건물 3층으로 올라갔다. 계단 입구 간판에 「이비인후과」라고 적혀 있었다.
대기실에는 의자가 열두 개 있었고 아홉 개가 차 있었다. 리더는 맨 구석 의자에 앉아 모자를 깊게 눌러썼다. 나는 리더의 오른쪽 자리에 앉았다. 리더가 고개를 돌렸다가 굳었다.
“너 뭐야?”
“같이 왔어요.”
“따라왔겠지.”
“따라왔어요.”
맞은편 의자의 할머니가 우리 둘을 번갈아 보다가 손뼉을 쳤다.
“아이고, 이 총각. 그 고음 갈라지던 총각 친구 아녀? 우리 손녀가 보여 줬는디.”
리더가 모자챙을 더 눌렀다. 나는 할머니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네, 할머니. 이제 안 갈라져요.”
“알어, 알어. 할매가 박수 치는 것도 봤어. 그 할매가 나랑 동갑이여.”
대기실 텔레비전에서 다음 주 음악 방송 예고가 나왔다. 화면 구석에 작은 글씨로 「역주행 무대 — 오버턴」이 지나갔다. 리더는 화면을 보지 않았다. 간호사가 문을 열고 다음 분 들어오시라고 불렀다. 리더가 일어났다.
이십 분 뒤 진료실에서 나온 리더의 손에 종이 한 장이 들려 있었다. 꺾은선 두 줄이 그려진 청력 검사지였다. 리더는 종이를 접어 주머니에 넣으려다, 내 앞에 펴서 내밀었다.
“읽을 줄 알아?”
나는 종이를 받았다. 왼쪽 귀를 뜻하는 파란 선은 종이 아래쪽에 바짝 붙어 있었다. 오른쪽 귀를 뜻하는 빨간 선은 가운데 높이에서 시작해, 높은 소리 쪽으로 갈수록 아래로 꺾였다.
“오른쪽이 작년보다 내려갔대. 높은 소리부터. 더 내려가면 보청기 끼래.” 리더가 종이를 도로 접었다. “내 귀가 다 닫히기 전에 내 노래 하나는 나가야 돼.”
“그래서 대표님한테 곡 주셨어요?”
“응.”
“막내 솔로로요?”
“응.”
리더는 대답을 망설이지 않았다. 사흘 내내 생각한 사람은 대답이 짧다.
“니 목소리로 나가면 백 위 안에 들어가. 유통사가 미니까. 우리 다섯으로 나가면 또 백 위 밖이야. 그럼 내 노래는 아무도 못 들어. 나도 못 듣게 되고.” 리더가 대기실 의자 등받이에 머리를 기댔다. “투표 날 해체에 손 들게. 형들한테는 내가 말할게.”
“형, 리허설 투표 때 남는다에 찍었잖아요.”
“찍었지. 그날은 남고 싶었어. 오늘은 들리고 싶어.” 리더가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나를 봤다. “둘 다 거짓말 아니야.”
할머니가 진료실로 들어가면서 우리를 돌아봤다. 리더는 할머니가 들어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휴대전화를 꺼내 이어폰 한쪽을 내게 내밀었다.
“들어 볼래? 니가 부를 노래.”
*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대표실 벽 너머로 들었던 데모였다. 느리고, 여덟 마디째에서 반음이 내려갔다. 리더의 가이드 목소리가 들어왔다. 낮고 조용했고, 말끝을 흐리지 않았다.
비가 오는 골목에서 스피커가 꺼졌다는 노래였다. 노래하는 사람들 앞에 한 사람만 서 있었다는 노래였다. 우산도 없이 노란 우비 하나를 쓰고, 노래가 끝날 때까지 손바닥을 뒤집어 무대를 비추던 한 사람. 후렴에서 리더가 같은 말을 두 번 되풀이했다. 한 사람만 있어도 나는 부를 거야. 두 번째에는 말을 바꿨다. 한 사람이 있어서, 나는 부를 거야.
이어폰을 쥔 손이 떨렸다. 나는 한쪽 귀로 나를 들었다. 세 해 전 비 오는 골목의 나를. 스피커가 죽었을 때 집에 갈까 망설이던 나를. 골목에 남아 손바닥을 뒤집어 들던 나를.
“제목이 「한 사람」이야.” 리더가 말했다. “첫 버스킹 날, 우비 형 보고 썼어. 그 형한테 언젠가 들려주고 싶었는데. 요새 안 보이니까.”
나는 고개를 숙였다. 막내의 눈에서 물이 떨어져 청바지 무릎에 번졌다. 리더가 당황해서 휴지를 찾았다.
“야, 너 왜 울어?”
“노래가 좋아서요.”
“너 원래 내 노래 들으면 졸았잖아.”
“이제 안 졸아요.”
*
밤이 되자, 리더가 샤워하러 들어간 사이에 나는 거실에 셋을 모았다. 맏형, 메인보컬, 랩 담당. 화장실에서 물소리가 나는 동안 휴대전화로 「한 사람」 데모를 틀었다. 리더의 공유 폴더에 들어 있던 파일이었다. 비밀번호는 오버턴 데뷔일이었다. 리더의 비밀번호가 데뷔일이라는 것은 팬카페에 올라온 적도 없는데, 나는 첫 번째 시도에 맞혔다. 팬들은 다 그렇게 추측한다.
“이 노래 브리지를 「손전등」 브리지 자리에 넣고 싶어요. 음악 방송 무대에서요.”
맏형이 고개를 저었다.
“리더 몰래 하면 리더 노래 훔치는 거다.”
“리더 형 노래를 리더 형 없이 내보내는 게 훔치는 거예요. 막내 솔로로 나가면 리더 형은 무대 밑에 있어요. 리더 형 귀가 들리는 동안 리더 형이 자기 노래를 무대에서 부르게 하고 싶어요.”
“리더 귀가 왜?” 랩 담당이 물었다.
옥상에서 리더가 한 말을 셋은 들었다. 셋 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랩 담당은 묻고 나서 스스로 입을 막았다. 메인보컬이 손바닥을 쥐었다.
“브리지는 내가 할게. 「한 사람」 후렴은 키가 높아. 원래 키로 부를 수 있어.”
“나는 사투리로 받는다.” 랩 담당이 소매를 걷었다. “비 오는 골목 얘기잖아. 그날 내가 부산말로 랩했다. 그거 이어서 하면 된다.”
맏형은 한참 말이 없었다. 화장실 물소리가 그쳤다. 맏형이 일어나 화장실 문을 힐끔 보고 낮게 말했다.
“동작은 손전등을 뒤집는다. 무대에서 비추던 손을 객석 버전으로. 우비 형이 하던 손. 그러면 리더도 알 거다. 누구 노래인지.”
화장실 문이 열렸다. 리더가 수건으로 금발을 털며 나왔다. 넷이 동시에 휴대전화를 엎었다. 리더가 고개를 오른쪽으로 갸웃했다.
“뭐야. 왜 다들 조용해?”
“막내가 니 노래 듣고 울었다더라.” 맏형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우리도 들려 달라고 하던 참이다.”
리더는 잠깐 서 있다가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한 사람」을 처음부터 틀었다. 다섯이 거실 바닥에 둘러앉아 들었다. 노래가 후렴에 이르자 리더가 나를 봤다.
“막내야, 가이드 한 번만 불러 봐. 니 목소리로 들어 보고 싶어.”
나는 노래를 불렀다. 비 오는 골목, 꺼진 스피커, 노란 우비. 막내의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두 번째 후렴의 말이 바뀌는 자리에서 목이 잠겼다. 한 사람이 있어서, 나는 부를 거야. 잠긴 목으로 끝까지 불렀다.
리더는 오른쪽 귀를 내게 향한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노래가 끝나고도 한참 눈을 뜨지 않았다.
“이상하다. 니 목소리로 들으니까 우비 형 생각이 난다.” 리더가 눈을 떴다. “그 형이 부르는 것 같아.”
랩 담당이 기침을 했다. 맏형은 천장을 봤다. 메인보컬이 목캔디 통을 열어 하나를 내 손바닥에 올려 주었다.
*
꿈속 거울 안에서 원래 막내가 무릎을 끌어안고 있었다.
“리더 형 노래, 내가 부르면 돼. 그럼 끝나. 형들 빚 없이, 리더 형 노래도 나가고.”
“리더 형이 무대 밑에 있잖아.”
“리더 형이 그걸 골랐어.” 원래 막내가 나를 올려다봤다. “형이 지금 하는 거, 리더 형 노래를 리더 형한테서 뺏는 거야. 형이 좋아하는 무대로 만들려고.”
“…….”
“형은 늘 그래. 좋아하는 걸 위해서라면 남의 휴대전화도 열고, 남의 귀도 남한테 말하고.” 원래 막내가 거울에서 손을 뗐다. “그거 덕질 아니야. 그냥 형 욕심이야.”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거울 밖에서, 노란 우비 자락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졌다.
*
목요일 오후, 모성곤이 막내를 4층 대표실로 불렀다. 책상 위에 생방송 큐시트가 놓여 있었다. 오버턴 「손전등」 다음 칸에 「막내 솔로 — 한 사람(선공개)」이라고 인쇄되어 있었다.
“그룹 무대 끝나고 광고 하나 지나서 바로 니 차례다. 의상은 흰 셔츠 하나. 무대 가운데 의자 하나, 피아노 하나.” 모성곤이 큐시트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유통사가 이 자리 사느라 천을 썼다.”
“리더 형한테 이 무대 보여 주실 거예요? 형 노래를 형은 무대 밑에서 듣는 거요.”
“리더가 제 발로 왔다. 내가 끌고 온 거 아니다.” 모성곤이 큐시트를 접었다. “막내야. 니가 리더 귀를 아냐?”
나는 숨을 멈췄다.
“모르면 됐다. 리더가 요새 박자를 놓친다. 무대에서 놓치면 끝이다. 솔로 곡으로 노래만 남기는 게 리더한테도 낫다.” 모성곤이 의자에 등을 기댔다. “나는 노래가 남는 쪽을 고른다. 사람은 다 흩어져도 노래는 남아.”
모성곤은 리더의 귀를 몰랐다. 박자를 놓치는 것만 알았다. 모르면서도 맞는 답을 고르고 있었다. 나는 대표실을 나와 복도 의자에 앉았다. 문 아래 틈으로 모성곤이 계산기를 두드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톡, 톡, 톡. 내일 저녁이면 나는 이 계산을 리더의 노래로 깨뜨려야 했다.
*
같은 날 밤, 「손전등」은 52위였다. 상파울루의 팬들이 모여서 다 같이 스트리밍을 돌리는 영상을 올렸다. 화면 속 서른 명 남짓이 누군가의 거실 바닥에 앉아 노트북 하나를 들여다봤다. 맨 앞의 한 사람은 노란 비옷을 입고 있었다. 마닐라 계정이 상파울루 영상을 다시 올리며 한 줄을 붙였다. 「노란 우비가 쉬는 동안, 우리가 노란 우비가 됩니다」
금요일 아침 다섯 시, 상암동 방송국 앞에는 벌써 줄이 있었다. 대형 기획사 그룹 팬들의 줄이 건물을 반 바퀴 돌았다. 줄 맨 끝에 노란 우비를 입은 다섯 명이 서 있었다. 마닐라에서 비행기를 타고 온 사람들이었다.
오버턴의 대기실은 복도 맨 끝, 화장실 옆 창고를 비운 방이었다. 거울 하나에 의자 다섯 개, 옷걸이 하나. 옆방은 대형 기획사 그룹의 대기실이었다. 문틈으로 간식 탁자가 보였다. 과일 바구니와 샌드위치 탑, 이름 모를 초록 음료가 줄지어 있었다. 랩 담당이 문틈에 눈을 대고 침을 삼켰다.
“형, 저 초록 거 뭐고?”
“몰라. 건강에 좋은 거겠지.”
“우리도 건강해지고 싶다.”
실장이 편의점 봉지에서 바나나 다섯 개를 꺼내 하나씩 쥐여 주었다. 랩 담당이 바나나를 마이크처럼 들고 거울을 향해 말했다. “여기는 오버턴 대기실입니다. 저희는 바나나로 건강을 챙기고 있습니다.” 메인보컬이 웃다가 사레가 들렸고, 맏형이 등을 두드렸다. 리더도 웃었다. 리더가 소리 내어 웃는 것을 나는 이 몸으로 처음 들었다. 오른쪽 귀를 열어 둔 채, 왼쪽은 벽에 기대고 웃었다.
리허설 무대 옆에서 음향 감독이 인이어 수신기를 하나씩 나눠 주었다. 리더의 차례가 오기 전에 나는 음향 감독에게 다가갔다. 목소리를 낮췄다.
“감독님, 리더 형 인이어는 오른쪽만 크게 주세요. 왼쪽은 거의 안 들려요. 반주랑 제 신호는 오른쪽으로만요.”
음향 감독이 고개를 끄덕이며 콘솔 위 메모지에 적었다. 「리더 — 좌 청력 X, 우측만」 나는 숨을 내쉬었다. 이제 리더는 생방송에서 박자를 놓치지 않는다.
등 뒤에서 낮고 조용한 목소리가 들렸다. 말끝을 흐리지 않는 목소리였다.
“…방금 뭐라고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