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5,396자)

막내에게 전해

망한 아이돌 그룹 막내로 빙의했다 · 윤솔채

「⁠우비 형 보고⁠. 오전 일곱 시 기상⁠. 옥상 고추 물 줌⁠」

「⁠랩 담당⁠: 고추 몇 개 줬노⁠」

「⁠열두 개 다요⁠」

「⁠랩 담당⁠: 할매가 열한 개만 주라 했다 하나는 물 많이 먹으면 죽는다⁠」

「⁠어떤 거요⁠?⁠?⁠」

「⁠랩 담당⁠: 모른다 이미 늦었다⁠」

사흘 동안 감시방은 그렇게 돌아갔다⁠. 나는 하루 세 번 어디에 있는지 보고했고⁠, 넷은 하루 세 번 트집을 잡았다⁠. 맏형은 보고마다 「⁠밥⁠」이라고만 물었고⁠, 메인보컬은 목캔디 사진을 보냈다⁠. 리더는 사흘 동안 한 줄도 쓰지 않았다⁠. 대신 내 보고가 올라오면 읽음 표시 숫자가 제일 먼저 하나 줄었다⁠.

옥상에서는 날마다 「⁠한 사람⁠」을 맞췄다⁠. 다섯 목소리로 짠 판이었다⁠. 두 번째 후렴 앞 네 마디가 오면 넷은 노래를 멈추고 나를 봤고⁠, 나는 입을 다물었다⁠. 네 마디 동안 반주만 옥상을 돌았다⁠. 고추 모종 잎이 흔들리고⁠, 건너편 빌라 창문에서 할머니가 고개를 내밀었다가 아무도 안 부르니 도로 들어갔다⁠. 네 마디가 지나면 넷이 다시 들어왔다⁠. 네 마디는 내 자리가 아니었다⁠. 사흘 동안 아무도 나더러 채우라고 하지 않았다⁠.

숫자는 다시 올랐다⁠. 생방송 영상을 마닐라 계정이 세 가지 말로 자막 달아 돌렸고⁠, 자카르타와 상파울루가 이어받았다⁠. 부산의 라디오에서 랩 담당의 사투리 벌스를 틀었다⁠. 41위에서 27위로⁠, 27위에서 19위로⁠. 마닐라 쇼케이스 표 오백 장은 십 분 만에 다 팔렸다⁠. 마닐라 계정 고정 글 밑에 사진이 한 장 늘었다⁠. 매진 화면을 든 노란 우비들이 공항 같은 곳에서 손바닥을 뒤집어 들고 있었다⁠.

투표를 하루 앞둔 4월 21일 아침⁠, 실장이 감시방에 썼다⁠. 「⁠유통사 이사님 열 시에 4층 오심⁠. 다섯 다 대기⁠」

*

유통사 이사는 이번에는 정장 대신 트렌치코트를 입고 왔다⁠. 대표실 소파에 앉자마자 태블릿을 탁자에 올렸다⁠. 화면에 지도가 떠 있었다⁠. 마닐라⁠, 자카르타⁠, 상파울루⁠, 부산⁠. 도시마다 노란 점이 커다랗게 번져 있었다⁠.

“⁠해외 팀이 일주일 내내 이것만 봤어요⁠.⁠” 이사가 화면을 넘겼다⁠. “⁠솔로는 접을게요⁠. 대신 오버턴을 통째로 받고 싶어요⁠.⁠”

모성곤이 팔짱을 꼈다⁠. 나는 대표실 구석에 서 있었다⁠. 막내의 몸으로⁠, 막내가 서던 자리에⁠.

“⁠조건이 있어요⁠. 오버턴 유통이랑 해외 공연을 저희가 맡고⁠, 회사 빚이랑 멤버 정산은 저희 투자로 새로 짭니다⁠. 빚이 없어지는 건 아니에요⁠. 갚는 기간이 길어지고⁠, 이자가 줄어요⁠.⁠” 이사가 모성곤을 똑바로 봤다⁠. “⁠대신 모아엔터 지분 과반을 저희가 가져가요⁠. 대표님은 대표님으로 남으시되⁠, 결정은 저희랑 같이 하셔야 해요⁠.⁠”

모성곤이 웃었다⁠. 숨이 섞인 웃음이었다⁠.

“⁠회사를 달라는 거네⁠.⁠”

“⁠네⁠.⁠”

“⁠이 회사 내 아파트 잡혀서 세운 거요⁠.⁠”

“⁠알아요⁠. 그래서 아파트는 지켜 드린다는 거예요⁠.⁠”

모성곤이 의자에서 일어나 창가로 갔다⁠. 청담동 골목을 내려다보며 오래 말이 없었다⁠. 창유리에 모성곤의 검은 양복이 비쳤다⁠.

“⁠이사님⁠. 큰 회사 계산은 나보다 빨라요⁠. 거품 꺼지면 나보다 먼저 자르지⁠. 나는 애들 빚을 늘리기 전에 끝내려고 했어⁠. 이사님 회사는 애들 빚을 늘려 놓고 숫자가 내려가는 날 손을 떼겠지⁠.⁠” 모성곤이 돌아봤다⁠. “⁠그날 애들 곁에는 누가 있소⁠? 내가 회사를 넘기면 나는 그날 아무것도 못 해⁠.⁠”

이사가 대답하기 전에 대표실 문이 열렸다⁠. 복도에서 문틈으로 다 듣던 넷이었다⁠. 맏형이 먼저 들어왔고⁠, 셋이 뒤를 따랐다⁠.

“⁠대표님⁠. 저희 빚은 저희가 집니다⁠.⁠”

“⁠니들이 뭘로 갚아⁠?⁠”

“⁠노래로요⁠.⁠” 랩 담당이 말했다⁠. 사투리가 아니었다⁠. 카메라 앞에서 쓰는 서울말이었다⁠. “⁠서울말 반⁠, 사투리 반으로요⁠.⁠”

“⁠노래가 빚을 갚는 날까지 니들 나이가 몇이 될 것 같냐⁠?⁠”

“⁠서른다섯이요⁠.⁠” 맏형이 대답했다⁠. “⁠대표님이 그러셨잖아요⁠. 서른다섯에 아직 갚고 있는 빚이라고⁠. 갚을게요⁠. 서른다섯에도⁠. 그때도 다섯이 무대에 서 있으면⁠, 그건 빚이 아니라 월급이에요⁠.⁠”

모성곤이 맏형을 봤다⁠. 맏형의 주머니에는 입영 통지서가 아직 들어 있었다⁠.

리더가 이사 앞으로 걸어 나갔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지 않고⁠, 이사를 정면으로 봤다⁠.

“⁠이사님⁠. 제 왼쪽 귀 거의 안 들려요⁠. 오른쪽도 나빠지고 있어요⁠. 그것까지 알고 사세요⁠.⁠”

대표실이 조용해졌다⁠. 이사가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알아요⁠. 생방송 다시 봤어요⁠. 리더 씨 인이어 오른쪽만 들어가는 거⁠.⁠” 이사가 리더를 올려다봤다⁠. “⁠귀 아픈 리더가 끝까지 박자 안 놓친 무대예요⁠. 저희가 사려는 게 그거예요⁠.⁠”

모성곤은 계산기 앱을 켜지 않았다⁠. 대신 책상 서랍을 열어 휴대전화 하나를 꺼냈다⁠. 오래된 휴대전화였다⁠. 화면을 켜자 새해 문자가 줄지어 떴다⁠. 「⁠형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열다섯 줄이었다⁠.

“⁠하룻밤만 줘요⁠.⁠” 모성곤이 휴대전화를 닫았다⁠. “⁠투표 전에 답하겠소⁠.⁠”

*

밤 열 시⁠, 숙소 거실⁠. 리더가 휴대전화를 식탁 한가운데 놓고 녹음을 눌렀다⁠.

“⁠막내한테 한마디씩 해⁠. 우비 형이 들고 간대⁠. 꿈으로⁠.⁠”

“⁠이게 진짜 되나⁠?⁠” 랩 담당이 휴대전화를 내려다봤다⁠.

“⁠안 되면 막내 돌아와서 들으면 되지⁠.⁠” 메인보컬이 말했다⁠.

맏형이 먼저 휴대전화 앞으로 몸을 숙였다⁠.

“⁠막내야⁠. 형 6월에 군대 간다⁠. 그 전에 다섯이서 한 번만 더 서자⁠. 마닐라에서⁠. 니 다리는 형이 아침마다 풀어 줄게⁠.⁠”

메인보컬이 이어받았다⁠.

“⁠고음은 내가 할게⁠. 니 혼자 다 지지 마⁠. 그리고 리더 이어폰⁠, 니 서랍에 있는 거 알아⁠. 돌려주지 마⁠. 계속 빌려 가⁠.⁠”

랩 담당이 한참 망설이다가 사투리로 말했다⁠.

“⁠니 독하다⁠. 근데 우리도 독하다⁠. 니 혼자만 독한 줄 알았제⁠? 돌아와라⁠. 니 파트에서 부산 외쳐 줄게⁠.⁠”

마지막으로 리더가 휴대전화를 들어 오른쪽 귀 옆에 댔다⁠. 녹음 중인 화면을 귀에 대고⁠, 휴대전화에 대고 말했다⁠.

“⁠니 자리 비워 놨다⁠. 「⁠한 사람⁠」 두 번째 후렴 앞⁠. 네 마디⁠. 니가 와서 채워⁠.⁠”

리더가 녹음을 멈추고 휴대전화를 내게 내밀었다⁠.

“⁠전해⁠.⁠”

*

숙소를 나와 4층으로 갔다⁠. 사무실 불은 꺼져 있었고 대표실에만 불이 켜져 있었다⁠. 문 아래 틈으로 빛이 손가락 하나만큼 새어 나왔다⁠. 나는 노크를 두 번 했다⁠.

모성곤은 넥타이 없는 셔츠 차림으로 책상에 앉아 있었다⁠. 검은 양복 윗도리가 의자 등받이에 걸쳐져 있었다⁠. 책상 위에 빈 피로회복제 병 두 개와 오래된 휴대전화가 놓여 있었다⁠.

“⁠이 시간에 왜⁠.⁠”

나는 USB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돌려드리려고요⁠. 사십일 초에서 끊겨요⁠. 끝까지 못 들었어요⁠.⁠”

“⁠나는 끝까지 들었다⁠.⁠” 모성곤이 USB를 손가락으로 굴렸다⁠. “⁠형들 빚부터 털어 달라고⁠, 니 건 나중에 니가 벌어서 갚겠다고⁠. 마지막에 니가 그랬다⁠. 대표님도 형들 새해 문자 받으면 안 되잖아요⁠.⁠”

모성곤이 오래된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스물한 살짜리가 그 말을 했다⁠. 내가 그래서 받았어⁠.⁠”

“⁠대표님은 왜 그 문자에 답장 안 하세요⁠?⁠”

“⁠뭐라고 하냐⁠. 미안하다고⁠? 십오 년 동안 미안하다고 하면 걔 빚이 줄었냐⁠?⁠” 모성곤이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답장 대신 이 회사를 세웠다⁠. 이번에는 빚지기 전에 끝내려고⁠. 근데 이번에도 애들이 남는다고 하네⁠.⁠”

“⁠이번에는 대표님이 곁에 계시잖아요⁠.⁠”

모성곤이 나를 봤다⁠. 피곤한 눈이었다⁠. 콜센터에서 새벽 세 시에 전화를 거는 고객의 목소리 같은 눈이었다⁠.

“⁠막내야⁠. 너 요새 다른 사람 같다⁠.⁠”

“⁠내일은 원래대로 돌아가 있을 거예요⁠.⁠”

“⁠원래대로가 뭔데⁠?⁠”

“⁠막내요⁠.⁠”

모성곤은 대답하지 않았다⁠. 책상 서랍을 열어 USB를 넣고 닫았다⁠. 그리고 계산기 앱을 열어 숫자를 하나 눌렀다가⁠, 지웠다⁠. 나는 대표실 문을 닫고 나왔다⁠. 문 아래 틈으로 톡⁠, 톡⁠, 계산기 소리가 다시 새어 나왔다⁠. 아까보다 느렸다⁠.

*

밤 열한 시 반⁠, 병실⁠. 엄마는 보조 침대에 앉아 내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화면을 내밀었다⁠.

“⁠회사 분⁠, 이거 좀 보세요⁠. 회사에서 이런 게 왔어요⁠.⁠”

「⁠채이도 님의 계약이 4월 30일 자로 종료됨을 알려 드립니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회사 분이 같은 회사잖아요⁠. 왜 이런 걸 몰라요⁠?⁠”

“⁠…저도 오늘 알았어요⁠.⁠”

엄마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침대 위의 나를 봤다⁠. 슬로건이 링거 거치대에서 흔들렸다⁠.

“⁠깨면 뭐라고 하지⁠. 회사도 없어졌다고⁠.⁠”

나는 엄마의 손을 잡았다⁠. 귤껍질 냄새가 났다⁠.

“⁠어머니⁠. 이도 씨 내일 아침에 깰 거예요⁠.⁠”

“⁠회사 분이 어떻게 알아요⁠?⁠”

“⁠그냥요⁠. 그리고 내일 비 온대요⁠. 노란 우비 꼭 챙겨 두세요⁠. 이도 씨가 깨면 그거부터 찾을 거예요⁠.⁠”

엄마가 나를 오래 봤다⁠. 마스크 위의 눈을 봤다⁠. 무언가 알아챈 얼굴은 아니었다⁠. 그래도 고개를 끄덕였다⁠.

*

이어폰 두 짝을 귀에 꽂고 위 칸 침대에 누웠다⁠. 리더의 휴대전화에서 녹음이 되풀이되도록 걸어 두었다⁠. 맏형⁠, 메인보컬⁠, 랩 담당⁠, 리더⁠. 네 목소리가 막내의 두 귀로 들어왔다⁠.

꿈속 연습실은 불이 켜져 있었다⁠. 처음이었다⁠. 통유리 창 밖이 캄캄한데도 연습실 안은 낮처럼 밝았다⁠. 원래 막내가 거울 안에서 일어나 서 있었다⁠. 네 목소리가 연습실 천장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들었어⁠.⁠” 원래 막내가 먼저 말했다⁠.

“⁠응⁠.⁠”

“⁠형들이 빚 진대⁠. 서른다섯까지⁠.⁠” 원래 막내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내가 그거 안 시키려고 그랬는데⁠.⁠”

“⁠니가 혼자 안 져도 된대⁠.⁠”

“⁠형은 팬이잖아⁠.⁠” 원래 막내가 거울에 손바닥을 댔다⁠. “⁠형은 우리가 남는 게 좋잖아⁠. 그러니까 이렇게 된 거야⁠. 형이 원하는 대로⁠.⁠”

“⁠맞아⁠. 나는 남는 게 좋아⁠.⁠” 나는 거울에 손바닥을 마주 댔다⁠. 차가웠다⁠. “⁠근데 니 표는 니 거야⁠. 나는 니 자리를 돌려주러 왔어⁠. 니가 돌아가서 해체에 손을 들면⁠, 그것도 니 표야⁠.⁠”

원래 막내가 나를 오래 봤다⁠. 내 노란 우비를⁠, 젖은 소매를⁠, 마른 손을⁠.

“⁠형은 이제 어디로 가⁠?⁠”

“⁠맨 앞줄⁠. 원래 자리로⁠.⁠”

“⁠회사 잘렸다며⁠.⁠”

“⁠응⁠. 그래도 맨 앞줄은 안 잘려⁠.⁠”

“⁠리더 형 이어폰⁠.⁠” 원래 막내가 말했다⁠. “⁠돌려주지 말래⁠.⁠”

“⁠응⁠. 계속 빌려 가래⁠.⁠”

“⁠형들은 진짜⁠…⁠…⁠.⁠” 원래 막내가 말끝을 삼켰다⁠. 거울 안에서 왼쪽 귓불을 만졌다⁠. 비어 있는 귓불이었다⁠.

원래 막내가 웃었다⁠. 거울 안에서 처음 웃었다⁠. 웃는 얼굴은 내가 세 해 동안 바탕화면에 넣고 다닌 얼굴이었다⁠.

“⁠세 시에 비켜⁠.⁠”

“⁠응⁠.⁠”

*

눈을 떴다⁠. 새벽 두 시 오십 분이었다⁠. 이어폰에서 리더의 목소리가 끝나고 있었다⁠. 니가 와서 채워⁠.

나는 후드티 주머니에서 지퍼백을 꺼냈다⁠. 포스트잇을 떼어 손바닥에 접어 쥐고⁠, 은 고리 귀걸이 한 짝을 꺼냈다⁠. 막내의 왼쪽 귓불을 더듬었다⁠. 세 해 동안 비어 있던 구멍이 손끝에 닿았다⁠. 귀걸이를 끼우는 손이 떨렸다⁠. 두 번 미끄러졌고⁠, 세 번째에 들어갔다⁠.

양쪽 귀에 은 고리가 하나씩 달렸다⁠. 나는 막내의 두 귀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아래 칸에서 맏형이 이를 갈았고⁠, 옆 침대에서 랩 담당이 잠꼬대로 「⁠부산⁠」이라고 했다⁠.

머리맡 휴대전화 화면의 숫자가 바뀌었다⁠. 세 시였다⁠.

11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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