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498자)

손전등

망한 아이돌 그룹 막내로 빙의했다 · 윤솔채

삐⁠, 삐⁠, 삐⁠. 기계 소리에 눈을 떴다⁠. 환풍기 소리가 아니었다⁠. 머리맡에서 심박 측정기가 일정하게 울었고⁠, 창에 빗방울이 후두둑 부딪혔다⁠. 몸이 무거웠다⁠. 팔 하나를 들어 올리는 데 숨이 찼다⁠. 눈앞에 들어온 손은 마르고 손톱이 짧았다⁠. 키보드를 하루 열 시간 두드리던 손이었다⁠.

“⁠이도야⁠?⁠”

엄마가 보조 침대에서 튕기듯 일어났다⁠. 귤이 바닥으로 굴렀다⁠.

“⁠이도야⁠, 엄마 보여⁠? 엄마 들려⁠?⁠”

“⁠…들려⁠.⁠”

목에서 나온 목소리가 높고 갈라졌다⁠. 스물셋 채이도의 목소리였다⁠. 세 주 동안 막내의 낮고 맑은 목소리로 말했더니 내 목소리가 남의 것처럼 들렸다⁠. 엄마가 내 손을 붙잡고 울었다⁠. 간호사가 뛰어왔고⁠, 의사가 뒤따라왔다⁠. 의사는 손전등으로 내 눈을 비추고⁠, 손가락을 몇 개 펴 보이고⁠, 이름을 물었다⁠. 나는 다 대답했다⁠.

벽시계가 아홉 시 십 분을 가리켰다⁠.

“⁠엄마⁠. 나 청담동 가야 돼⁠.⁠”

“⁠뭐⁠?⁠”

“⁠열 시까지⁠. 우비 어딨어⁠?⁠”

엄마가 나를 봤다⁠. 링거 거치대에 묶인 슬로건을 봤다⁠. 「⁠손전등 켜 줄게⁠」 귀퉁이에 은빛 머리 회사 분이 해 준 사인⁠.

엄마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보조 침대 위에 개켜 둔 노란 우비를 펴서 내 어깨에 둘렀다⁠.

“⁠어젯밤에 회사 분이 그러더라⁠. 깨면 이거부터 찾을 거라고⁠.⁠”

의사는 안 된다고 했다⁠. 세 주를 누워 있던 사람이 걸어서 나갈 수는 없다고 했다⁠. 나는 침대 난간을 잡고 일어났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막내의 다리는 매일 아침 맏형이 풀어 주었는데⁠, 내 다리는 세 주 동안 아무도 풀어 주지 않았다⁠. 엄마가 휠체어를 끌어왔다⁠. 의사가 한숨을 쉬고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본인 요청에 의한 외출⁠」 두 시간이었다⁠.

병원 앞에서 택시를 잡았다⁠. 기사가 백미러로 나를 봤다⁠. 환자복⁠, 노란 우비⁠, 팔목의 병원 팔찌⁠, 옆에서 휠체어를 접는 엄마⁠.

“⁠오늘 무슨 행사 있어요⁠? 환자복에 우비는 처음 보네⁠.⁠”

“⁠네⁠. 투표가 있어요⁠.⁠”

“⁠선거날은 아닌데⁠.⁠”

“⁠저한테는 선거날이에요⁠.⁠”

기사가 웃으며 라디오 볼륨을 올렸다⁠. 디제이가 차트 소식을 전하고 다음 곡을 틀었다⁠. 피아노가 아니라 전자음 전주였다⁠. 여덟 박이 지나고 다섯 목소리가 들어왔다⁠. 「⁠손전등⁠」이었다⁠. 세 해 동안 지하철 사람들 틈에서 남의 이어폰으로 새어 나오기를 기다리던 노래가⁠, 택시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기사가 손가락으로 운전대를 톡톡 쳤다⁠. 엄마가 내 손등을 쓸었다⁠. 나는 창밖의 비를 보며 입속으로 응원법을 웅얼거렸다⁠.

*

열 시 십육 분⁠, 청담동 골목의 오 층 건물 앞에 택시가 멈췄다⁠. 비가 굵어져 있었다⁠. 엄마가 휠체어를 펴려는 것을 말리고⁠, 엄마 팔을 붙잡고 걸었다⁠. 엘리베이터가 4층에서 열렸다⁠. 경리 이모가 칸막이 너머에서 고개를 내밀었다가 그대로 굳었다⁠. 실장이 복도 의자에서 일어났다⁠. 손에 김밥 은박지를 쥐고 있었다⁠.

실장이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노란 우비에서 빗물이 떨어졌다⁠.

“⁠…우비 형⁠?⁠”

대표실 문은 닫혀 있었다⁠. 아래가 손가락 하나만큼 떠 있었다⁠. 나는 복도 의자에 앉았다⁠. 앉는 순간 다리에서 힘이 빠졌다⁠. 내 귀는 막내의 귀만큼 밝지 않았다⁠. 그래도 들렸다⁠. 콜센터에서 두 해 동안 수화기 너머 숨소리를 듣던 귀였다⁠.

모성곤의 목소리였다⁠.

“⁠투표 전에 내 답부터 한다⁠. 계산은 안 바뀌었다⁠. 이 회사에는 오인조를 끌고 갈 돈이 없다⁠. 어제도 없었고 오늘도 없다⁠.⁠” 종이가 넘어가는 소리가 났다⁠. “⁠그러니까 돈 있는 데로 회사를 넘긴다⁠. 지분 과반 유통사로⁠. 아파트는 지키고⁠, 니들 빚은 길게 나눈다⁠. 대표 자리는 남는다⁠. 결정은 이제 나 혼자 못 한다⁠. 그 대신 니들 숫자가 내려가는 날⁠, 이 방에는 내가 앉아 있다⁠.⁠”

볼펜 끝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길게 났다⁠. 서명 소리였다⁠.

대표실 문이 벌컥 열렸다⁠. 맏형이었다⁠. 화장실에 가려던 맏형이 복도 의자의 노란 우비를 보고 멈췄다⁠.

“⁠형⁠…⁠…⁠. 아니⁠. 우비⁠.⁠”

맏형이 문을 활짝 열었다⁠. 대표실 안의 넷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메인보컬⁠, 랩 담당⁠, 리더⁠. 그리고 창가에 서 있던 은빛 머리⁠. 두 귀에 작은 은 고리 귀걸이가 하나씩 달려 있었다⁠.

“⁠들어와요⁠.⁠” 맏형이 말했다⁠.

“⁠외부인은 안 된다⁠.⁠” 모성곤이 책상 뒤에서 말했다⁠.

“⁠팬은 외부인 아닙니다⁠.⁠” 랩 담당이 사투리 없이 또박또박 말했다⁠. “⁠대표님이 맨날 그러셨잖아요⁠. 팬 없으면 우리도 없다고⁠.⁠”

모성곤이 나를 봤다⁠. 환자복과 노란 우비와 휠체어 대신 붙잡은 엄마의 팔을⁠. 모성곤의 눈이 조금 좁아졌다가⁠, 커졌다⁠.

“⁠니가 걔냐⁠?⁠”

“⁠…네⁠?⁠”

“⁠삼 년 내내 맨 앞에 서 있던 노란 우비⁠. 비 오는 날 홍대에서 혼자 서 있던 놈⁠.⁠” 모성곤이 의자에 등을 기댔다⁠. “⁠팬 사인회 맨 뒤에서 내가 맨날 너 봤다⁠. 저놈 하나 때문에 내가 이 회사 못 접는다고 생각했어⁠.⁠”

엄마가 내 팔을 꼭 쥐었다⁠. 나는 대표실 안으로 들어갔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리더가 의자 하나를 밀어 주었다⁠. 오른쪽에 있던 의자였다⁠.

*

“⁠손 들어⁠.⁠” 모성곤이 말했다⁠. “⁠남을 사람⁠.⁠”

맏형이 먼저 손을 들었다⁠. 주머니에서 입영 통지서 봉투가 반쯤 삐져나왔다⁠. 6월에 맏형은 간다⁠. 입대 전에 마닐라가 있었다⁠. 메인보컬이 엄지손톱 자국이 남은 손바닥을 펴서 들었다⁠. 랩 담당이 두 손을 다 들었다가 맏형에게 한 손을 끌려 내렸다⁠. 리더가 손을 들었다⁠. 들고 나서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지 않고 정면을 봤다⁠.

넷이었다⁠. 대표실이 조용해졌다⁠. 다섯 번째 손이 남아 있었다⁠.

창가의 은빛 머리가 나를 봤다⁠. 원래 막내였다⁠. 꿈속 거울 안에서 세 주 동안 나를 보던 눈이었다⁠. 거울 밖에서 이 눈을 마주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솔로 할게요⁠.⁠”

넷의 숨소리가 멈췄다⁠. 모성곤의 손이 서류 위에서 멈췄다⁠.

“⁠형들 무대 안에서요⁠.⁠” 원래 막내가 말을 이었다⁠. “⁠「⁠한 사람⁠」 두 번째 후렴 앞⁠, 네 마디요⁠. 리더 형이 비워 놨대요⁠. 거기서 제가 혼자 부를게요⁠. 그게 제 솔로예요⁠. 유통사가 솔로 싱글 하나 내라고 하면⁠, 형들 곡 사이에 하나 넣어서 내고요⁠.⁠”

원래 막내가 손을 들었다⁠. 왼쪽 귀의 은 고리 귀걸이가 흔들렸다⁠.

“⁠남을게요⁠.⁠”

랩 담당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원래 막내를 끌어안았다⁠. 맏형이 둘을 한꺼번에 감쌌고⁠, 메인보컬이 맏형 등에 이마를 댔다⁠. 리더는 의자에 앉은 채 원래 막내의 손목을 잡았다⁠. 모성곤은 계산기 앱을 켰다⁠. 숫자를 누르지 않고 화면만 들여다보다가⁠, 앱을 껐다⁠.

원래 막내가 형들 팔 사이를 빠져나와 내 앞에 왔다⁠. 후드티 주머니에서 접힌 포스트잇을 꺼냈다⁠. 「⁠막내 거⁠. 돌려줄 것⁠」 내 글씨였다⁠.

“⁠돌려받았어요⁠.⁠” 원래 막내가 포스트잇을 내 손바닥에 올려 주었다⁠. “⁠고마워요⁠, 우비 형⁠.⁠”

“⁠형 아니래요⁠. 스물셋이래요⁠.⁠” 랩 담당이 뒤에서 소리쳤다⁠.

“⁠알아요⁠. 다 봤어요⁠.⁠” 원래 막내가 웃었다⁠. 꿈속 거울 안에서 처음 웃던 얼굴이었다⁠. “⁠그래도 우비 형이에요⁠.⁠”

모성곤이 서류를 덮으며 나를 불렀다⁠.

“⁠우비⁠. 니 회사 잘렸다며⁠. 실장이 그러더라⁠.⁠” 모성곤이 실장을 노려봤고⁠, 실장이 문가에서 어깨를 움츠렸다⁠. “⁠우리 회사에 팬 소통 담당 자리가 하나 빈다⁠. 월급은 적다⁠.⁠”

나는 손바닥의 포스트잇을 접었다⁠. 세 주 동안 무대 위에 서 봤다⁠. 조명이 얼마나 뜨거운지⁠, 인이어가 얼마나 조용한지⁠, 대표실 문 아래 틈으로 무엇이 새어 나오는지 알았다⁠. 그래도 내가 서고 싶은 자리는 하나였다⁠.

“⁠감사합니다⁠, 고객님⁠. 아니⁠, 대표님⁠.⁠” 나는 고개를 숙였다⁠. “⁠저는 맨 앞줄 할게요⁠.⁠”

모성곤이 코웃음을 쳤다⁠. 웃음에 숨이 섞이지 않았다⁠. 처음 듣는 웃음이었다⁠.

“⁠맨 앞줄은 월급이 없는데⁠.⁠”

“⁠알아요⁠. 삼 년 해 봤어요⁠.⁠”

다섯이 실장을 따라 옥상 연습을 하러 나가고⁠, 엄마가 경리 이모에게 붙들려 누룽지 그릇을 받아 드는 동안⁠, 나는 대표실 문가에서 잠깐 숨을 골랐다⁠. 모성곤은 책상 앞에 혼자 앉아 오래된 휴대전화를 열고 있었다⁠. 화면에 새해 문자 열다섯 줄이 떠 있었다⁠. 「⁠형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맨 아래 답장 칸에 모성곤이 엄지로 글자를 하나씩 눌렀다⁠. 문틈으로 화면이 보였다⁠.

「⁠잘 지내냐⁠. 우리 애들 노래 하나 들어 봐라⁠. 한 사람⁠」

모성곤은 보내기를 누르고 휴대전화를 엎었다⁠. 엎은 휴대전화 위에 손바닥을 얹은 채 한참 창밖의 비를 봤다⁠. 나는 소리 내지 않고 문가에서 물러났다⁠.

*

저녁 일곱 시⁠, 홍대 앞 골목에 비가 내렸다⁠.

오버턴 공식 계정에 숏폼 하나가 올라온 것은 다섯 시였다⁠. 「⁠오늘 일곱 시⁠. 처음 그 골목⁠」 두 시간 만에 골목이 찼다⁠. 노란 우비가 많았다⁠. 비행기를 하루 미룬 마닐라의 팬들이 맨 앞에 섰고⁠, 부산에서 올라왔다는 사람들이 사투리로 떠들었고⁠, 편의점 알바생이 일회용 우비를 한 아름 안고 나와 나눠 주었다⁠. 엄마는 우산을 들고 내 옆을 지켰다⁠. 나는 병원으로 돌아가는 대신 외출을 두 시간 더 얻었다⁠. 휠체어에 앉아 맨 앞줄에 있었다⁠.

맨 뒤 건물 처마 밑에 모성곤이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검은 양복 어깨가 젖고 있었다⁠. 우산은 없었다⁠.

노래를 시작하기 전에 리더가 골목을 가로질러 내 휠체어 앞에 왔다⁠. 쪼그려 앉아 내 눈높이에 얼굴을 맞췄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오른쪽 귀를 내게 내주었다⁠.

“⁠직접 들려주고 싶다고 했잖아⁠. 그 형한테⁠.⁠”

“⁠들었어요⁠. 이어폰 한쪽으로요⁠.⁠”

“⁠그건 막내 귀로 들은 거고⁠.⁠” 리더가 일어나며 내 우비 모자를 톡 쳤다⁠. “⁠오늘은 니 귀로 들어⁠.⁠”

다섯이 골목 한가운데로 나왔다⁠. 리더는 맨 왼쪽 끝이었다⁠. 넷이 모두 리더의 오른쪽에 줄을 맞췄다⁠. 실장이 앰프를 켰다⁠. 「⁠한 사람⁠」 피아노 전주가 흘렀다⁠. 여덟 마디째에서 반음이 내려가는 자리⁠, 앰프가 지직거리다 꺼졌다⁠. 빗물이었다⁠.

골목이 웅성거렸다⁠. 세 해 전에는 관객이 나 하나였다⁠. 오늘은 골목이 다 숨을 죽였다⁠.

다섯이 마이크 없이 노래를 시작했다⁠. 맏형의 낮은 화음이 밑을 깔고⁠, 메인보컬이 원래 키로 올라가고⁠, 랩 담당이 사투리로 비 오는 골목을 받았다⁠. 리더는 오른쪽 귀를 넷에게 열어 둔 채 정면을 보고 불렀다⁠. 두 번째 후렴 앞에서 넷이 입을 닫았다⁠. 네 마디⁠. 원래 막내가 혼자 불렀다⁠. 낮고 맑고⁠, 끝이 조금 갈라지는 목소리였다⁠. 세 주 동안 내 입에서 나오던 목소리였다⁠. 이제 막내의 입에서⁠, 막내의 노래로 나왔다⁠.

「⁠한 사람⁠」이 끝나자 랩 담당이 소리쳤다⁠.

“⁠한 곡 더⁠! 「⁠손전등⁠」⁠!⁠”

반주는 없었다⁠. 맏형이 손뼉으로 박자를 쳤다⁠. 전주 여덟 박이 지나갔다⁠. 나는 휠체어 위에서 숨을 들이켰다⁠. 세 해 동안 혼자 외치던 자리였다⁠.

“⁠오버턴⁠! 하나 둘 셋 넷 다섯⁠!⁠”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골목을 메운 목소리들 사이에 섞여서⁠, 어느 것이 내 것인지 가려낼 수 없었다⁠. 콜센터에서 두 해를 일하며 수천 사람의 숨소리를 하나씩 가려 듣던 귀가⁠, 처음으로 아무것도 가려내지 못했다⁠.

후렴에서 다섯이 손바닥을 뒤집어 들었다⁠. 객석 버전의 손전등이었다⁠. 골목의 노란 우비들이 같은 손을 들어 다섯을 비췄다⁠. 나도 손바닥을 들었다⁠. 엄마가 우산을 내 쪽으로 기울이다가⁠, 우산을 접고 손바닥을 들었다⁠.

노래가 끝났다⁠. 원래 막내가 나를 보고 꾸벅 고개를 숙였다⁠. 빗물이 은빛 머리에서 튀었다⁠. 양쪽 귀에서 은 고리 귀걸이 두 짝이 빗방울을 튕기며 흔들렸고⁠, 이번에는 하나도 떨어지지 않았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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