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506자)

할머니가 말했다

남편 옷에서 다른 개 냄새가 난다 · 윤새벽

목욕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나는 소파 밑으로 들어간다⁠. 토요일 아침⁠, 예리가 목욕이라고 했다⁠.

“⁠범돌⁠, 목욕하자⁠. 오늘은 꼭 해야 돼⁠.⁠”

나는 소파 밑 가장 깊은 데까지 기어들어 갔다⁠. 예리가 바닥에 엎드려 손을 넣었다⁠. 손이 닿지 않았다⁠. 경모가 소파 반대편으로 돌아와 손을 넣었다⁠. 경모의 손이 내 엉덩이에 닿았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경모는 손을 빼지 않았다⁠.

“⁠미안⁠. 오늘은 형도 안 물러나⁠.⁠”

두 사람이 소파를 들어 올렸다⁠. 소파 밑이 하늘이 되었다⁠. 나는 끌려 나왔다⁠. 욕실 문이 닫히고 물소리가 났다⁠. 나는 욕조 구석에 몸을 붙이고 네 다리를 뻣뻣하게 폈다⁠. 물에 젖으면 붉은 갈색 털이 몸에 달라붙어 나는 여우가 아니라 생쥐가 된다⁠. 크림색 가슴 털이 납작하게 눌린 내 모습을 예리가 보고 웃음을 참았다⁠. 경모는 내 앞다리를 붙들고 있다가 내가 몸을 터는 바람에 얼굴에 물을 다 맞았다⁠.

“⁠아⁠, 범돌⁠. 형 눈에 샴푸 들어갔어⁠.⁠”

나는 한 번 더 털었다⁠. 경모가 웃었다⁠. 경모가 웃는 소리를 들은 것은 오래간만이었다⁠. 예리도 웃었다⁠. 욕실 거울에 김이 서려 우리 셋이 흐릿하게 비쳤다⁠.

“⁠털 빠지는 거 조금이라도 줄여야 돼⁠. 애 기관지 약하잖아⁠.⁠”

예리가 드라이기를 켜며 말했다⁠. 드라이기 바람은 싫다⁠. 예리 손은 좋다⁠. 나는 예리 무릎에 엎드려 바람을 견뎠다⁠.

*

인지 신고를 한 지 열흘 뒤였다⁠. 시어머니는 손주를 한 번만 보게 해 달라고 했다⁠. 경모를 통해서였다⁠. 애 엄마는 처음에 안 된다고 했다⁠. 시어머니가 변호사 이름으로 편지를 보냈다⁠. 할머니도 손주를 만날 권리를 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는 편지였다⁠. 예리가 편지를 소리 내어 읽었고⁠, 경모가 골목 끝 집에 가서 애 엄마와 대문을 사이에 두고 오래 이야기했다⁠. 마당에서 삼십 분⁠, 경모가 옆에 있을 것⁠, 아이에게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을 것⁠. 애 엄마는 세 가지를 지키는 조건으로 허락했다⁠. 법원에 가는 것보다 마당이 낫다고 했다⁠.

경모는 이번에도 둘 다 지키려고 했다⁠. 엄마가 손주를 보고⁠,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애 엄마는 법원에 가지 않는 삼십 분⁠. 나는 경모가 삼십 분을 고르는 것을 거실에서 보았다⁠. 경모의 귀 뒤는 젖지 않았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경모가 믿는 것이었다⁠. 개들은 믿는 것과 맞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안다⁠. 사람들은 자주 잊는다⁠.

*

토요일 오후 두 시⁠, 골목 끝 집 마당⁠.

애 엄마는 늙은 개의 줄을 감나무에 묶어 두었다⁠. 시어머니가 오기 전에 미리 묶었다⁠. 늙은 개는 감나무 밑에 엎드려 대문만 보았다⁠. 나는 평상 다리에 묶였다⁠. 목욕한 털이 아직 보송보송했다⁠. 아이는 하늘색 마스크를 쓰고 평상 위에 앉아 다리를 흔들었다⁠. 오늘 누가 오는지 아이는 몰랐다⁠. 아저씨의 엄마가 온다고만 들었다⁠.

시어머니가 대문 안으로 들어왔다⁠. 머리 굳히는 약 냄새보다 단 냄새가 먼저 왔다⁠. 딸기와 생크림⁠. 시어머니 손에 케이크 상자와 커다란 장난감 상자가 들려 있었다⁠. 감나무 밑에서 늙은 개가 고개를 들었다⁠. 늘어진 귀가 뒤로 붙었다⁠. 목 안에서 소리가 났다⁠. 팔 년 묵은 소리였다⁠. 애 엄마가 감나무 쪽으로 가서 늙은 개의 머리를 눌러 주었다⁠.

“⁠할매⁠, 괜찮아⁠. 엎드려⁠.⁠”

시어머니는 평상 앞에 쪼그려 앉았다⁠. 아이와 눈높이를 맞췄다⁠. 목소리를 낮추고 부드럽게 했다⁠. 쇳소리가 거의 없었다⁠. 시어머니에게도 그런 목소리가 있었다⁠.

“⁠안녕⁠. 이거 너 주려고 사 왔어⁠. 로봇이야⁠. 변신도 한대⁠.⁠”

아이가 상자를 받아 들었다⁠. 마스크 위로 눈이 동그래졌다⁠. 시어머니가 손을 뻗어 아이의 앞머리를 손가락으로 쓸어 넘겼다⁠. 손놀림이 빨랐다⁠. 머리카락을 수만 번 만져 본 손이었다⁠.

“⁠머리가 눈을 찌르네⁠. 할머니가 다음에 예쁘게 잘라 줄게⁠. 할머니가 미용사야⁠.⁠”

“⁠할머니⁠?⁠”

아이가 되물었다⁠. 경모가 평상 옆에서 몸을 일으켰다⁠. 애 엄마가 감나무 밑에서 몸을 돌렸다⁠.

“⁠어머님⁠.⁠”

시어머니는 애 엄마를 보지 않았다⁠. 아이만 보았다⁠. 시어머니의 목덜미에서 땀이 났다⁠. 거짓말 땀이 아니었다⁠. 오래 참은 사람의 땀이었다⁠.

“⁠그래⁠. 내가 네 할머니야⁠. 그리고 이 아저씨가 네 아빠고⁠. 너희 아빠가 몰라서 못 왔어⁠. 이제는 알아⁠. 그러니까 이제 우리가 같이⁠…⁠.⁠”

“⁠어머님⁠!⁠”

애 엄마의 목소리가 마당을 갈랐다⁠. 아이가 로봇 상자를 무릎에 올려놓은 채 경모를 보았다⁠.

“⁠아저씨가 아빠야⁠?⁠”

경모는 대답하지 못했다⁠. 입이 열렸다 닫혔다⁠.

“⁠아빠는 멀리 일하러 갔다고 했잖아⁠. 엄마가 그랬잖아⁠. 아저씨는 할매 산책시키는 아저씨잖아⁠.⁠”

“⁠응⁠. 근데⁠…⁠.⁠”

경모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경모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하지 못했다⁠.

“⁠…아빠야⁠.⁠”

아이의 숨이 바뀌었다⁠. 좁은 관으로 바람이 들어가다 막히는 소리가 났다⁠. 쌕⁠, 쌕⁠. 로봇 상자가 평상에서 떨어졌다⁠. 아이가 평상에서 뛰어내려 감나무로 달렸다⁠. 늙은 개에게로⁠. 늙은 개의 목을 끌어안고 개 뒤로 몸을 숨겼다⁠.

시어머니가 따라갔다⁠.

“⁠아가⁠, 놀랐지⁠. 할머니가 미안해⁠. 할머니 집 가자⁠. 공기 좋은 데서 케이크 먹자⁠. 오늘은 할머니랑 자자⁠.⁠”

시어머니가 아이의 팔을 잡았다⁠. 놀란 아이를 달래려는 손이었는지 데려가려는 손이었는지 사람들은 끝까지 다투었다⁠. 나는 냄새를 맡았다⁠. 시어머니의 손에서 겁이 났다⁠. 팔 년 동안 쌓인 겁이었다⁠. 시어머니는 아이를 일으켜 대문 쪽으로 끌었다⁠. 대문 밖에 시어머니의 차가 시동을 켠 채 서 있었다⁠. 배기가스 냄새가 대문 틈으로 들어왔다⁠.

아이가 울었다⁠. 울음이 숨을 막았다⁠. 쌕쌕 소리가 끊어졌다 이어졌다⁠.

“⁠엄마⁠! 엄마아⁠!⁠”

늙은 개가 일어났다⁠. 뒷다리를 끌던 개가 일어났다⁠. 감나무에 묶인 줄이 팽팽해졌고⁠, 늙은 개는 머리를 한 번 뒤로 뺐다⁠. 가는 목에서 낡은 목줄이 빠졌다⁠. 늙은 개는 세 걸음 만에 시어머니에게 닿았다⁠.

물었다⁠. 아이를 붙든 시어머니의 손목이었다⁠.

짧았다⁠. 시어머니의 비명⁠, 아이의 손이 풀리는 소리⁠, 시멘트에 아이의 무릎이 닿는 소리⁠. 피 냄새가 마당에 퍼졌다⁠. 쇠 냄새였다⁠. 늙은 개는 아이가 풀려나자 곧바로 입을 벌렸다⁠. 더 물지 않았다⁠. 아이와 시어머니 사이에 서서 늘어진 귀를 머리에 붙이고 낮게 울었다⁠. 뒷다리가 떨렸다⁠.

나는 평상 다리에 묶인 채 짖었다⁠. 줄이 목을 조였다⁠. 짖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경모가 뛰어와 늙은 개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늙은 개는 경모의 손을 물지 않았다⁠. 경모 손에 목덜미를 맡기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애 엄마가 흡입기를 들고 아이에게 뛰어갔다⁠. 칙⁠. 하나⁠, 둘⁠, 셋⁠, 넷⁠. 칙⁠. 예리가 시어머니의 손목을 수건으로 눌렀다⁠. 수건이 금방 붉게 젖었다⁠. 시어머니의 얼굴이 하얬다⁠. 굳힌 머리가 처음으로 흐트러져 있었다⁠.

*

경찰차가 먼저 왔고 구급차가 다음에 왔다⁠. 구급대원이 시어머니의 손목을 감았다⁠. 꿰매야 한다고 했다⁠. 시어머니는 구급차에 오르기 전에 경찰관에게 말했다⁠. 목소리에 쇳소리가 돌아와 있었다⁠.

“⁠개가 사람을 물었어요⁠. 애 옆에서요⁠. 저런 개를 애 옆에 두면 안 돼요⁠. 신고할 거예요⁠. 처분해 달라고 할 거예요⁠.⁠”

한 시간 뒤에 구청 차가 왔다⁠. 작업복을 입은 사람 둘이 철망 상자를 들고 마당에 들어왔다⁠. 철망 상자에서 소독약과 다른 개들의 겁 냄새가 났다⁠. 한 사람이 서류를 들고 애 엄마에게 설명했다⁠. 사람을 문 개는 구청이 정한 동물병원에서 지내며 기질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평가가 끝날 때까지 집에 올 수 없다고 했다⁠. 피해자가 처분을 요청하면 평가 위원들이 처분 요청도 듣는다고 했다⁠.

“⁠처분이 뭐예요⁠?⁠”

애 엄마가 물었다⁠. 구청 사람은 대답하지 않고 서류를 내밀었다⁠.

늙은 개는 철망 상자 앞에서 버티지 않았다⁠. 뒷다리를 끌며 스스로 들어갔다⁠. 들어가기 전에 감나무를 한 번⁠, 미닫이문을 한 번 보았다⁠. 아이는 마루 위에서 애 엄마에게 안긴 채 늙은 개를 불렀다⁠.

“⁠할매⁠! 할매 가지 마⁠!⁠”

철망 상자가 구청 차에 실렸다⁠. 차 문이 닫히기 전에 나는 평상 다리에 묶인 줄을 끊을 듯이 당겼다⁠. 예리가 줄을 풀어 손에 쥐었다⁠. 나는 예리를 끌고 대문 밖으로 나가 구청 차 앞에 엉덩이를 박았다⁠. 앞발을 펴고⁠, 목을 빼고⁠, 온몸의 무게를 시멘트에 실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버티던 것과 같은 몸이었다⁠. 이번에는 아무도 웃지 않았다⁠.

“⁠범돌⁠, 비켜⁠. 비켜야 돼⁠.⁠”

예리가 나를 안아 올렸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구청 차가 골목을 빠져나갔다⁠. 차 뒤 창으로 늘어진 귀가 보였다⁠. 늙은 개는 짖지 않았다⁠. 늙은 개는 끝까지 소리를 아꼈다⁠.

경모가 마루 앞으로 갔다⁠. 아이가 애 엄마 품에서 고개를 돌려 경모를 보았다⁠. 마스크가 반쯤 벗겨져 있었다⁠. 아이 얼굴이 눈물과 콧물로 젖어 있었다⁠.

“⁠아저씨가 할머니 데려왔잖아⁠.⁠”

아이의 숨이 아직 고르지 않았다⁠. 한 마디마다 쌕 소리가 끼었다⁠.

“⁠아저씨가 데려와서 할매 갔잖아⁠. 아저씨 미워⁠. 아빠 아니야⁠. 아저씨는 아저씨야⁠.⁠”

경모가 무릎을 꿇었다⁠. 아침마다 현관에서 가슴줄을 들고 나에게 꿇던 무릎이었다⁠. 아이는 고개를 애 엄마 가슴에 묻었다⁠.

애 엄마가 경모를 내려다보았다⁠. 목소리가 갈라지지 않았다⁠. 갈라질 것도 남지 않은 목소리였다⁠.

“⁠다시는 오지 마요⁠. 할매 산책시킬 일도 없어요⁠.⁠”

애 엄마는 예리를 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예리에게 한 말이었다⁠. 미닫이문이 닫혔다⁠.

*

밤에 경모는 시어머니가 있는 병원에 갔다⁠. 예리와 나는 집에 있었다⁠. 예리는 거실 불을 켜지 않았다⁠. 나는 현관 매트 위에 엎드렸다⁠. 예리가 늦게 들어오는 밤에 눕는 자리였다⁠. 오늘은 예리가 집에 있는데도 현관 매트에 누웠다⁠.

새벽 두 시에 현관문이 열렸다⁠. 경모의 소매에서 병원 소독약 냄새와 시어머니의 피 냄새가 났다⁠. 피는 말라 있었다⁠. 예리가 어두운 거실 소파에서 일어났다⁠.

“⁠어머님은⁠?⁠”

“⁠열한 바늘 꿰맸어⁠. 내일 퇴원해⁠.⁠”

“⁠삼십 분이면 된다고 했잖아⁠. 아무 말도 안 한다고 했잖아⁠.⁠”

“⁠엄마가 그렇게 말할 줄 몰랐어⁠.⁠”

“⁠몰랐어⁠? 자기 엄마가 팔 년 동안 뭘 했는지 다 알고 나서도⁠?⁠”

경모는 신발을 벗지 않고 현관에 서 있었다⁠. 나는 매트 위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경모가 나를 넘어 들어오려면 나를 밟거나 비켜 달라고 해야 했다⁠. 경모는 둘 다 하지 않았다⁠.

“⁠엄마가 진술서 쓴대⁠. 그 개 처분해 달라고⁠. 안락사⁠. 변호사가 벌써 써 왔어⁠.⁠”

“⁠막을 거야⁠?⁠”

“⁠막을게⁠.⁠”

“⁠어떻게⁠?⁠”

경모는 대답하지 못했다⁠. 경모의 귀 뒤는 젖지 않았다⁠. 대답이 없으면 거짓말도 없다⁠. 예리가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경모는 현관에 쪼그려 앉아 내 등을 내려다보았다⁠. 손을 뻗지 않았다⁠. 나는 경모의 구두 끝에 묻은 마당 흙 냄새를 맡았다⁠. 늙은 개의 피는 묻어 있지 않았다⁠. 늙은 개는 피를 흘리지 않았다⁠. 피를 흘린 것은 시어머니였는데⁠, 갇힌 것은 늙은 개였다⁠.

일요일 아침⁠, 나는 산책길을 정했다⁠. 예리가 줄을 당기지 않았다⁠. 골목 끝 파란 대문은 닫혀 있었다⁠. 대문 아래 틈에 코를 댔다⁠. 따뜻하고 느린 숨이 없었다⁠. 연고 냄새와 오래 누운 털 냄새만 문 안쪽 시멘트에 식어 있었다⁠.

문 뒤에 눕는 개가 없었다⁠. 나는 문 앞에 누웠다⁠. 대문 철판에 등을 붙이고⁠, 턱을 앞발에 얹고⁠, 골목 입구를 향해⁠. 예리가 내 옆에 쪼그려 앉아 오래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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