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416자)

하얀 봉투

남편 옷에서 다른 개 냄새가 난다 · 윤새벽

금요일 아침⁠, 경모는 회사에 전화를 걸어 하루 쉬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현관에 서서 예리에게 말했다⁠.

“⁠나 혼자 갈게⁠. 엄마랑 내가 정리할게⁠.⁠”

“⁠정리⁠.⁠”

예리가 경모의 말을 따라 했다⁠. 그러고는 내 가슴줄을 채우고 줄 손잡이를 경모에게 내밀었다⁠.

“⁠같이 가⁠. 자기가 범돌 잡아⁠.⁠”

“⁠지금⁠? 지금 이걸 나보고 하라고⁠?⁠”

“⁠오늘은 자기가 아무것도 숨기지 말고 다 들고 가⁠.⁠”

경모가 손잡이를 받았다⁠. 나는 현관 문턱에 엉덩이를 내렸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한 번⁠, 1층 현관 앞에서 한 번⁠, 후문 경비실 앞에서 또 한 번 버텼다⁠. 경모가 줄을 당기면 나는 목을 뒤로 빼고 앞발을 버텼다⁠. 경모가 쪼그려 앉아 사정하면 고개를 돌렸고⁠, 경모가 나를 안으려 하면 비명을 질렀다⁠. 경비 아저씨가 경비실 창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여우가 오늘은 아빠를 끌고 가네⁠.⁠”

“⁠제가 끌려가는 거예요⁠, 아저씨⁠.⁠”

“⁠그러니까⁠. 개가 아빠를 데리고 다니잖아⁠.⁠”

경비 아저씨는 웃었고 예리는 웃지 않았다⁠. 예리는 앞서 걸으며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예리의 등을 보며 걸었다⁠. 예리 걸음보다 빨리 걷지 않았고⁠, 경모 걸음에 맞춰 주지도 않았다⁠. 경모의 등이 젖었다⁠. 거짓말할 때 나는 귀 뒤의 땀이 아니라 힘쓸 때 나는 등의 땀이었다⁠. 경모에게서 힘쓰는 땀 냄새가 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큰길 신호등 앞에서 경모가 숨을 몰아쉬었다⁠.

“⁠범돌⁠. 너 이러다 우리 엄마보다 늦게 도착해⁠.⁠”

나는 신호등 기둥에 다리를 들었다⁠. 늦을수록 좋은 일도 있다⁠. 사람들이 먼저 할 말을 다 하고 나면 개는 냄새로 나머지를 읽는다⁠.

*

골목 입구에서 바람의 냄새가 바뀌었다⁠.

코 안쪽이 따끔했다⁠. 머리카락을 마는 약과 머리를 굳히는 분무약⁠, 맨 밑에 쇳소리 섞인 목소리와 같은 결의 땀⁠. 시어머니였다⁠. 시어머니는 파주에서 미용실을 한다고 예리가 말했다⁠. 미용실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냄새는 이제 안다⁠. 나는 재채기를 세 번 했다⁠.

파란 대문 앞에 시어머니가 있었다⁠. 짧게 자른 머리가 단단하게 굳어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손에는 하얀 봉투가 들려 있었다⁠. 은행 창구에서 갓 나온 종이돈 냄새가 봉투 밖까지 났다⁠. 대문은 반쯤 열려 있었고⁠, 애 엄마가 문 안쪽에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시어머니의 말이 골목을 타고 우리 쪽까지 왔다⁠.

“⁠받아⁠. 이걸로 애 데리고 전주 친정으로 내려가⁠. 경모는 결혼했어⁠. 남의 집 귀한 딸이랑⁠.⁠”

“⁠어머님⁠.⁠”

“⁠어머님 소리 하지 마⁠. 너한테 그런 소리 들을 사이 아니다⁠.⁠”

대문 안에서 늘어진 귀가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늙은 개가 뒷다리를 끌며 대문 앞까지 나왔다⁠. 그러다 시어머니의 신발 앞에서 멈췄다⁠. 늘어진 귀가 머리 뒤로 바짝 붙었다⁠. 입술이 들렸고⁠, 목 안에서 낮은 울음이 올라왔다⁠. 어젯밤 골목에서 나를 막아설 때 늙은 개는 이빨만 보였다⁠. 소리는 내지 않았다⁠. 시어머니 앞에서는 소리를 냈다⁠. 오래 묵혀 둔 소리였다⁠.

시어머니가 한 걸음 물러났다⁠.

“⁠저 개가 아직 살아 있네⁠.⁠”

나는 귀를 세웠다⁠. 처음 보는 개에게 아직이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

예리가 대문 앞에 닿았다⁠. 경모와 나는 세 걸음 늦게 닿았다⁠. 시어머니가 돌아보았다⁠. 예리를 보았고⁠, 경모를 보았고⁠, 마지막으로 경모 손에 들린 내 줄을 보았다⁠.

“⁠너는 왜 왔니⁠. 경모야⁠, 너는 얘를 왜 데려와⁠.⁠”

“⁠어머님⁠, 알고 계셨네요⁠.⁠”

예리가 말했다⁠. 시어머니는 봉투를 쥔 손을 등 뒤로 돌렸다⁠.

“⁠이 년 전에 경모가 말해서 알았다⁠. 너한테 미리 말 못 한 건 내가 미안하다⁠. 그래서 오늘 정리하러 왔어⁠. 너희 결혼에 흠 안 가게⁠.⁠”

머리 굳히는 약 냄새는 짙었다⁠. 짙어도 땀을 다 덮지는 못했다⁠. 시어머니의 목덜미 밑⁠, 옷깃 안쪽에서 시큼한 냄새가 올라왔다⁠. 경모의 귀 뒤에서 나던 것과 같은 결이었다⁠. 무리는 냄새를 닮는다⁠. 거짓말 냄새까지 닮는다⁠.

예리에게 알려 줄 방법이 없었다⁠. 나는 개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시어머니가 대문 옆 담장 턱에 내려놓은 가방으로 가서 가방 위에 털썩 앉았다⁠. 가방에서 김밥과 박하사탕 냄새가 났다⁠. 앉기에 좋은 가방이었다⁠.

“⁠아니⁠, 이 여우 새끼가 남의 가방을⁠!⁠”

“⁠범돌⁠, 내려와⁠. 엄마 가방이야⁠.⁠”

경모가 줄을 당겼다⁠. 나는 가방 위에서 브레이크를 걸었다⁠. 앞발을 쭉 펴고 엉덩이를 가방 한가운데 박았다⁠. 가방이 내 무게에 찌그러졌다⁠. 대문 안에서 애 엄마가 고개를 돌리고 웃음을 삼켰다⁠. 시어머니가 손을 휘저었다⁠.

“⁠치워⁠! 그 털⁠, 그 털 묻는다⁠!⁠”

나는 일부러 몸을 한 번 털었다⁠. 털갈이 철의 붉은 갈색 털이 가방 위로 눈처럼 내려앉았다⁠. 시어머니가 비명을 질렀다⁠. 내 비명보다 낮았다⁠.

*

“⁠이 년 전이요⁠?⁠”

애 엄마가 팔짱을 풀었다⁠. 목소리가 낮았다⁠. 새벽 일을 하고 온 사람의 목소리였는데⁠, 오늘은 갈라지지 않았다⁠.

“⁠어머님⁠, 팔 년 전 시월에도 이 대문 앞에 오셨잖아요⁠. 그때도 하얀 봉투였어요⁠. 삼백만 원이었고요⁠.⁠”

골목이 조용해졌다⁠. 감나무 잎 하나가 담장 밑으로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렸다⁠. 경모의 손에서 내 줄이 느슨해졌다⁠.

“⁠…엄마⁠?⁠”

시어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애 엄마가 경모를 보지 않고 시어머니만 보며 말을 이었다⁠.

“⁠애 생긴 거 알고 경모 씨한테 전화했어요⁠. 번호가 바뀌어 있었어요⁠. 파주 미용실로 찾아갔더니 다음 날 어머님이 여기 오셨어요⁠. 경모가 다 안다고 하셨어요⁠. 경모가 지우길 원한다고⁠. 다시는 연락 안 할 거라고⁠. 봉투를 대문 안에 던지고 가실 때 할매가 어머님 바짓단을 물었어요⁠. 기억나세요⁠?⁠”

늙은 개가 시어머니 앞에서 다시 낮게 울었다⁠. 시어머니가 바짓단을 손으로 쥐었다⁠. 오래전에 물린 자리를 쥐는 손이었다⁠.

“⁠봉투는 그때도 돌려 드렸어요⁠. 우체국 등기로요⁠.⁠”

경모가 시어머니 앞으로 갔다⁠. 내 줄을 끌고 갔고⁠, 나는 가방에서 내려와 따라갔다⁠. 경모의 몸에서 냄새가 하나도 나지 않았다⁠. 땀이 멈춘 몸이었다⁠. 사람이 너무 놀라면 땀도 멈춘다⁠.

“⁠번호 바꾸라고 한 거⁠, 엄마였지⁠. 빚쟁이들 전화 온다고⁠. 엄마가 새 전화기 사 줬잖아⁠. 그해 가을에⁠.⁠”

“⁠경모야⁠.⁠”

“⁠나는 몰랐어⁠. 예리야⁠, 나는 진짜 몰랐어⁠. 헤어지고 나서 애가 생긴 줄도 몰랐고⁠, 엄마가 여기 온 줄도 몰랐어⁠.⁠”

경모의 귀 뒤는 조용했다⁠. 나는 예리를 보았다⁠. 예리는 경모의 귀를 볼 수 없다⁠. 예리는 경모의 얼굴을 보았다⁠. 예리의 숨이 길게 한 번 나왔다⁠.

시어머니가 봉투를 쥔 손을 내렸다⁠. 굳힌 머리는 그대로였는데 목소리가 흔들렸다⁠.

“⁠너 그때 스물여섯이었어⁠. 빚이 천만 원이 넘었어⁠. 나는 스무 살에 너를 낳았고⁠, 네 아버지는 너 돌도 되기 전에 나갔어⁠. 나는 남의 머리 감기면서 너를 미용실 의자 밑에 재웠다⁠. 손님들 머리카락 떨어지는 바닥에⁠. 너도 그렇게 살래⁠? 저 애도 그렇게 키울래⁠? 나는 너를 지켰어⁠.⁠”

“⁠저는 그렇게 키웠어요⁠.⁠”

애 엄마가 말했다⁠.

“⁠어머님 아들 애를요⁠. 빵 공장 탈의실 의자 밑에서요⁠. 혼자요⁠. 할매랑요⁠.⁠”

시어머니가 입을 다물었다⁠. 예리가 시어머니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결혼식 날 어머님이 저한테 그러셨어요⁠. 우리 집엔 비밀 같은 거 없다고⁠.⁠”

“⁠없었다⁠.⁠”

시어머니가 예리를 보았다⁠. 눈 밑 살이 떨리지 않았다⁠.

“⁠있던 건 내가 다 치웠으니까⁠.⁠”

*

경모의 무릎이 꺾였다⁠. 경모는 대문 앞 시멘트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두 손이 무릎 사이로 떨어졌다⁠. 내 줄 손잡이가 경모의 손에서 빠져 바닥에 끌렸다⁠. 나는 도망가지 않았다⁠. 도망갈 데가 없었다⁠. 내 무리의 무리원이 무너졌는데 개가 어디로 가겠는가⁠.

늙은 개가 움직였다⁠. 시어머니 앞에서 울음을 그치고⁠, 뒷다리를 끌며 경모에게 왔다⁠. 경모의 옆에 서서 몸 한쪽을 경모의 다리에 기댔다⁠. 늙은 개의 온 무게였다⁠. 경모의 바지 무릎에 흰빛 도는 회색 털이 묻었다⁠. 금요일 밤 외투 무릎에 붙어 있던 털과 같은 털이었다⁠. 이제야 알았다⁠. 늙은 개는 밤마다 이렇게 경모에게 기댔다⁠.

늙은 개는 누가 봉투를 던졌는지 안다⁠. 누가 던지지 않았는지도 안다⁠. 팔 년 전에 누구를 물었고 오늘 누구에게 기대는지⁠, 늙은 개의 몸이 다 말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늙은 개의 몸을 하나도 못 읽었다⁠. 나는 읽었다⁠.

나는 경모의 다른 쪽 다리로 갔다⁠. 기대지는 않았다⁠. 경모의 운동화 끝에 앉았을 뿐이다⁠. 늙은 개가 경모 너머로 나를 보았다⁠. 늘어진 귀가 한 번 흔들렸다⁠.

시어머니가 담장 턱의 가방을 집어 들었다⁠. 내 털을 손바닥으로 털어 냈다⁠. 털을 다 털지 못한 채 가방을 어깨에 메고⁠, 하얀 봉투를 가방 안에 도로 넣었다⁠.

“⁠오늘은 간다⁠. 하나만 알아 둬라⁠. 저 애는 서씨 집 핏줄이야⁠. 이제부터는 내가 책임진다⁠. 요즘은 법이 바뀌어서 할머니도 손주 볼 권리가 있어⁠. 변호사가 그러더라⁠.⁠”

시어머니가 골목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굳힌 머리는 끝까지 흔들리지 않았다⁠. 애 엄마가 대문을 붙잡았다⁠. 손가락 마디가 하얬다⁠. 예리는 경모를 내려다보았다⁠. 경모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늙은 개가 경모에게서 몸을 떼고 대문 앞으로 갔다⁠. 시어머니가 서 있던 자리⁠, 머리 굳히는 약 냄새가 아직 시멘트에 고여 있는 자리였다⁠. 늙은 개는 거기에 쪼그려 앉아 오줌을 누었다⁠. 약 냄새 위로 늙은 개의 냄새가 천천히 퍼졌다⁠.

나는 꼬리를 흔들었다⁠. 처음이었다⁠. 늙은 개가 무언가를 덮는 것을 보고 꼬리를 흔든 것은⁠.

*

애 엄마는 아이가 올 시간이라며 대문을 닫았다⁠. 닫기 전에 경모에게 한마디만 했다⁠.

“⁠오늘 밤엔 오지 마요⁠. 할매 산책은 내가 시킬게요⁠.⁠”

돌아오는 길에 경모는 줄을 잡지 못했다⁠. 예리가 잡았다⁠. 편의점 앞에서 경모가 걸음을 멈추고 연석에 주저앉았다⁠. 나는 브레이크를 걸지 않았다⁠. 핫바 냄새가 났지만 오늘은 내가 멈출 차례가 아니었다⁠.

예리가 편의점에 들어갔다가 봉지를 들고 나왔다⁠. 핫바가 셋이었다⁠. 하나를 잘게 잘라 내 입에 넣어 주었고⁠, 하나를 껍질째 들었고⁠, 남은 하나를 경모 앞에 내밀었다⁠. 경모가 핫바를 올려다보았다⁠. 받지 못하고 한참 보기만 했다⁠.

“⁠먹어⁠. 아침도 안 먹었잖아⁠.⁠”

경모가 받았다⁠. 껍질을 벗기는 손이 떨려서 비닐이 잘 벗겨지지 않았다⁠. 예리는 경모 옆에 앉지 않고 선 채로 자기 핫바를 먹었다⁠. 나는 둘 사이에 앉았다⁠. 우두머리가 무리원에게 다시 밥을 나눠 주었다⁠. 안방 문이 열린 것은 아니다⁠. 문 앞까지는 온 것이다⁠. 나는 경모의 핫바 끝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핥아 먹었다⁠. 경모가 핫바 한 조각을 떼어 내 앞에 내려놓았다⁠. 나는 먹었다⁠. 받는 것은 받는 것이다⁠.

경모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경모는 화면을 보고 예리에게 내밀었다⁠. 예리가 소리 내어 읽었다⁠.

“⁠「⁠변호사 만나고 간다⁠. 너는 가만있어라⁠.⁠」⁠”

예리가 전화기를 경모에게 돌려주었다⁠. 경모는 답을 보내지 않았다⁠. 대신 전화기를 뒤집어 연석 위에 놓았다⁠. 어제 애 엄마가 평상 위에 전화기를 뒤집어 놓던 손과 같은 손짓이었다⁠. 전화기는 뒤집힌 채로 두 번 더 떨었다⁠. 경모는 핫바를 끝까지 먹었고⁠, 예리는 핫바 막대를 쓰레기통에 넣으며 경모의 막대도 받아 같이 넣었다⁠. 나는 두 막대를 한꺼번에 쥔 예리의 손을 오래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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