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811자)
다른 집 냄새
남편 옷에서 다른 개 냄새가 난다 · 윤새벽
아침마다 경모는 빨간 가슴줄을 들고 현관 바닥에 무릎을 꿇는다. 봄에 결혼식을 올리고 이 집에 들어온 뒤로 다섯 달째다. 예리가 가슴줄을 들면 산책이고, 경모가 들면 싸움이다. 경모는 둘이 다르다는 것을 아직 모른다.
“범돌, 오늘은 형이랑 가 보자. 응? 형이 호수공원 끝까지 데려가 줄게.”
경모가 무릎으로 한 걸음 다가오며 닭가슴살 육포를 내밀었다. 나는 육포를 받았다. 받는 것과 채워지는 것은 다른 일이다. 가슴줄 고리가 앞다리 사이로 들어오는 순간 나는 목구멍 끝까지 소리를 끌어올렸다. 아래층 노인이 경비실에 전화를 걸게 만드는 소리다. 경모가 고리를 떨어뜨리고 두 손을 들었다. 경모의 검은 바지 무릎에 내 털이 한 줌 묻어 있었다. 등에서 빠진 붉은 갈색 털과 볼과 가슴에서 빠진 크림색 솜털이 반반이었다. 가을 털갈이 철이라 나는 걸을 때마다 털을 뿌린다.
“알았어, 알았어. 안 해. 아무도 안 죽였어.”
“또 졌어?”
예리가 칫솔을 문 채 욕실에서 나왔다. 박하 치약과 어젯밤 감은 머리의 샴푸 냄새가 같이 왔다. 예리 냄새는 내가 태어나 석 달 되던 날부터 맡은 냄새다. 예리가 웃으며 가슴줄을 주워 들자 나는 예리 앞으로 가서 등을 내밀었다. 고리가 딸깍딸깍 두 번 잠겼고, 나는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세모난 귀를 앞으로 세우고, 등 위에 말아 올린 꼬리를 한 번 흔들었다. 현관 거울 속에서 주둥이와 네 발이 크림색인 여우 같은 개가 갈색 눈을 반짝이며 같이 꼬리를 흔들었다. 거울 속 개에게서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아서 나는 거울을 믿지 않는다.
“이것 봐. 얘는 사람 가려.”
“나도 사람이야.”
“범돌한테는 아직 아닌가 봐.”
정확한 말이다. 이 집의 맨 위는 예리이고, 예리 다음이 나다. 경모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다섯 달 동안 시험은 해 봤다. 경모의 양말을 물어다 내 방석 밑에 묻었더니 경모는 맨발로 구두를 신고 출근했다. 경모의 베개에 먼저 누웠더니 경모는 침대 끝에 새우처럼 몸을 말고 잤다. 그런 무리원은 아래다. 그런데 밤이 되면 안방 문이 닫히고, 문 너머로 예리의 웃음과 낮은 숨소리가 섞여 나오고, 나는 거실 방석에서 혼자 잔다. 문 안으로 들어가는 무리원이 문 밖에 남는 무리원보다 아래일 수는 없다. 그래서 정하지 못했다.
사람 말을 나는 다 알아듣지 못한다. 뜻으로 아는 소리는 산책, 간식, 안 돼, 목욕, 집, 가자, 그리고 내 이름이다. 앉아와 손도 알지만 할지 말지는 내가 정한다. 나머지는 소리째로 귀에 담아 두었다가 같은 소리가 같은 냄새와 함께 여러 번 오면 뜻을 맞춘다. 개끼리는 말이 필요 없다. 전봇대에 남긴 오줌 한 줄기가 누가 언제 지나갔고 몸이 어떤지 다 알려 주고, 꼬리 높이와 눈을 돌리는 각도와 목 안쪽의 그르렁이 나머지를 맡는다. 사람은 이걸 하나도 못 읽는다. 사람은 코를 땅에 대지 않는다.
*
금요일 밤, 경모는 열 시가 넘어서 들어왔다. 현관문이 열리기 전에 엘리베이터에서 냄새가 먼저 왔다. 경모 냄새의 밑바닥은 골판지와 지게차 기름이다. 물류센터라는 곳에서 하루를 보내고 오면 늘 그렇다. 오늘은 밑바닥 위에 다른 것이 얹혀 있었다.
라벤더였다. 우리 집 섬유유연제가 아니다. 예리는 내 코 상한다고 향 없는 세제만 쓴다. 라벤더 밑에는 버터와 부푼 밀가루 반죽 냄새가 깔려 있었고, 맨 아래에 늙은 개가 있었다. 암컷이고, 잇몸이 약하고, 뒷다리 관절에 연고를 바르는 개였다. 경모의 바지 무릎에 털이 한 올 붙어 있었다. 흰빛이 도는 회색에 굵고 끝이 갈라진 털이었다. 무릎에 개털이 붙는 까닭은 하나뿐이다. 개가 무릎에 몸을 기댔다.
작은 사람 냄새도 있었다. 딸기 치약과 크레파스, 땀에 젖었다가 마른 머리카락. 어른 손이 잡는 높이보다 훨씬 낮은 소매 끝에서 났다.
나는 경모의 다리 사이를 세 바퀴 돌며 냄새를 갈랐다. 경모는 내가 반가워서 그러는 줄 알고 허리를 굽혔다.
“우리 범돌, 형 기다렸어?”
기다리지 않았다. 냄새를 읽었다. 무리원 하나가 밤마다 다른 집 냄새를 몸에 묻혀 오면 개들 사이에서 뜻은 하나다. 거기에도 무리가 있다. 늙은 개와 작은 사람과 빵 굽는 여자를 거느린 무리. 경모는 우리 무리의 아래로 들어온 무리원이 아니었다. 다른 무리의 우두머리가 우리 무리까지 거느리러 왔다.
경모가 외투를 벗어 현관 옷걸이에 걸었다. 나는 외투 주머니에 코를 박았다. 연어와 닭 연골, 바다 조개 가루. 동물병원 진열대에서 맡아 본 늙은 개들의 관절 간식이다. 나는 다섯 살이고 무릎이 멀쩡해서 한 번도 얻어먹은 적이 없다. 주머니 안쪽에는 쓴 약 냄새가 나는 작은 플라스틱 통도 하나 들어 있었다. 사람 약이었다. 경모는 아픈 데가 없다. 주머니 입구를 물고 머리를 흔들자 비닐봉지가 툭 떨어졌다.
“범돌! 안 돼!”
안 돼는 안다. 들었을 때는 이미 늦었다는 것도 안다. 나는 봉지를 물고 소파 밑으로 들어갔다. 소파 밑은 내 땅이다. 예리가 거실로 나와 소파 앞에 배를 깔고 엎드렸다.
“뭐 물었어? 이리 줘. 범돌, 손.”
손은 주지 않았다. 대신 봉지를 예리 코앞에 내려놓았다. 예리가 봉지를 꺼내 거실 불빛에 비춰 보았다.
“노령견 관절 간식? 자기야, 이거 뭐야? 범돌 건 아닌데.”
경모의 목덜미에서 땀이 솟았다. 사람이 거짓말을 시작할 때는 귓바퀴 뒤가 먼저 젖는다. 찬 땀이고, 시큼하다.
“아, 그거. 센터 경비실에 늙은 개가 하나 있어. 경비 아저씨가 키우는 잡종 할배 개인데 다리가 안 좋대서 하나 샀지.”
“센터에 개가 있었어? 처음 듣는데.”
“말 안 했나?”
“안 했어. 그리고 자기, 개 싫다며.”
“싫다고 한 적은 없지. 범돌이 나를 싫어하는 거지.”
예리가 봉지를 뒤집었다. 뒷면에 붙은 종이를 손가락으로 짚어 가며 읽었다.
“「동물병원 전용 판매」 이거 편의점에서 안 파는 건데. 동물병원까지 가서 샀어? 남의 회사 경비실 개 주려고?”
“경비 아저씨가 부탁했어. 대신 사다 달라고.”
“센터가 파주잖아. 파주에도 동물병원 있잖아.”
“있지. 근데 아저씨가 일산에 아는 병원이 있대.”
경모의 귀 뒤가 한 번 더 젖었다. 거짓말은 하나를 막으면 다음 것을 부른다. 처음 것보다 다음 것의 냄새가 짙다. 예리는 봉지를 신발장 위에 올려놓고 한동안 경모를 보았다. 경모는 예리 대신 나를 보았다. 무리원이 우두머리의 눈을 피할 때는 우두머리 대신 가장 약한 것을 본다. 이 집에서 경모가 보기에 가장 약한 것은 나였다. 틀렸다.
“씻어. 밥 데워 놓을게.”
예리가 부엌으로 갔다. 예리 목덜미에서는 땀이 나지 않았다. 대신 숨이 짧아졌다. 예리는 화가 나면 숨을 아낀다.
밤 열두 시, 집이 조용해진 뒤 나는 신발장 위로 뛰어올라 봉지를 다시 물어 왔다. 이빨로 비닐을 찢고 간식 하나를 씹었다. 관절이 좋아지는 맛은 나지 않았다. 혀에 늙은 개의 침 냄새가 남았다. 봉지 안에 반쯤 남은 간식마다 같은 냄새가 묻어 있었다. 경모는 이 봉지를 열어 늙은 개에게 손으로 하나씩 먹였다. 손으로 먹이는 것은 우두머리가 하는 일이다.
*
안방 문은 닫혀 있었다. 나는 문 앞에 엎드려 문틈에 코를 댔다. 예리는 벽 쪽으로 돌아누워 있었고, 숨이 잠든 숨이 아니었다. 경모가 이불을 걷고 일어나 맨발로 나왔다. 나를 넘어 베란다로 가더니 유리문을 반쯤 닫고 전화를 걸었다. 경모는 소리를 줄였다고 생각했겠지만 개의 귀에는 다 들렸다.
“엄마, 왜 이 시간에 문자를 보내.”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높고 빨랐다. 쇳소리가 섞인 여자 목소리였다.
“그쪽 일은 정리됐지? 결혼한 지 다섯 달이야. 예리가 알면 끝나.”
“알아. 안 들키게 하고 있어.”
“또 돈 얘기 나오면 나한테 넘겨. 엄마가 아는 변호사 있으니까.”
“엄마, 그런 거 없다고. 내가 알아서 해.”
“네가 알아서 한 게 지금 이 꼴이야. 하나만 지켜. 둘 다 지키려다가 둘 다 놓쳐.”
경모는 엄마라는 소리가 날 때마다 고개를 숙였다. 목이 꺾이는 각도를 나는 안다. 개가 우두머리 앞에서 귀를 눕힐 때의 각도다. 경모 위에도 누가 있다. 쇳소리 섞인 목소리의 여자가 경모를 거느리고 있다. 다른 무리 위에 또 무리가 있는 것인지, 나는 아직 몰랐다.
경모가 전화를 끊고 돌아서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경모가 쪼그려 앉았다.
“너 다 들었어?”
나는 몸을 돌려 엉덩이를 보였다. 개가 할 수 있는 가장 정중한 거절이다. 경모가 바지 주머니를 뒤져 육포 한 조각을 꺼냈다.
“비밀이다. 응? 형이 다 말할 거야. 때가 되면.”
나는 육포를 받았다. 받는 것은 받는 것이다. 비밀은 지키지 않을 것이다.
*
토요일 밤 산책은 셋이 나간다. 예리가 정한 규칙이다. 예리가 가슴줄을 채워 주고 줄 손잡이를 경모에게 넘겼다.
“오늘은 자기가 잡아. 둘이 친해져야 돼.”
엘리베이터 앞에서 나는 엉덩이를 바닥에 붙였다. 앞다리를 쭉 뻗고, 목을 뒤로 빼고, 온몸의 무게를 꼬리뼈에 실었다. 우리 종은 이걸 타고난다. 사람들은 진돗개 고집이라고 부른다. 경모가 줄을 당기자 가슴줄이 목 뒤로 밀려 올라가 내 얼굴 살이 눈 쪽으로 몰렸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던 위층 학생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휴대전화를 꺼냈다.
“형이 미안해, 범돌. 형이 뭘 잘못했는지 말만 해 줘.”
“말하잖아. 엉덩이로.”
예리가 줄을 받아 들자 나는 일어나서 엘리베이터에 먼저 탔다. 경모가 이마를 엘리베이터 벽에 기댔다.
아파트 후문을 나서면 큰길이 나오고, 큰길을 건너면 오래된 동네가 있다. 새 아파트들 사이에 끼어 아직 헐리지 않은 단층집 골목들이다. 담장 위로 감나무가 넘어오고 대문마다 개 냄새가 다르다. 토요일 밤마다 셋이 이 동네를 한 바퀴 돌았고, 경모는 돌 때마다 같은 골목 입구에서 걸음을 늦췄다. 세 번 봤다. 오늘이 네 번째였다.
경모가 골목 안을 한 번 들여다보고 얼른 고개를 돌렸다. 골목 안쪽에서 바람이 불어 나왔다. 라벤더, 버터, 늙은 개. 금요일 밤 경모의 외투에서 난 냄새가 골목에서 통째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골목으로 몸을 돌렸다. 예리가 놀라서 줄을 놓칠 뻔했다.
“범돌? 어디 가?”
골목은 좁고 길었다. 담장 아래에 오줌 자리가 여럿 있었는데 하나가 유난히 짙었다. 늙은 암컷의 오줌이었다. 하루에 몇 번씩 같은 자리에 누었고, 맨 위 것은 한 시간이 안 됐다. 오줌 자리 옆에 경모의 운동화 밑창 냄새가 겹쳐 있었다. 어제 것 위에 그저께 것, 그저께 것 밑에 더 오래된 것이 차곡차곡.
경모가 뒤에서 뛰어왔다.
“예리야, 이쪽은 막다른 골목이야. 돌아가자.”
“범돌이 가고 싶어 하잖아.”
“저 끝 집 개가 사나워. 물어.”
“자기가 어떻게 알아?”
경모가 입을 다물었다. 골목 맨 끝 파란 철대문 안쪽에서 낮게 쉰 짖음이 한 번 났다. 젊은 개는 그렇게 짖지 않는다. 숨을 아끼는 짖음이었다. 나는 엉덩이를 땅에 박고 골목 끝을 향해 앉았다. 이번 브레이크는 반대 방향이었다. 가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떠나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경모가 허리를 굽혀 나를 안아 올렸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골목 양쪽 대문 안에서 개들이 한꺼번에 짖었다.
“자기야! 왜 들어!”
“여기 사람 사는 데야. 밤에 시끄럽게 하면 안 돼.”
경모는 나를 안고 큰길 쪽으로 걸었다. 경모의 겨드랑이가 젖어 있었다. 나는 경모의 어깨 너머로 골목 끝을 보았다.
파란 철대문 위로 회색 개 한 마리가 앞발을 올리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에 흰빛 도는 털이 은색으로 떠 보였고, 늘어진 두 귀가 얼굴 양옆으로 처져 있었다. 개는 짖지 않았다. 나를 보지도 않았다. 멀어지는 경모의 등만 보고 있었고, 꼬리를 낮게, 천천히 좌우로 흔들었다. 낯선 사람에게 개는 꼬리를 그렇게 흔들지 않는다. 오래 함께 산 사람이 문 앞을 지나쳐 갈 때 흔드는 꼬리다.
늙은 개는 경모를 알았다. 경모의 품에 안긴 나보다 훨씬 먼저, 훨씬 오래전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