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196자) · 명주 · 11월 13일
목요일마다 오는 사람
관찰 일지: 그 집 사람들 · 도경
만 19세 이상 이용가
수요일 오후에 소개소 실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열일곱 해 동안 나를 이 집 저 집에 보낸 사람이다. 목소리가 굵고, 전화를 받자마자 본론을 말하는 사람이다.
“오 여사, 그 집에서 사람 새로 찾는대. 급하대. 무슨 일 있어?”
“일은 똑같이 합니다.”
“일 얘기 아니고. 판사님 댁이 급하다 그러면 무슨 일이 있는 거야. 그 양반들은 급한 거 티를 안 내거든.”
“적어 둔 대로 하고 있습니다.”
실장이 수화기 너머에서 한숨인지 웃음인지 모를 소리를 냈다.
“또 그 공책. 오 여사 그거 때문에 사람들이 오 여사를 좋아하면서 무서워해. 알지?”
“압니다.”
“아무튼 짐 싸 둘 준비는 해. 다음 집은 내가 알아볼게. 오 여사는 어디 가도 되니까.”
어디 가도 된다는 말을 열일곱 해 동안 여러 번 들었다. 그 말은 칭찬이기도 하고, 어디에도 오래 있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11월 12일 수요일. 15:20 전화. 소개소 실장. 새 사람 구한다고 함.
*
11월 13일 목요일. 18:00 저녁 준비하지 않음. 18:40 사모님 외출. 국화. 21:40 사모님 귀가. 22:40 윤 선생 귀가. 23:00 대문 소리 없음.
사모님은 나가시기 전에 현관에서 국화를 한 번 풀었다가 다시 싸셨다. 이 주 전과 같은 손이었다. 다만 그날은 꽃을 싸다가 멈추고 부엌 쪽의 나를 부르셨다.
“아주머니, 오늘 밤엔 방에 계세요.”
“네.”
“꼭요. 무슨 소리가 나도요.”
사모님은 그 말을 부탁처럼 하셨다. 열다섯 달 동안 이분이 나에게 무엇을 시키신 적은 많아도 부탁하신 적은 없었다. 시키는 말은 끝이 내려가고 부탁하는 말은 끝이 떨린다. 그날 그 말끝이 떨렸다. 나는 네라고 대답했고, 그 네를 지키지 못할 것을 대답하면서 알았다.
18:38 사모님. “오늘 밤엔 방에 계세요.” (부탁)
한경숙 씨가 죽은 뒤로 세 번째 목요일이었다. 대문은 열리지 않았다. 나는 방에서 소리를 셌다. 셀 것이 없는 소리를 세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열한 시가 지나고 오 분이 지나고 칠 분이 지났다.
23:09 2층 끝 방 문 닫히는 소리.
대문 소리 없이 끝 방 문이 닫혔다. 그 방 문은 열리는 소리는 안 나고 닫히는 소리만 난다. 누가 대문을 거치지 않고 그 방에 들어갔다. 차고 옆에 쪽문이 하나 있다는 것을 나는 그날 처음 떠올렸다. 열다섯 달 동안 그 문은 늘 잠겨 있었고, 잠긴 문은 없는 문처럼 보인다.
열한 시 사십 분에 나는 부엌에 나갔다. 물을 마시러 나가지 않았다. 불을 켰다. 켜고 식탁 의자에 앉았다. 넷째 자리였다. 오 분쯤 앉아 있으니 계단에서 소리가 났다. 네 번째 칸이 울었다. 건너뛰지 않고 밟은 사람이었다.
부엌 입구에 남자가 서 있었다. 키가 크고 말랐고, 머리가 짧았다. 서른 조금 넘어 보였는데 눈 밑이 쉰처럼 꺼져 있었다. 청바지 무릎이 하얗게 닳았고, 손끝이 검었다. 잉크였다. 그 사람이 부엌에 한 발 들어서자 기름 섞인 종이 냄새가 났다. 막 찍어 낸 전단지를 한 뭉치 안았을 때 나는 냄새였다.
“아, 죄송합니다. 계신 줄 몰랐습니다.”
먼저 사과한 것은 그 사람이었다. 목소리가 낮고, 말끝이 흐리지 않았다.
“물 좀 마셔도 될까요?”
이 집 사람이 이 집 부엌에서 나한테 물을 마셔도 되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할 자리가 아니었다.
“네.”
그 사람이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냈다. 컵을 찾았다. 찬장 왼쪽 문을 열었다가 닫고, 오른쪽 문을 열었다가 닫았다. 열다섯 달 동안 나는 컵 자리를 두 번 바꿨다.
“그 위 칸입니다.”
“아, 네.”
컵을 꺼내 물을 따르고, 그 자리에 서서 마셨다. 지완 씨도 그 자리에 서서 마신다. 두 사람이 같은 자리에서 물을 마신다는 것을 나는 그날 알았다.
“지훈입니다. 윤지훈. 아주머니 얘기는 지완이한테 들었어요.”
*
지훈 씨는 식탁에 앉지 않았다. 싱크대에 등을 기대고 컵을 두 손으로 쥐었다.
“22일 밤 열 시 이십 분에 제가 그 방에 있었던 거, 적으셨죠?”
“불빛과 의자 소리만 적었습니다. 사람은 못 봤습니다.”
“제가 있었어요.”
그 사람은 그 말을 하고 컵을 한 모금 마셨다.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팔 년 전에 그분을 찾아갔어요. 한경숙 씨요. 삼 년 동안 그 방에서 안 나오다가 처음 나간 데가 거기였어요. 반찬가게 앞에서 무릎을 꿇었어요. 제가 도윤이를 쳤다고요. 그분이 한참 저를 보시더니 일어나라고 하셨어요. 경찰서에 가겠다고 했더니 아직은 가지 말래요.”
“왜요?”
또 나왔다. 이 집에서 두 번째 「왜」였다.
“그분이 그러셨어요. 네가 지금 가면 네 아버지가 다 덮는다고. 차도 없고, 본 사람도 없고, 너는 방에서 삼 년 나온 애라서 다들 네가 헛소리한다고 할 거라고. 그러니까 목요일마다 그 방 창가에 불을 켜고 앉아 있으래요. 도윤이가 간 시각에요. 자기가 마당에서 볼 테니까. 자기가 가자고 할 때까지.”
“팔 년을요?”
“사백열 몇 번이요. 저는 세 번 빠졌어요. 독감 두 번, 제본소 야간 한 번.”
나는 속으로 셈을 했다. 팔 년이면 목요일이 사백 번을 넘는다. 사백 번 넘게 한 사람은 창가에 앉아 있었고, 한 사람은 마당에 서서 그 창을 올려다봤다. 열다섯 달 동안 나는 그중 예순 번쯤을 대문 소리로 들었다. 두 번, 두 번, 두 번. 그 소리 하나하나에 사람이 서 있었다는 것을 나는 한 번도 셈에 넣지 않았다. 대문이 몇 번 열렸는지는 세면서, 그 문으로 누가 무엇을 하러 들어오는지는 세지 않았다.
지훈 씨가 컵을 내려놓았다. 싱크대 대리석에 컵 바닥이 닿는 소리가 작게 났다.
“봉투는 제 월급이에요. 제가 어머니한테 드리면 어머니가 마당에서 그분께 드렸어요. 그분은 한 번도 안 여셨대요. 받기만 하셨어요. 안 받으면 제가 못 견딘다는 걸 아셨던 것 같아요.”
“그날은 안 받으셨습니다. 16일에요.”
“네. 그날 처음 안 받으셨어요. 아버지 이름이 신문에 나온 다음 주였어요. 대법관이요. 그분이 그러셨어요. 그 사람이 법 꼭대기에 올라가면 도윤이는 영영 뺑소니 미제로 남는다고. 다음 주 목요일에 같이 가자고요. 경찰서요.”
나는 그날 밤 창을 향해 크게 벌어지던 입을 떠올렸다. 다음 주 목요일엔 같이 가자.
“그런데 22일 수요일 저녁에 문자가 왔어요. 내일 말고 오늘 네 아버지랑 먼저 얘기한다, 너는 집에 있어라. 그래서 저는 그 방에 있었어요. 열 시 칠 분에 차고 셔터 소리가 났어요. 창으로 봤더니 아버지 차가 나갔어요. 열 시 이십 분에 의자를 창가로 끌어서 계속 봤어요.”
“의자 소리요.”
“네. 그거요.”
지훈 씨의 손이 싱크대 모서리를 쥐었다.
“열한 시 사십팔 분에 차가 들어왔어요. 자정 조금 넘어서 아버지가 2층으로 올라오셨어요. 그 방 문을 열고 문턱에 서서 저를 보셨어요. 비에 젖은 채로요. 그리고 딱 한 마디 하셨어요.”
부엌 형광등이 한 번 떨렸다.
“그 사람 이제 안 온다.”
*
슬리퍼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뒤축을 들고 걷는 소리였다. 소리를 안 내려는 걸음은 오히려 또렷하다. 윤 선생이 부엌 입구에 섰다. 카디건 단추가 이번에도 끝까지 채워져 있었다.
“지훈아, 올라가라.”
“아버지.”
“아주머니 앞에서 할 얘기 아니다.”
“아주머니 앞이니까 하는 얘기예요.”
윤 선생이 부엌 안으로 한 걸음 들어왔다. 식탁이 두 사람 사이에 있었고, 나는 식탁 끝 넷째 자리 옆에 서 있었다.
“네 말은 아무도 안 믿는다. 너는 스무 살에 사람을 치고 달아난 놈이고, 삼 년을 방에서 못 나온 놈이다. 네 동생은 십일 년째 약을 먹고, 여기 계신 분은 서약서를 쓰고 그 서약을 어긴 분이다. 셋이 모여서 무슨 말을 해도 그건 이야기다. 증거가 아니야.”
“그래서 아주머니한테 말하는 거예요. 아주머니는 거짓말을 적으면 두 줄을 그으세요.”
윤 선생의 시선이 나한테 왔다가 지훈 씨한테 돌아갔다.
“사 년이다.”
“네?”
“도주치사 공소시효가 십오 년이다. 사 년 남았다. 사 년만 가만있으면 너는 산다. 네 어머니도 살고. 그 사람은 안 돌아와.”
“그분은 십일 년을 가만있었어요. 저를 살리려고요.”
지훈 씨 목소리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윤 선생은 그 흔들림을 기다렸다는 듯이 목소리를 더 낮췄다.
“그래서 그 사람이 선택했다. 가만있기로. 끝까지 가만있었으면 됐다.”
그 말을 하고 윤 선생은 돌아섰다. 돌아서다가 멈추고 나를 봤다.
“아주머니, 지금 시각도 적으시겠죠.”
“열한 시 오십육 분입니다.”
“적으십시오. 이 집에서 마지막으로 쓰시는 공책일 테니까.”
사랑방 문이 닫혔다. 소리가 나지 않았다.
*
지훈 씨는 한참 싱크대에 기대 있다가 컵을 씻었다. 물을 틀고 손가락으로 컵 안을 한 바퀴 돌리고 엎어서 건조대에 놓았다. 잉크 묻은 손가락 자국이 컵 테두리에 희미하게 남았다.
“아주머니, 공책 경찰서에 있다면서요.”
“한 권 반이요.”
“그럼 저도 가야겠네요. 그분이랑 가기로 한 데요.”
지훈 씨는 그 말을 하고 한참 수도꼭지만 봤다. 물방울이 꼭지 끝에 맺혔다가 떨어졌다. 세 번 떨어질 동안 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근데 제가 가면 어머니가 불려 가요. 그날 밤 아버지가 집에 있었다고 하셨잖아요. 제가 가면 어머니가 거짓말한 사람이 돼요. 그래서 아직 못 가요. 팔 년 동안 그분이 가지 말라고 해서 못 갔는데, 이제는 어머니 때문에 못 가요.”
“사모님은 그날 약을 드시고 아홉 시 십사 분에 불을 끄셨습니다.”
지훈 씨가 나를 봤다.
“그것도 적으셨어요?”
“물을 떠다 드린 게 저입니다.”
“아주머니, 여기 오신 지 얼마나 되셨어요?”
“열다섯 달입니다.”
“저는 이 집에서 십일 년을 살았는데 컵이 어디 있는지 몰라요. 이 집에서 제가 아는 건 그 방 하나예요.”
지훈 씨는 부엌을 나가다가 입구에서 돌아봤다.
“그분이 마지막 목요일에 아주머니를 보셨대요. 불 켠 창에요. 다음 날 문자로 그러셨어요. 그 집에 사람이 하나 더 있더라, 불을 켜 준 사람이.”
23:40 주방. 윤지훈(본인 말). 대화 약 십육 분. 23:56 윤 선생. “사 년이다.” “이 집에서 마지막으로 쓰시는 공책.” 23:58 끝 방 문. 쪽문.
세 줄을 적고 나서 나는 짐작 칸을 폈다. 쓸 것이 너무 많아서 한 줄도 쓰지 못했다. 대신 앞장으로 돌아가서 첫 줄 위, 날짜 옆 여백에 작게 적었다.
(불 켠 창 — 그분이 본 것.)
그날 나는 불을 끄지 않고 잤다. 창 없는 방에서 형광등을 켜 놓고 자면 눈꺼풀 안쪽이 밤새 하얗다. 그래도 끄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