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289자) · 명주 · 11월 5일~9일

형은 안 갔어요

관찰 일지: 그 집 사람들 · 도경

만 19세 이상 이용가

압수 목록 뒷면에 나는 그날 것을 적었다. 종이가 얇아서 볼펜을 누르면 앞면 목록 글자가 비쳐 올라왔다. 23번째 공책 1권, 24번째 공책 1권(일부 사용). 그 두 줄 뒤에 내 글씨가 거꾸로 겹쳤다.

11월 3일 월요일. 08:40 형사 2인. 09:40 일지 제출. 17:05 목록 받음.

네 줄을 적고 나니 종이가 찼다. 나는 그것을 반으로 접어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

11월 5일 수요일.

이튿날부터 나는 빈손이었다. 열다섯 달 동안 매일 밤 아홉 시에 방에 들어가 공책을 폈는데, 그날 아홉 시에 방에 들어가서는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손이 할 일을 찾지 못하고 무릎 위에서 서로를 만지작거렸다. 십 분이 굉장히 길었다. 열여섯 해 동안 그 십 분에는 손이 움직였다. 손이 안 움직이니까 그 십 분이 어디에도 가지 않고 방 안에 고여 있었다.

열 시에 부엌에 나가 서랍을 열었다. 장 보고 받은 영수증을 나는 버리지 않고 모아 둔다. 한 장을 꺼내 뒷면에 적었다. 마트 영수증은 좁고 길어서 한 줄이 두 줄로 꺾였다.

06:20 기상. 06:40 주방. 쌀 두 컵.

쌀이 세 컵에서 두 컵으로 줄어 있었다. 윤 선생이 그 주에 저녁을 밖에서 먹었다. 그것을 적고 나서 웃음이 났다. 열여섯 해 동안 공책이 없으면 못 쓴다고 생각했는데, 없으니까 영수증 뒷면에 쓰고 있었다.

11월 6일 목요일. 11:00 장. 문구점.

장 보러 가는 길에 문구점에 들렀다. 손바닥만 하고 줄이 가늘고 표지가 두꺼운 공책이 그 자리에 있었다. 이천 원이었다. 열여섯 해 전에는 천이백 원이었다. 계산대 주인이 공책을 봉투에 넣으면서 요즘 누가 이런 걸 손으로 쓰냐고 물었다.

“제가요.”

“뭘 쓰시는데요?”

“몇 시에 뭘 했는지요.”

주인은 휴대폰을 들어 보이면서, 이게 다 알아서 적어 주는데 하고 웃었다. 나는 그 휴대폰이 경찰서 식탁에 앉아 이 댁 선생님 로봇이냐고 물을 수 있겠느냐고 생각했지만 말하지 않았다. 하나를 샀다가 하나를 더 샀다. 두 권을 산 이유는 그날 없었고, 지금은 있다.

첫 장에 무엇을 적을지 오래 앉아 있다가 이렇게 적었다.

11월 6일 목요일. 공책 두 권 삼. 이천 원씩.

물건 값을 첫 줄에 적은 것은 처음이다. 규칙으로 시작할 수가 없었다. 이 집 규칙은 이미 스물여섯 개고, 그것은 경찰서 식탁에 있다.

두 번째 공책에는 기억나는 것을 적기 시작했다. 날짜 순서대로 나오지 않았다. 한 장에 이렇게 뒤섞였다.

※ 10월 2일. 대문 세 번. 여자 구두. ※ 10월 9일. 끝 방 발자국. 운동화, 맨발. ※ 10월 16일. 손목. 봉투. 열다섯 걸음. ※ 작년 11월 12일. 주방 창 이십 센티 열림. 새벽.

일지는 그날 것을 그날 적는다. 이 공책은 달랐다. 두 번째 공책 표지에 나는 아무 날짜도 적지 못했다. 날짜가 하나가 아니었다.

이튿날 아침 사모님이 식탁에서 새 공책을 보셨다. 나는 앞치마 주머니에 넣어 두었는데 행주를 꺼내다가 같이 딸려 나왔다.

“또 쓰시게요?”

“네.”

“안 무서우세요?”

나는 행주를 개면서 대답을 골랐다. 고를 것이 별로 없었다.

“무섭습니다. 그런데 안 쓰면 더 무섭습니다.”

사모님이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셨다. 잔이 식은 지 오래였다.

“저도 하나 살까요? 적으면 좀 나을까요?”

“적으면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그게 나은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사모님이 소리 내어 웃으셨다. 열다섯 달 만에 처음 들은 그분 웃음소리였는데, 웃음 끝이 갈라져서 기침처럼 들렸다.

“솔직하시네요, 아주머니는 늘.”

그날 사모님은 아침을 반 드셨다. 나는 남은 반을 랩에 싸서 냉장고 2단 안쪽에 넣었다. 넣으면서 이번에도 누가 먹는지 몰랐다. 모르는 채로 넣는 것도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

11월 9일 일요일. 01:20 냉장고 문 소리.

새벽 한 시 이십 분에 냉장고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났다. 이 집 냉장고 문은 닫힐 때 고무 패킹이 붙으면서 입술을 떼는 것 같은 작은 소리를 낸다. 나는 일어나서 부엌으로 나갔다. 물을 마시러 나간 것은 아니었다. 그날은 그런 핑계도 대지 않았다.

지완 씨가 싱크대 앞에 서 있었다. 불은 켜지 않았고 냉장고 안쪽 불빛만 문틈으로 조금 새어 나와 있었다. 한 손에 랩을 벗긴 그릇을 들고 서서 숟가락으로 떠먹고 있었다. 사모님 아침 그릇이었다. 반 남기신 것을 내가 랩을 씌워 냉장고 2단 안쪽에 넣어 둔 그릇이었다.

열다섯 달 동안 그 그릇은 다음 날 아침이면 빈 채로 싱크대에 있었다. 나는 누가 먹는지 몰랐다. 몰라서 매일 넣었다.

“데워 드릴까요?”

지완 씨가 숟가락을 입에 문 채로 나를 봤다.

“식은 게 원래 맛이에요.”

“누가 그러던가요?”

“형이요.”

나는 불을 켜지 않았다. 켜면 이 사람이 그릇을 내려놓을 것 같았다.

“그 반 그릇, 원래 형 거예요.”

지완 씨가 그릇 바닥을 숟가락으로 긁었다. 긁는 소리가 부엌 타일에 퍼졌다.

“형이 그 방에서 삼 년 안 나왔어요. 어머니가 하루 세 번 밥을 들고 올라가셨는데, 아침에는 꼭 당신 거에서 반을 덜어 가셨어요. 같이 먹는 거라고. 형이 나가고 나서도 어머니는 반을 남기세요. 버리는 걸 못 보겠어서 제가 먹어요.”

“형이 나갔다고요?”

“아주머니, 형은 안 갔어요.”

나는 싱크대 모서리를 짚었다.

“목요일마다 와요. 끝 방에요.”

*

냉장고가 모터를 멈췄다. 삼 분마다 오는 그 조용함이 왔다. 그 조용함 속에서 지완 씨가 말했다. 한 번도 쉬지 않고 말했다. 오래 준비한 사람이 아니라 오래 참은 사람의 말이었다.

“십일 년 전 목요일에 형이 스무 살이었어요. 동기 모임에서 술을 먹고 아버지 차를 끌고 나갔어요. 비가 왔고, 성북로 굽은 길에서 오토바이를 쳤어요. 배달하던 형이었어요. 열아홉 살이요. 형은 안 섰어요. 집에 와서 차고에 차를 넣고 끝 방에 들어가서 문을 잠갔어요.”

지완 씨가 그릇을 싱크대에 내려놓았다.

“저는 열여섯이었어요. 그날 밤 잠이 안 와서 물 마시러 내려왔어요. 진짜 물 마시러요. 한 시쯤이었는데, 이 창으로 수돗가가 보였어요. 아버지가 호스로 차 앞을 씻고 있었어요. 범퍼를요. 비가 오는데 우산도 안 쓰고. 물이 차고 앞 배수구로 흘러가는데 가로등 밑에서 그 물이 좀 검었어요.”

지완 씨가 부엌 창을 봤다. 열지 않는 창이었다.

“어머니가 여기 서 계셨어요. 불 끈 채로요. 제가 들어오니까 어머니가 돌아보셨어요. 아무 말도 안 하시고, 손으로 제 눈을 가리셨어요. 그러고 들어가라고 하셨어요.”

“그다음 날 차가 없어졌어요. 새벽에 트럭이 와서 싣고 갔다고, 나중에 앞집 아주머니가 그러셨어요. 아버지는 그 차를 팔았다고 했고요. 누구한테 팔았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주방 창을 안 여는 건.”

“어머니가 이 창 앞에 못 서세요. 서면 그 밤이 보이니까요. 그래서 안 열어요.”

“그런데 지완 씨는 새벽에 여시죠.”

지완 씨가 처음으로 웃었다. 눈도 조금 웃었다.

“적으셨구나.”

“작년 11월 12일에 처음 봤습니다. 이십 센티요.”

“저는 매일 열어요. 이 창이 영영 닫혀 있으면, 그 밤이 없었던 일이 될 것 같아서요. 아주머니가 매일 닫으시는 것도 알아요. 그래서 매일 열어요.”

*

부엌 입구에서 슬리퍼 소리가 났다. 뒤축을 들지 않고 끄는 소리였다. 윤 선생이 서 있었다. 잠옷 위에 카디건을 걸쳤는데 단추 하나까지 다 채워져 있었다.

“지완아, 약 먹을 시간 지났다.”

지완 씨가 대답하지 않았다. 윤 선생이 카디건 주머니에서 약봉지 하나를 꺼내 식탁에 놓았다. 병원 이름이 인쇄된 흰 봉지였고 아침·저녁 칸이 나뉘어 있었다. 그러고 나를 봤다.

“아주머니, 지완이는 십일 년째 정신과 약을 먹습니다. 진단서도 있고 입원 기록도 있습니다. 약 먹는 아이 말은 기록이 못 됩니다. 그 말을 받아 적은 공책도요.”

“아버지.”

“들어가라.”

“그 약 처음 먹인 게 아버지잖아요. 그 밤 다음 날부터요. 제가 수돗가를 봤다고 한 다음 날부터.”

윤 선생의 얼굴은 변하지 않았다. 변하지 않는 얼굴을 유지하느라 턱 근육이 한 번 불거졌다가 가라앉았다.

“아주머니는 들어가 계십시오.”

나는 들어가지 않았다. 지완 씨와 윤 선생 사이에, 식탁 모서리 쪽에 섰다. 거기 선 것은 생각해서가 아니었다. 발이 먼저 거기 가 있었다. 그리고 손목시계를 봤다.

“선생님, 지금 한 시 삼십팔 분입니다.”

“그래서요?”

“적겠습니다. 지금 여기 있는 사람과 하신 말씀을요.”

윤 선생이 나를 오래 봤다. 사랑방 스탠드 불빛 없이 부엌 어둠 속에서 보니 그 사람 눈이 생각보다 작았다.

“적으십시오. 그 공책도 곧 거실 탁자에 올라가겠죠. 그런데 아주머니, 올라간 공책은 누가 읽는지 아십니까? 저 같은 사람이 읽습니다. 이십삼 년 동안 저는 그런 공책을 읽고 사람을 정했습니다.”

그 사람은 약봉지를 식탁에 둔 채로 돌아섰다. 돌아서면서 한 마디를 덧붙였다.

“다음 주까지 새 분을 알아보겠습니다.”

01:38 주방. 윤 선생, 지완 씨, 나. ※ 윤 선생. “약 먹는 아이 말은 기록이 못 된다.” ※ 윤 선생. “다음 주까지 새 분을 알아보겠다.”

*

윤 선생이 올라가고 나서 지완 씨는 약봉지를 한참 내려다봤다. 뜯지 않았다. 대신 싱크대로 가서 반 그릇을 씻었다. 수세미에 세제를 짜서 안쪽을 두 번 돌리고, 헹구고, 행주로 물기를 닦았다. 닦은 그릇에 랩을 새로 씌워서 냉장고 2단 안쪽, 원래 있던 자리에 도로 넣었다.

“빈 그릇을 왜 넣으세요?”

“아침에 어머니가 이거 여시거든요. 비어 있으면 누가 먹었구나 하세요. 버린 줄 알면 안 되니까요.”

지완 씨는 냉장고 문을 닫았다. 고무 패킹이 입술을 떼는 소리가 났다.

“아주머니, 그 방 사람 한번 보실래요? 이번 목요일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은 것이 대답이었다. 지완 씨는 계단 네 번째 칸을 밟고 올라갔다. 칸이 울었다.

나는 그날 밤 새 공책에 그 두 줄을 적고, 두 번째 공책에 한 줄을 적었다.

※ 2014년 10월 16일. 수돗가. 호스. 범퍼. 새벽 한 시쯤(지완 씨 말).

들은 말이다. 그 사람이 그렇게 말했다는 것만 사실이다. 그런데 나는 그 줄 옆에 괄호를 하나 더 달았다. 열여섯 해 동안 달아 본 적 없는 괄호였다.

(작년 11월 12일부터 이 창은 새벽마다 열려 있었다. 이것은 내가 본 것.)

들은 말 옆에 본 것을 나란히 놓았다. 나란히 놓으면 뜻이 생긴다. 열여섯 해 동안 나는 그게 무서워서 사실들을 흩어 놓았다. 그날은 흩어 놓지 않았다. 아침 여섯 시 이십 분에 부엌에 나가 보니 창이 이십 센티 열려 있었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그 창을 닫지 않았다.

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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