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286자) · 명주 · 11월 3일

형사 두 명

관찰 일지: 그 집 사람들 · 도경

만 19세 이상 이용가

11월 3일 월요일. 07:10 윤 선생 출근 안 함. 08:40 방문 2인. 남자. 08:45 윤 선생 응대. 거실.

그날 윤 선생은 일곱 시 십 분에 나가지 않았다. 넥타이를 매고 구두까지 닦아 놓고는 거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폈다. 신문을 펴고 한 장도 넘기지 않았다. 여덟 시 사십 분에 초인종이 울렸고, 윤 선생은 인터폰 화면도 보지 않고 대문 버튼을 눌렀다. 올 사람을 아는 손이었다.

남자 둘이었다. 한 사람은 서른 초반이었고 점퍼 안에 후드티를 입었는데 후드 끈 길이가 양쪽이 달랐다. 다른 한 사람은 쉰 넘어 보였고 회색 양복 어깨에 비듬 같은 흰 가루가 앉아 있었다. 분필 가루인지 담뱃재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젊은 쪽이 신분증을 보여 줬다. 성북경찰서 강력2팀이라고 했다.

나는 차를 냈다. 내고 부엌으로 가려는데 윤 선생이 먼저 말했다.

“아주머니는 들어가 계셔도 됩니다.”

“아뇨, 여기 계시는 게 좋겠습니다.”

젊은 형사가 그렇게 말하고 자기 옆 빈자리를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나는 윤 선생을 봤다. 윤 선생은 나를 보지 않았다. 나는 앉았다. 이 집 거실 소파에 앉은 것은 열다섯 달 만에 처음이었다. 가죽이 차갑고 생각보다 깊어서 엉덩이가 한참 내려갔다.

*

젊은 형사는 배승우, 나이 든 형사는 오기철이라고 했다. 형사는 젊은 쪽이 물었고 나이 든 쪽이 적었다. 나는 반대일 줄 알았다. 배 형사는 말이 빨랐고, 말하는 사이사이 탁자 위 찻잔을 들었다 놓았다 했는데 한 번도 마시지 않았다.

“정릉동 한경숙 씨 아시죠?”

윤 선생이 먼저 대답했다. 목소리가 법정에서 주문을 읽는 사람처럼 고르고 낮았다.

“압니다. 십일 년 전 성북로에서 아드님을 잃으신 분입니다. 뺑소니였고 범인은 못 잡았죠. 그 뒤로 그분이 제 가족을 오해했습니다. 그 사고와 우리 집 큰애가 관계가 있다고 믿으셨어요. 집사람이 딱하게 여겨 가끔 도와드렸습니다.”

“가끔이요?”

“매주요. 집사람이 마음이 약합니다.”

오 형사의 볼펜이 종이 위에서 한 번 멈췄다가 다시 갔다.

“10월 22일 수요일 밤에는 어디 계셨습니까?”

“집에 있었습니다. 사랑방에서 기록을 봤습니다. 열 시부터 한 시까지요. 집사람도 압니다.”

배 형사가 계단 쪽을 봤다. 사모님이 계단 중간에 서 계셨다. 언제부터 거기 계셨는지 나는 몰랐다. 사모님이 난간을 잡은 채 고개를 끄덕이셨다.

“네. 집에 있었어요.”

“상주하시는 도우미 분도 계시죠?”

배 형사가 나를 보면서 물었는데, 대답은 이번에도 윤 선생이 했다.

“이분은 열 시 반에 주무십니다. 아침이 이르셔서요. 그리고 형사님, 참고로 말씀드리면 이분은 전에 일하신 집에서 절도 문제로 곤란을 겪으신 적이 있습니다. 이분이 뭘 보셨다고 하셔도 그 점은 감안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거실이 조용해졌다. 벽시계 초침 소리가 났다. 나는 무릎 위에서 앞치마 자락을 쥐었다가 폈다. 열일곱 해 전 그 안방 화장대 앞에 다시 서 있는 것 같았다. 그것도 모르세요? 그 말이 귀에서 다시 울렸다. 그런데 그때와 다른 것이 하나 있었다. 그때 나는 몇 시인지 몰랐다. 지금은 안다.

“열 시 반에 자라고 하셨습니다.”

내 목소리가 생각보다 컸다. 배 형사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저는 그날 열한 시 오십 분에 잤습니다.”

“어떻게 아십니까?”

“적어 두었습니다.”

윤 선생이 처음으로 나를 봤다.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은 얼굴이었는데, 신문을 쥔 손가락 끝이 하얘져 있었다.

“적으셨다고요? 뭘요?”

“일지입니다. 몇 시에 무엇을 했는지 적습니다.”

“가져와 보실 수 있습니까?”

나는 일어났다. 일어나면서 사모님을 봤다. 계단 중간의 사모님이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이셨다. 윤 선생 쪽이 아니라 내 쪽을 보고 하신 끄덕임이었다.

*

방에서 가방을 꺼냈다. 가방 안에 공책이 스물네 권 있다. 스물두 권은 열여섯 해 동안 스물두 집에서 쓴 것이고, 스물세 번째는 이 집에 들어온 날 폈고, 스물네 번째는 여름부터 쓰고 있다. 한 번에 다 못 들어서 두 번에 나눠 들고 나왔다. 거실 탁자에 스물네 권이 쌓이자 탁자 절반이 덮였다. 손바닥만 한 공책들이라 탑처럼 쌓이지 않고 옆으로 무너져 부채처럼 펼쳐졌다.

배 형사가 한 권을 폈다. 넘겼다. 다른 권을 폈다.

“이게 다 뭡니까?”

“일지입니다.”

“매일요?”

“네.”

“몇 년이요?”

“열여섯 해입니다.”

배 형사가 오 형사를 봤고, 오 형사는 볼펜을 내려놓았다. 이십 분 동안 한 번도 내려놓지 않던 볼펜이었다.

“형사님.”

윤 선생이 신문을 접어 탁자에 올렸다. 날이 선 접힘이었다.

“그건 개인의 사적인 메모입니다. 영장 없이 가져가실 수 없는 물건이고, 증거 능력도 따져 봐야 할 겁니다. 사후에 얼마든지 쓸 수 있는 거니까요.”

오 형사가 처음으로 말했다. 목소리가 쉬어 있었다.

“가져가는 게 아닙니다. 주인이 내겠다고 하면 받는 겁니다. 임의 제출이라고 하죠.”

오 형사가 나를 봤다.

“내시겠습니까?”

열일곱 해 동안 나는 이런 자리에 앉아 본 적이 없다. 이 집에서 제일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그 방에서 제일 무거운 물건 앞에 앉아 있었다.

“보십시오. 다만 부탁이 있습니다. 앞의 스물두 권은 이 집 것이 아닙니다. 다른 집 이야기입니다. 그 집 사람들은 제가 적은 줄 모릅니다.”

“날짜로 정하겠습니다. 이 집에 오신 날부터만 보겠습니다.”

나는 스물두 권을 가방 쪽으로 옮겼다. 한 권 반이 남았다. 열다섯 달이 그만큼이었다.

09:10 거실. 형사 2인. 성북경찰서 강력2팀 배승우·오기철(본인 말). 09:40 일지 제출. 23번째 1권, 24번째 반 권.

*

그날 오후 내내 두 사람은 식탁에서 그것을 읽었다. 윤 선생은 열 시에 사무실로 나갔다. 나가면서 현관에서 구두 뒤축을 튕기지 않았다. 사모님은 안방으로 올라가셨다.

나는 부엌에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이상하니까 마늘을 깠다. 두 접을 깠다. 손끝이 쓰라려서 나중에는 엄지손톱 밑이 욱신거렸고, 부엌 안이 알싸한 냄새로 가득 차서 배 형사가 두 번 재채기를 했다.

“아주머니, 믹스커피 있어요?”

“있습니다.”

배 형사는 봉지 두 개를 한 컵에 뜯어 넣었다.

“하나로는 안 돼요. 이거 읽다 보니까 눈이 막 감겨요. 칠 시 십 분, 칠 시 십 분, 칠 시 십 분. 이 댁 선생님 진짜 로봇이세요?”

나는 웃지 않으려고 마늘을 봤다. 오 형사가 공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칠 시 십이 분도 있다.”

네 시쯤 배 형사가 공책을 들고 싱크대 쪽으로 왔다.

“10월 22일요. 22시 07분 차고 셔터, 차 나감. 23시 48분 차고 셔터, 차 들어옴.”

“네.”

“그 사이에 22시 20분, 2층 끝 방 불빛, 의자 소리.”

“네.”

“그리고 20일 19시 32분. 사랑방, 윤 선생께 방문자 말 전함. 수요일 22시 30분, 그 집으로.”

배 형사가 공책을 내려놓고 나를 봤다. 수다스럽던 입이 그때만 다물어져 있었다.

“이거 굉장히 중요한 기록입니다.”

“압니다.”

“왜 이렇게 자세히 적으십니까?”

나는 마늘을 놓았다. 열일곱 해 동안 이 질문에 대답을 준비해 왔다. 물어본 사람이 없었을 뿐이다.

“제가 안 훔쳤다는 걸 증명하려고요. 이 일을 하면 물건이 없어집니다. 그러면 제일 먼저 저를 봅니다. 그래서 몇 시에 어느 방에 들어갔고 몇 시에 나왔는지 적습니다.”

배 형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열여섯 해를 적었습니다. 한 번도 안 썼습니다.”

“네?”

“증거로 쓴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오늘 처음 꺼냈습니다.”

그리고 나는 하나를 더 말했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말이었다.

“그 수요일 말은 제가 전했습니다. 그 사람이 판사님을 부른 말을 제가 옮겼습니다.”

배 형사가 머리를 긁었다.

“아주머니, 전하라고 하셨잖아요. 전하는 게 일이셨잖아요.”

“압니다.”

“그럼….”

“그래도 제가 전했습니다.”

배 형사는 그 말을 적지 않았다. 오 형사가 식탁에서 적었다.

배 형사가 공책을 한 장 앞으로 넘겼다.

“21시 10분, 안방. 사모님 약 드실 물 한 컵, 윤 선생 부탁. 21시 14분, 안방 소등. 이거 무슨 약이었어요?”

“모릅니다. 흰 알약 한 알이었습니다. 휴지 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사모님이 원래 드시는 약이에요?”

“열다섯 달 동안 그 시각에 물을 떠다 드린 건 그날이 처음입니다.”

배 형사가 계단 쪽으로 가서 사모님을 불렀다. 사모님이 내려오셨다. 아침보다 얼굴이 더 희었고, 카디건 단추를 하나씩 어긋나게 채우고 계셨다.

“사모님, 22일 밤에 아홉 시 반 전에 주무셨다면서요. 약 드시고요.”

“네.”

“그럼 열 시부터 한 시까지 남편분이 사랑방에 계셨던 건 어떻게 아세요?”

사모님이 난간을 쥐셨다. 입술이 한 번 열렸다 닫혔다.

“그이는 늘 거기 있어요.”

“그날도 보셨어요?”

“늘 있으니까요.”

배 형사는 더 묻지 않았다. 오 형사가 식탁에서 적었다. 사모님은 한동안 계단 아래에 서 계시다가, 부엌 쪽의 나를 한 번 보시고 올라가셨다. 어긋나게 채운 단추를 끝내 고치지 않으셨다.

*

다섯 시에 오 형사가 부엌으로 왔다. 그날 열 마디도 안 한 사람이었다. 손에 종이 한 장을 들고 있었다.

“압수 목록입니다. 임의 제출이라도 목록은 드립니다. 언제 돌려드릴지는 말씀 못 드립니다.”

“괜찮습니다.”

“괜찮으세요? 이거 열여섯 해 하신 거잖아요.”

“이 집 건 열다섯 달입니다.”

오 형사가 목록을 식탁에 놓고 한동안 서 있었다. 양복 어깨의 흰 가루를 손바닥으로 한 번 털었는데 털리지 않았다.

“저도 이십육 년 적었습니다. 수사 기록이요. 그거 다 창고에 갑니다. 아무도 안 봅니다. 그런데 이십육 년에 한두 번, 그중에 하나가 봐집니다.”

“네.”

“그 하나 때문에 이십육 년을 적습니다.”

열일곱 해 동안 나는 그런 말을 아무한테도 못 들었다. 들을 자리가 없었다.

“그 하나가 언제 오는지 아십니까?”

오 형사가 처음으로 웃었다. 앞니 하나가 조금 비뚤었다.

“모르죠. 오면 압니다.”

17:05 압수 목록 1매 받음.

그날 밤 윤 선생은 열한 시에 들어왔다. 부엌 앞을 지나가다 멈췄다.

“오늘 일은 서약서 위반입니다.”

“서약서에 경찰은 없었습니다.”

“이 집에서 본 것은 이 집에 두고 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집에서 드렸습니다. 거실에서요.”

윤 선생은 대답하지 않았다. 사랑방 문이 닫혔다. 이번에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소리를 안 내려고 끝까지 손으로 잡고 닫은 문이었다. 나는 그날 밤 방에 들어가 가방을 열었다. 스물두 권이 있었고 이 집 것은 없었다. 적을 데가 없었다. 볼펜을 쥐고 한참 앉아 있다가, 압수 목록 뒷면을 뒤집었다.

6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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