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265자) · 명주 · 10월 24일~31일
건너편
관찰 일지: 그 집 사람들 · 도경
만 19세 이상 이용가
이 골목에는 입주 도우미를 두는 집이 셋 있다. 우리 집, 건너편 파란 대문 집, 골목 끝 집이다. 골목 끝 집은 올봄부터 출퇴근으로 바뀌어서 이제 밤에 남는 사람은 둘이다.
입주끼리는 만나게 되어 있다. 만나는 자리가 정해져 있는데, 쓰레기 내놓는 날 저녁이다. 이 골목은 화요일과 금요일 여덟 시에서 아홉 시 사이에 내놓는다. 그 한 시간에 파란 대문이 열리고 건너편 도우미가 종량제 봉투 두 개를 양손에 들고 나온다.
건너편은 예순넷이고 그 집에 열두 해째라고 했다. 나는 그 사람 이름을 몰랐다. 서로 안 묻는다. 입주끼리는 이름보다 햇수를 먼저 묻는다. 오래 있을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아야 얼마나 말해도 되는지가 정해진다. 첫 달에 건너편이 물었다.
“오래 계실 것 같아요?”
“모르겠습니다.”
“그럼 오래 있겠네. 오래 있겠다는 사람은 금방 나가요.”
그 뒤로 건너편은 나를 새댁이라고 불렀다. 내가 쉰하나였는데도 그랬다. 이 골목에서 제일 늦게 온 사람이 새댁이라고 했다. 우리는 화요일과 금요일에 오 분씩 날씨와 배춧값 이야기를 했다. 남의 집 이야기는 안 했다. 규칙이라고 배운 적은 없는데 다들 지킨다. 안 지키는 사람은 소문이 나고, 소문이 나면 일이 끊긴다.
*
10월 24일 금요일. 20:05 쓰레기. 골목.
그날 건너편은 봉투를 내려놓고도 들어가지 않았다. 골목 가로등 밑에서 앞치마 주머니에 두 손을 넣고 서 있었다. 비가 그친 지 이틀이라 담벼락 이끼에서 축축한 냄새가 올라왔고, 멀리 성북로 쪽에서 버스가 언덕을 오르느라 기어를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새댁, 그 얘기 들었어?”
“무슨 얘기요?”
“정릉 시장 뒤 반찬가게 아줌마. 죽었대. 그저께 밤에 자기 집 바깥 철계단에서 굴렀대. 어제 아침에 우유 배달이 봤대.”
나는 봉투를 놓았다. 봉투가 골목 바닥에 떨어져 옆으로 쓰러졌다.
“비 오는 날 그 계단이 미끄럽긴 하지. 근데 그 아줌마가 그 계단을 이십 년을 오르내렸어.”
건너편은 내 봉투를 일으켜 세워 줬다. 세워 주면서 목소리를 낮췄다.
“그 아줌마 목요일마다 이 골목 올라왔어. 밤 열한 시에. 나는 봤지. 우리 집 개가 그 시간에 짖거든.”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다. 열일곱 해 동안 이런 자리에서 아무 말도 안 하는 법을 배웠다. 아무 말도 안 하면 상대가 그만두거나 더 말한다. 건너편은 더 말했다.
“그 아줌마 아들이 십일 년 전에 저 아래 성북로 굽은 길에서 죽었잖아. 치킨 배달하다가. 비 오는 밤이었는데, 친 차가 그냥 갔어. 못 잡았지.”
“그러셨습니까?”
“몰랐어? 이 골목 사람은 다 알아. 다 모르는 척하지.”
건너편이 우리 집 대문 쪽을 턱으로 가리켰다가, 가리킨 것을 스스로 놀란 사람처럼 얼른 턱을 거뒀다.
“그 주에 그 집 차가 없어졌어. 검은 거, 판사님 차.”
“차가요?”
“아이고, 내가 뭔 소리를.”
건너편은 앞치마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두 손을 한 번 털었다. 털고 나서 파란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면서 뒤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골목에 한참 서 있었다. 정릉 시장 뒤 반찬가게. 고춧가루 색 손톱. 수요일 밤 열 시 반, 우리 집으로. 판사님은 우리 집 아세요.
그 말을 윤 선생에게 옮긴 사람은 나다.
*
방에 들어와서 공책을 폈다. 들은 말은 사실이 아니다. 그 사람이 그렇게 말했다는 것만 사실이다. 나는 열일곱 해 동안 그 구분 하나로 버텼다.
20:05 골목. 건너편 도우미. 정릉 시장 뒤 반찬가게 주인 사망(들은 말). 22일 밤, 바깥 철계단.
그 줄 아래에 무엇을 더 적을 수 있는지 나는 몰랐다. 볼펜 끝이 종이에 닿은 채로 잉크가 한 점 번졌다. 번진 점이 커지는 것을 보다가 나는 공책을 뒤집어 맨 뒷장을 폈다. 짐작 칸이다.
※ 수요일 22:30. 그 집으로. 내가 전했다.
짐작 칸에 적었지만 그건 짐작이 아니었다. 사실이었다. 사실인데 앞장에 적을 수가 없었다. 앞장은 그날 있었던 일을 적는 곳이고, 그 말을 전한 것은 나흘 전 일이다. 나흘 전 줄은 이미 거기 있다.
19:32 사랑방. 윤 선생께 방문자 말 전함. 수요일 22:30, 그 집으로.
나는 그 줄을 오래 봤다. 적을 때는 옮긴 사람이 누구인지 남기려고 적었다. 그날 밤에는 그 줄이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튿날은 토요일이었다. 윤 선생은 식탁에서 신문을 보고 사랑방으로 들어갔다. 신문은 식탁에 놓인 그대로였는데 사회면 한 장이 안쪽으로 접혀 있었다. 나는 그릇을 치우다가 그 접힌 자리를 손바닥으로 폈다. 오른쪽 아래 귀퉁이에 기사가 하나 있었다. 성북구 정릉동 다세대 주택 바깥 계단에서 오십 대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고, 경찰은 비에 미끄러진 사고로 보고 있다고 했다. 이름은 없었다. 그 짧은 기사 옆에 커피 잔을 내려놓은 자국이 동그랗게 번져 있었다. 나는 신문을 도로 접었다. 윤 선생이 접은 자리 그대로 접었다. 그 사람 손으로 접힌 자리는 다리미로 누른 것처럼 날이 서 있었다.
10월 25일 토요일. 07:30 식탁 신문. 사회면 접힘. 정릉동 계단 사망 기사(이름 없음).
*
10월 28일 화요일. 20:00 쓰레기. 골목. 검은 차 1대(파란 대문 앞).
화요일 저녁 골목에 검은 세단이 서 있었다. 윤 선생 차는 아니었다. 파란 대문 앞에 회색 양복을 입은 남자가 서류 가방을 들고 초인종을 누르고 있었다. 마흔 후반으로 보였고, 머리를 뒤로 넘겨 이마가 넓었다. 문이 열리자 남자는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했다. 건너편이 아니라 그 집 사모님이 직접 나왔다. 남자는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대문 안쪽에 서서 오 분쯤 이야기했다. 나는 봉투를 내려놓았다. 건너편은 그날 나오지 않았다.
남자가 대문을 나오다가 나를 봤다. 봤다기보다 알아봤다. 서류 가방을 왼손으로 옮기고 오른손을 내밀면서 다가왔다.
“오명주 씨죠? 법무법인 정도 사무장 강동수입니다. 대표님 모시고 있습니다.”
나는 그 손을 잡지 않았다. 손에 쓰레기 냄새가 배어 있었다. 강동수 씨는 손을 거두면서도 웃음은 거두지 않았다.
“대표님께서 추석 때 못 챙겨 드렸다고 마음이 쓰이신답니다.”
양복 안주머니에서 흰 봉투가 나왔다. 닷새 전 부엌 식탁에 놓였던 것과 같은 크기였다.
“월급은 이십오 일에 통장으로 받습니다.”
“대표님이 그러실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사람은 봉투를 도로 넣지 않고 손가락 사이에 끼운 채로 가볍게 흔들었다. 흔들 때마다 봉투 안에서 종이가 서로 스치는 소리가 났다.
“건너편 분이랑 말씀 많이 하세요?”
“날씨 얘기를 합니다.”
“좋네요. 날씨 얘기는 좋죠.”
강동수 씨가 파란 대문을 돌아봤다.
“이런 동네는 말이 한 번 돌면 제일 먼저 다치는 게 이 일 하시는 분들이에요. 사모님들은 안 다쳐요. 사모님들은 이사 가시면 되니까.”
“네.”
“오명주 씨는 전에 계시던 첫 집에서 반지 일 한 번 겪으셨다면서요.”
골목 가로등이 한 번 깜빡였다.
그 이야기는 소개소 파일에 있다. 열일곱 해 전 첫 집에서 반지가 없어졌고, 나흘 뒤 세탁기 안에서 나왔다. 사모님이 앞치마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반지였다. 소개소는 그 일을 「분실 후 발견. 도우미 과실 없음」이라고 적었다. 과실이 없다는 말까지 적혀 있는데도 그 파일을 읽는 사람은 앞의 네 글자만 기억한다. 반지 분실.
“그때 억울하셨겠어요. 사람이 한 번 그런 일 겪으면, 다음부터 뭐든 적어 두게 되죠.”
“네.”
“근데 그런 기록은 그런 분이 적은 기록으로 읽혀요. 법정에서는요.”
그 사람은 봉투를 결국 안주머니에 넣었다. 넣고 나서 내 쓰레기봉투를 내려다보고, 매듭을 한 번 더 묶어 줬다. 친절한 손이었다. 친절한 손으로 묶은 매듭이 제일 안 풀린다.
20:10 골목. 법무법인 정도 사무장 강동수(본인 말). 봉투 내밀었음. 받지 않음. ※ 첫 집 반지 일을 알고 있음.
*
10월 30일 목요일. 20:10 전화. 딸. 약 육 분.
딸한테서 전화가 왔다. 수아는 스물아홉이고 물류회사에서 돈 계산을 한다. 한 달에 한 번쯤 전화하는데, 내가 먼저 거는 일은 없다. 걸었다가 일하는 중이면 그 애가 곤란하다.
“엄마, 나 이사했어. 방 둘짜리야.”
“잘했네.”
“하나는 엄마 방이야.”
“내 방이 왜 있어.”
“엄마가 쉬는 날 여관 가니까 있지. 삼만 오천 원씩 여관 주지 말고 나 줘. 나는 이만 원만 받을게.”
수아는 웃었고 나도 조금 웃었다. 웃다가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엄마 요즘 목소리 이상해. 거기 무슨 일 있어?”
“조용해.”
“조용한 게 좋은 거야?”
나는 대답을 못 했다. 열일곱 해 동안 그 애가 사람들 어떠냐고 물으면 나는 늘 좋다고 했다.
“엄마, 이상하면 나와. 엄마 방 비워 놨으니까.”
※ 딸. 방 둘. 하나 비워 둠.
*
10월 31일 금요일. 20:00 쓰레기. 골목. 건너편 짐가방 둘.
금요일 저녁에 파란 대문이 열리고 건너편이 나왔다. 종량제 봉투가 아니라 바퀴 달린 짐가방 두 개를 끌고 있었다. 하나는 바퀴가 하나 빠져서 골목 바닥을 긁었다.
“나 잘렸어. 열두 해 만에.”
나는 봉투를 든 채로 서 있었다.
“사모님이 울더라. 미안하다고. 자기도 어쩔 수 없대. 무슨 변호사가 와서, 이 집 도우미가 동네에 남의 집 얘기를 하고 다닌다고, 그 집 사모님 모임 사람들 다 아는 얘기라고.”
건너편은 짐가방 손잡이를 쥔 손을 폈다 쥐었다 했다.
“근데 새댁, 나는 그 얘기 새댁한테밖에 안 했어.”
“압니다.”
“그니까 그 변호사가 새댁 얘기를 들은 게 아니라 새댁을 본 거야. 우리 둘이 오 분 서 있는 걸.”
그 말이 맞았다. 강동수 씨는 화요일에 나를 알아봤다. 알아보려면 먼저 봐야 한다.
“당분간 삼선교 청수장 여관에 있을 거야. 다음 집 구할 때까지. 이 나이에 입주 받아 주는 데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건너편이 짐가방을 끌고 골목을 내려가다가 멈췄다.
“새댁 이름이 뭐야?”
“오명주입니다.”
“나는 문영애야. 열두 해 동안 이 골목에서 내 이름 부른 사람 없었어.”
“문영애 씨.”
“그래, 그거.”
문영애 씨는 웃고 나서 다시 내려갔다. 빠진 바퀴 쪽 가방이 골목 끝 모퉁이를 돌 때까지 바닥 긁는 소리가 났다. 나는 그 소리가 안 들릴 때까지 서 있었다.
20:05 골목. 건너편 도우미 퇴직. 성함 문영애(본인 말). 삼선교 청수장 여관.
열네 달 동안 화요일과 금요일에 오 분씩, 백 번 넘게 마주 선 사람의 이름을 나는 그 사람이 떠나는 날 처음 적었다. 이름을 적으면 사람이 된다. 사람이 되면 그 사람이 어디 있는지가 궁금해진다. 나는 그 여관 이름에 볼펜으로 밑줄을 한 번 그었다. 열일곱 해 동안 내 공책에 밑줄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