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380자) · 명주 · 10월 20일~23일
전해 주세요
관찰 일지: 그 집 사람들 · 도경
만 19세 이상 이용가
토요일 아침에 윤 선생이 부엌 입구에 서서 말했다. 주말에 그 사람이 부엌까지 오는 일은 없었다.
“그 여자가 다시 오면 문 열지 마십시오. 인터폰에는 안 계신다고 하시고요.”
“사모님께 말씀드릴까요?”
“아니요. 저한테 전하십시오.”
그 말을 하고 윤 선생은 식탁 위 신문을 가져갔다. 가져가면서 신문을 반으로 접었는데, 접힌 안쪽 면에 사진 여덟 장이 두 줄로 박혀 있는 것이 보였다. 양복 입은 남자 여섯에 여자 둘이었고, 윗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윤 선생이었다. 사진 위 제목은 「대법관 후보 8명 압축」이었다. 나는 그 신문을 아침에 식탁에 놓으면서 제목만 봤고 사진은 안 봤다. 열네 달 동안 매일 아침 그 사람 신문을 식탁에 놓았는데, 그 신문에 그 사람 얼굴이 나온 줄은 몰랐다.
10월 18일 토요일. 08:10 윤 선생. “그 여자가 오면 문 열지 말 것. 저한테 전할 것.”
*
10월 20일 월요일. 15:00 초인종.
이 집 초인종은 드물게 운다. 열네 달 동안 열한 번 울었는데 아홉 번이 택배였고 두 번이 가스 검침이었다. 나는 인터폰 화면을 봤다.
그 사람이었다. 낮에 보니까 밤에 본 것보다 나이가 더 들어 보였다. 회색 코트 대신 남색 점퍼를 입었고, 점퍼 밑으로 비닐 앞치마 끈이 삐져나와 있었다. 시장에서 일하다 그대로 온 사람이었다. 화면 가장자리에 그 사람 손이 보였는데, 손가락 마디가 붉게 트고 손톱 밑이 고춧가루 색이었다.
“네.”
“사모님 계세요?”
사모님은 계셨다. 2층 안방에 계셨다.
“안 계십니다.”
열일곱 해 동안 나는 거짓말을 한 번도 안 했다. 모른다고 한 적은 많아도 없는 것을 있다고, 있는 것을 없다고 한 적은 없었다. 그 말이 입에서 나가는 동안 나는 인터폰 버튼을 누른 엄지 끝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화면 속 그 사람이 조금 물러났다가 다시 다가왔다.
“지난주에 부엌 불 켜 준 분이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고마웠어요. 손목이 좀 부었는데, 그 정도로 끝났어요.”
그 사람이 왼손으로 오른손 손목을 쥐어 보였다. 화면이 작아서 부은 것은 안 보였다.
“그럼 아주머니한테 말할게요. 윤 판사님께 전해 주세요. 수요일 밤 열 시 반에 우리 집으로 오시라고요. 판사님은 우리 집 아세요.”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한경숙이라고 하면 알아요.”
한경숙 씨가 화면에서 한 번 더 2층 쪽을 올려다봤다. 인터폰 카메라로는 2층이 안 보이는데도 그랬다.
“그리고 그 방 애는 오지 말라고 하세요. 판사님만요. 이번엔 어른끼리 할 얘기예요.”
화면이 꺼졌다.
15:00 초인종. 방문자 1인. 여성. 성명 한경숙(본인 말). 15:03 돌아감. ※ 사모님 계신데 안 계신다고 함(윤 선생 지시).
셋째 줄을 적을까 말까 오래 망설였다. 거짓말한 것을 제 손으로 적는 일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안 적으면 그 칸이 비고, 빈 칸은 나중에 누가 물으면 대답을 못 한다. 첫 집에서 나는 그 빈 칸 때문에 사흘 동안 아무한테도 말을 못 들었다.
*
전할지 말지는 고민하지 않았다. 전해 달라는 말을 들었고, 저한테 전하라는 말을 들었다. 두 말이 같은 쪽을 가리켰다. 이 일은 들은 말을 옮기는 일이고, 옮기는 사람이 말을 고르면 그건 옮기는 게 아니다.
그날 밤 일곱 시 반에 사랑방 문을 두드렸다. 윤 선생은 스탠드만 켜 놓고 서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들은 대로 말했다. 한 자도 빼지 않았다. 수요일 밤 열 시 반, 우리 집으로, 판사님은 우리 집 아세요, 그 방 애는 오지 말고 판사님만, 이번엔 어른끼리.
윤 선생은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몇 시라고 했습니까?”
“열 시 반입니다.”
“정확하시네요.”
“들은 대로입니다.”
“적으셨습니까?”
“오후 것은 적었습니다.”
그 사람이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스탠드 불빛이 턱 밑에서 올라와 눈두덩에 그늘이 졌다.
“지금 이건 적지 마십시오.”
“네.”
나는 사랑방을 나왔다. 내 방까지 열한 걸음이었다. 방에 들어가 공책을 펴고, 한참 앉아 있다가 적었다.
19:32 사랑방. 윤 선생께 방문자 말 전함. 수요일 22:30, 그 집으로.
적지 말라는 말을 듣고 네라고 대답한 뒤에 적었다. 그 네는 거짓말이 됐다. 하루에 두 번 거짓말을 한 날이었다. 둘 다 그 사람한테서 나온 거짓말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줄을 지우지 않았다. 지우면 내가 그 말을 전하지 않은 사람이 된다. 나는 전했다. 그 말을 누가 누구한테 옮겼는지가 빠지면, 그 말은 저 혼자 걸어간 말이 된다.
*
10월 22일 수요일. 18:00 저녁. 2인분. 19:40 비 시작. 21:00 일지.
수요일에는 평소대로 저녁을 했다. 윤 선생은 일곱 시에 들어와 식탁에서 사모님과 밥을 먹었는데, 된장국 한 그릇을 다 비웠다. 열네 달 동안 그 사람이 국을 남기지 않은 날은 드물었다. 비는 일곱 시 사십 분부터 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부엌 창에 점 몇 개가 찍히더니 여덟 시가 넘자 차고 셔터가 빗소리로 양철통처럼 울렸다.
아홉 시 십 분에 윤 선생이 부엌에 와서 따뜻한 물 한 컵을 부탁했다. 사모님이 약을 드셔야 한다고 했다. 나는 물을 떠서 안방에 가져다드렸다. 사모님은 침대 머리맡에 앉아 계셨고, 협탁 위에 흰 알약 한 알이 휴지 위에 놓여 있었다. 사모님은 그 약을 오래 보시다가 드셨다. 드시고 나서 나에게 불 좀 꺼 달라고 하셨다. 아홉 시 반도 안 된 시각이었다.
21:10 안방. 사모님 약 드실 물 한 컵(윤 선생 부탁). 21:14 안방 소등(사모님 부탁).
22:07 차고 셔터. 차 나감.
이 집 차고 셔터는 올라갈 때 쇳소리를 길게 낸다. 모터가 오래돼서 첫 두 뼘을 올리는 데 한 번 걸렸다가 다시 올라간다. 그 소리가 끝나고 엔진 소리가 났고, 바퀴가 대문 앞 물웅덩이를 밟는 소리가 났다. 셔터가 다시 내려왔다. 나는 누워 있다가 시계를 봤다. 열 시 칠 분이었다.
이 집 차는 한 대고, 모는 사람은 한 사람이다.
22:20 2층 끝 방 불빛. 의자 소리.
열 시 이십 분에 나는 2층에 올라갔다. 복도 끝 건조대에 수건이 널려 있었는데, 비가 오면 복도 창으로 습기가 들어와 밤새 안 마른다. 걷어서 1층 보일러실에 널어야 했다. 2층 복도 청소는 일주일에 한 번이지만 빨래 걷는 것은 청소가 아니다.
계단 네 번째 칸은 건너뛰었다. 복도에 올라서니 끝 방 문 밑으로 빛이 나와 있었다. 문과 마루 사이 손가락 두 마디 틈으로 누런 빛이 복도 바닥에 얇게 깔려 있었다. 수요일이었다. 열네 달 동안 그 방에 불이 켜진 것은 목요일 밤뿐이었다.
수건을 걷는 동안 의자 끄는 소리가 한 번 났다. 그 방 바닥은 마루다. 마루에서 의자를 끌면 소리가 난다.
나는 그 문 쪽으로 가지 않았다. 문을 보지도 않았다. 수건 여섯 장을 안고 계단을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네 번째 칸을 이번에는 밟았다. 발이 먼저 거기 닿았고, 칸이 울었다. 2층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22:23 2층 건조대 수건 여섯 걷음.
23:48 차고 셔터. 차 들어옴. 23:52 현관.
열한 시 사십팔 분에 셔터가 다시 쇳소리를 냈다. 사 분 뒤에 현관문이 열렸다. 발소리는 사랑방으로 곧장 가지 않고 현관에서 오래 멈췄다. 신발을 벗는 소리가 났고, 무엇을 바닥에 까는 종이 소리가 났다. 신문지 소리였다. 그러고 사랑방 문이 열렸다 닫혔다. 이번에도 소리가 났다.
나는 열한 시 오십 분에 불을 껐다.
*
10월 23일 목요일. 06:35 현관.
현관 매트가 흙투성이였다. 비 온 날 흙은 대개 매트 가장자리에 묻는데 그날은 한가운데 두 발 모양으로 짙게 묻어 있었다. 그리고 현관 구석, 신발장 옆에 신문지가 깔려 있었고 그 위에 윤 선생 구두가 놓여 있었다. 속까지 젖어 가죽이 검게 불어 있었다. 윤 선생은 구두를 한 번도 신발장 밖에 둔 적이 없는 사람이다. 벗으면 뒤축을 맞춰 넣고 문을 닫는다. 우산꽂이에는 윤 선생 장우산이 말라 있었다.
06:36 현관 매트 흙. 윤 선생 구두 젖음, 신문지 위. 우산 마름.
일곱 시에 윤 선생이 부엌으로 들어왔다. 열네 달 동안 아침에 그 사람이 부엌에 들어온 것은 처음이었다. 셔츠는 다려져 있었고 넥타이는 매지 않았다.
“커피 한 잔 주시겠습니까?”
나는 커피를 탔다. 그 사람은 식탁에 앉지 않고 서서 마셨다.
“어젯밤 저는 집에 있었습니다. 사랑방에서 기록을 봤습니다. 열 시부터 한 시까지요.”
나는 컵을 닦던 손을 멈추지 않았다.
“아주머니는 열 시 반에 주무셨고요.”
“저는 열한 시 오십 분에 잤습니다.”
“열 시 반에 주무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셨습니다. 그런데 열한 시 오십 분에 잤습니다.”
윤 선생이 커피 잔을 식탁에 내려놓았다. 소리가 나지 않게 내려놓았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손이 더 크게 보였다.
“어젯밤 차고 소리를 들으셨습니까?”
“적힌 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여쭙는 겁니다.”
“누가 물으시면요. 지금은 선생님이 물으시는 것이니까, 선생님은 아시는 걸 여쭤보시는 겁니다.”
그 말을 하고 나서 나는 행주를 내려놓았다. 손이 떨려서 더 쥐고 있을 수가 없었다. 윤 선생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셔츠 안주머니에서 흰 봉투를 꺼내 식탁 위에 놓았다.
“이번 달 수고비입니다. 추석 때 못 챙겨 드렸습니다.”
추석은 삼 주 전이었고, 추석 수고비는 그때 사모님께 받았다. 봉투는 두툼했다. 두 달 치쯤으로 보였다.
“월급은 이십오 일에 통장으로 받습니다.”
“이건 월급이 아닙니다.”
“그럼 더 못 받습니다.”
윤 선생이 봉투를 도로 넣었다. 넣고 나서 나를 봤는데, 사랑방에서 서약서를 내밀던 그 눈이었다. 판결을 이미 써 놓고 선고만 남은 사람의 눈이었다.
“아주머니, 공책 잘 두십시오. 비 오는 계절이라 종이가 상합니다.”
그 사람은 일곱 시 십사 분에 나갔다.
07:00 윤 선생. 주방. 커피. “어젯밤 집에 있었다. 열 시부터 한 시까지.” 07:05 봉투 내밀었음. 받지 않음. 07:14 윤 선생 출근.
열네 달 동안 일곱 시 십 분이 아닌 날이 두 번 있었다. 그날이 세 번째였다.
*
그날은 목요일이었다. 사모님은 여섯 시 사십 분에 나가지 않으셨다. 안방에서 한 번도 안 내려오셨다. 나는 저녁을 하지 않았다. 규칙이라서가 아니라 먹을 사람이 없었다.
23:00 대문 소리 없음. 23:30 대문 소리 없음. 24:00 대문 소리 없음. ※ 2층 끝 방 불빛 없음.
열네 달 동안 목요일 밤에 대문이 안 열린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일지는 있는 것만 적는다. 없는 것을 적기 시작하면 그건 일지가 아니라 기다리는 것이 된다. 나는 그날 없는 것을 네 줄 적었다. 적고 나서 불을 끄지 않고 오래 앉아 있었다. 창 없는 방 벽에 보일러 배관이 한 번 떨었다. 기다렸는데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