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298자) · 명주 · 10월 16일

십일 년째 목요일

관찰 일지: 그 집 사람들 · 도경

만 19세 이상 이용가

10월 16일 목요일. 06:20 기상. 07:10 윤 선생 출근. 07:35 사모님 아침. 안 드심. 09:00 2층 복도 청소 안 함(주 1회 지시). 18:00 저녁 준비하지 않음. 18:40 사모님 외출. 차 안 가져감. 22:40 윤 선생 귀가. 23:00 대문 소리. 두 번.

사모님은 목요일마다 여섯 시 사십 분에 나가신다. 차를 두고 콜택시를 부르시고, 돌아오시는 것은 아홉 시 전후다. 어디 가시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그날은 나가시기 전에 현관에서 신문지에 싼 흰 국화를 한 번 풀었다가 다시 싸셨다. 줄기 끝을 가위로 비스듬히 새로 자르시고 젖은 휴지를 감으셨다. 꽃을 오래 들고 가야 하는 사람이 하는 손이었다. 현관 바닥에 잘린 줄기 끝 네 토막과 국화 잎 두 장이 떨어져 있었고, 나는 그것을 쓰레기통 옆으로 쓸어 담으면서 쌉싸름한 국화 냄새를 맡았다. 초겨울 장례식장 복도에서 나는 냄새였다.

18:42 현관. 국화 줄기 네 토막. 쓸어 냄.

나는 그날 자지 않았다.

자지 않기로 한 것은 아니었다. 열한 시에 대문 소리가 나면 눈이 떠지는 것이 열네 달째 몸에 붙어 있었을 뿐이다. 다만 그날은 일어나서 부엌으로 나갔다. 물을 마시러 나갔다. 나는 나중에 이 부분을 여러 번 말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물을 마시러 나갔다고 했고 그건 사실이다. 그 사실을 사실로 만들려고 나는 그날 밤 부엌에서 물을 세 컵 마셨다. 세 번째 컵은 배가 불러서 반만 마셨다.

불은 켜지 않았다. 불을 켜지 않은 채로 부엌 창 앞에 섰다.

이 집 부엌 창은 열지 않는 창이다. 규칙 첫째다. 유리가 두 겹이고 바깥 유리에는 빗물 자국이 말라 붙어 뿌옇다. 그 창으로 차고 앞 수돗가와 마당 한쪽, 감나무 밑 의자가 보인다. 불 꺼진 부엌에서 보면 마당의 보안등 불빛이 유리 두 장을 지나 누렇게 풀어지고, 냉장고가 삼 분마다 한 번씩 모터를 멈출 때면 그 누런 빛 속에서 내 숨소리만 남는다.

마당에 두 사람이 있었다.

사모님과 여자였다. 여자는 쉰 넘어 보였고, 무릎까지 오는 회색 코트를 입고 있었다. 코트 소매 끝이 닳아서 보안등 아래에서도 올이 보였다. 나는 그 사람 신발부터 봤는데, 굽이 낮고 앞코가 둥근 구두였다. 이 주 전 현관 매트에 찍혀 있던 그 구두였다.

둘은 감나무 밑에 서 있었다. 의자가 하나 있는데 아무도 앉지 않았다. 손님이 있으면 의자를 권한다. 의자가 하나뿐이면 더 그렇다. 권하지 않는 것은 손님이 오래 있을 사람이 아니거나, 손님이 앉기를 거절하는 사람이다.

소리는 안 들렸다. 유리가 두 겹이다. 그래서 나는 손을 봤다. 열일곱 해 동안 남의 집에서 소리가 안 들리는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이 일이다. 주방에서 거실은 안 보이고 2층에서 마당은 안 들린다. 그래서 손으로 안다.

사모님이 봉투를 내밀었다. 누런 서류 봉투였고, 모서리가 불룩했다. 여자는 받지 않았다. 사모님 손이 봉투를 든 채로 한참 공중에 있었다. 여자가 고개를 한 번 저었고, 사모님이 한 번 더 내밀었고, 여자가 손등으로 그 봉투를 밀었다. 세게 민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사모님 손이 그 봉투를 놓쳤다.

봉투가 젖은 흙에 떨어졌다. 떨어지는 소리가 유리 두 장을 넘어서 들렸다.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2층을 봤다. 나는 그 시선이 어느 창으로 가는지 봤다. 끝 방이었다. 그 창에 불이 켜져 있었다. 남색 커튼 너머로 불빛이 번져 있었고, 그 번진 불빛 한가운데 누가 앉아 있는 그림자가 있었다. 의자에 앉아 창 쪽을 보고 있는 사람의 어깨였다.

여자가 입을 크게 벌렸다. 그 말은 들렸다. 창을 향해 한 말이라 컸다.

“다음 주 목요일엔 같이 가자.”

그 말 뒤에 현관문이 열렸다.

*

윤 선생이 나왔다.

열네 달 동안 목요일 밤에 그 사람이 마당에 나온 것은 처음이었다.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이 사람은 집 안에서도 슬리퍼를 끌지 않는다. 뒤축을 들고 걷는다. 그날은 끌었다. 슬리퍼 바닥이 마당 디딤돌을 긁는 소리가 부엌까지 왔다.

윤 선생은 사모님 앞을 지나 여자 앞에 섰다. 무슨 말을 했다. 입이 짧게 두 번 움직였다. 여자가 대답하지 않고 다시 2층을 봤다. 그러자 윤 선생이 여자의 손목을 잡았다.

잡은 것이 아니라 쥐었다. 손목을 쥔 손등에 힘줄이 섰다. 여자의 가방끈이 어깨에서 미끄러져 팔꿈치에 걸렸다. 윤 선생이 대문 쪽으로 한 걸음 당겼고, 여자는 끌려가지 않으려고 뒤꿈치를 흙에 박았다. 사모님이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나는 스위치를 찾았다. 찾을 필요가 없었다. 열네 달 동안 매일 아침 여섯 시 사십 분에 켠 스위치다. 손이 먼저 거기 가 있었다.

불을 켰다.

부엌이 환해지자 창이 바뀌었다. 밖을 보던 창이 안을 보이는 창이 됐다. 마당 쪽에서 보면 불 켜진 부엌 창에 앞치마를 두른 사람 하나가 서 있었을 것이다. 컵을 든 채로.

마당의 세 사람이 동시에 이쪽을 봤다.

윤 선생 손이 풀렸다. 여자가 손목을 다른 손으로 감쌌다. 사모님은 입에서 손을 내리지 못했다. 그리고 여자가 나를 봤다. 유리 두 장을 사이에 두고, 보안등 불빛과 부엌 형광등이 섞인 자리에서, 오래 봤다. 무엇을 보는 눈인지 나는 몰랐다. 원망하는 눈은 아니었다. 거기 사람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을 처음 안 사람의 눈이었다.

여자가 갔다. 대문까지 열두 걸음인 마당을 여자는 열다섯 걸음에 갔다. 두 번 멈췄고, 두 번 다 2층을 봤다.

23:14 마당. 사모님, 여자 1인. 봉투 떨어짐. 23:17 윤 선생 마당에 나옴. 여자 손목 잡음. 23:18 부엌 소등 → 점등. 23:20 여자 나감. 대문까지 열다섯 걸음. 나가면서 2층 끝 방 창 봄. 23:22 대문. 두 번.

「손목 잡음」이라고 적을 때 나는 볼펜을 한 번 멈췄다. 쥐었다고 쓰고 싶었다. 쥐었다는 것은 내가 본 손등 힘줄의 말이고, 잡았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다. 일지에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을 쓴다. 그런데 그 줄은 나중에 누구나 할 수 있는 말로는 부족한 자리에서 읽히게 된다.

*

윤 선생이 현관으로 들어오다가 부엌 앞에서 멈췄다.

“안 주무셨습니까?”

“물 마시러 나왔습니다.”

“물은 불 없이도 마십니다.”

“컵을 찾느라고요.”

윤 선생이 내 손을 봤다. 컵이 들려 있었다. 그 사람은 아무 말 없이 부엌 스위치에 손을 뻗어 불을 껐다. 부엌이 도로 어두워졌다. 어두운 데서 그 사람 목소리가 났다.

“오늘 본 건 이 집에 두고 가십시오.”

“네.”

“적지도 마시고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네라고 하면 거짓말이 되고, 아니라고 하면 그다음 말이 따라온다. 윤 선생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사랑방 문이 닫혔다. 사랑방 문은 닫힐 때 소리가 안 나는 문인데 그날은 났다.

나는 불을 다시 켜지 않았다. 켤 필요가 없었다. 마당에 이제 사모님 한 분만 계셨다.

*

23:25 사모님 귀가. 마당에 십 분.

사모님은 바로 들어오지 않았다. 떨어진 봉투를 줍지도 않았다. 감나무 밑에 서서 2층을 올려다보고 계셨는데, 그사이 끝 방 불이 꺼졌다. 불이 꺼진 뒤에도 사모님은 한참 거기 서 계셨다.

들어오셔서 부엌 불을 켜셨다. 나를 보셨다.

“안 주무셨어요?”

“물 마시러 나왔습니다.”

“아까 불 켜신 거.”

“네.”

“아주머니가 켜셨죠.”

“네.”

사모님이 컵을 꺼냈다. 손이 떨려서 컵이 찬장 문에 한 번 부딪혔다. 나는 봤고, 봤다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싱크대를 봤다.

“그 사람 손목, 아팠을 거예요.”

사모님은 그 말을 누구한테 하는지 모르는 목소리로 하셨다. 그러고 식탁 의자를 빼서 앉으셨다. 네 개 중에 늘 앉으시는 자리였다.

“앉으세요.”

“괜찮습니다.”

“앉으세요.”

나는 앉았다. 이 집 식탁에 앉은 것은 처음이다. 앉고 나서 나는 내가 앉은 자리가 열네 달 동안 아무도 안 앉은 넷째 자리라는 것을 알았다. 등받이 나무가 차가웠다.

냉장고 소리가 멈췄다. 그 조용한 사이에 사모님이 말씀하셨다.

“우리 애가 하나 더 있었어요. 지완이 위로요.”

부엌이 조용했다.

“목요일에 갔어요. 오늘이 딱 십일 년 되는 날이에요.”

「갔다」는 말을 나는 속으로 한 번 더 들었다. 죽었다는 말을 사람들은 대개 갔다고 한다. 그런데 사모님은 그 말을 하면서 천장을 봤다. 2층 끝 방이 있는 쪽이었다.

“그날 저녁을 하고 있었거든요. 된장찌개를 끓이고 있었어요. 그래서 목요일에는 저녁을 안 해요.”

“네.”

“이유가 없는 규칙이라고 생각하셨죠.”

“네.”

“이유가 없는 게 아니라 말할 수가 없는 거였어요.”

나는 그때 열일곱 해 동안 지켜 온 것을 하나 깼다.

“여쭤봐도 됩니까? 오늘 오신 분은요.”

사모님의 얼굴이 아주 조금 변했다. 열일곱 해 동안 남의 집 얼굴만 본 사람은 그 조금을 본다. 입꼬리가 아니라 눈 밑이 먼저 굳었다.

“그건 안 물어보시는 게 좋아요.”

“네.”

“아주머니 좋으시라고 하는 말이에요.”

“압니다.”

사모님이 일어서셨다. 컵을 싱크대에 넣고 나가시다가 문틀을 짚고 돌아보셨다.

“일지 쓰시죠.”

“씁니다.”

“오늘 것도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쓰세요.”

그 말은 두 번째로 듣는 말이었다. 지완 씨에게 한 번, 사모님에게 한 번. 같은 날 같은 집에서 아버지는 적지 말라고 했고 어머니는 쓰라고 했다.

*

10월 17일 금요일. 06:30 감나무 밑 봉투 1. 젖음. 줍지 않음.

아침에 마당에 나가 보니 봉투가 거기 있었다. 밤새 이슬을 먹어서 누런 종이가 갈색으로 변해 있었고, 한쪽 모서리가 흙에 박혀 있었다. 두께가 손가락 두 마디쯤 됐다. 나는 그것을 내려다보기만 했다. 이 집에서 내가 줍는 것은 정해져 있다. 바닥에 떨어진 옷, 컵, 쓰레기통 옆의 것. 봉투는 거기 없다.

일곱 시 십 분에 윤 선생이 대문으로 나갔다. 마당을 가로질러 가는 길에서 감나무까지는 세 걸음이 비껴 있다. 그 사람은 그쪽을 보지 않았다.

09:00 감나무 밑 봉투 없음.

아홉 시에 다시 나가 보니 봉투가 없었다. 흙에 네모난 자국만 남아 있었다. 누가 가져갔는지 나는 모른다. 사모님은 그 시각 안방에 계셨고, 지완 씨는 방에 있었고, 윤 선생은 나갔다. 가져간 사람을 모르면 가져갔다고 적지 않는다. 없다고만 적는다.

그날 밤 나는 공책 맨 뒷장을 폈다. 짐작 칸이다. 지난주에 적은 줄 아래에 한 줄을 더 적었다.

※ 불을 켜면 숨는 것이 아니다.

어젯밤 나는 불을 켰다. 켜지 않고 있었으면 나는 그 마당을 훔쳐본 사람이 됐을 것이다. 켜는 순간 나는 거기 서 있는 사람이 됐다. 숨어서 본 것은 들킬까 봐 말을 못 하고, 서서 본 것은 물으면 말할 수 있다. 여자가 유리 너머에서 나를 오래 본 이유를 나는 그렇게 짐작했다. 짐작이라서 뒷장에 적었다.

3화는 어땠나요?

댓글 2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 종이배2026.05.15· 3화

    여기서 끊는 건 반칙 아닌가요… 잘 읽었습니다.

    • 일곱줄2026.05.16

      저는 오히려 그 앞 문단이 더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