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180자) · 명주 · 10월 9일

열두 걸음

관찰 일지: 그 집 사람들 · 도경

만 19세 이상 이용가

10월 9일 목요일. 06:20 기상. 06:40 주방. 쌀 세 컵. 07:10 윤 선생 출근. 우산 가져감. 비 예보 없음. 07:35 사모님 아침. 안 드심. 09:00 2층 복도 청소. 09:14 2층 끝 방 문 열려 있음.

그 방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나는 열네 달 만에 처음 봤다.

사모님은 그 방을 서재라고 부르셨다. 2층 서재는 안 하셔도 돼요. 서재라고 부르면 책이 있는 방이고, 책이 있는 방은 아무도 안 들어가도 이상하지 않다. 그래서 열네 달 동안 나는 그 앞을 걸레로 닦고 지나가기만 했다.

문이 열려 있으면 두 가지다. 누가 열어 둔 것이거나, 닫는 것을 잊은 것이다. 이 집 사람들은 닫는 것을 잊는 사람들이 아니다.

나는 복도를 닦으면서 그 앞을 세 번 지났다. 세 번 다 눈을 옆으로 돌렸다. 네 번째에 봤다.

책상이 하나 있고 그 위에 종이가 세 무더기로 반듯하게 쌓여 있었다. 반듯하게 쌓인 종이는 누가 자주 만지는 종이다. 책장은 가운데 칸만 비어 있었는데, 책을 뺄 때 사람들은 끝에서 빼지 가운데서 빼지 않는다. 창에는 남색 커튼이 쳐져 있었고, 그 커튼은 오래 걷히지 않은 커튼이었다. 오래 안 걷힌 천은 주름이 굳어서 세로로 선 채 빛을 먹는다. 그 틈으로 들어온 아침 햇빛이 바닥에 손가락 두 개 너비로 누워 있었고, 그 빛 속에 먼지가 떠 있었다.

바닥에도 먼지가 있었다. 그런데 고르지 않았다. 문에서 책상까지만 얇았다.

발자국이 있었다. 하나는 운동화였다. 밑창에 물결 무늬가 있는 큰 발, 일주일 전 현관 매트에 찍혀 있던 그 무늬였다. 다른 하나는 맨발이었는데 작았고, 엄지와 그 옆 발가락만 먼지 위에 동그랗게 찍혀 있었다. 발끝으로 걸은 자국이었다. 소리를 안 내려는 사람은 발끝으로 걷는다.

나는 문을 닫았다. 손잡이를 잡을 때 행주를 대고 잡았다. 지문 때문이 아니었다. 손이 떨려서, 떨리는 손으로 쇠를 잡으면 소리가 날 것 같았다.

09:20 2층 끝 방 문 닫음.

문을 닫고 계단 맨 윗칸에 앉았다. 앉으려고 한 게 아니라 무릎이 먼저 접혔다. 열일곱 해 동안 남의 집 계단에 앉은 것은 처음이었다. 앉아서 나는 세 가지를 정리했다.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문은 내가 열지 않았다. 닫은 것은 나다. 앞의 둘은 안 한 일이고 셋째만 한 일이라, 누가 물으면 이유를 댈 것은 셋째 하나였다.

일어나서 손목시계를 봤다. 열네 해째 차는 삼만 원짜리 시계다.

09:29 2층 복도 청소 재개.

두 줄 사이에 구 분이 비었다. 열네 달 동안 내 일지에 빈 구 분은 처음이다.

*

집이라는 것은 거리로 되어 있다. 대문에서 현관까지 열두 걸음, 현관에서 주방까지 아홉 걸음, 주방에서 2층 끝 방까지 스물넷이다. 처음에는 세지 않았는데 두 달쯤 지나니 저절로 세어졌고, 반년이 지나니 안 세면 발이 허전했다. 스물네 걸음은 열네 달 동안 한 번도 끝까지 걸어 본 적이 없는 거리다. 문 앞이 스물세 번째고, 스물네 번째가 문 안이다. 그날 아침에도 나는 스물세 번째에서 멈췄다.

열한 시에 장을 보러 나가면서 골목에서 뒤돌아봤다. 이 집 담은 높아서 밖에서는 2층 창 위쪽만 보인다. 끝 방 창은 남색이라 낮에도 어두웠다. 그 앞을 마당 감나무가 가리고 있었는데, 가지가 이상한 쪽으로 뻗어 있었다. 나무는 해 쪽으로 뻗는다. 이 감나무는 집 쪽으로, 그 창 앞으로만 뻗어 있었다. 집 쪽으로 뻗게 하려면 누가 오래 반대쪽 가지를 쳐 줘야 한다.

※ 감나무. 끝 방 창 쪽으로 가지 뻗음. 반대쪽 자른 자국.

반찬가게 앞에서 그 줄을 적었다. 적어 놓고 콩나물값을 두 번 물었다. 반찬가게 사장님이 두 번 다 이천 원이라고 했고, 두 번째에는 봉지에 콩나물을 한 줌 더 넣어 주면서 아주머니 오늘 어디 아프냐고 물었다. 나는 무릎이 좀 아프다고 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열두 시 반에 사모님 점심을 차렸다. 사모님은 점심을 식탁이 아니라 마당 감나무 밑 플라스틱 의자에서 드실 때가 많다. 앉는 자리만 색이 바랜 의자다. 쟁반을 들고 나가니까 사모님이 무릎 위에 쟁반을 받으시고 젓가락을 들기 전에 나를 보셨다.

“아침에 계단에 앉아 계시던데요.”

“무릎이 먼저 앉았습니다.”

사모님 입가가 조금 풀렸다. 열네 달 동안 이분이 웃는 것을 나는 손가락으로 셀 만큼 봤다.

“그 방, 보셨어요?”

“봤습니다.”

젓가락이 멈췄다. 안 봤다고 할 수도 있었다. 열일곱 해 동안 나는 그런 자리에서 대개 안 봤다고 했다. 그런데 그날은 오전에 본 것을 벌써 적어 버린 뒤였고, 적어 놓은 것과 다른 말을 입으로 하면 그 공책이 거짓말이 된다.

“문가에서만 봤습니다.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요.”

사모님은 그날 밥을 반만 드셨다. 아침을 안 드신 날은 점심을 다 드시는 분이었다.

*

두 시에 세탁물을 가지러 갔을 때 지완 씨 방문이 열려 있었다. 이 집에서 하루에 문이 둘 열려 있는 날은 없었다.

처음 본 지완 씨 방은 비어 있었다. 침대, 책상, 옷장, 의자는 있는데 물건이 없었다. 책도 사진도 컵도 없었다. 열일곱 해 동안 그렇게 빈 방은 두 번 봤는데, 두 번 다 이사 나가기 전날 밤의 방이었다. 창틀에는 씹고 난 껌 은박지가 네모나게 접혀 한 줄로 서 있었고, 방 안에서는 오래 빨지 않은 이불 냄새가 아니라 막 빤 셔츠에서 나는 섬유유연제 냄새가 났다. 사람이 안 사는 방이 아니라 언제든 나갈 수 있게 해 둔 방이었다.

“오늘 끝 방 문 열려 있었죠.”

나는 바구니를 내려놓지 않았다.

“네.”

“제가 열었어요.”

“닫았습니다.”

“알아요. 계단에 구 분 앉아 계셨잖아요.”

바구니가 조금 흔들렸다.

“이 방에서 계단이 보여요. 문 열어 놓으면요.”

그러면 이 사람은 내가 세 번 안 보고 지나간 것도, 네 번째에 본 것도 봤다.

“왜 여셨어요?”

말하고 나서 나는 입을 다물었다. 열네 달 만에 이 집 사람에게 처음 한 「왜」였다. 지완 씨가 의자를 돌려 나를 봤다. 네 번째다.

“아주머니가 보셔야 해서요.”

“제가 왜요?”

“적는 사람이니까요.”

지완 씨가 손을 내밀었다.

“그거 저 주실 수 있어요? 공책이요.”

그때 나는 바구니를 내려놓았다.

“죄송합니다.”

“왜요?”

“제 거라서요.”

그 말을 하고 나서야 나는 그 공책을 제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남의 집 이야기가 적혀 있으니 내 것이 아니라고 여겼다. 그런데 입에서는 그 말이 먼저 나왔다.

지완 씨가 내민 손을 거뒀다.

“그럼 계속 갖고 계세요. 대신 아무한테도 주지 마세요.”

“네.”

“어머니한테도요.”

나는 세탁물을 들고 나왔다. 문은 닫지 않았다. 닫아 달라는 말이 없었다.

14:10 지완 씨와 대화. 약 사 분. ※ 일지 달라는 요청 있음. 거절함.

「거절함」이라는 말을 나는 열일곱 해 만에 처음 썼다. 이 일에서 거절은 해고고, 시키는 것을 안 하면 나가야 한다. 그날 나는 거절했고 나가지 않았다.

*

저녁 여덟 시에 윤 선생이 사랑방으로 나를 불렀다. 목요일에 이 시각 집에 있는 것은 처음이었다.

“오늘 2층 끝 방 문이 열려 있었습니까?”

사모님이 말씀하셨구나 했다. 사모님은 아침에 안방에 계셨고, 안방 문은 계단 맞은편이다. 계단에 구 분 앉아 있는 사람을 이 집에서 본 사람은 둘이었다.

“열려 있었습니다.”

“적으셨습니까?”

“적었습니다.”

“보여 주십시오.”

공책을 가져왔다. 윤 선생은 오늘 장을 펴고 한 줄에 검지를 댔다. 손톱이 반듯하게 깎여 있었고 흰 반달이 전부 같은 크기였다.

“지우십시오. 그 방은 늘 닫혀 있습니다.”

“저는 틀린 줄에만 두 줄을 긋습니다.”

“이 줄이 틀렸습니다.”

“아홉 시 십사 분에 열려 있었습니다. 제가 닫았으니까 그 뒤로는 닫혀 있었습니다. 둘 다 맞습니다.”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 그 사람 입꼬리가 아주 조금 내려갔다. 화가 난 얼굴은 아니었다. 계산이 한 번 틀린 사람의 얼굴이었다.

“서약서 일곱째 조항 기억하십니까?”

“이 집에서 본 것은 이 집에 두고 간다.”

“그런데 적으셨습니다.”

“공책도 이 집에 있습니다. 제 방에요.”

윤 선생이 공책을 덮었다. 이번에도 손바닥으로 표지를 한 번 쓸었다.

“아주머니, 제가 법정에 이십삼 년 있었습니다. 판사는 기록을 믿지 않습니다. 기록한 사람을 봅니다.”

“네.”

“기록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가 기록보다 오래 남습니다.”

나는 그 말을 한 번 더 속으로 따라 했다. 협박은 대개 목소리가 크다. 이 사람 협박은 판결문처럼 조용했다.

“알겠습니다.”

“지우시겠습니까?”

“아니요.”

한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벽의 판례집 사이 어디선가 시계 초침이 가고 있었다. 윤 선생이 책상 위 파일 하나를 열었다. 소개소 이름이 찍힌 누런 파일이었다.

“스물두 집에 계셨더군요. 평균 아홉 달.”

“네.”

“이 집이 열네 달입니다. 제일 기신 집이 삼 년이고요.”

“적어 두셨습니까?”

그 말은 입에서 먼저 나왔다. 윤 선생이 파일에서 눈을 들었다. 나는 앞치마 끈을 한 번 고쳐 맸다. 이 사람도 나를 세고 있었다. 윤 선생이 공책을 내 쪽으로 밀었다.

“내일부터 2층 복도는 일주일에 한 번만 하십시오.”

“네.”

사랑방을 나오면서 나는 걸음을 셌다. 사랑방에서 내 방까지는 열한 걸음인데 그날은 열이었다. 보폭이 커지면 걸음이 준다. 화가 나면 보폭이 커진다는 것을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20:05 사랑방. 윤 선생. 일지 확인 요구. 한 줄 지우라고 함. 지우지 않음. ※ 2층 복도 청소 주 1회로 줄임(지시).

지완 씨 말대로 어머니한테는 주지 않았다. 아버지한테 한 줄 보여 줬다.

*

23:00 대문 소리. 한 번.

열네 달 동안 목요일 밤 열한 시 대문은 늘 두 번이었다. 그날은 한 번이었다. 한 번이면 한 사람이 들어오고 나가지 않았거나, 두 사람이 한 번에 들어왔다.

나는 그것을 적고 불을 껐다. 방 안이 까매지자 벽 너머 보일러 배관에서 물이 도는 소리가 가늘게 들렸고, 그 소리가 멎은 뒤에야 이 집이 얼마나 조용한지가 귀에 닿았다. 윤 선생 말대로 이 집은 밤에 조용했다. 조용한 집에서는 작은 소리가 멀리 간다. 끄고 누워 있는데 2층 복도 끝에서 아주 작은 소리가 났다. 닫히는 소리였다. 그 방 문은 열리는 소리는 안 나고 닫히는 소리만 난다. 그것도 열네 달 걸려 알았다.

적어 두면 언젠가 뜻이 생긴다. 열일곱 해 동안 나는 그것 하나는 배웠다. 다만 그날 밤에는 그 뜻이 무섭지 않기를 바랐다.

2화는 어땠나요?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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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밤에책2026.05.14· 2화

    이 장면 묘사가 오래 남습니다. 특히 마지막 두 줄이요.

열두 걸음 · 관찰 일지: 그 집 사람들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