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370자) · 명주 · 2025년 10월 2일
목요일에는 저녁을 하지 않는다
판사 집 입주 도우미 · 도경
10월 2일 목요일. 06:20 기상. 06:40 주방. 쌀 세 컵. 07:10 윤 선생 출근. 우산 안 가져감. 비 예보 있음. 07:35 사모님 아침. 반 남김. 09:00 2층 복도 청소. 끝 방은 하지 않음. 14:00 지완 씨 방 앞에 세탁물. 문은 닫혀 있음. 18:00 저녁 준비하지 않음.
이 집에는 규칙이 세 가지 있다. 주방 창문은 열지 않는다, 2층 서재는 청소하지 않는다, 목요일 저녁은 준비하지 않는다. 세 가지 다 이유를 들은 적이 없고, 나는 묻지 않았다.
열일곱 해 이 일을 했다. 이 집이 스물세 번째 집이다. 집마다 규칙이 있고 규칙에는 대개 이유가 있는데, 좋은 집일수록 그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는 것을 그 집의 격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묻지 않는 것이 이 일의 예의이고, 예의는 나를 지켜 준다. 대신 나는 적는다.
저녁 아홉 시에 내 방으로 들어와 그날을 적는다. 내 방은 1층 안쪽 옛 식모방이라 창이 없고, 벽 너머에서 보일러가 한 시간에 한 번 숨을 몰아쉰다. 거기 앉아 손바닥만 한 공책을 펴고 시각과 사실만 적는다. 왜 그랬을까 하는 것은 적지 않는다. 그걸 적기 시작하면 일지가 아니라 다른 것이 된다.
*
이 집에 들어온 날은 작년 8월 12일 월요일이었다.
규칙 셋은 사모님이 부엌에서 말해 주셨다. 창문은 그냥 두세요, 환풍기 쓰시면 돼요, 서재는 안 하셔도 돼요, 목요일 저녁은 안 하셔도 돼요. 사모님은 규칙을 말하면서 나를 보지 않고 싱크대 수전을 보셨는데, 수전에 물때 하나 없는 것을 확인하는 눈 같았다. 그게 전부였다.
넷째 규칙은 그날 밤 윤 선생이 말했다.
아홉 시 반에 사랑방으로 불려 갔다. 사랑방은 1층 거실 옆 방인데 윤 선생은 그 방을 집무실이라고 불렀다. 벽 세 면이 책이었고 책등이 전부 같은 밤색이었다. 판례집이라고 나중에 알았다. 책상 위에 스탠드 하나만 켜져 있어서 그 사람 얼굴 아래쪽만 밝았다.
“소개소에서 들었습니다. 매일 뭘 적으신다고요.”
나는 앞치마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뺐다. 공책은 방에 있었다.
“그날 한 일을 적습니다.”
“가져와 보시겠습니까?”
가져왔다. 윤 선생은 첫 장만 읽었다. 입주 날짜와 규칙 셋, 그리고 오후에 한 일 여섯 줄이었다. 읽는 데 십 초가 안 걸렸고, 공책을 덮을 때 손바닥으로 표지를 한 번 쓸었다. 먼지를 떠는 손이 아니라 서류를 닫는 손이었다.
“여기 이 집 이야기는 적지 마십시오.”
“이 집 이야기는 안 적습니다. 제가 몇 시에 어디 있었는지를 적습니다.”
“그게 이 집 이야기입니다.”
그 사람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높일 필요가 없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책상 서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내 앞으로 밀었다. 비밀 유지 서약서였다. 조항이 일곱 개 있었고 마지막 조항만 손으로 쓴 글씨였다.
7. 이 집에서 본 것은 이 집에 두고 간다.
“다른 집에서도 이런 걸 쓰셨을 겁니다.”
“여섯 집에서 썼습니다.”
“그럼 아실 겁니다.”
나는 서명했다. 서명하면서 한 가지를 말했다. 열일곱 해 동안 주인집에 먼저 무엇을 말한 것은 그때가 두 번째였다.
“선생님, 제가 적는 건 제가 안 훔쳤다는 걸 대려고 적는 겁니다.”
윤 선생이 스탠드 불빛 너머에서 나를 봤다.
“이 집에서는 아무것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 말이 이 집에서 제일 무서운 말이 될 줄 나는 그날 몰랐다. 방으로 돌아와서 공책 맨 뒷장을 펴고 짐작 칸에 한 줄을 적었다. 짐작은 그 장에만 적는다.
※ 이 집 사람은 없어지는 것을 싫어한다.
그 뒤로 열네 달 동안 나는 그 사람 말대로 했다. 이 집 이야기는 적지 않고 내 시각만 적었다. 그런데 내 시각을 열네 달 모아 놓으니까 그게 이 집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
18:40 사모님 외출. “저녁은 알아서 하겠다”고 함. 19:10 지완 씨 방에서 나옴. 냉장고. 다시 들어감. 십오 초. 21:00 일지. 22:30 소등.
여기까지가 평소다. 열네 달 동안 목요일 밤은 늘 이랬다. 그런데 그날은 아니었다.
23:04 대문 소리.
이 집 대문은 열 때 소리가 두 번 난다. 걸쇠가 빠지는 소리와 철문이 밀리는 소리다. 그날은 세 번이었다. 걸쇠, 문, 그리고 한 번 더. 처음 두 번 뒤에 누가 한 번 더 문을 밀어 연 소리였고, 철문 경첩이 녹슨 쪽으로 끝까지 밀려 담에 닿는 소리였다.
나는 일어나지 않았다. 일어나지 않는 것도 이 일의 일부다. 창 없는 방에서 이불을 턱까지 올리고 누워 있으면 바깥은 소리로만 온다. 그날은 비가 막 시작돼서 차고 셔터 위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양철 지붕처럼 났고, 그 사이로 보일러가 한 번 숨을 몰아쉬었다. 열일곱 해 동안 남의 집 어둠 속에서 나는 눈 대신 귀로 집을 그렸다. 문이 어디쯤 있고 누가 몇 걸음에 거기 닿는지를 그리다 보면 잠이 왔다.
그날은 잠이 오지 않았다. 발소리가 현관에서 멈췄다. 현관에서 계단까지는 여섯 걸음인데 발소리는 여섯 걸음을 가지 않았다. 이 분쯤 현관에 서 있었다. 이 분이면 신발을 벗고도 남는 시간이고, 벗은 신발을 가지런히 놓고도 남는 시간이다.
23:06 발소리. 계단. 23:07 2층 끝 방 문. 23:20 끝 방 문. 계단. 23:22 대문. 두 번.
나갈 때는 두 번이었다. 들어올 때 세 번이었는데. 나는 그것을 적고 볼펜을 놓았다. 적으면서 처음으로 손이 조금 느렸다. 세 번과 두 번의 차이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알고 싶은 것은 일지에 적지 않는다. 그래서 그날은 거기서 불을 껐다.
*
10월 3일 금요일. 06:20 기상. 06:35 현관.
현관 매트가 젖어 있었다. 밤사이 비가 왔다. 예보대로였으니 젖은 매트는 이상하지 않다.
이상한 것은 발자국이었다. 매트 위 젖은 흙에 두 사람 자국이 남아 있었다. 하나는 운동화였다. 밑창에 물결 무늬가 있는 큰 발이었고 뒤꿈치가 바깥으로 닳아 있었다. 다른 하나는 굽이 낮은 여자 구두였다. 앞코가 둥글고 굽 자리가 동전만 했다. 이 집 여자는 사모님 한 분이고, 사모님 구두는 신발장 안에 굽이 가는 것만 넷 있다.
나는 매트를 들어 올리려다 말았다. 그 자리에서 흙냄새가 올라왔다. 비 맞은 흙은 마를 때보다 젖어 있을 때 냄새가 진하다. 그 냄새 사이로 아주 옅게 모르는 비누 냄새가 났다.
06:40 현관 매트 젖음. 발자국 2인. 운동화 1, 여자 구두 1.
적고 나서 매트를 갈았다. 헌 매트는 뒷마당 수돗가에 세워 두고 새 매트를 깔았다. 그러고 나서 쌀을 씻었다.
일곱 시 십 분에 윤 선생이 나왔다.
이 사람은 열네 달 동안 일곱 시 십 분에 나갔다. 일곱 시 구 분도 아니고 십일 분도 아니었다. 넥타이는 늘 현관 거울 앞에서 한 번만 고쳤고, 구두는 신기 전에 뒤축을 손가락으로 한 번 튕겼다. 흐트러지지 않는 사람이다. 흐트러지지 않는 사람을 오래 보면 조금 무섭다.
그 사람이 새 매트 앞에서 멈췄다.
“매트 가셨습니까?”
“비가 와서 젖었습니다.”
“헌 건 어디 두셨습니까?”
“수돗가에 세워 뒀습니다. 말려서 빨려고요.”
“오늘 버리십시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매트는 버릴 만큼 헌 것이 아니었다. 윤 선생이 구두 뒤축을 한 번 튕기고 나서 나를 봤다.
“어젯밤 몇 시에 주무셨습니까?”
“열한 시 사십 분입니다.”
“정확하시네요.”
“적어 둡니다.”
그 사람은 웃지 않았다. 판사 앞에서 증인이 정확하면 판사는 웃지 않는다고, 나는 나중에 들었다.
“아주머니는 열 시 반에 주무시는 게 좋겠습니다. 아침이 이르시니까요.”
“네.”
“이 집은 밤에 조용합니다.”
“네.”
대문이 닫혔다. 걸쇠가 걸리는 소리까지 한 번에 났다. 나는 수돗가에 가서 헌 매트를 봤다. 가져다 버리라는 말은 들었고, 버리지 말라는 말은 아무도 안 했다. 나는 그 매트를 빨았다. 빨아서 담에 걸어 말렸다. 흙물이 두 번 나왔고 세 번째에 맑아졌다.
07:10 윤 선생 출근. 매트 버리라고 함. 08:30 헌 매트 세탁. 담에 널어 둠.
버리지 않은 줄은 적지 않았다. 그건 한 일이 아니라 안 한 일이다.
*
10월 4일 토요일. 13:00 지완 씨 방 앞 세탁물. 어제 것 그대로.
어제 세탁물이 그대로 있는 것은 처음이다. 열네 달 동안 그 바구니는 오후 두 시면 비어 있거나 새로 차 있었다. 나는 문을 두드렸다.
“지완 씨, 세탁물만 가져갈게요.”
“놔두세요.”
“오늘 안 빨면 모레까지 못 말립니다.”
“그럼 모레 입죠.”
문 너머 목소리는 잠이 덜 깬 목소리가 아니었다. 오래 말을 안 해서 쉰 목소리였다. 나는 바구니를 그 자리에 두고 내려왔다.
오후 세 시에 지완 씨가 주방으로 내려왔다. 물을 마시고, 컵을 놓고, 나를 봤다. 열네 달 동안 이 사람이 나를 똑바로 본 것은 세 번이다. 나는 세어 두었다. 스물일곱 살인데 얼굴이 방 안에서만 자라서 나이보다 희었고, 티셔츠 목이 늘어나 쇄골이 한쪽만 보였다.
“아주머니, 매일 뭐 적으세요?”
나는 행주를 놓았다.
“그날 있었던 일이요.”
“저도요?”
“몇 시에 나오셨는지, 뭘 드셨는지요.”
“그것뿐이에요?”
“네.”
“왜 그것만 적으세요?”
열일곱 해 동안 「뭘 적느냐」는 세 번 들었다. 세 번 다 물건이 없어졌을 때였다. 「왜 그것만 적느냐」는 처음이었다.
“나머지는 제가 알 게 아니니까요.”
지완 씨가 식탁 의자를 빼서 앉았다. 의자 다리가 마루를 긁는 소리가 부엌 안에 길게 퍼졌다. 이 집 식탁 의자는 넷인데 저녁에 앉는 사람은 둘이다. 윤 선생과 사모님이다. 지완 씨는 방에서 먹는다. 네 번째 의자에는 열네 달 동안 아무도 앉지 않았다.
“어젯밤 대문 소리 들으셨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세 번 났잖아요.”
“지완 씨도 세셨어요?”
“저는 셀 거 말고 할 게 없어서요.”
그 말을 하고 지완 씨가 처음으로 웃었다. 입만 웃고 눈은 식탁 모서리를 보고 있었다. 이 집 사람들은 다 그렇게 웃는다. 나는 그것도 적어 둘 생각이었지만, 그건 규칙이 아니라 내 짐작이라 뒷장에 따로 적을 일이었다.
“아버지가 매트 버리라고 하셨죠?”
“어떻게 아세요?”
“제 방 창이 현관 위예요.”
지완 씨가 일어섰다. 컵을 싱크대에 넣는데, 넣기 전에 물로 한 번 헹궜다. 열네 달 동안 이 사람이 컵을 헹군 것은 처음이다.
“아주머니, 그거 계속 쓰세요.”
나는 그를 봤다.
“나중에 필요할 거예요.”
계단 네 번째 칸이 울었다. 지완 씨는 그 칸을 건너뛰지 않고 밟고 올라갔다.
15:12 지완 씨, 주방. 대화 삼 분. ※ 이 집에서 처음 있는 일.
그 두 줄 아래에 나는 한동안 볼펜을 대고 있었다. 담에 널어 둔 매트가 저녁 바람에 한 번 뒤집혔다. 버리라고 한 물건을 버리지 않은 날, 이 집 사람 하나가 나에게 계속 쓰라고 했다. 나는 두 줄을 더 적지 않고 공책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