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5,135자) · 명주 · 6월 11일~7월 2일

환부

관찰 일지: 그 집 사람들 · 도경

만 19세 이상 이용가

6월 11일 목요일. 13:50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 4층. 14:00 선고.

선고는 목요일 오후 두 시였다. 나는 그날이 목요일인 것을 법원 계단을 오르면서 알았다. 달력에서는 날짜만 봤다.

재판장이 판결 이유를 읽는 데 사십 분이 걸렸다. 어려운 말이 많았다. 미필적 고의, 범행 후 정황, 증거의 신빙성. 나는 그 말들을 다 알아듣지 못했다. 알아들은 것은 몇 줄이었다. 피고인이 2025년 10월 22일 22시 07분경 주거지를 나서 정릉동 피해자 주거지로 갔다. 비에 젖은 바깥 철계단 3층 문 앞에서 피해자와 다투다가 피해자를 밀었다. 피해자가 계단 아래로 떨어져 숨졌다. 피고인은 23시 48분경 귀가한 뒤 배우자에게 자신이 집에 있었다고 진술하게 했다.

그리고 한 대목에서 재판장이 서류에서 눈을 들었다.

“피고인 측은 가사도우미 오명주의 기록이 과거 절도 의심을 받은 사람이 자기 방어를 위해 작성한 것이라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본 법원은 기록한 사람이 누구인지가 아니라 기록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를 보았다. 그 기록은 열여섯 해 동안 같은 방식으로 작성되었고, 이 사건과 무관한 날들의 기록과 이 사건 당일의 기록 사이에 작성 방식의 차이가 없다. 칠 시 십 분이 사백 번 적힌 기록에서 칠 시 십사 분은 한 번 적혀 있다.”

방청석 어딘가에서 누가 작게 웃었다. 배 형사였다. 오 형사가 옆에서 그 사람 옆구리를 찔렀다.

판사는 기록을 믿지 않습니다, 기록한 사람을 봅니다. 사랑방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 윤 선생이 한 말이었다. 같은 법원에서, 그 사람이 이십삼 년 앉았던 자리와 비슷한 높이에서, 다른 판사가 그 말을 뒤집었다.

“피고인을 징역 15년에 처한다.”

윤 선생은 일어선 채로 그 말을 들었다. 등이 곧았다. 교도관이 팔을 잡자 그 사람은 손목시계를 풀어 변호인에게 건넸다. 풀면서 한 번 시계를 봤다. 두 시 사십삼 분이었다.

피고인석을 나가는 문 앞에서 윤 선생이 방청석을 봤다. 사모님을 보고, 지완 씨를 보고, 나를 봤다. 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때 처음으로 그 사람 셔츠 칼라가 한쪽만 재킷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열다섯 달 동안 그 사람 옷에서 삐져나온 것을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 사람은 그것을 고치지 않고 나갔다.

14:43 선고. 윤 선생 징역 십오 년. 14:45 윤 선생 퇴정. 손목시계 풀어 줌. 셔츠 칼라 한쪽 밖으로 나옴. 고치지 않음.

*

복도에서 사모님과 한경숙 씨 동생이 마주쳤다. 동생 이름은 한경미라고, 그날 처음 들었다. 사모님이 먼저 고개를 숙이셨다. 한경미 씨는 숙이지 않았다.

“언니는 팔 년 동안 봉투를 한 번도 안 열었어요.”

“알아요.”

“사백열한 장. 경찰이 돌려준대요. 유족한테요. 제가 받게 생겼어요. 그 돈 도로 가져가세요.”

“그건 도윤이 거예요.”

“도윤이는 못 써요.”

한경미 씨 목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반들반들한 바닥이 그 소리를 천장으로 올렸다가 되돌려 보냈다. 사모님은 대답하지 못하셨다. 한 손으로 다른 손을 쥐셨다. 반지는 끼지 않으셨다.

“저는 그 봉투 못 열어요. 언니가 안 연 걸 제가 어떻게 열어요.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고요. 그게 언니 팔 년이에요.”

두 사람 사이에 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지완 씨가 어머니 뒤에서 한 발 나섰다가 도로 물러났다. 한경미 씨가 먼저 몸을 돌렸다. 돌리다가 나를 봤다.

“언니 가계부에 고맙다고 적힌 분이죠. 부엌에 불 켜 준 분.”

“네.”

“언니가 그 주에 전화로 그러더라고요. 그 집에 사람이 하나 더 있더라. 불을 켜 줬다. 그 말을 할 때 언니 목소리가 좀 밝았어요. 십일 년 만에요.”

한경미 씨는 내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대신 그 붉게 튼 손가락으로 내 소매 끝을 한 번 잡았다가 놓았다. 그러고 계단으로 내려갔다.

계단 쪽에서 배 형사가 다가왔다. 오 형사는 담배를 피우러 먼저 내려갔다고 했다. 배 형사는 들뜬 얼굴로 손가락 하나를 세웠다.

“아주머니, 칠 시 십사 분 들으셨죠? 그거 판결문에 들어갔어요. 그 줄, 제가 제일 먼저 쪽지 꽂은 데예요. 스물일곱 장 중에 첫 번째요.”

“들었습니다.”

“오 선배는 그거 듣고 웃지도 않아요. 저만 웃었어요. 법정에서 웃으면 안 되는 거 아는데, 이 댁 선생님 로봇 같다고 한 게 판결문에 들어간 것 같아서요.”

배 형사는 그 말을 하고 머쓱하게 머리를 긁었다. 그러고 믹스커피 두 봉지를 주머니에서 꺼내 내 손에 쥐여 주고 갔다. 하나로는 안 된다고, 오늘 같은 날은 두 개라고 했다.

15:05 복도. 한경미 씨(한경숙 씨 동생, 본인 말). 사모님과 봉투 얘기. 내 소매 잡았다 놓음.

지훈 씨는 그다음 주에 따로 선고를 받았다. 도주치사, 징역 삼 년 육 개월. 자수했고, 유족 한 사람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서면을 냈다고 했다. 그 서면을 낸 사람이 한경미 씨였다. 법정에서 그 사람은 끝내 사모님께 손을 내밀지 않았는데, 그 서면에는 자기 이름을 썼다.

*

6월 18일 목요일. 11:00 등기 소포.

공책은 목요일에 돌아왔다. 등기로 왔다. 받는 사람 칸에 내 이름이 적혀 있었고, 주소는 수아네 집이었다. 봉투가 아니라 상자였다. 상자를 열었더니 공책 한 권 반이 있었다. 그리고 종이 한 장이 있었다.

환부 확인서 1. 노트 1권 (표지 「2024.8~」) 2. 노트 1권 (표지 「2025.6~」, 일부 사용)

두 줄이었다. 내 열다섯 달이 두 줄이었다. 두 줄 밑에 도장이 찍혀 있었고, 도장 옆에 손으로 쓴 글씨가 있었다.

잘 받아 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했습니다.

획을 끝까지 긋지 않는 글씨였다. 오 형사 글씨였다. 11월 3일 식탁에서 그 사람이 적는 것을 나는 옆에서 봤다.

그날 밤 나는 한 권 반을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세 시간이 걸렸다. 읽다가 연필 밑줄을 발견했다. 내가 그은 것이 아니었다. 세어 보니 열아홉 군데였다. 밑줄 그은 줄은 전부 시각이 적힌 줄이었다. 그중 열둘이 목요일이었고 일곱이 다른 요일이었다. 10월 20일 19시 32분 줄에는 밑줄이 두 번 그어져 있었다. 그 줄 옆 여백에 연필로 아주 작게 적혀 있었다.

(옮긴 사람을 적은 줄. 이 줄이 없었으면.)

그 뒤는 비어 있었다. 오 형사는 그 문장을 끝내지 않았다. 나는 지우개를 들었다가 놓았다. 내 공책에 남의 글씨가 있는 것이 처음에는 싫었다. 이틀 뒤에 안 싫어졌다. 이 줄들을 누가 끝까지 읽었다는 뜻이었다. 열여섯 해 동안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11:00 공책 돌아옴. 한 권 반. 환부 확인서. ※ 연필 밑줄 열아홉. 내가 안 그음.

*

7월 2일 목요일. 17:00 성북동.

사모님은 집을 내놓으셨다. 6월 말에 계약이 됐고 8월에 비운다고 하셨다. 떠나기 전에 목요일 저녁을 한 번 더 하겠다고 하셨다. 손님으로 오라고 하셨고, 문영애 씨도 부르셨다.

대문에서 현관까지 열두 걸음. 마당 감나무에 잎이 무성했다. 집 쪽으로 뻗은 가지가 잘려 있었다. 사모님이 5월에 사람을 불러 치셨다고 했다. 이제 해 쪽으로 가게요, 하고 말씀하셨다. 반대쪽 가지는 그냥 두셨다고. 2층 끝 방 창이 마당에서 훤히 보였다. 커튼이 없었다. 지훈 씨가 1월에 걷은 뒤로 아무도 다시 치지 않았다.

부엌 창이 끝까지 열려 있었다. 저녁 바람이 들어와 된장 냄새를 마당으로 내보냈다. 이번 된장찌개는 짜지 않았다. 사모님이 간을 한 번만 보셨다.

식탁에 넷이 앉았다. 사모님, 지완 씨, 나, 그리고 문영애 씨. 문영애 씨는 앉기 전에 식탁 의자 네 개를 둘러보고 제일 끝 의자를 골랐다. 1월에 지훈 씨가 앉았던 자리였다. 문영애 씨는 그걸 몰랐다. 그냥 부엌 창이 제일 잘 보이는 자리라서 골랐다고 했다.

“나 이 집 부엌 처음 들어와 봐. 열두 해 건너편에 살았는데.”

“어때요?”

지완 씨가 물었다. 문영애 씨가 부엌을 한 바퀴 둘러봤다.

“우리 집보다 좁네.”

지완 씨가 웃었다. 사모님도 웃으셨다. 문영애 씨가 취나물을 집으면서 이게 제일 맛있다고 하자, 지완 씨가 그거 아주머니가 여덟 번 한 거라고 했다. 나는 아홉 번이라고 고쳤다. 1월에 한 번 더 했다.

사모님은 8월에 지완 씨와 작은 아파트로 옮긴다고 하셨다. 방 둘에 부엌 창이 남쪽이라고 하셨다. 지완 씨는 9월부터 인쇄소에 나간다고 했다. 형이 일하던 제본소 옆 건물이었다.

“목요일마다 이제 면회 가요. 형 있는 데요. 목요일 오후가 면회 날이에요.”

지완 씨가 그렇게 말하자 사모님이 숟가락을 내려놓으셨다.

“목요일은 계속 목요일이네요.”

“저녁은 해요, 이제. 면회 다녀와서요.”

사모님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문영애 씨가 그 말을 듣고 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새댁, 이 집 목요일 얘기는 나중에 다 해 줘야 돼, 하고 속삭였다. 나는 공책에 다 있다고 했다. 문영애 씨가 질색을 하며 손을 저었다.

19:00 저녁. 4인. 사모님, 지완 씨, 나, 문영애 씨.

*

설거지를 마치고 나는 부엌 서랍을 열었다. 수저 받침 옆에 영수증 한 장이 세워져 있었다. 11월에 내가 넣어 둔 영수증이었다. 주방 창은 새벽에 열려 있습니다. 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밑에 다른 글씨로 한 줄이 더 있었다. 새로 온 도우미 글씨였다.

네. 매일 닫습니다. 매일 열립니다.

나는 그 영수증을 서랍에 도로 세웠다. 그리고 새 종이 한 장을 꺼내 적었다. 8월에 이 집에 들어올 사람이 읽을 줄이었다.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었다.

이 집에서 알아 두시면 좋은 것 1. 대문은 손으로 잡고 닫으면 소리가 안 납니다. 2. 계단 아래에서 네 번째 칸이 웁니다. 3. 차고 셔터는 올라가다 한 번 걸립니다. 고장이 아닙니다. 4. 2층 끝 방 문은 열리는 소리가 안 나고 닫히는 소리만 납니다. 5. 감나무 밑 의자는 앉는 자리만 색이 바랬습니다. 버리지 마십시오. 6. 2층 끝 방 창은 커튼 없이 두십시오. 마당에서 보입니다.

여섯 줄이었다. 일곱 번째를 쓸까 하다가 쓰지 않았다. 주방 창은 열지 않는다고 쓸 수도 없었고, 열어 두라고 쓸 수도 없었다. 그 줄은 내가 쓸 줄이 아니었다. 다음 사람이 그 창 앞에 서서 정할 일이었다.

종이를 접어서 영수증 옆에 세워 두었다. 부엌 창으로 여름밤 바람이 들어와 두 종이를 한 번 흔들었다. 둘 다 쓰러지지 않았다.

21:10 부엌 서랍. 다음 사람 쪽지 여섯 줄. 일곱째 안 씀.

1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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