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5,205자) · 명주 · 5월 14일

증인석

관찰 일지: 그 집 사람들 · 도경

만 19세 이상 이용가

5월 14일 목요일. 06:20 기상. 08:40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 4층.

법원에 입고 갈 옷은 문영애 씨가 골라 줬다. 문영애 씨는 3월에 분당의 한 집에 출퇴근 자리를 얻었다. 입주는 아니지만 일이 있어서 좋다고 했다. 그 집 아이가 할머니라고 부르는데, 이름을 알려 줬더니 영애 할머니라고 부른다고 했다. 옷은 회색 블라우스에 남색 치마였다. 블라우스 단추를 끝까지 채우자 문영애 씨가 하나를 도로 풀었다.

“숨은 쉬어야지. 판사가 새댁 목 조르는 거 보려고 부른 거 아니야.”

수아는 휴가를 냈다. 한결물류는 수아를 자르지 않았다. 대신 법률 자문 회사를 바꿨다고, 경리부 회의에서 들었다고 했다.

법원 복도는 바닥이 반들반들해서 구두 굽 소리가 천장까지 올라갔다가 되돌아왔다. 복도 의자마다 사람들이 서류 봉투를 무릎에 올려놓고 앉아 있었는데, 누구도 봉투를 열어 보지 않았다. 열어 볼 것은 이미 다 열어 본 사람들의 얼굴이었다. 법정은 생각보다 작았다. 텔레비전에서 본 것처럼 높지도 않았다. 앞에 판사 셋이 앉았고, 왼쪽에 검사, 오른쪽에 변호인 둘이 앉았다. 변호인석 뒤 방청석 첫 줄에 강동수 씨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변호인석 옆, 한 칸 낮은 자리에 윤 선생이 앉아 있었다.

넉 달 만이었다. 수의가 아니라 사복이었다. 흰 셔츠에 회색 재킷이었고 넥타이는 없었다. 머리가 짧아졌고 흰머리가 늘었다. 그런데 앉은 자세는 사랑방 책상 앞과 똑같았다. 등이 의자 등받이에 닿지 않았다. 흐트러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방청석에는 사모님과 지완 씨가 있었다. 지훈 씨는 없었다. 지훈 씨 재판은 따로 열린다고 했다. 사모님 옆에 모르는 여자가 한 사람 앉아 있었다. 쉰 넘어 보였고, 무릎 위에 올린 손가락 마디가 붉게 터 있었다. 한경숙 씨 동생이라고, 복도에서 오 형사가 알려 줬다.

09:50 증인 대기실. 10:10 증인석.

*

증인 선서문을 읽었다. 종이가 흔들려서 두 손으로 잡았다.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숨김과 보탬이라는 말을 읽는 동안 나는 공책의 앞장과 뒷장을 생각했다. 앞장에는 숨김이 없고 뒷장에는 보탬이 있다. 둘을 섞지 않으려고 열여섯 해 동안 장을 나눴다.

검사는 마흔쯤의 여자였다. 말이 느리고 또박또박했다. 검사가 서류 한 장을 들고 나를 봤다.

“증인이 작성한 기록물 두 권이 증거로 제출되어 있습니다. 증인 본인이 쓴 것이 맞습니까?”

“맞습니다.”

“누가 쓰라고 했습니까?”

“아무도 안 시켰습니다.”

“그럼 왜 썼습니까?”

“제가 안 훔쳤다는 걸 증명하려고요.”

방청석 어딘가에서 작게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났다.

“증인, 지금부터 그 기록 몇 줄을 읽겠습니다. 틀린 데가 있으면 말씀하십시오.”

검사가 읽었다.

10월 20일 월요일. 15:00 초인종. 방문자 1인. 여성. 성명 한경숙(본인 말). 19:32 사랑방. 윤 선생께 방문자 말 전함. 수요일 22:30, 그 집으로. 10월 22일 수요일. 21:10 안방. 사모님 약 드실 물 한 컵(윤 선생 부탁). 21:14 안방 소등. 22:07 차고 셔터. 차 나감. 22:20 2층 끝 방 불빛. 의자 소리. 23:48 차고 셔터. 차 들어옴. 23:52 현관. 10월 23일 목요일. 06:36 현관 매트 흙. 윤 선생 구두 젖음, 신문지 위. 우산 마름. 07:00 윤 선생. 주방. 커피. “어젯밤 집에 있었다. 열 시부터 한 시까지.”

내 글씨가 남의 입으로 나왔다. 나는 그것을 앉아서 들었다. 열여섯 해 동안 나는 그 줄들을 밤에 혼자 썼다. 쓸 때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볼펜이 종이를 긁는 소리와 보일러가 숨을 몰아쉬는 소리뿐이었다. 그 줄들이 법정 안에서 또박또박 소리가 되자 다른 것이 됐다. 시각만 적었는데 사람이 보였다. 한 사람이 약을 건네고, 셔터를 올리고, 비 오는 밤에 우산 없이 나가고, 한 시간 사십일 분 뒤에 젖어서 돌아와 구두를 신문지 위에 벗어 놓는다. 이튿날 아침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부엌에 와서 어젯밤 집에 있었다고 말한다.

“틀린 데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

변호인이 일어났다. 둘 중 젊은 쪽이었다. 서른 중반쯤이었고, 안경테가 가늘었다. 그 사람은 내 쪽으로 걸어오지 않고 자기 자리에서 서류를 넘기며 물었다.

“증인은 2008년 첫 근무지에서 반지 절도 의심을 받은 적이 있지요?”

“의심을 받았습니다. 나흘 뒤 세탁기 안에서 나왔습니다.”

“작년 11월에는 이 사건 피고인의 배우자 반지 절도로 고소되기도 했고요.”

“혐의없음으로 끝났습니다. 반지는 없어진 적이 없습니다. 사모님이 직접 가져다주셨습니다.”

방청석에서 사모님이 고개를 숙이셨다. 변호인이 다음 장을 넘겼다.

“증인의 기록은 볼펜으로 쓰여 있습니다. 사후에 얼마든지 덧붙여 쓸 수 있지요. 예를 들어 11월 이후에 10월 22일 줄을 채워 넣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 공책은 11월 3일 오전 아홉 시 사십 분에 경찰이 가져갔습니다. 그 뒤로 지금까지 저는 그 공책을 한 번도 못 만졌습니다. 11월 3일 전에 채워 넣었다면, 그 전에 누가 죽을 줄을 알았어야 합니다.”

변호인이 안경을 한 번 밀어 올렸다. 판사석 가운데 사람이 무언가를 적었다.

“좋습니다. 그럼 22시 07분 줄입니다. 증인은 차고 셔터 소리를 들었을 뿐이죠. 차를 누가 몰았는지 봤습니까?”

“못 봤습니다.”

“피고인이 나가는 걸 봤습니까?”

“못 봤습니다. 셔터 소리와 차 소리를 적었습니다.”

“그러니까 증인은 그날 밤 누가 나갔는지 모르는군요.”

“모릅니다.”

변호인이 판사석을 한 번 보고 앉으려고 했다. 나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 집 차는 한 대고, 그날 밤 그 집에서 운전하는 사람은 둘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22시 20분에 2층 끝 방에 불을 켜고 의자를 끌었습니다. 그건 제가 사람을 본 게 아니라 불빛을 본 겁니다. 그리고 23시 52분에 현관에서 신문지 까는 소리가 났고, 아침에 그 신문지 위에 선생님 구두가 젖어 있었습니다. 그건 제가 봤습니다. 열다섯 달 동안 그 구두가 신발장 밖에 있었던 날은 그날 하루입니다.”

변호인이 앉지 못하고 선 채로 있었다.

“증인, 묻는 말에만 답하세요.”

“네. 그럼 하나만 더 여쭤도 되겠습니까? 제가 묻는 게 아니라 공책에 있는 걸 말씀드리는 겁니다. 23일 아침 일곱 시에 선생님이 부엌에 오셔서 어젯밤 집에 있었다고, 열 시부터 한 시까지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여쭙지 않았습니다. 열다섯 달 동안 그분이 아침에 부엌에 오신 건 그날 한 번입니다.”

판사석 가운데 사람이 손을 들어 변호인을 앉혔다.

*

재판장이 나를 봤다. 나이 든 남자였고 목소리가 낮았다.

“증인, 증인의 생각을 묻겠습니다. 생각이라고 밝히고 말씀하시면 됩니다.”

열여섯 해 동안 나는 짐작을 뒷장에만 적었다. 앞장에 적으면 그것이 사실이 되니까. 그 자리에서는 짐작이라고 밝히고 말하라고 했다. 밝히면 사실이 되지 않는다. 뒷장을 앞장 옆에 나란히 펴는 일이었다.

“제 생각입니다. 10월 16일 밤 한경숙 씨는 대문까지 열두 걸음인 마당을 열다섯 걸음에 가셨습니다. 천천히 걷는 사람은 나가고 싶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분은 그 집에 할 말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수요일에 그 집 사람을 자기 집으로 불렀습니다.”

“계속하세요.”

“그리고 22일 밤 선생님은 사랑방 문을 닫을 때 소리를 내셨습니다. 그 문은 소리가 안 나는 문입니다. 열다섯 달 동안 그 문에서 소리가 난 날이 두 번 있습니다. 16일 밤과 22일 밤입니다. 그건 제 생각이 아니라 적혀 있습니다. 그 두 번이 무슨 뜻인지는 제 생각입니다. 저는 모릅니다.”

법정이 조용했다. 방청석 첫 줄에서 강동수 씨가 볼펜을 딸깍거리다 멈췄다.

재판장이 피고인석을 봤다.

“피고인, 증인에게 직접 물을 것이 있습니까?”

윤 선생이 일어났다. 일어나기 전에 손목시계를 봤다. 그 사람은 늘 그랬다. 일곱 시 십 분을 확인하는 손이었다. 법정 벽시계는 열한 시 사 분이었다.

“증인.”

“네.”

“그 수요일 밤 말을 저한테 전한 사람이 증인이지요?”

“네.”

“증인이 그 말을 전하지 않았으면, 그 사람은 그날 밤 계단에 서 있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방청석 어디선가 의자가 삐걱거렸다. 한경숙 씨 동생이 무릎 위에서 손을 쥐었다. 변호인이 윤 선생 소매를 잡으려다 말았다.

나는 그 질문을 반년 넘게 들었다. 골목에서 문영애 씨 말을 들은 밤부터 들었다. 짐작 칸 맨 아래 한 줄로 적어 두고, 매일 밤 공책을 덮기 전에 읽었다. 수요일 22:30. 그 집으로. 내가 전했다.

“네. 제가 전했습니다.”

윤 선생이 나를 봤다. 스탠드 불빛이 없는 법정에서 그 사람 눈이 생각보다 작았다.

“그리고 그 줄도 제가 적었습니다. 제가 안 적었으면 선생님이 그 말을 들으셨다는 걸 아무도 몰랐을 겁니다. 선생님은 전해 들은 말을 들고 그 집에 가셨습니다. 저는 전한 말을 적어 두었습니다. 우리 둘 다 그 말을 들었습니다. 다른 건 그다음에 한 일입니다.”

재판장이 손을 들었다. 피고인의 질문은 거기까지라고 했다. 윤 선생은 앉지 않고 한동안 서 있었다. 변호인이 그 사람 팔꿈치를 가볍게 당겼다. 그 사람이 앉았다. 앉을 때 등이 처음으로 의자 등받이에 닿았다.

10:10~11:50 증인 신문. 검사, 변호인, 재판장, 피고인. ※ 피고인. “증인이 전하지 않았으면.” 답함. “제가 전했습니다.”

*

복도로 나오자 수아가 달려왔다. 문영애 씨가 뒤따라오며 내 블라우스 단추를 하나 더 풀었다.

“숨 쉬어, 새댁. 이제 쉬어도 돼.”

사모님과 지완 씨는 복도 끝 창가에 서 계셨다. 사모님이 나를 보시고 고개를 한 번 숙이셨다. 그 옆에 한경숙 씨 동생이 서 있었다. 그 사람은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대신 먼 데서 나를 오래 봤다. 붉게 튼 손가락 마디가 언니 손과 닮아 있었다.

계단 쪽에서 오 형사가 올라오다가 나를 보고 멈췄다. 방청석 맨 뒷줄에 앉아 있었다고 했다. 오 형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만 한 번 끄덕였다. 이십육 년에 한두 번이라던 그 하나가 오늘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오면 안다고 했으니까.

나는 복도 의자에 앉아 공책을 폈다. 수아가 옆에 앉아 그걸 들여다봤다.

“엄마, 지금도 적어?”

“응.”

“뭐라고?”

11:52 복도. 한경숙 씨 동생. 다가오지 않음. 오래 봄.

수아가 그 줄을 읽고 내 손등에 제 손을 얹었다. 그날 볼펜을 쥔 손이 처음으로 떨리지 않았다.

16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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