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5,117자) · 명주 · 9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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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 일지: 그 집 사람들 · 도경
만 19세 이상 이용가
8월 말에 소개소 실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목소리는 여전히 굵었고, 이번에도 본론부터 말했다.
“오 여사, 자리 하나 났어. 마포 아파트, 부부에 애 둘. 근데 출퇴근이야. 입주 아니고. 오 여사는 입주만 하잖아.”
“출퇴근 하겠습니다.”
실장이 수화기 너머에서 잠깐 말을 잃었다.
“열일곱 해 동안 입주만 한 사람이 웬일이야?”
“집이 생겨서요.”
“집? 오 여사가?”
“딸 집에 제 방이 있습니다.”
실장이 한참 웃었다. 웃다가 목소리를 조금 낮췄다.
“그리고 그 집 사람들이 오 여사를 알아. 신문에 이름은 안 났는데 동네 도우미들이 다 알아. 판사 잡은 공책 아줌마라고. 그 집 사모님이 그 얘기 듣고 오 여사를 콕 찍었어. 근데 바깥양반이 좀 꺼리는 눈치야. 첫날 한 소리 들을 수도 있어.”
“괜찮습니다.”
“그래, 오 여사는 어디 가도 되니까.”
그 말을 열일곱 해 동안 여러 번 들었다. 그날은 다르게 들렸다. 어디 가도 되는 사람이 아니라, 어디 갔다가도 돌아올 데가 있는 사람이라는 말로.
8월 27일 목요일. 15:10 전화. 소개소 실장. 마포 출퇴근 자리.
*
9월 7일 월요일. 07:00 구로 출발. 08:10 마포. 첫 출근.
아파트는 십구 층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현관문 옆에 아이 킥보드 두 대가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하나는 분홍색이었고 하나는 바퀴에 흙이 말라붙어 있었다. 초인종을 누르기 전에 나는 손목시계를 봤다. 여덟 시 구 분이었다. 열다섯 해째 차는 삼만 원짜리 시계였다.
사모님은 삼십 대였다. 머리를 대충 묶었고, 한 손에 아이 양말 한 짝을 들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양말을 등 뒤로 숨겼다.
“아, 오셨어요. 들어오세요. 지금 전쟁이에요.”
거실에서 작은애가 유치원 가방을 끌고 뛰어다녔다. 큰애는 보이지 않았다. 식탁에 남자가 앉아 있었다. 사십 초반이었고,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 채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읽고 있었다. 내가 들어가자 휴대폰을 엎었다.
규칙은 사모님이 말했다. 작은애를 유치원 버스에 태우고 돌아온 사모님이 부엌 식탁에 앉아 손가락을 꼽았다.
“규칙이 두 가지 있어요. 하나, 큰애 방은 들어가지 마세요. 둘, 냉장고 맨 위 칸은 손대지 마세요.”
“네.”
열일곱 해 동안 나는 이런 자리에서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이유를 묻는 사람은 오래 못 있는다. 집은 남이 자기 규칙대로 사는 곳이고, 그 규칙에 이유가 없어도 규칙은 규칙이다. 스물세 집에서 나는 그렇게 했다. 그래서 이유가 있는 집과 없는 집이 똑같아 보였다. 이유가 없는 집은 스물세 집 중 하나였다. 그 하나를 나는 열네 달 동안 몰랐다.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사모님이 나를 봤다.
“네?”
“큰애 방은 왜 안 됩니까?”
사모님은 잠깐 말이 없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걔가 싫어해요. 열네 살인데 요즘 그래요. 저도 못 들어가요. 문에 종이 붙여 놨어요. 노크하고 삼 초 기다리기.”
“알겠습니다.”
이유가 있었다. 물어보니 알 수 있었다. 두 번째 규칙은 묻지 않았다. 물어도 되는 것과 안 물어도 되는 것을 이제는 구분한다. 구분하는 법은 하나다. 모르면 누가 다칠 수 있는 것만 묻는다.
*
사모님이 아이 도시락 통을 가지러 방에 들어간 사이 남자가 휴대폰을 뒤집었다.
“소개소에서 들었습니다. 그 판사 사건 증인이셨다면서요.”
“네.”
“매일 뭘 적으신다고요.”
“네.”
남자가 식탁 위에서 손깍지를 꼈다. 사랑방 스탠드 불빛 같은 것은 없었다. 아침 햇빛이 베란다로 곧장 들어와서 식탁이 환했다. 남자 얼굴에 그늘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불편해하는 것이 다 보였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좀 부담스럽습니다. 우리 집 얘기는 적지 말아 주셨으면 해요. 서약서 같은 걸 써야 하나 싶기도 하고요.”
나는 앞치마 끈을 고쳐 맸다. 두 해 전 사랑방에서 나는 아무 말 없이 서명했다. 서명하고 나서 제가 안 훔쳤다는 걸 대려고 적는다고 한마디 했을 뿐이다.
“적겠습니다. 제가 몇 시에 어디 있었는지를요.”
“그게 우리 집 얘기잖아요.”
“맞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집에서 제가 본 것 중에, 누가 물으면 말할 수 있는 것만 적겠습니다. 누가 묻지 않는 것은 적지 않겠습니다. 그게 싫으시면 오늘 그만두겠습니다. 오늘 일당은 안 받겠습니다.”
남자가 깍지를 풀었다. 그 사람이 나를 처음으로 똑바로 봤다. 그러고 무슨 말을 하려는데 방에서 사모님 목소리가 먼저 왔다.
“여보, 적으시라고 해. 나 저번에 유치원에서 애 약 먹인 시간 몰라서 선생님한테 혼났잖아. 그거라도 적어 주시면 좋겠네.”
남자가 방 쪽을 봤다가 나를 봤다. 입꼬리가 조금 풀렸다.
“네. 적으세요. 그런데 몇 시에 커피 마시는지는 빼 주세요. 하루에 다섯 잔이라.”
“네 잔부터 적겠습니다.”
남자가 웃었다. 이 집 사람은 눈까지 웃었다.
9월 7일 월요일. 첫 출근. 이 집 규칙 — 1. 큰애 방은 들어가지 않는다. (본인이 원하지 않음. 노크하고 삼 초) 2. 냉장고 맨 위 칸은 손대지 않는다.
첫 줄에 괄호가 있다. 이유다. 열여섯 해 동안 나는 이유를 한 번도 적지 않았다. 이유를 적기 시작하면 그건 일지가 아니라 다른 것이 된다고 여겼다. 그 다른 것이 무엇인지 이제는 안다. 이야기다. 이야기에는 사람이 들어간다.
오후 세 시 반에 현관문 번호 키가 삑삑 울렸다. 큰애였다. 키가 나보다 컸고 교복 넥타이를 주머니에 쑤셔 넣고 있었다. 신발을 벗다가 나를 보고 멈췄다. 그러고 제 방 문 앞으로 가더니, 제 방인데도 문을 두 번 두드리고 셋을 센 다음 열었다. 문에 붙은 종이에 매직으로 적혀 있었다. 노크하고 삼 초.
“본인도 지키세요?”
“규칙이니까요.”
큰애가 문을 반쯤 열어 둔 채로 돌아봤다.
“아줌마가 그 공책 아줌마예요? 판사 잡은?”
“잡은 건 경찰입니다.”
“근데 엄마가 그러던데요. 아줌마가 시계 보는 거 보면 무섭대요.”
“몇 시에 들어왔는지 적으려고 봤습니다. 세 시 삼십이 분입니다.”
큰애가 입을 벌렸다가, 제 손목에 찬 전자시계를 봤다. 세 시 삼십삼 분이었다. 큰애는 일 분 틀렸다고 우기고 방에 들어갔다. 문이 닫혔다가, 삼 초 뒤에 다시 조금 열렸다.
“내일은 세 시 반에 딱 올게요. 적어 보세요.”
문이 닫혔다. 이 집 문은 닫히는 소리가 났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싱크대 앞으로 돌아왔다. 남향 창으로 들어온 오후 볕이 개수대 스테인리스에 튀어 천장에 물결무늬를 그렸고, 식기 건조대에 엎어 둔 컵 네 개에서 물방울이 하나씩 떨어졌다.
15:32 큰애 귀가. 노크하고 삼 초(본인 방).
*
저녁 여섯 시에 퇴근했다. 열일곱 해 만에 처음으로 일한 집을 나와 다른 집으로 돌아갔다. 지하철에서 창에 비친 내 얼굴을 봤다. 앞치마를 벗은 얼굴이었다. 퇴근길 사람들 틈에 끼어 서 있으니 나도 그중 하나로 보였다.
수아네 빌라 계단을 올라가는데 삼 층에서 된장 냄새가 났다. 수아가 먼저 와서 찌개를 끓이고 있었다. 한 숟가락 떠먹어 보니 혀끝이 오그라들 만큼 짰다. 수아가 간을 두 번 봤는데 두 번 다 된장을 더 넣었다고 했다.
“엄마, 첫날 어땠어?”
“물어봤어.”
“뭘?”
“규칙 이유.”
수아가 숟가락을 든 채로 나를 봤다.
“엄마가? 이유를 물어봤다고?”
“응.”
“엄마 그런 거 안 묻잖아.”
“이제 물어.”
수아가 한참 나를 보다가 식탁 너머로 손을 뻗어 내 볼을 한 번 꼬집었다. 열두 살 때 대문 앞에서 허리에 손을 얹던 애였다.
*
식탁 위에 편지 한 통이 와 있었다. 수아가 우편함에서 꺼내 놓았다고 했다. 받는 사람 칸에 내 이름이 있었고, 보낸 사람 칸에 교도소 주소와 윤지훈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편지지는 한 장이었다. 볼펜 글씨가 반듯했다. 제본소에서 종이를 오래 만진 손이 쓴 글씨였다.
아주머니, 여기 방에도 창이 있습니다. 커튼이 없습니다. 밤에 불을 끄면 복도 불빛이 문 밑으로 들어옵니다. 손가락 두 마디쯤요. 목요일마다 적기 시작했습니다. 아주머니처럼 시각만요. 21:00 소등. 23:04 깨어 있음. 창에 달. 그분은 이 시각에 늘 마당에 서 계셨습니다. 이제는 제가 창을 봅니다. 어머니가 목요일마다 오십니다. 면회 끝나고 가시면서 늘 한 번 뒤를 돌아보십니다. 그걸 적어 두었습니다.
나는 편지를 두 번 읽고 접어서 공책 맨 뒷장에 끼웠다. 짐작 칸이 있던 장이다. 그 장에는 이제 짐작보다 다른 사람들 글씨가 더 많이 끼워져 있다. 오 형사의 환부 확인서, 한경숙 씨 가계부 사본 한 장, 새로 온 도우미가 영수증 뒷면에 적은 한 줄을 찍은 사진.
*
9월 24일 목요일. 20:40 전화.
목요일 저녁에 전화가 왔다. 사모님이었다. 옛 사모님이라고 불러야 할지 나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 전화기 너머에서 부엌 물소리가 났다.
“아주머니, 잘 계세요?”
“네.”
“오늘 면회 다녀와서 저녁 했어요. 지완이랑요. 지완이가 된장찌개 간 봤어요. 안 짜요.”
“다행입니다.”
사모님이 잠깐 말이 없으셨다. 물소리가 멈췄다.
“저희 집 창문 열었어요. 새 집 부엌 창이요. 남쪽으로 난 거요.”
나는 식탁 쪽을 봤다. 수아네 부엌 창은 옆 빌라 벽이 한 뼘 앞에 있었다.
“지완이가 열었어요. 저녁 하는데 김이 차니까 그냥 열더라고요. 이유도 없이요.”
“네.”
“제가 안 닫았어요.”
그 한마디 뒤로 사모님은 한동안 말씀이 없으셨다. 나도 말하지 않았다. 수화기 너머에서 바람 소리가 조금 들렸다. 남쪽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이었다.
“그냥 그 얘기 하고 싶었어요. 아주머니한테.”
전화를 끊고 나는 공책을 폈다. 20시 40분, 전화, 까지 적고 볼펜을 멈췄다.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적을 수 있었다. 몇 분 통화했는지도 적을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 뒤를 적지 않았다. 누가 물으면 말할 수 있는 것만 적기로 했고, 이 전화는 누가 물을 일이 없었다. 적지 않아도 잊지 않을 것 같았다. 열여섯 해 동안 잊지 않으려고 적었다. 그날 처음으로 적지 않고도 잊지 않을 것을 하나 가졌다.
수아가 부엌에서 불렀다. 엄마, 창문 좀 열어도 돼? 된장 냄새 너무 난다.
“열어.”
나는 대답하고 일어나서 그 애 옆에 섰다. 창이 열렸다. 한 뼘 앞 옆 빌라 벽으로 저녁 불빛이 번져 있었다. 그 틈으로 바람이 들어왔다. 나는 그 창을 닫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