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5,346자) · 명주 · 1월 22일

수돗가

관찰 일지: 그 집 사람들 · 도경

만 19세 이상 이용가

사모님은 약속대로 이튿날 경찰서에 가셨다. 반지를 손수건에 싸서 직접 들고 가셨다고, 저녁에 지완 씨가 전화로 알려 줬다. 2층에서 두 시간, 3층에서 삼십 분이었다고 했다. 그 주 월요일에 3층 진 수사관한테서 전화가 왔다.

“오명주 씨, 절도 건은 혐의없음으로 정리합니다. 고소인 한 분이 반지를 직접 가져오셨어요. 없어진 적이 없다고요.”

“네.”

“그리고 개인적으로 하나만요. 공책 스물두 권 보여 주신 거, 그거 보고 제가 그날 집에 가서 가계부를 다시 썼어요. 삼 년 만에요.”

진 수사관은 그 말을 하고 조금 웃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한동안 식탁에 앉아 있었다. 수아가 회사에서 점심시간에 전화를 걸어왔고, 내가 말하자 그 애가 휴게실에서 소리를 질렀다. 옆에서 누가 무슨 일이냐고 묻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엄마 도둑 아니래요. 수아는 그렇게 대답했다. 원래 아니었는데.

1월 19일 월요일. 10:40 전화. 진 수사관. 절도 혐의없음.

지완 씨는 윤 선생이 집을 나갔다고 했다. 사모님이 경찰서에 다녀오신 날 밤, 사랑방에서 서류 가방 두 개를 챙겨 호텔로 갔다고 했다. 대문을 닫을 때 걸쇠까지 한 번에 걸고 갔다고. 청문회는 무기한 연기됐고, 신문에서는 그 사람을 후보자라고 부르다가 전 판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

1월 22일 목요일. 17:30 성북동. 대문.

사모님이 전화로 부르셨다. 목요일 저녁을 하니까 오라고 하셨다. 손님으로요, 하고 두 번 말씀하셨다. 새로 온 도우미는 그날 쉬게 했다고 하셨다.

두 달 만에 그 골목을 올라갔다. 파란 대문 앞에는 처음 보는 여자가 종량제 봉투를 내놓고 있었다. 목요일은 쓰레기 날이 아닌데 그 사람은 봉투를 내놓았다가 나를 보고 도로 들여갔다. 새로 온 사람은 요일을 아직 모른다.

대문 앞에 서서 초인종을 눌렀다. 열다섯 달 동안 이 대문을 안에서만 열었다. 밖에서 누른 것은 면접 날 한 번뿐이었다. 걸쇠가 빠지는 소리가 났고 철문이 밀렸다. 두 번이었다.

대문에서 현관까지 열두 걸음. 그날도 열둘이었다.

부엌에서 된장 냄새가 났다. 사모님이 앞치마를 두르고 계셨다. 열다섯 달 동안 그분이 부엌에서 앞치마를 두르신 것을 나는 한 번도 못 봤다. 끈을 등 뒤에서 두 번 돌려 앞에서 맸는데, 맨 모양이 서툴러서 리본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오늘은 손님이세요. 앉아 계세요.”

“제가 하겠습니다.”

“된장찌개는 제가 해요. 그날 끓이다 만 거예요. 십일 년 만에 마저 끓이는 거예요.”

나는 식탁에 앉지 못하고 싱크대 옆에 섰다. 사모님이 두부를 썰었다. 칼질이 느렸다. 두부 한 모를 썰 동안 나는 파를 다듬었다. 사모님이 말리지 않으셨다. 부엌 창이 이십 센티 열려 있었다. 창밖 수돗가에 호스가 둘둘 말려 걸려 있었다.

17:40 부엌. 사모님이 된장찌개. 나는 파.

*

지훈 씨는 여섯 시 반에 대문으로 들어왔다. 쪽문이 아니었다. 대문 소리가 두 번 났다. 지훈 씨는 제본소 점퍼를 입었고 등에 배낭 하나를 메고 있었다. 배낭이 네모났다. 속옷과 세면도구와 책 두 권쯤 들어가는 크기였다. 경찰서에 가는 사람이 챙기는 짐이었다.

지완 씨가 계단 네 번째 칸을 밟고 내려왔다. 칸이 울었다.

식탁에 넷이 앉았다. 사모님, 지훈 씨, 지완 씨, 그리고 나. 사모님이 나를 넷째 자리에 앉히셨다. 열다섯 달 동안 아무도 안 앉던 자리이고, 16일 밤 내가 한 번 앉아 등받이가 차갑던 자리였다. 그날은 차갑지 않았다. 앉기 전에 누가 그 의자를 부엌 난로 쪽으로 돌려 놓았다.

된장찌개는 짰다. 사모님이 간을 두 번 봤는데 두 번 다 된장을 더 넣으셨다. 지훈 씨가 한 숟가락 뜨고 물을 마셨다. 지완 씨가 한 숟가락 뜨고 밥을 한 숟가락 더 떴다.

“어머니, 짜요.”

“알아.”

“그래도 맛있어요.”

사모님이 웃으셨다. 지완 씨가 나한테 물었다.

“아주머니, 이거 뭐예요?”

지완 씨가 가리킨 것은 내가 무친 나물이었다.

“취나물입니다.”

“처음 먹어 봐요.”

“열다섯 달 동안 여덟 번 했습니다.”

“그럼 제가 여덟 번 안 먹은 거네요.”

지훈 씨가 소리 내어 웃었다. 그 사람 웃음소리를 나는 처음 들었다. 사모님이 숟가락을 내려놓고 두 아들을 번갈아 보셨다. 그러다 고개를 숙이셨다. 숙인 채로 한참 계셨다. 아무도 사모님을 부르지 않았다.

19:00 저녁. 4인. 사모님, 지훈 씨, 지완 씨, 나.

설거지가 끝나자 사모님이 반찬통 하나를 지훈 씨 앞에 내미셨다. 뚜껑 위에 고무줄을 두 번 감은 통이었다. 멸치볶음이라고 하셨다.

“어머니, 이거 유치장에 못 가지고 들어가요.”

“그래도 가져가.”

“뺏겨요.”

“그럼 뺏기기 전에 먹어.”

지훈 씨가 통을 들고 난감한 얼굴로 나를 봤다. 나는 손을 내밀었다.

“그럼 경찰서 문 앞까지 제가 들어 드리겠습니다. 거기서 못 드시면 제가 먹겠습니다.”

지완 씨가 식탁에 이마를 박고 웃었다. 사모님도 웃으셨다. 반찬통은 결국 내 가방에 들어갔다.

*

22:40 대문 소리. 한 번.

열 시 사십 분에 대문이 열렸다. 걸쇠 소리가 한 번에 났다. 열쇠를 가진 사람이 여는 소리였다. 설거지를 하던 사모님 손이 멈췄다. 윤 선생은 목요일마다 열 시 사십 분에 들어왔다. 집을 나가서도 그 시각을 버리지 못한 사람이었다.

지훈 씨가 배낭을 멨다. 원래 열한 시에 나서려던 참이었다. 성북서 당직실은 밤새 열려 있다. 나는 2층 강력팀 사무실까지 같이 가겠다고 했었다. 층이 헷갈리니까요, 하고 말하자 지훈 씨가 웃었었다.

우리는 현관을 나섰다. 마당 보안등이 켜져 있었다. 윤 선생은 대문과 현관 사이, 수돗가 앞에 서 있었다. 코트 차림이었고 넥타이를 매지 않았다. 열다섯 달 동안 그 사람 목에 넥타이가 없는 것을 처음 봤다. 그 사람 발밑에 호스가 둘둘 말려 있었다. 십일 년 전 그 사람이 범퍼를 씻던 자리였다.

“지훈아, 들어가라.”

“갑니다.”

“사 년이다. 사 년만 참으면 된다고 했다.”

“그분은 오늘로 석 달이에요. 석 달째 안 오세요.”

윤 선생이 대문 쪽으로 한 걸음 옮겨 섰다. 대문을 등으로 막았다.

“네가 가면 나는 끝이다. 네 어머니도 끝이다. 네 동생은 평생 뺑소니범 동생으로 산다. 그 여자는 안 돌아온다. 너 하나 가서 네 식구 전부를 끝낼 거냐?”

부엌 창이 열렸다. 이십 센티가 아니라 끝까지 열렸다. 창틀이 레일을 긁으며 밀려나는 소리가 마당에 길게 울렸다. 지완 씨가 열었다. 지완 씨 옆에 사모님이 서 계셨다. 부엌 불이 켜져 있었다. 열한 해 동안 그분은 그 창 앞에 서지 못하셨다. 불을 켜고 선 것은 처음이었다.

“여보.”

사모님 목소리가 열린 창으로 곧장 나왔다. 유리가 두 겹이 아니었다.

“저는 이미 끝냈어요. 그날 밤 당신이 준 약 얘기 했어요. 반지도 가져다줬어요. 끝낼 게 남은 건 당신 하나예요.”

윤 선생이 부엌 창을 봤다. 오래 봤다. 그러고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아주머니, 이 집에서 본 것은 이 집에 두고 가시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집 사람이 아닙니다. 오늘은 손님으로 왔습니다. 손님은 서약서를 안 씁니다.”

지완 씨가 창 안에서 푹, 하고 웃음을 참는 소리를 냈다. 윤 선생은 웃지 않았다. 판사 앞에서 증인이 정확하면 판사는 웃지 않는다. 그런데 그날 그 사람은 판사가 아니었다.

*

지훈 씨가 대문으로 걸었다. 아버지 옆을 지나가려는 순간 윤 선생이 지훈 씨 손목을 잡았다. 잡은 것이 아니라 쥐었다. 손등에 힘줄이 섰다. 석 달 전 이 마당에서 내가 본 손이었다.

지훈 씨가 멈췄다. 멈추고 자기 손목을 내려다봤다. 아버지 손을 떼어 내지 않았다. 한참 내려다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그분 손목도 이렇게 잡으셨죠.”

윤 선생 손이 풀렸다. 누가 떼어 낸 것이 아니었다. 손이 저 혼자 풀렸다. 풀린 손이 잠깐 공중에 있다가 코트 주머니로 들어갔다.

지훈 씨가 대문 앞에서 돌아섰다.

“잠깐만요.”

지훈 씨는 배낭을 멘 채로 현관으로 도로 들어갔다. 계단 네 번째 칸이 울었다. 마당의 세 사람, 윤 선생과 나와 부엌 창 안의 두 사람이 아무 말 없이 2층을 올려다봤다.

끝 방 창에 불이 켜졌다. 남색 커튼 너머로 불빛이 번졌다. 그러고 커튼이 움직였다. 굳은 주름이 한꺼번에 접히며 한쪽으로 밀려났다. 열한 해 동안 한 번도 안 걷힌 커튼이었다. 창이 환해졌다. 커튼 없는 창에 방 안이 다 보였다. 책상 하나, 의자 하나, 그 의자를 창가에 둔 채로 지훈 씨가 서서 마당을 내려다봤다.

감나무 가지가 창 앞에 뻗어 있었다. 그래도 창이 보였다. 가지는 마당에서 창을 가리지만, 불이 켜진 창은 가지 사이로도 보인다.

사모님이 부엌 창에서 그 창을 올려다보셨다. 한 손으로 창틀을 짚고 계셨다. 지훈 씨가 2층 창에서 부엌 창을 내려다봤다. 두 창 사이에 마당이 있었고, 마당에 윤 선생이 서 있었다. 그 사람은 올려다보지 않았다. 수돗가 호스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훈 씨가 내려왔다. 불은 끄지 않았다.

22:48 마당. 윤 선생 수돗가 앞. 대문 막음. 22:51 부엌 창 끝까지 열림(지완 씨). 사모님 창 앞. 점등. 22:55 윤 선생, 지훈 씨 손목 쥠. 풀림. 22:58 2층 끝 방. 점등. 커튼 걷힘.

*

23:04 대문. 두 번.

지훈 씨와 나는 대문을 나섰다. 지훈 씨는 대문을 손으로 잡고 닫지 않았다. 철문이 담에 부딪쳐 소리가 났고, 걸쇠가 저 혼자 흔들리다 멈췄다. 골목에 그 소리가 퍼졌다. 파란 대문 집 개가 두 번 짖었다.

돌아보니 2층 끝 방 창이 환했다. 커튼 없는 창이었다. 이 골목에서 제일 밝은 창이었다.

골목을 내려가는 동안 지훈 씨가 말했다.

“아주머니, 대문에서 골목 끝까지 몇 걸음이에요?”

“모릅니다. 거기는 안 세어 봤습니다.”

“세어 주세요. 제가 그분이랑 같이 가기로 한 길이에요.”

나는 셌다. 골목 끝 모퉁이까지 백열두 걸음이었다. 지훈 씨는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23:04 대문. 두 번. 지훈 씨와 나. 대문 닫는 소리 남. 23:06 골목 끝까지 백열두 걸음. 23:31 성북경찰서 당직실. 지훈 씨 자수 의사.

*

그 뒤의 일은 신문이 적었다. 지훈 씨는 그날 밤 성북경찰서에 자수했다. 십일 년 전 성북로 뺑소니 치사였다. 닷새 뒤 윤 선생이 체포됐다. 살인, 범인도피교사, 증거인멸교사. 법원은 그 이튿날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기사 사진 속 윤 선생은 경찰서 계단을 오르고 있었는데, 수갑 찬 손 위에 코트가 덮여 있었다. 넥타이는 없었다. 같은 날 그 사람은 대법관 후보를 사퇴했다.

1월 27일 화요일. ※ 윤 선생 체포(신문). 1월 28일 수요일. ※ 구속영장 발부. 후보 사퇴(신문).

이 두 줄에는 시각이 없다. 나는 그 일을 보지 않았다. 신문으로 읽었다. 읽은 것은 본 것이 아니다. 그래서 별표를 달았다.

15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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