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5,309자) · 명주 · 2026년 1월 15일

납골당

관찰 일지: 그 집 사람들 · 도경

만 19세 이상 이용가

해가 바뀌고 두 번째 목요일 저녁에 지완 씨한테서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였는데, 받자마자 그 쉰 목소리가 들렸다.

“아주머니, 저 지완이에요. 형이 번호 줬어요. 형은 아주머니 번호를 경찰서에서 받았대요. 복잡하죠.”

“괜찮습니다.”

“새로 오신 분은 창 닫으세요. 매일요. 제가 매일 열고요. 그분 이름은 아직 몰라요. 아주머니처럼 적는 분은 아니에요.”

지완 씨가 웃었다. 웃음 끝에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형이 다음 주에 경찰서 간대요. 어머니가 무르시든 안 무르시든요. 팔 년 기다린 사람이 없는데 더 기다릴 이유가 없대요. 그런데 형이 가면 어머니가 거짓말한 사람이 돼요. 형은 그게 무서워서 석 달을 못 갔어요.”

“사모님은 어떠십니까?”

“아무 말씀도 안 하세요. 목요일마다 여섯 시 사십 분에 나가시는 것만 똑같아요.”

지완 씨가 잠깐 말을 끊었다.

“아주머니, 어머니가 어디 가시는지 아세요? 파주 용미리요. 그 형 있는 데요. 도윤이 형이요. 저는 작년에 알았어요. 어머니 콜택시 영수증이 쓰레기통에 있었거든요. 매주 같은 금액이요.”

나는 전화기를 쥔 손을 바꿨다.

“어머니는 아주머니 말은 들으실 거예요. 아주머니는 어머니한테 한 번도 거짓말 안 하셨잖아요.”

“한 번 했습니다. 인터폰에서요.”

“그건 아버지 거짓말이죠.”

1월 8일 목요일. 19:40 전화. 윤지완 씨. 사모님 목요일 행선지 — 파주 용미리 납골당(본인 말).

*

1월 15일 목요일. 17:40 구로 출발. 19:30 용미리.

용미리까지는 버스를 세 번 갈아탔다. 서울을 벗어나자 창밖이 빨리 어두워졌다. 마지막 버스에서 내렸을 때는 눈이 조금 날리고 있었다. 추모의 집 건물은 산자락에 붙어 있었고, 주차장 가로등 두 개만 켜져 있었다. 관리실 창 안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난로를 쬐다가 나를 봤다.

“이 시간에 누구 보러 오셨어요?”

“목요일마다 저녁에 오시는 분이 계시지요. 국화 들고요.”

할아버지가 난로에서 손을 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모님은 지금 안에 계세요. 몇 년째 목요일이면 이 시간에 오셔서 여덟 시 반까지 계세요. 원래는 여섯 시에 닫는데, 그 사모님은 제가 기다려 드려요. 누구 보러 오시는지는 모르지만.”

“저도 모릅니다.”

그 말은 반만 사실이었다. 할아버지가 창 밖으로 방명록을 내밀었다. 이름과 들어온 시각을 적는 칸이었다. 한 장 위 칸들에 같은 이름이 줄지어 있었다. 서정인 19:22, 서정인 19:18, 서정인 19:25. 목요일마다 한 줄씩이었다. 그 사람도 여기서는 시각을 적고 있었다. 나는 그 아래 칸에 내 이름을 쓰고 19:30이라고 적었다.

건물 안은 난방을 줄여 놔서 입김이 났다. 복도 양쪽으로 유리문 달린 칸이 천장까지 빼곡했다. 칸마다 사진이 있고 이름이 있고 날짜가 있었다. 조화가 꽂힌 칸이 많았고, 생화가 꽂힌 칸은 드물었다. 생화 냄새를 따라 걸었다. 쌉싸름한 국화 냄새였다. 초겨울 장례식장 복도에서 나는 그 냄새였다.

사모님은 복도 끝, 아래에서 셋째 줄 칸 앞에 서 계셨다. 코트 차림으로 두 손을 앞에 모으고 계셨는데, 장갑을 한 짝만 끼고 계셨다. 유리문 안에 사진이 있었다. 배달 헬멧을 옆구리에 끼고 웃는 남자애였다. 앞니 하나가 조금 벌어져 있었다.

한도윤. 1995. 5. 2. – 2014. 10. 16.

국화 한 송이가 유리문 틈에 꽂혀 있었다. 줄기 끝이 비스듬히 새로 잘려 있었다.

*

사모님이 발소리에 돌아보셨다. 나를 알아보는 데 시간이 걸렸다. 알아보시고 나서는 놀라지 않으셨다. 놀라는 데 쓸 힘이 남아 있지 않은 얼굴이었다.

“아주머니가 여기 어떻게.”

“사모님이 목요일마다 몇 시에 나가시는지는 제가 적었습니다. 어디 가시는지는 몰랐습니다. 오늘 알았습니다.”

사모님이 유리문 쪽으로 다시 몸을 돌리셨다. 우리는 나란히 섰다. 사진 속 남자애가 우리 둘을 보고 웃고 있었다.

“지훈이가 이 아이 이름을 알려 준 게 팔 년 전이에요. 그 전 삼 년은 이름도 몰랐어요. 성북로 뺑소니, 열아홉 살 배달원. 신문에 그렇게만 나왔으니까요. 이름을 알고 나니까 목요일마다 저녁을 할 수가 없었어요. 그 시간에 여기 와요.”

“사모님, 여쭙겠습니다.”

사모님이 대답하지 않으셨다. 나는 계속했다.

“10월 22일 밤에 선생님이 집에 계셨다고 경찰에 말씀하셨습니다.”

“그이가 집에 있었다고 했어요. 저는 그이 말을 믿었어요.”

“사모님은 아홉 시 십사 분에 불을 끄셨습니다. 제가 껐습니다. 그리고 열 시 칠 분에 차고 셔터가 올라갔습니다. 그 셔터는 올라가다 한 번 걸립니다. 사모님은 그 소리를 열한 해 동안 들으셨습니다. 그날 밤 들으셨습니까?”

사모님의 장갑 낀 손이 장갑 안 낀 손을 쥐었다.

“못 들었어요.”

“왜 못 들으셨습니까?”

“약을 먹었으니까요.”

“그 약은 누가 주셨습니까?”

사모님이 입을 열었다가 닫으셨다. 긴 사이가 있었다. 복도 끝 창밖으로 눈발이 가로등 불빛을 가로질러 비스듬히 날렸다.

“그이가. 저녁 먹고 나서 머리 아프다니까 이거 먹고 푹 자라고. 수면제는 안 먹는 사람인데, 저. 그날 처음 먹었어요.”

사모님은 그 말을 하고 나서 스스로 놀라신 얼굴이었다. 말하는 동안 처음으로 그 두 가지를 나란히 놓아 보신 얼굴이었다. 약 한 알과 셔터 소리. 나는 열여섯 해 동안 그렇게 사실을 흩어 놓고 살았다. 흩어 놓으면 뜻이 없고, 모으면 뜻이 생긴다. 뜻이 생기는 것이 무서워서 흩어 놓는다.

“사모님이 선생님 알리바이에 이름을 대셨습니다. 그 말이 그대로 있으면 법정에서 선생님은 집에 계셨던 사람이 됩니다. 한경숙 씨는 혼자 계단에서 미끄러진 사람이 되고요.”

“아주머니.”

사모님 목소리가 처음으로 높아졌다.

“저는 두 아들을 지켜야 해요. 한 애는 감옥에 가게 생겼고, 한 애는 십일 년째 약을 먹어요. 그이까지 무너지면 그 애들은 뭐가 돼요? 아주머니는 몰라요. 아주머니는 남의 집에 사는 사람이니까.”

그 말이 복도에 울렸다. 유리문들이 그 소리를 받았다. 나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남의 집에 사는 사람. 열일곱 해 동안 그건 사실이었다.

“맞습니다. 저는 남의 집에 살았습니다. 그래서 봤습니다.”

사모님이 나를 보셨다.

“지완 씨는 새벽마다 주방 창을 엽니다. 그 창이 영영 닫혀 있으면 그 밤이 없었던 일이 될까 봐서요. 지훈 씨는 자기 집 부엌에서 컵이 어디 있는지 모릅니다. 십일 년 동안 그 방 하나만 알았습니다. 사모님이 지키신 건 그 두 사람이 아니라 그 방 문하고 그 창입니다.”

말하고 나서 나는 숨을 한 번 골랐다. 열일곱 해 동안 주인집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 집에서 잘리고 나서야 할 수 있는 말이었다.

*

사모님은 한참 사진을 보셨다. 그러다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어 무언가를 꺼내셨다. 손바닥을 펴자 반지가 있었다. 가운데 돌이 복도 형광등 빛을 받아 작게 번쩍였다.

“없어진 적 없어요. 11월 19일 밤에 그이가 빼 놓으라고 했어요. 한동안 끼지 말라고. 그 뒤로 이 주머니에 넣고 다녔어요. 목요일마다 여기 오면서도요. 이 아이 앞에서 이걸 만지작거렸어요.”

사모님이 반지를 내 쪽으로 내미셨다.

“아주머니가 가져가 주세요. 그 수사관한테요.”

나는 손을 뒤로 뺐다.

“제가 들면 안 됩니다.”

“왜요?”

“제가 들고 가면 또 제가 훔친 게 됩니다. 이번엔 증거까지 들고요.”

사모님이 나를 멍하니 보시다가, 웃음을 터뜨리셨다. 웃다가 한 손으로 입을 막으셨고, 막은 손 위로 눈물이 흘렀다. 웃음과 울음이 한 얼굴에서 번갈아 났다. 관리실 할아버지가 복도 저쪽에서 고개를 내밀었다가 도로 들어갔다.

“아주머니는 정말.”

“사모님이 직접 가져가셔야 합니다. 내일요.”

사모님이 반지를 도로 주먹에 쥐셨다. 그리고 유리문 안 사진을 한 번 더 보셨다.

“아침에 반 남기는 거요. 처음엔 지훈이 거였어요. 방에서 안 나오니까 제 거에서 반을 덜어서 가지고 올라갔어요. 같이 먹는 거라고요. 그런데 이 아이 이름을 알고 나서는 도윤이 거였어요. 저는 반만 먹어요. 이 아이는 못 먹으니까. 그걸 지완이가 밤에 먹는 줄은 작년에 아주머니 공책 보고 형사가 말해 줘서 알았어요.”

사모님은 유리문 틈에 꽂힌 국화를 바로 세우셨다. 줄기가 기울어 있지도 않았는데 한 번 더 바로 세우셨다.

“내일 갈게요. 경찰서. 그이가 그날 밤 집에 있었는지 저는 모른다고 할게요. 약을 누가 줬는지도요. 반지도요.”

19:32 용미리 추모의 집. 사모님. 한도윤(1995–2014) 칸 앞. 19:50 사모님. “10월 22일 약은 그이가 줬다. 처음 먹었다.” 19:58 사모님. 반지 꺼내 보임. “없어진 적 없다. 11월 19일 밤 그이가 빼 놓으라 했다.” 받지 않음. 20:06 사모님. “내일 경찰서 가겠다.”

*

여덟 시 반에 관리실 할아버지가 불을 끄러 왔다. 사모님과 나는 나란히 주차장으로 나왔다. 눈이 발목까지 쌓여 있었다. 사모님이 부른 콜택시가 헤드라이트로 눈발을 비추며 들어왔다.

“아주머니, 같이 타요. 구로까지 모셔다드릴게요.”

“버스 타겠습니다.”

“이 시간에 버스 없어요.”

나는 시각표를 봤다. 사모님 말이 맞았다. 막차가 여덟 시 십 분이었다. 적어 두지 않은 것이 그것 하나였다.

택시 뒷좌석에 사모님과 나란히 앉았다. 열다섯 달 동안 그분과 같은 높이에 나란히 앉은 것은 처음이었다. 식탁에서는 마주 앉았다. 택시가 산길을 내려가는 동안 사모님은 한참 말이 없으시다가, 자유로에 올라서자 창에 이마를 대신 채로 물으셨다.

“아주머니, 16일 밤에요. 그 사람이 마당에서 어떻게 걸었어요? 저는 등 뒤에 있어서 못 봤어요. 열한 해 동안 매주 그 사람 얼굴은 봤는데, 걸음은 한 번도 못 봤어요.”

나는 공책을 펴지 않았다. 펼 필요가 없었다. 그 줄은 여러 번 읽혀서 외우고 있었다.

“대문까지 열두 걸음인 마당을 열다섯 걸음에 가셨습니다. 두 번 멈추셨고, 두 번 다 2층 끝 방 창을 보셨습니다. 손목은 다른 손으로 감싸고 계셨습니다. 대문은 손으로 잡고 닫으셨습니다. 소리가 안 났습니다.”

사모님은 창에서 이마를 떼지 않으셨다. 유리에 김이 서렸다가 걷혔다가 했다. 가로등이 하나씩 지나갈 때마다 사모님 얼굴에 누런 빛이 한 번씩 스쳤고, 그 빛이 지날 때마다 뺨이 젖어 있는 것이 보였다.

“이거면 돼요.”

그 한마디 뒤로 사모님은 서울에 들어설 때까지 한 번도 말하지 않으셨다. 반지를 쥔 주먹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계셨다. 서울에 들어서자 사모님이 창밖을 보면서 말씀하셨다.

“다음 주 목요일엔 저녁 할 거예요. 오랜만에. 지훈이가 경찰서 가기 전날이니까.”

나는 대답하지 않고 공책을 폈다. 택시 안이 어두워서 글씨가 삐뚤어졌다.

20:35 콜택시. 사모님과 나란히.

14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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