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5,239자) · 명주 · 12월 22일

두 권의 일지

관찰 일지: 그 집 사람들 · 도경

만 19세 이상 이용가

월요일 아침 아홉 시에 청수장 앞에서 문영애 씨를 만났다. 문영애 씨는 앞치마를 벗은 대신 제일 좋은 옷을 입고 나왔다. 자주색 투피스였는데 어깨에 좀약 냄새가 배어 있었다. 열두 해 전 그 집에 면접 보러 갈 때 입은 옷이라고 했다.

“경찰서 가는데 잘 보여야지.”

“형사님들은 옷 안 봅니다.”

“새댁은 뭘 모르네. 다 봐. 안 보는 척하지.”

경찰서 2층 복도에서 배 형사가 우리를 맞았다. 배 형사는 문영애 씨 투피스를 보고 눈을 한 번 크게 떴다가 얼른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문영애 씨가 내 옆구리를 팔꿈치로 찌르면서 봤지, 하고 입 모양으로만 말했다.

문영애 씨 진술은 두 시간이 걸렸다. 나는 복도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조사실 문이 열릴 때마다 믹스커피 냄새가 새어 나왔다.

12월 15일 월요일. 09:00 청수장 앞. 문영애 씨. 09:30~11:30 문영애 씨 진술(강력2팀). 나는 복도.

사흘 뒤 배 형사가 전화를 했다. 목소리가 들떠서 평소보다 반 박자 빨랐다.

“아주머니, 송정모터스요. 2019년에 문 닫았는데 사장님이 살아 계세요. 일흔둘이요. 경기 광주 송정리 비닐하우스 옆에 사시는데, 그 양반이 입고 장부를 다 갖고 계시더라고요. 손으로 쓴 거요. 2014년 10월 17일, 검정 세단, 앞 범퍼 파손, 현금, 분해 후 압축. 차대번호 끝 네 자리까지 적어 놨어요.”

“왜 적으셨답니까?”

“그게요, 아주머니랑 똑같은 소리를 하시더라고요. 나중에 무슨 일 나면 내가 안 한 걸 대려고 적었대요. 세상에 적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지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12월 18일 목요일. 15:20 전화. 배승우 형사. 송정모터스 사장 입고 장부(본인 말).

*

12월 22일 월요일. 14:00 성북경찰서 2층. 오기철 형사.

오 형사가 나를 부른 것은 그다음 주 월요일이었다. 이번에는 조사실이 아니라 강력2팀 사무실 구석 탁자였다. 탁자 위에 종이 상자 하나와 공책 한 권이 놓여 있었다.

공책은 가계부였다. 은행에서 연말에 나눠 주는 비닐 표지 가계부였고, 표지에 2017이라는 금박 숫자가 반쯤 벗겨져 있었다. 오 형사가 그것을 내 쪽으로 밀었다.

“한경숙 씨 방 장롱에서 나왔습니다. 이런 게 여덟 권이에요. 2017년부터 올해까지요. 가계부인데 돈은 한 줄도 안 적혀 있습니다.”

나는 첫 장을 폈다. 삐뚤빼뚤한 볼펜 글씨였다. 줄 칸을 무시하고 크게 적은 글씨라 한 장에 몇 줄 들어가지 않았다.

3월 9일 목. 23:05 창에 불. 앉아 있음. 봉투. 3월 16일 목. 23:04 창에 불. 앉아 있음. 봉투. 3월 23일 목. 23:06 창에 불. 앉아 있음. 봉투.

나는 장을 넘겼다. 같은 줄이 이어졌다. 목요일, 창에 불, 앉아 있음, 봉투. 몇 장에 한 번씩 다른 줄이 끼어 있었다.

비. 우산 없이 옴. 불 켜져 있음. 창에 불 없음. 기다림. 23:40 켜짐. 독감이라 함. 도윤이 생일. 창에 불. 오래 봄.

“오늘 모셔 온 건 이것 때문입니다.”

오 형사가 올해 가계부를 펴서 한 장을 짚었다. 거기서부터 날짜 옆에 내가 아는 날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날들은 내 공책과 같은 시각이었다.

“아주머니 공책과 이 공책이 겹치는 목요일이 예순한 번입니다. 저희가 맞춰 봤는데, 시각이 다른 날이 이틀이에요. 그 이틀도 이 분 차이입니다. 아주머니는 대문 소리를 적으셨고, 이분은 창에 불 켜진 걸 적었으니까요.”

나는 손가락으로 줄을 따라 내려갔다. 10월 2일에서 멈췄다.

10월 2일 목. 처음으로 들어감. 그 방. 같이 가자고 함. 아직 모르겠다 함.

10월 9일은 비어 있었다. 10월 16일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10월 16일 목. 도윤이 간 날. 11년. 봉투 안 받음. 판사가 나와 손목 잡음. 부엌에 불. 여자 하나. 앞치마. 판사 손 놓음. 고맙다.

나는 그 줄을 오래 봤다. 볼펜 글씨가 「고맙다」에서 종이를 눌러 뒷장까지 자국이 나 있었다. 유리 두 장 너머에서 오래 나를 보던 그 눈이 떠올랐다. 원망하는 눈이 아니었다. 거기 사람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을 처음 안 사람의 눈이었다. 그 사람은 그날 밤 집에 가서 그것을 적었다. 나도 그날 밤 방에서 적었다. 같은 밤, 같은 불빛을 두 사람이 각자의 방에서 적었다.

10월 20일 월. 그 집 초인종. 아주머니가 받음. 사모님 없다 함. 판사한테 전해 달라 함. 수요일 열 시 반.

그리고 마지막 장이었다.

10월 22일 수. 오늘 판사가 온다. 열 시 반. 도윤아, 오늘 끝낸다. 지훈이는 집에 있으라 했다.

그 아래는 비어 있었다. 가계부 칸이 끝까지 비어 있었다. 나는 그 빈칸을 손바닥으로 덮었다. 덮었다가 떼었다. 비어 있는 것을 덮는다고 채워지지는 않는다.

14:20 한경숙 씨 가계부(2017~2025) 여덟 권 봄. 목요일 23시 전후 「창에 불」. ※ 10월 16일 「부엌에 불. 여자 하나. 고맙다.」 ※ 10월 22일 「오늘 판사가 온다. 열 시 반.」 마지막 줄.

*

“그 상자는요?”

오 형사가 종이 상자 뚜껑을 열었다. 안에 누런 봉투가 빽빽이 세로로 꽂혀 있었다. 사과 상자 하나를 다 채우고 있었다. 봉투마다 앞면 귀퉁이에 연필로 날짜가 적혀 있었다.

“사백열한 장입니다. 하나도 안 뜯었어요. 봉합이 다 그대로입니다.”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요?”

“모릅니다. 저희도 안 열었습니다.”

오 형사는 상자 뚜껑을 도로 덮었다. 덮는 손이 조심스러웠다. 압수물을 다루는 손이 아니라 남의 제사상에서 그릇을 내리는 손 같았다.

“윤지훈 씨가 제본소에서 받은 월급 봉투를 어머니한테 드리고, 어머니가 마당에서 전했다고 들었습니다. 안에 뭐가 들었는지 저는 짐작만 합니다. 짐작은 안 적습니다.”

“저도 그렇게 합니다.”

“압니다. 아주머니 공책 보고 배웠어요.”

오 형사가 처음으로 농담 비슷한 것을 했다. 앞니 하나가 조금 비뚤게 드러났다.

※ 봉투 사백열한 장. 미개봉. 연필로 날짜.

오 형사가 상자를 탁자 밑으로 내려놓고 의자에 등을 기댔다. 사무실 창밖으로 해가 기울어서 블라인드 틈마다 누런 줄이 탁자 위에 길게 누웠다. 그 줄이 오 형사 양복 어깨의 흰 가루를 비췄다. 가루가 아니라 머리에서 떨어진 흰머리 조각이었다는 것을 나는 그때 알았다.

“아주머니, 재판까지 가면 법정에 서셔야 합니다. 검사가 부를 겁니다.”

“압니다.”

“저쪽 변호사가 아주머니를 도둑으로, 거짓말쟁이로, 짐작을 사실처럼 적는 사람으로 만들려고 할 겁니다. 정도 법무법인이 그 일은 이 나라에서 제일 잘합니다.”

“지금도 그러고 있습니다.”

오 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하나가 아직 비어 있습니다. 22일 밤 윤 선생이 집에 있었다는 사람이 한 분 계세요. 사모님이요. 사모님이 그 말을 무르지 않으시면, 법정에서는 부부 한 쌍의 말과 도우미 한 분의 공책이 맞서는 게 됩니다.”

“사모님은 그날 약을 드시고 아홉 시 십사 분에 불을 끄셨습니다.”

“그 약이 뭔지 저희는 모릅니다. 사모님이 말씀하셔야 알아요. 윤지훈 씨도 아직입니다. 어머니가 무르시기 전에는 안 나오겠다고 했답니다.”

나는 탁자 밑 상자를 봤다. 사백열한 번의 목요일이 뚜껑 아래 세로로 서 있었다. 그중 예순한 번은 내가 대문 소리로 들었다. 두 번, 두 번, 두 번.

“사모님은 목요일마다 여섯 시 사십 분에 나가십니다. 국화를 들고요.”

오 형사가 나를 봤다.

“어디로요?”

“모릅니다. 차로는 안 가시고 콜택시를 부르십니다. 돌아오시는 건 아홉 시 전후입니다.”

오 형사가 수첩을 펴서 적었다. 이번에는 내가 한 말을 오 형사가 받아 적었다.

*

사무실을 나와 복도로 나서는데 계단에서 사람들이 올라왔다. 셋이었다. 앞에 강동수 씨가 서류 가방을 들고 있었고, 뒤에 모르는 젊은 변호사가 있었고, 가운데 윤 선생이 있었다.

한 달 만이었다. 윤 선생은 여전히 넥타이를 거울 앞에서 한 번만 고친 얼굴이었다. 그런데 코트 단추가 하나 어긋나 있었다. 열다섯 달 동안 나는 그 사람 옷에서 어긋난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복도는 좁았다. 비킬 데가 없었다. 윤 선생이 내 앞에서 멈췄다. 강동수 씨가 무슨 말을 하려고 입을 열었는데 윤 선생이 손을 들어 막았다.

“아주머니.”

“네.”

“오늘은 제가 조사를 받으러 왔습니다. 참고인이 아니라 피의자로요. 아주머니 덕분이죠.”

“제 덕분이 아닙니다.”

“그럼 누구 덕분입니까?”

“시각 덕분입니다. 22시 07분이 있고 23시 48분이 있습니다. 제가 그걸 만든 게 아닙니다.”

윤 선생이 웃지 않았다. 판사 앞에서 증인이 정확하면 판사는 웃지 않는다.

“아주머니, 저는 삼십 년 동안 법을 했습니다. 당신 같은 사람 말로 제 삼십 년이 끝나지 않습니다.”

「당신」이라는 말을 그 사람이 나한테 한 것은 처음이었다. 열다섯 달 동안 그 사람은 늘 아주머니라고 불렀다. 존대가 벗겨지니까 그 밑에 있던 목소리가 들렸다. 쇠 셔터가 올라가다 한 번 걸리는 소리 같은 목소리였다.

“제 말이 아닙니다. 선생님 차 소리입니다.”

윤 선생 턱이 한 번 불거졌다가 가라앉았다. 그 사람은 더 말하지 않고 나를 지나쳐 갔다. 지나가면서 어깨가 내 어깨에 닿을 뻔했는데, 닿기 직전에 그 사람이 몸을 비틀었다. 흐트러지지 않으려는 몸이었다. 강동수 씨가 뒤따라가면서 나를 돌아보고 웃었다. 그 웃음은 전처럼 부드럽지 않았다.

조사실 문이 닫혔다. 문에 붙은 종이에 「조사 중」이라고 적혀 있었다.

15:10 2층 복도. 윤 선생, 강동수, 변호사 1인. 윤 선생 피의자 조사(본인 말). ※ 윤 선생. “당신 같은 사람 말로 내 삼십 년이 안 끝난다.” 코트 단추 하나 어긋남.

*

그날 밤 엄마 방에서 수아가 휴대폰 기사를 읽어 줬다.

“국회 법사위, 윤태원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일정 잠정 연기. 엄마, 연기래. 무슨 신상 사유래.”

“신상 사유.”

“그게 엄마야.”

“엄마 아니야. 그 가계부야.”

수아가 휴대폰을 내려놓고 내 공책을 봤다.

“엄마, 그 아줌마 공책에 엄마가 나온다며.”

“응.”

“뭐라고?”

“고맙다고.”

수아가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내 공책 오늘 장을 폈다. 폈다가 덮었다. 그리고 엄마 방 불을 끄지 않고 나갔다.

나는 공책을 다시 폈다. 오늘 줄들 아래에 적을 것이 하나 남아 있었다. 열여섯 해 동안 나는 이런 줄을 한 번도 쓴 적이 없다.

※ 같은 밤, 같은 시각. 그 사람도 적고 있었다.

그 줄은 짐작 칸에 쓰지 않았다. 사실이었다. 가계부 여덟 권이 경찰서 사무실 구석 탁자 위에 있었다.

13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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