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174자) · 명주 · 12월 10일~13일
파란 대문
관찰 일지: 그 집 사람들 · 도경
만 19세 이상 이용가
수요일 아침 수아가 출근하면서 휴대폰을 내 앞에 내밀었다. 화면에 기사가 떠 있었다.
「대법원장, 대법관 후보 2명 제청… 윤태원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 포함」
사진 속 윤 선생은 사랑방 책장 앞에 서 있었다. 밤색 판례집이 등 뒤로 흐릿하게 번져 있었고, 넥타이는 거울 앞에서 한 번만 고친 모양 그대로였다. 기사 끝에 국회 인사청문회가 1월 중순으로 예상된다고 적혀 있었다.
“엄마, 이 사람이야?”
“응.”
“엄마를 도둑으로 고소한 사람이 대법관이 된대.”
수아는 휴대폰을 도로 가져가 기사 밑의 댓글을 내리다가 입술을 깨물고 화면을 껐다. 신발을 신으면서 한 번 더 말했다.
“엄마, 이 사람 되면 엄마 고소 누가 판단해?”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애는 현관문을 닫기 전에 오늘 저녁은 자기가 하겠다고 했다. 엄마는 손님이니까. 손님이 된 지 이십 일째였다.
12월 10일 수요일. 07:40 기사(수아 휴대폰). 윤 선생 대법관 후보 제청. 청문회 1월 중순 예상.
*
그날 오후 나는 오 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명함에 적힌 번호였다. 신호가 여섯 번 가고 나서야 쉰 목소리가 받았다.
“오명주입니다.”
“아, 예.”
“하나 여쭤도 됩니까? 그 집 차요. 십일 년 전에 없어진 검은 차.”
수화기 너머가 조용했다. 조용한 사이에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다.
“그 차는 2014년 11월에 매각 처리돼 있습니다. 서류상으로요. 산 사람이 없어요. 폐차장 기록도 없고요. 그 차가 어디로 갔는지를 본 사람이 있으면 좋겠는데, 윤지완 씨는 수돗가까지만 봤다고 하고, 윤지훈 씨는 아직 안 나오셨습니다.”
“본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누굽니까?”
“제가 먼저 만나 보겠습니다. 그분이 말하겠다고 하면 번호를 드리겠습니다.”
오 형사가 잠깐 말이 없다가, 그렇게 하시라고 했다. 전화를 끊기 전에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주머니, 그분 탓 하지 마십시오. 십일 년 동안 말 안 한 거요. 말 안 하는 데도 이유가 있습니다.”
14:10 전화. 오기철 형사. 2014년 11월 차 매각 서류, 산 사람 없음(본인 말).
*
12월 13일 토요일. 11:00 삼선교. 청수장 여관.
청수장은 삼선교 개천 옆 골목 안에 있었다. 간판 네온 글자 중에 「청」의 받침이 나가서 밤이면 「처수장」이 된다고, 카운터의 여관 주인이 묻지도 않았는데 알려 줬다. 나는 열네 해 동안 쉬는 날마다 여관에 갔다. 여관 카운터 냄새는 어디나 같다. 락스와 오래된 카펫과 누가 끓여 먹은 라면 냄새가 한 겹씩 쌓여 있다. 카운터 유리창 안쪽에는 방 열쇠가 번호표를 단 채 못에 줄지어 걸려 있었고, 비어 있는 못이 세 개였다. 세 방에 사람이 있었다.
“문영애 씨 계십니까?”
“이름은 몰라요. 여기선 다 방 번호야. 몇 호 찾으세요?”
“예순넷이고 짐가방 두 개 끌고 오셨습니다. 하나는 바퀴가 빠졌고요.”
여관 주인이 웃음을 터뜨렸다.
“207호. 그 양반 여기 한 달 반째야. 방값은 꼬박꼬박 내.”
207호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텔레비전 소리가 줄었다. 문이 열리고 문영애 씨가 내복 바람에 카디건을 걸치고 나왔다. 방 안에서 전기장판 데워진 냄새가 훅 끼쳐 나왔다.
“아이고, 새댁.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떠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입이 방정이지. 이름 알려 준 거 후회하네.”
그 말을 하면서도 문영애 씨는 문을 끝까지 열었다. 방은 두 평 반이었다. 전기장판이 깔린 요 위에 귤껍질이 가지런히 모여 있었고, 벽에 걸린 옷걸이에 앞치마 두 장이 걸려 있었다. 입주하는 사람은 일이 없어도 앞치마를 걸어 둔다. 나도 그렇다.
*
나는 문지방에 앉았다. 문영애 씨는 요 위에 앉아 무릎을 세웠다. 텔레비전에서 홈쇼핑 진행자가 전기 요 두 장을 한 장 값에 준다고 외쳤다. 문영애 씨가 귤 하나를 내 쪽으로 굴렸다. 귤은 요 끝에서 멈췄다.
“먹어. 여관 주인이 한 봉지 줬어. 방값 밀리지 말라고 주는 뇌물이야.”
나는 귤을 받아 들고 까지 않았다. 가방이 조금 열려 있었고, 문영애 씨가 그 안의 공책을 봤다.
“그거 그 공책이지? 지금도 적어?”
“네.”
“지금 몇 시 적었어?”
“열한 시 십칠 분입니다.”
“아이고, 무서워라. 나 여기 들어와서 한 번도 시계 안 봤어. 해 뜨면 일어나고 텔레비전 끝나면 자. 열두 해 동안 여섯 시 알람에 일어났는데 한 달 반 만에 그게 다 없어지더라.”
문영애 씨는 그 집 딸 둘을 키웠다고 했다. 들어갔을 때 큰애가 초등학교 삼 학년, 작은애가 유치원이었다. 둘 다 이모라고 불렀다. 큰애가 대학에 붙던 날 제일 먼저 전화한 사람이 이모였다. 그런데 이모라고만 불렀지 이름을 부른 적은 없었다. 잘리던 날 그 큰애는 교환학생으로 외국에 있었다. 작은애는 방에서 안 나왔다.
“이모 가지 마, 소리 한 번은 들을 줄 알았어. 열두 해면.”
문영애 씨는 그 말을 하고 귤껍질을 다시 모았다. 한 장도 흘리지 않고 요 가장자리에 반듯하게 쌓았다. 일을 오래 한 손은 쉬는 방에서도 치운다.
“새댁 얼굴이 왜 이래. 잠 못 잤어?”
“저도 잘렸습니다. 도둑이라고 고소도 됐고요.”
문영애 씨가 입을 벌린 채로 한참 나를 봤다. 그러다 무릎을 치면서 웃었다. 웃음 끝이 쉬었다.
“새댁도? 우리 둘이 골목에서 오 분 서 있다가 둘 다 길바닥이네. 그 오 분이 비싸다, 비싸.”
“그 오 분 때문에 왔습니다.”
웃음이 멈췄다. 문영애 씨가 리모컨을 들어 텔레비전 소리를 껐다. 화면 속 진행자가 소리 없이 입을 계속 움직였다.
“십일 년 전 10월에요. 그 집 차가 없어진 날이요. 문영애 씨가 보신 거.”
“나는 아무것도 몰라.”
말이 빨랐다. 준비된 말이었다.
“내가 뭘 봤다고 그래. 나는 그 집에서 들은 거 없어. 우리 집 사모님이 그러셨다고 했잖아.”
“차가 없어졌다고 하셨습니다. 검은 거, 판사님 차라고요. 그건 사모님한테 들은 말이 아니라 보신 말투였습니다.”
“새댁.”
문영애 씨 목소리가 낮아졌다. 무릎을 세운 팔에 힘이 들어갔다.
“내가 그 말 한 번 해서 열두 해 산 집에서 쫓겨났어. 이 나이에 입주 받아 주는 데 없어. 소개소에서 다 알아. 말 많은 여자라고. 또 하면 이번엔 뭘 잃어? 이 방값?”
나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 말이 다 맞았다. 강동수 씨가 골목에서 묶어 준 매듭이 떠올랐다. 친절한 손으로 묶은 매듭이 제일 안 풀린다.
그때 나는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수아가 아침에 저장해 준 기사를 열어서 문영애 씨 앞에 내밀었다. 사진 속 윤 선생이 판례집 앞에 서 있었다.
“이 사람이 다음 달에 대법관이 된답니다.”
문영애 씨는 화면을 오래 봤다. 홈쇼핑 진행자가 소리 없이 손뼉을 쳤다.
“그리고 하나 더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그 반찬가게 아주머니가 수요일 밤에 그 판사님을 자기 집으로 불렀습니다. 그 말을 판사님한테 전한 게 저입니다. 인터폰으로 들은 말을 제가 옮겼습니다.”
문영애 씨가 고개를 들었다.
“새댁은 전하는 게 일이었잖아.”
“그래도요.”
그 말 뒤로 한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전기장판에서 틱, 하고 온도 조절기가 켜지는 소리가 났다. 문영애 씨가 귤껍질 하나를 집어 손끝으로 잘게 찢었다. 찢어진 껍질에서 새콤한 냄새가 났다.
*
“2014년 10월 17일이야. 금요일 새벽.”
문영애 씨가 찢던 귤껍질을 내려놓았다.
“다섯 시 반쯤 우리 집 개가 막 짖었어. 그 개가 트럭 소리만 나면 짖어. 나가 봤지. 골목에 흰 트럭이 서 있었어. 차 싣는 트럭 있잖아, 뒤가 경사로로 내려오는 거. 그 위에 판사님 검은 차가 올라가 있더라고. 앞쪽에 파란 방수포를 덮어서 끈으로 묶었어. 범퍼 있는 데만.”
“판사님은요?”
“잠옷 바람에 우산 쓰고 대문 앞에 서 있었어. 트럭 기사한테 흰 봉투를 줬어. 기사가 봉투 두께를 손으로 재더라. 그러고 떠났어.”
문영애 씨가 창밖을 봤다. 여관 창밖은 옆 건물 벽이었다.
“트럭 문짝에 글씨가 있었어. 경기 광주, 송정모터스. 내가 광주 사람이라 그 글씨가 눈에 박혔어. 송정리가 우리 외갓집 동네거든. 아, 고향 동네 차가 새벽에 여길 다 왔네, 했지. 그게 다야.”
“그 뒤로 누구한테 말하셨습니까?”
“아무한테도. 그 주에 성북로 뺑소니 기사가 났을 때도. 둘을 나란히 놓으면 이상한 얘기가 되잖아. 나란히 안 놓기로 했지. 열두 해 동안 나는 그렇게 살았고, 그렇게 살아서 한 집에 열두 해를 있었어.”
나는 그 말을 알았다. 열일곱 해 동안 나도 그렇게 살았다.
“딱 한 번 말했어. 그 집 둘째한테. 걔가 스무 살 됐을 때 쓰레기 버리는 날 나와서 묻더라. 아줌마, 그날 새벽에 트럭 봤어요? 그래서 봤다고 했어. 걔가 고맙다고 하고 들어갔어. 그게 다야.”
문영애 씨가 요 위에서 무릎을 풀었다.
“새댁, 그 형사 번호 줘 봐.”
“말씀하시겠습니까?”
“내가 뭘 잃어. 방값? 방값은 있어. 이번 달까지는.”
나는 오 형사 명함을 꺼내 요 위에 놓았다. 문영애 씨는 명함을 집지 않고 내려다보기만 하다가, 휴대폰을 꺼내 번호를 한 자씩 눌렀다. 누르는 손가락이 조금 떨렸다. 통화 버튼을 누르기 전에 나를 봤다.
“새댁, 옆에 있어.”
“네.”
12:20 청수장 207호. 문영애 씨. 2014년 10월 17일 05:30경 흰 탁송 트럭, 윤 판사 차, 앞 범퍼 파란 방수포. 트럭 문짝 「경기 광주 송정모터스」(본인 말). 12:34 문영애 씨, 오기철 형사에게 전화.
*
통화는 십이 분이었다. 문영애 씨는 전화를 끊고 한참 휴대폰을 요 위에 엎어 두었다. 텔레비전 화면 속 진행자는 여전히 소리 없이 무언가를 팔고 있었다.
“월요일에 오래. 경찰서로.”
“같이 가겠습니다.”
“새댁은 왜.”
“저 층이 달라서 헷갈리실 겁니다. 2층이 강력팀이고, 3층은 저 도둑으로 부르는 데고요.”
문영애 씨가 웃었다. 이번에는 끝이 쉬지 않았다.
나오면서 카운터 앞을 지나는데 여관 주인이 누구를 부르고 있었다. 207호, 택배요. 문영애 씨가 복도 끝에서 네 하고 대답했다. 나는 계단을 내려가다가 돌아봤다.
“문영애 씨.”
“어?”
“월요일 아홉 시에 여기 앞에서 뵙겠습니다.”
“그래, 그거.”
열네 달 동안 골목에서 새댁과 건너편으로만 불렸다. 그날 나는 그 사람 이름을 처음 소리 내어 불렀다. 이름을 부르니 그 사람이 여관 방 번호가 아니라 사람이 됐다. 여관 주인은 그 뒤로도 207호라고 불렀지만, 문영애 씨는 그 소리에 대답하기 전에 나를 한 번 보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