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5,231자) · 명주 · 12월 2일~4일
엄마 방
관찰 일지: 그 집 사람들 · 도경
만 19세 이상 이용가
출석 요구서가 한 번 더 왔다. 이번에는 수아네 주소로 왔다. 받는 사람 칸은 같았는데 사건 칸이 달랐다. 절도였다. 나는 그 두 글자를 한참 봤다. 열일곱 해 동안 내가 제일 무서워한 두 글자가 누런 봉투 안에 반듯한 명조체로 들어 있었다.
수아가 봉투를 내 손에서 가져가 읽었다.
“엄마, 피의자래. 엄마가 피의자야.”
“알아.”
“이거 성북서잖아. 저번에 엄마 진술한 데 아니야?”
“같은 건물이야. 층이 달라.”
수아가 봉투를 식탁에 탁 내려놓았다. 그 애는 화가 나면 물건을 소리 나게 놓는다. 나는 소리가 안 나게 놓는다. 한 집에 살면 그런 것부터 보인다.
11월 28일 금요일. 10:20 우편. 출석 요구서. 사건명 절도. 피의자.
*
12월 2일 화요일. 10:00 성북경찰서 3층. 지능범죄수사팀.
3층 조사실은 2층 강력팀 조사실보다 밝았다. 창이 하나 있었다. 수사관은 마흔 중반의 여자였고 진이라는 성을 댔다. 머리를 뒤로 단단히 묶었고 손톱이 짧았다. 믹스커피는 권하지 않고 생수를 한 병 줬다.
“10월 22일 21시 10분부터 21시 14분까지 안방에 들어가셨죠?”
“네.”
“고소인 측은 그 시각 이후 화장대 위 반지가 없어졌다고 합니다.”
“그 시각 이후 저는 안방에 안 들어갔습니다.”
“그걸 어떻게 증명하시죠?”
“제 공책이 2층 강력2팀에 있습니다. 그날 줄을 보시면 됩니다.”
진 수사관이 볼펜 끝으로 책상을 한 번 두드렸다.
“그 공책은 오명주 씨가 쓴 거죠. 고소인 측 주장도 그거예요. 본인이 쓴 기록으로 본인을 변호한다.”
“그래서 이것도 가져왔습니다.”
나는 가방을 책상 위에 올렸다. 지퍼를 열자 공책이 쏟아지듯 기울어졌다. 스물두 권이었다. 진 수사관이 의자를 뒤로 조금 뺐다.
“이게 뭡니까?”
“열여섯 해 치입니다. 스물두 집이요. 이 집 것은 위층에 있고요.”
“이걸 왜….”
“제가 이 집에 와서 갑자기 적기 시작한 게 아니라는 걸 보여 드리려고요. 열여섯 해 동안 매일 적었습니다. 없어진 물건이 아홉 번 있었고, 아홉 번 다 나왔습니다.”
나는 맨 밑의 공책을 꺼내 한 장을 폈다. 오래 쓴 공책이라 그 장은 손이 저절로 갔다. 열여섯 해 동안 이 장은 내가 제일 여러 번 펴 본 장이었다.
1. 반지 — 세탁기 안 (첫 집) 2. 현금 오만 원 — 서랍 뒤 3. 목걸이 — 옷장 밑 4. 시계 — 차 안 5. 통장 — 다른 서랍 6. 카드 — 지갑 안쪽 칸 7. 귀걸이 — 세면대 배수구 8. 현금 이십만 원 — 봉투 안. 본인이 넣어 둔 것 9. 수저 세트 — 찬장 위 칸
진 수사관이 그 장을 오래 봤다. 볼펜 두드리던 손이 멈춰 있었다.
“이걸 다 적어 두셨어요? 어디서 나왔는지까지?”
“나오면 적습니다. 나오기 전에 저한테 먼저 물었다는 것도 적습니다. 아홉 번 다 먼저 물었습니다.”
“그런데 왜 처음부터 이렇게 적으셨어요?”
그 질문은 이제 네 번째였다. 나는 첫 집 이야기를 했다. 열일곱 해 전 일이었는데, 말하다 보니 그보다 훨씬 오래된 일 같았다.
*
서른다섯 살이었다. 집이 없어졌고, 열두 살 딸을 언니 집에 두고 처음 입주로 들어갔다. 그 집 규칙은 둘이었다. 안방은 오후에만 청소한다, 개는 만지지 않는다. 열한 달째 되는 십일월 저녁에 사모님이 물었다. 화장대에 반지 못 보셨어요? 오늘 안방 청소하셨죠? 몇 시에요?
오후에 했다. 그 집 규칙이 오후니까 오후에 했다. 그런데 몇 시인지 몰랐다. 두 시나 세 시쯤이라고 했다. 두 시요, 세 시요? 그것도 모르세요?
몰랐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몰라서 아무 말도 못 한 것이 문제였다. 아무 말도 못 하면 그것이 대답이 된다. 사흘 동안 그 집에서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밥은 했고 사람들은 먹었다. 나흘째에 반지가 세탁기 안에서 나왔다. 사모님이 손을 씻다가 빼서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고, 그 앞치마를 빨래통에 넣은 사람이 나였다. 사모님은 미안하다고 했다. 미안해하면서 잘해 줬다. 미안해하면서 잘해 주는 것을 받으면, 그 사흘이 없어지지 않고 계속 거기 있는다. 한 달 뒤에 나왔다.
나오는 날 시장에서 공책을 샀다. 천이백 원이었다.
진 수사관은 그 이야기를 받아 적지 않았다. 다 듣고 나서 생수병 뚜껑을 한 번 열었다 닫았다.
“2층하고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공책은요?”
“가져가세요. 이건 증거가 아니라, 오명주 씨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 주는 거니까요.”
그 말을 듣고 나는 윤 선생이 사랑방에서 했던 말을 떠올렸다. 판사는 기록을 믿지 않습니다, 기록한 사람을 봅니다. 같은 말을 다른 사람이 하면 다른 말이 된다.
10:00~11:40 지능범죄수사팀. 진 수사관(본인 말). 피의자 조사. ※ 공책 스물두 권 보임. 가지고 나옴.
*
12월 4일 목요일. 19:20 초인종.
목요일 저녁에 수아네 초인종이 울렸다. 이 빌라 초인종은 인터폰 화면이 없고 새소리가 난다. 삐비빅, 하고 우는 새소리였다. 수아가 먼저 문을 열었다.
강동수 씨였다. 양복에 코트를 걸쳤고, 손에 서류 봉투와 귤 한 상자를 들고 있었다. 귤 상자에서 새콤한 냄새가 현관까지 번졌다.
“오명주 씨 계시죠? 법무법인 정도 강동수입니다. 따님이시죠? 어머님이랑 잠깐 말씀 나누려고요.”
수아가 문을 반만 열고 그 틈에 몸을 댔다.
“엄마 지금 쉬시는데요. 명함 먼저 주세요.”
강동수 씨가 명함을 내밀었다. 수아는 명함을 받아서 앞뒤를 뒤집어 보더니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저 회사에서 돈 계산하는 사람이라서요. 서류는 잘 봐요. 귤은 안 받아요. 귤값 계산하기 싫어서.”
나는 방에서 나왔다. 강동수 씨가 수아 어깨 너머로 나를 보고 웃었다.
“오명주 씨, 좋은 소식 가져왔습니다.”
그 사람은 현관에 선 채로 서류 봉투에서 종이를 꺼냈다. 합의서였다. 고소인 윤태원, 서정인. 피고소인 오명주. 고소인은 고소를 취하한다. 피고소인은 성북경찰서 강력2팀에 제출한 진술 중 기억이 불확실한 부분을 정정한다. 고소인은 피고소인에게 위로금 삼천만 원을 지급한다.
“기억이 불확실한 부분이 어딥니까?”
“그건 오명주 씨가 제일 잘 아시겠죠. 밤 열한 시 넘어서 창 너머로 보신 거, 보일러 소리 나는 방에서 들으신 셔터 소리, 그런 거요. 사람 기억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적어 둔 것은 기억이 아닙니다.”
“적은 것도 사람이 적죠.”
“정정할 게 없습니다. 틀린 줄이 없습니다. 틀린 줄에는 두 줄을 긋는데, 그 공책엔 두 줄 그은 데가 여섯 군데 있습니다. 그 여섯 군데는 이미 고쳐져 있습니다.”
강동수 씨가 합의서를 도로 봉투에 넣었다. 넣으면서 수아를 봤다.
“따님 회사가 한결물류죠? 저희 대표님 로펌이 거기 법률 자문입니다. 좋은 회사예요. 오래 다니시면 좋겠네요.”
수아의 어깨가 굳었다. 문틈을 막고 있던 몸이 한 번 흔들렸다. 나는 수아 뒤로 가서 그 애 등에 손을 댔다. 등이 뜨거웠다.
“우리 딸 회사 이야기는 하지 마십시오.”
“제가 무슨 이야기를 했나요? 좋은 회사라고 했죠.”
수아가 내 손을 등에서 떼어 냈다. 떼어 낸 손을 꼭 쥐었다. 그러고 강동수 씨를 똑바로 봤다.
“잘리면 엄마랑 같이 놀죠, 뭐. 엄마 열일곱 해 동안 한 번도 논 적 없거든요. 같이 놀 사람 생겨서 좋네요.”
그 애가 문을 닫았다. 소리가 나게 닫았다. 문 너머에서 한동안 발소리가 나지 않다가, 계단을 내려가는 구두 소리가 났다. 귤 상자는 끝내 계단참에 놓여 있었고, 수아는 다음 날 아침 그것을 경비실에 맡기면서 주인 찾아 주라고 적은 쪽지를 붙였다.
19:20 강동수. 합의서(고소 취하·진술 정정·위로금 삼천만 원). 거절. ※ 수아 회사 이름을 댐.
그 줄을 적는 동안 수아가 식탁 맞은편에 앉아 내 손을 봤다. 문을 닫을 때의 기세는 어디 가고 무릎이 조금 떨리고 있었다.
“엄마, 진짜 잘리면 어떡하지?”
“그럼 엄마가 벌면 돼.”
“엄마 지금 잘렸잖아.”
“다음 집 가면 되지.”
수아가 웃다가 울상이 됐다가 다시 웃었다. 그 애는 어릴 때도 그랬다. 한 얼굴에 날씨가 세 번 바뀌었다.
“엄마, 그거 공책에 적어 둬. 몇 시 몇 분에 저 아저씨가 우리 회사 이름 댔는지. 나중에 필요할 거야.”
그 말은 두 번째 듣는 말이었다. 판사 집 둘째 아들이 먼저 했다. 나중에 필요할 거예요. 나는 수아에게 벌써 적었다고 공책을 돌려 보여 줬다. 수아는 그 줄을 손가락으로 따라 읽고, 시각 앞에서 멈췄다.
“십구 시 이십 분. 엄마 이거 진짜 무섭다. 초인종 울리자마자 시계 봤어?”
“응.”
“나는 누가 오면 머리부터 만지는데.”
*
그날 밤 수아가 엄마 방에 들어왔다. 내 공책 가방 옆에 쪼그려 앉았다.
“엄마, 이거 나 봐도 돼?”
열여섯 해 동안 그 공책을 보자고 한 사람은 둘뿐이었다. 한 사람은 서약서를 내밀었고 한 사람은 달라고 했다. 이 겨울에는 셋이 봤다. 형사, 수사관, 그리고 딸이었다.
“봐.”
수아는 맨 밑 공책부터 한 장씩 넘겼다. 시각과 시각과 시각이었다. 칠 분쯤 넘기다가 그 애가 손을 멈췄다.
12월 3일. 휴무. 수아. 언니 집. 두 시간.
“엄마, 이거 나야?”
“응.”
수아가 다음 권을 넘겼다. 또 멈췄다.
1월 14일. 휴무. 수아. 중학교 졸업식. 한 시간 반.
“엄마 일지에 엄마 얘기는 이것밖에 없어?”
“그거 내 얘기 아니야. 네 얘기지.”
수아는 대답하지 않고 공책을 넘겼다. 넘기면서 그 줄들을 셌다. 휴무, 수아, 휴무, 수아. 스물두 권에 예순일곱 줄이었다. 그 애가 센 숫자였다. 열여섯 해 동안 나는 그 줄들을 한 번도 세어 본 적이 없었다.
그날 밤도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에 누워서 소리를 셌다. 셀 게 없어서 다른 것을 셌다. 냉장고가 삼 분에 한 번 멈추는 것은 어느 집이나 같았다. 옆집 현관문이 밤 열한 시쯤 한 번 열렸다. 그리고 아침 여섯 시 사십 분에 위층에서 발소리가 났다. 뒤꿈치부터 딛는 무거운 발이었다.
냉장고 — 삼 분에 한 번 멈춤. 옆집 문 — 밤 11시쯤 한 번. 위층 발소리 — 06:40.
아침에 수아가 식탁에서 그 세 줄을 봤다.
“엄마 여기서도 적어?”
“응.”
수아가 셋째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위층 발소리 여섯 시 사십 분 맞아. 나도 알아. 그 아저씨 택시 기사야. 첫차 몰러 나가.”
“알았어?”
“나 여기 이 년 살았는데, 그거 엄마한테 처음 말해.”
나는 그 줄 옆에 괄호를 달았다. 택시 기사, 첫차. 수아 말. 이 집에서는 내가 모르는 것을 딸이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