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308자) · 명주 · 11월 20일
반지
관찰 일지: 그 집 사람들 · 도경
만 19세 이상 이용가
11월 20일 목요일. 06:20 기상. 06:40 주방. 쌀 두 컵. 06:55 사랑방. 윤 선생.
윤 선생은 일곱 시 전에 나를 사랑방으로 불렀다. 스탠드가 아니라 천장 등이 켜져 있었다. 천장 등 아래에서 보는 사랑방은 처음이었다. 밤색 판례집 책등마다 금박 글씨가 빛을 받아 반짝였고, 책상 위에는 서류가 한 장도 없었다. 봉투 하나와 종이 한 장만 있었다.
“오늘부로 계약을 해지합니다. 한 달 치 급여는 오늘 아침 통장에 넣었습니다. 이건 퇴직 확인서입니다.”
종이에는 이미 윤 선생 서명이 있었다. 내 서명 칸만 비어 있었다.
“사유가 뭡니까?”
“절도 혐의로 고소된 분을 집에 둘 수는 없습니다. 이해하실 겁니다.”
“반지는 어디 있습니까?”
“그걸 찾는 게 경찰 일이죠.”
나는 확인서를 내려다봤다. 사유 칸에 「고용인 사정」이라고 적혀 있었다. 절도라고 적혀 있지 않았다. 적지 않은 것이 이 사람 방식이었다. 종이에는 깨끗한 말만 남기고 더러운 말은 입으로만 한다.
“사모님 손가락에 반지 자국이 있습니다. 뺀 자국입니다.”
윤 선생이 처음으로 웃었다. 열다섯 달 만에 본 그 사람 웃음이었다. 입꼬리만 올라가고 나머지 얼굴은 그대로였다.
“자국은 증거가 아닙니다. 짐작이죠. 짐작은 안 적으신다면서요.”
“그래서 짐작 칸에 적었습니다.”
“그 칸도 법정에서 읽힐 겁니다. 도둑으로 고소된 도우미가 주인의 손가락을 보고 적은 짐작으로요.”
그 사람은 볼펜을 내 쪽으로 밀었다. 나는 볼펜을 잡지 않았다.
“서명은 안 하겠습니다. 나가라고 하시면 나가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나가는 이유가 고용인 사정은 아닙니다.”
윤 선생이 볼펜을 도로 가져갔다. 그 볼펜으로 확인서 사유 칸 옆 여백에 무언가를 적었다. 거꾸로 봐서 읽을 수 없었다. 적고 나서 종이를 서랍에 넣었다.
“짐은 오늘 중으로 빼 주십시오. 열쇠는 현관 신발장 위에 두시고요.”
일곱 시 십 분이었다. 그 사람은 구두 뒤축을 튕기고 나갔다. 해고를 하는 날에도 칠 시 십 분이었다.
06:55 사랑방. 윤 선생. 계약 해지 통보. 사유 「고용인 사정」. 확인서 서명 안 함. 07:10 윤 선생 출근.
*
짐은 가방 둘이었다. 옷 한 가방, 나머지 한 가방. 나머지 가방에는 공책 스물두 권과 새 공책 두 권이 들어갔다. 공책은 옷보다 무겁다. 열여섯 해 치 종이가 가방 바닥에 깔리자 바퀴가 제대로 구르지 않았다.
방을 비우는 데 사십 분이 걸렸다. 열다섯 달을 산 방인데 사십 분이면 비었다. 벽에 걸어 둔 달력을 떼니 그 자리만 벽지가 희었다. 보일러 배관이 벽 너머에서 한 번 숨을 몰아쉬었다. 이 방에서 그 소리를 듣는 것도 마지막이었다.
열 시에 안방 문 앞에 섰다. 사모님은 아침에 한 번도 안 내려오셨다. 나는 문을 두 번 두드렸다.
“사모님, 오명주입니다. 오늘 나갑니다.”
문 너머에서 이불이 스치는 소리가 났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반지가 없어졌습니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없어졌으면 없어졌다고, 아니면 아니라고만 해 주십시오. 저는 그것만 적겠습니다. 다른 건 안 여쭙겠습니다.”
긴 사이가 있었다. 복도 끝 건조대에서 마른 수건 하나가 바닥으로 미끄러지는 소리가 났다. 그러고 나서 문 너머에서 목소리가 왔다. 문에 얼굴을 대고 하는 목소리여서 나무가 조금 울렸다.
“미안해요.”
그 말뿐이었다. 없어졌다고도 아니라고도 하지 않으셨다. 나는 문 앞에 조금 더 서 있다가 복도 끝으로 가서 떨어진 수건을 주워 개어 건조대에 걸었다. 바닥에 떨어진 것은 내가 줍는다. 그날까지는 그랬다.
10:05 안방 문 앞. 사모님께 반지 여쭘. 답 「미안해요」. 없어졌다고도 아니라고도 안 하심.
*
계단을 내려오는데 지완 씨가 계단 아래에 서 있었다. 네 번째 칸 옆 벽에 기대 있었다. 그 사람은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있다가, 내 옷 가방을 대신 들었다. 들고 나서 무게에 한 번 놀랐다.
“이게 옷 가방이에요?”
“공책은 저쪽입니다.”
“그럼 이게 가벼운 거예요?”
“네.”
지완 씨가 웃었다. 이번에는 눈이 먼저 웃었다.
“형한테 말했어요. 아주머니 나가신다고. 형이 그러더라고요. 그럼 목요일에 컵은 누가 찾아 주냐고.”
“위 칸이라고 전해 주세요.”
“적어 드릴게요, 찬장 문에.”
지완 씨는 옷 가방을 현관까지 들어다 줬다. 현관에서 가방을 내려놓고 한동안 신발장만 보다가 말했다.
“창은 제가 계속 열게요. 아주머니가 안 닫으시니까 이제 좀 심심하겠지만.”
“닫는 사람을 새로 들이실 겁니다.”
“그 사람한테는 제가 말할게요. 그 창은 원래 열리는 창이라고.”
지완 씨가 현관에 서 있는 동안 나는 부엌에 한 번 더 들어갔다. 가스 밸브가 잠겼는지 보고, 냉장고 2단 안쪽을 봤다. 사모님이 아침을 안 드셔서 그 자리가 비어 있었다. 서랍을 열어 영수증 한 장을 꺼내 뒷면에 적었다. 다음 사람이 읽을 줄이었다.
주방 창은 새벽에 열려 있습니다. 여는 사람이 있습니다.
닫지 말라고는 적지 않았다. 닫을지 말지는 다음 사람이 정한다. 나는 열다섯 달 동안 그 창을 닫았고, 마지막 주에 닫지 않았다. 그 두 가지를 다 해 본 사람이 적을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였다. 영수증을 접어서 서랍 맨 앞, 수저 받침 옆에 세워 두었다.
나는 열쇠를 신발장 위에 놓았다. 열다섯 달 동안 앞치마 주머니에 들어 있던 열쇠였다. 주머니가 가벼워지니까 앞치마 끈이 헐거워진 것 같았다. 앞치마는 벗어서 개어 가방에 넣었다. 이 집 앞치마가 아니라 내 앞치마였다.
*
현관에서 대문까지 걸었다. 열다섯 달 동안 하루 스무 번씩 걸은 거리다. 대문에서 현관까지 열두 걸음이니 현관에서 대문까지도 열둘이어야 한다.
열셋이었다.
가방이 무거워서가 아니었다. 공책 가방은 무거웠지만 바퀴가 있었다. 보폭이 줄었다. 마당을 가로지르면서 나는 감나무를 봤고, 감나무 밑 의자를 봤고, 부엌 창을 봤다. 창이 이십 센티 열려 있었다. 지완 씨가 새벽에 연 그대로였다. 보면서 걸으면 보폭이 준다.
대문을 나서기 전에 뒤를 돌아봤다. 2층 끝 방 창이 남색이었다. 감나무 가지가 그 창 앞에 뻗어 있었다. 나는 대문을 손으로 잡고 닫았다. 소리가 나지 않았다. 열다섯 달 동안 목요일마다 누군가 그렇게 닫았다.
10:40 대문→골목 열세 걸음. 10:41 퇴거.
*
수아네 집은 구로에 있다.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탔다. 계단마다 가방 두 개를 하나씩 들어 올려야 했는데, 세 번째 계단에서 모르는 청년이 공책 가방을 들어 줬다. 청년은 가방을 내려놓으면서 할머니 이거 벽돌이에요 하고 물었다. 나는 쉰둘이다. 벽돌이 아니라 종이라고 했다. 청년은 종이가 이렇게 무거우면 뭐 하러 들고 다니냐고 웃고 갔다.
수아는 회사에서 조퇴를 하고 빌라 앞에 나와 있었다. 전화로 해고됐다고 말하자 그 애는 삼 초 동안 아무 말도 안 하다가, 거기 주소 불러, 하고 말했다. 불러 주지 않고 내가 간다고 했다.
“엄마.”
“응.”
“가방 하나가 왜 이렇게 무거워?”
“공책.”
“엄마 옷보다 공책이 더 많아?”
“응.”
수아가 공책 가방을 두 손으로 끌어 올리다가 멈추고 나를 봤다.
“엄마, 도둑으로 몰렸다며.”
“고소장이 들어간대.”
“누가?”
“변호사가.”
“그 판사 집?”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수아가 가방을 계단참에 내려놓고 허리에 손을 얹었다. 그 애가 화가 나면 하는 자세였다. 열두 살 때도 그랬다. 언니 집에 맡겨 두고 한 달에 이틀 만나러 가면, 헤어질 때마다 그 애는 대문 앞에서 허리에 손을 얹고 서 있었다.
“엄마가 뭘 훔쳐. 엄마는 남의 집 수건 한 장 안 갖고 오는 사람인데.”
“알아.”
“아는데 왜 엄마가 나와.”
“나가라고 했으니까.”
수아는 입을 앙다물고 가방을 다시 들어 올렸다. 삼 층까지 한 번도 안 쉬고 올라갔다.
*
방 둘짜리였다. 작은방 문에 종이가 붙어 있었다. 수아 글씨로 「엄마 방」. 매직으로 쓰고 테두리를 두 번 그렸다.
작은방에 침대가 있었다. 이불이 깔려 있었는데 새것이었다. 접힌 자국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었고, 비닐 포장에 붙어 있던 가격표 스티커 자국이 이불 귀퉁이에 네모나게 끈끈했다.
“이거 언제 샀어?”
“지난주에.”
“내가 온다고 안 했잖아.”
“그러니까 사 놨지. 엄마는 온다고 하면 안 와. 안 온다고 할 때 사 놔야 와.”
나는 그 방에 서서 한참 있었다. 창이 있는 방이었다. 창밖으로 옆 빌라 벽이 한 뼘 앞에 있어서 볕은 안 들었지만, 창이 있었다. 열다섯 달 동안 나는 창 없는 방에서 잤다.
그날 저녁 수아가 밥을 했다. 내가 하겠다고 하자 그 애가 주걱을 뺏었다. 엄마는 오늘 손님이야. 손님은 앉아 있는 거야. 나는 식탁에 앉았다. 의자가 둘이었다. 싱크대 건조대에 밥그릇 두 개가 엎어져 있었다. 둘 다 새것이었다. 하나는 꽃무늬였고 하나는 무늬가 없었다. 꽃무늬 쪽 바닥에 가격표가 그대로 붙어 있었다.
“그거 엄마 거야.”
나는 그 그릇을 한참 봤다. 이 집 식탁에는 의자가 둘이고, 그 애 싱크대에는 그릇이 둘이다. 숫자를 세는 것이 내 버릇이다. 열일곱 해 동안 나는 남의 집 숫자만 셌다.
그날 밤 엄마 방에서 공책을 폈다. 새 공책 첫 장에 적을 것이 많았는데, 볼펜이 한 줄에서 오래 멈췄다.
18:30 저녁. 2인. 수아가 함.
「수아가 함」이라고 적었다. 열여섯 해 동안 저녁 줄에 누가 했는지를 적은 적이 없다. 적을 필요가 없었다. 늘 내가 했다.
잠은 오지 않았다. 새 이불은 풀 먹인 것처럼 빳빳해서 돌아누울 때마다 바스락거렸다. 그 소리가 방 안에서 제일 컸다. 열일곱 해 동안 나는 남의 집에서 잤다. 남의 집에서 자면 편하다. 내 것이 아니니까 걱정할 것이 없다. 지붕이 새면 그 집 걱정이고, 그 집이 팔리면 나는 나가면 된다. 내 방이 생기면 그 방이 내 것이 된다. 내 것이 되면 잃을 수 있다. 나는 열일곱 해 전에 집을 한 번 잃었다.
새벽 네 시에 부엌으로 나갔다. 물을 마시려고 나갔는데 불을 켜지 않았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몰라서, 불을 켜면 모르는 것이 한꺼번에 다 보일 것 같았다.
“엄마?”
작은 목소리가 났다. 수아가 제 방 문에 기대 서 있었다.
“물 마시러.”
“불 켜.”
“괜찮아.”
“엄마, 불 켜. 여기 엄마 집이야.”
나는 스위치를 찾았다. 찾는 데 오래 걸렸다. 열다섯 달 동안 매일 아침 눈 감고도 켜던 스위치는 이제 다른 집 벽에 있었다. 손바닥으로 벽을 더듬다가 겨우 찾아서 눌렀다. 부엌이 환해졌다. 싱크대 건조대에 꽃무늬 그릇이 엎어져 있었다.
04:10 주방. 점등(수아 말).
그 줄을 적은 것은 날이 밝은 뒤였다. 괄호 안에 누구 말인지를 적었다. 이 집에서는 불을 켜라는 사람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