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265자)
한 그릇
적국 황태자를 인질로 데려왔더니 내 책사가 되었다 · 윤재하
쇠사슬을 찬 사람은 말을 탈 수 없다. 두 발목 사이가 한 자 반이면 말 등을 가랑이로 걸칠 수가 없다. 연경 북문 밖에서 그 사실을 처음 안 사람은 맹초였다.
“서생, 다리를 벌리시오.”
“한 자 반 넘게는 안 벌어집니다.”
“그럼 옆으로 앉으시오. 아낙들처럼.”
맹초가 나를 번쩍 들어 말 등에 옆으로 앉혔다. 사슬이 말 옆구리에 늘어져 걸음마다 짤랑거렸다. 말이 그 소리가 싫은지 자꾸 머리를 흔들었다. 석두가 고삐를 잡고 걸었다. 그는 장군부에 들어온 뒤로 금군 투구를 벗고 털모자를 썼는데, 모자 꼭대기에 붉은 술 하나는 떼지 않고 그대로 달고 다녔다.
위강은 앞에서 말을 탔다. 그는 내 쪽을 한 번 돌아보았다. 내 허리춤 안쪽 주머니에 열쇠가 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나는 열쇠를 꺼내지 않았다. 그도 꺼내라고 하지 않았다.
그 뒤로 감군 곽윤이 병부 군사 오백을 데리고 따라왔다. 감군은 조정이 군을 감시하라고 장수 곁에 붙여 보내는 관리다. 협상이 정해지자 곽문이 황제에게 청해서 조카를 그 자리에 앉혔다. 곽윤은 털을 댄 두꺼운 장포를 입고 말 위에서 내내 손난로를 쥐고 있었다. 숙부의 것과 똑같은 손난로였다.
북쪽으로 갈수록 바람이 말랐다. 연경의 바람은 축축한 데가 있었는데, 국경 쪽 바람은 혀에 닿으면 소금기 없는 모래 맛이 났다. 입술이 하루 만에 갈라졌다. 사흘째에 역참에서 묵었다. 역참은 나랏일로 오가는 사람들이 말을 바꾸고 묵어 가는 집이다. 역졸이 데운 술을 내왔다.
“장군, 몸 녹이시라고.”
“안 마시오.”
“국경 바람에는 이게 약입니다.”
“안 마시오.”
“한 잔만…”
“이 사람이 한 잔 마시면 귀가 빨개지고, 두 잔 마시면 여기서 잡니다.”
내가 말했다. 역졸이 위강을 보았다. 위강이 나를 보았다. 맹초가 국을 마시다가 사레가 들려 기침을 했다. 석두는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떨었다. 곽윤만 웃지 않았다. 그는 내 쪽을 보며 손난로를 쓰다듬었다. 그 손짓이 꼭 숙부 같아서 나는 국을 마시다 말고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
닷새째 되는 날 오후, 길 위에서 북쪽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을 만났다. 서른 명쯤이었다. 갑옷은 없었고, 창도 없었고, 등에 봇짐을 지고 있었다. 해산 사열에서 창을 내려놓은 북방군 팔천 가운데 국경 쪽 마을로 돌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연경에서 해산하고 고향으로 가는 길이 우리가 가는 길과 거꾸로 겹쳤다.
그들은 위강을 알아보고 길가로 비켜서서 허리를 굽혔다. 맨 앞에 선 사내는 마흔쯤 되어 보였고, 왼손 손가락이 둘 없었다.
“장군.”
“집에 가는가?”
“예. 장군 덕에 갑니다.”
그 사내가 말 위의 나를 보았다. 사슬을 보았다. 그는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보았다.
“저 사람 선 때문에 우리가 집에 간다면서요.”
뒤에서 다른 사내가 말했다. 목소리에 날이 서 있었다. 맹초가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사내 옆에 선 더 젊은 사내가 그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찔렀다.
“집에 가니 좋지, 뭘.”
“좋긴 뭐가 좋아. 우리 집 소가 나를 기억하겠냐?”
“소가 기억 못 하면 형수님이 기억하겠지.”
“그게 더 무섭다.”
사내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다. 날이 선 사내도 결국 웃었다. 손가락 둘 없는 사내가 나에게 고개를 아주 조금 숙였다. 인사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고개였다. 그들은 남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그 등을 오래 보았다. 내 선이 집으로 보낸 팔천 가운데 서른이었다. 나머지 칠천구백칠십의 얼굴은 내가 볼 일이 없었다.
*
청령관은 능선 꼭대기에 있었다. 돌로 쌓은 성벽이 고개 하나를 가로막고 앉아 있었고, 성벽 안에는 군막과 마구간과 우물 하나가 있었다. 성벽 위에 서면 남쪽으로 백하가 보였다. 겨울 강이 은빛 띠처럼 평야를 가로질렀다. 북쪽으로는 능선 비탈을 따라 마을 셋이 내려다보였다. 동쪽부터 소천, 난곡, 배나무골이었다. 지붕마다 저녁밥 짓는 연기가 올라왔다. 바람이 그 연기를 남쪽으로 눕혔다. 하나라 쪽이었다.
“난곡에 내려가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성벽 위에 위강과 맹초와 곽윤이 같이 서 있었다.
“안 됩니다.”
곽윤이 말했다.
“칙서는 인질이 장군부 담을 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럼 저는 연경 북문을 나선 순간부터 칙서를 어긴 셈입니까?”
“협상을 위해 폐하께서 따로 허락하신 길입니다. 청령관 성벽 안까지가 그 허락입니다.”
“낭중, 청령관 성벽 안에는 군막이 쉰입니다. 그 가운데 어느 것이 장군부입니까?”
곽윤이 대답하려 할 때 위강이 먼저 말했다.
“장군이 있는 곳이 장군부요. 북방군 군율이오.”
“그런 군율이 있습니까?”
“지금 생겼소.”
맹초가 크게 기침을 했다. 웃음을 기침으로 덮는 소리였다. 위강은 성벽 계단을 내려가 자기 말 앞에 섰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았다. 따라오라는 눈이었다. 곽윤이 성벽 위에서 군사 서른을 불렀다. 우리가 내려가면 그도 따라 내려올 참이었다.
“감군께서도 오십시오.”
내가 말했다.
“난곡 우물물은 답니다. 연나라 쪽에 들어오면 이제 연나라 물입니다. 미리 맛보아 두시지요.”
*
난곡 어귀의 배나무는 두 해 전과 똑같았다. 잎은 다 떨어졌고, 가지가 하늘을 향해 손가락처럼 벌어져 있었다. 나무 밑동에 누가 짚을 둘러 감아 두었다. 겨울에 얼어 터지지 말라고 감은 짚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연나라 군사들이 능선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고 다들 집 밖으로 나왔다. 남자들은 손에 곡괭이나 몽둥이를 들었고, 여자들은 아이들을 집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들은 위강의 갑옷을 보았고, 그 옆 말 위에 옆으로 앉은 무명옷 차림의 나를 보았고, 내 발목의 사슬을 보았다.
누가 내 이름을 불렀다. 이름이 아니라 자리를 불렀다.
“황태자다.”
“마을을 판 그 황태자다.”
연경에서 보낸 소식이 여기까지 먼저 와 있었다. 곽문의 파발은 하나라 조정만이 아니라 국경 마을에도 들렀다.
나는 맹초의 손을 빌려 말에서 내렸다. 사슬이 언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맨 앞에 선 사내가 팔을 휘둘렀다. 무엇인가 날아왔다. 피할 틈이 없었다. 돌이 내 이마 왼쪽에 맞았다. 뜨거운 것이 눈썹을 타고 흘렀다. 피 냄새는 바람에 금방 날아갔다.
위강이 칼자루를 쥐었다. 맹초가 앞으로 나섰다. 곽윤의 군사 서른이 창을 내렸다. 나는 손을 들었다.
“아무도 움직이지 마십시오.”
위강의 손이 칼자루에서 멈췄다. 뽑지 않았다. 맹초가 이를 갈면서 섰다. 곽윤은 뒤에서 손난로를 쥐고 있었다. 그는 군사들에게 창을 거두라고 하지 않았다. 내가 다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그에게는 남는 장사였다.
돌을 던진 사내가 다음 돌을 줍지 않았다. 그는 자기 손을 보고 있었다. 황태자에게 돌을 던진 손이었다. 그는 스스로 놀란 얼굴이었다.
사람들 뒤에서 노파 하나가 지팡이를 짚고 나왔다. 촌장 집 노파였다. 두 해 사이에 허리가 더 굽었다. 노파는 내 앞까지 와서 내 이마를 올려다보았다. 피가 턱까지 흘러 있었다.
“두 그릇 먹고 간 그 장수 맞구먼.”
노파가 말했다.
“예.”
“봄이 오면 우리는 연나라 사람이 되오?”
마을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위강이 내 옆에서 아주 작게 숨을 들이켰다. 거짓말을 할 수 있었다. 아직 협상 전이니 모른다고 할 수도 있었다. 나는 노파의 눈을 보았다. 흐린 눈이었는데, 그 눈이 나에게서 무엇을 기다리는지는 흐리지 않았다.
“예. 됩니다. 제가 그 선을 그었습니다.”
뒤에서 누가 욕을 했다. 하나라 말로 했다. 연나라 군사들은 못 알아들었다. 나는 알아들었다. 맞는 욕이었다.
“우물은 누구 것이 되오?”
“마을 것입니다. 지금처럼요.”
“배나무는?”
“마을 것입니다.”
“양식은? 연나라 군사가 와서 빌려 가면?”
위강이 앞으로 한 걸음 나왔다. 그는 갑옷을 입은 채로 노파 앞에서 허리를 굽혔다. 마을 사람들이 움찔했다. 연나라 장수가 하나라 노파에게 허리를 굽히는 것을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다.
“북방군은 이 마을에서 한 됫박을 가져가도 값을 치르오.”
“연나라 장수 말을 어찌 믿소?”
“믿지 마시오.”
위강이 말했다.
“지난 한 해 동안 북방군이 이 능선 아래에서 값을 안 치른 적이 있는지 마을 사람들한테 물어보시오. 그걸 믿으시오.”
노파는 오래 위강을 보았다. 그다음에 뒤를 돌아 마을 사람들을 보았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입을 다문 얼굴들이 장군부 사람들의 얼굴과 닮아 있었다.
노파가 지팡이로 땅을 한 번 짚었다.
“들어오시오. 죽 쑤었소.”
*
촌장 집 부엌은 두 해 전과 같은 냄새가 났다. 수수 끓는 냄새와 아궁이 재 냄새였다. 노파가 내 이마를 젖은 무명 조각으로 눌러 닦았다. 손이 거칠었다. 그 손이 닿는 자리가 쓰라렸다. 위강은 부엌 문지방에 기대 서 있었다. 그 덩치로 문을 다 막고 있어서 곽윤은 마당에서 기다려야 했다.
노파가 죽을 떠서 내 앞에 놓았다. 한 그릇이었다.
“두 해 전에는 두 그릇 주셨습니다.”
“그때는 우리 장수였으니까.”
노파가 말했다.
“지금은 연나라 책사라며. 한 그릇이면 됐지. 연나라 책사한테 죽을 주는 하나라 노파가 어디 있소? 여기 하나 있구먼.”
나는 죽을 먹었다. 뜨거웠다. 이마에서 흐른 피가 입가에 남아 있어서 죽에서 쇠 맛이 났다. 나는 그 한 그릇을 바닥까지 다 먹었다. 오 씨의 고봉밥은 늘 반을 남겼는데, 그 죽은 한 숟갈도 남기지 않았다. 노파가 빈 그릇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더 주지 않았다.
위강은 문지방에 기댄 채 그릇이 비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도 한 그릇을 받았다. 그는 서서 먹었다.
*
청령관으로 돌아왔을 때는 해가 다 졌다. 내 군막은 위강의 군막 바로 옆이었다. 화로에 숯을 넣고 있는데 군막 휘장이 걷혔다. 곽윤이었다. 혼자 왔다. 손난로를 쥐고 있었다.
“이마는 괜찮으십니까?”
“낭중의 군사들이 창을 거두지 않은 것보다는 괜찮습니다.”
곽윤이 웃었다. 그는 내 화로 앞에 쪼그려 앉아 손난로를 화로 가까이 댔다.
“전하, 협상은 동지 지나 사흘째입니다. 그 전날 밤이 언제인지는 아시지요.”
나는 숯을 집던 손을 멈췄다.
“백하 남쪽 나루는 여기서 말로 반나절입니다. 밤에 떠나면 새벽에 닿습니다.”
그는 화로를 보며 말했다. 나를 보지 않았다.
“가시려거든 가십시오. 감군은 막지 않겠습니다. 장군께서 열쇠를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까? 장군께서 풀어 주시면 그만이지요.”
그는 일어서서 휘장 쪽으로 갔다. 휘장을 걷다가 멈췄다.
“아, 열쇠는 장군께 있지요?”
“그건 장군께 여쭈십시오.”
곽윤이 나갔다. 그가 나간 자리에 사향 냄새가 남았다. 숙부에게서 옮은 냄새였다. 나는 화로 앞에 오래 앉아 있었다. 허리춤 안쪽 주머니에서 열쇠가 내 살에 닿아 있었다. 협상까지 나흘, 남쪽 나루에 배가 오기까지 사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