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045자)
귀퉁이 깨진 도장
적국 황태자를 인질로 데려왔더니 내 책사가 되었다 · 윤재하
홍려관은 외국 사신이 묵는 연나라의 관사다. 대문에 붉은 등이 두 개 걸려 있었고, 그 등 아래로 하나라 사신단의 수레 여섯 대가 줄지어 들어왔다. 수레 덮개는 하나라 황실의 색인 짙은 녹색이었다. 나는 그 색을 연나라 하늘 아래에서 처음 보았다. 한 달 반 만이었다. 그 사이 녹색이 이렇게 어두운 색이었던가 하고 생각했다.
“서생, 저 사람들이 당신네 사람이오?”
맹초가 내 옆에서 물었다. 그는 오늘 갑옷 위에 예복을 덧입어서 몸이 평소의 한 배 반이었다.
“제 나라 사람들입니다. 제 사람인지는 오늘 압니다.”
첫 수레에서 내린 사람은 쉰 남짓의 마른 사내였다. 하나라 예부 시랑 진목이었다. 예부는 하나라에서 의례와 외교를 맡는 관청이다. 진목은 내가 일곱 살부터 열여섯 살까지 글씨를 배운 스승이었다. 그는 수레에서 내려 홍려관 마당을 한 번 둘러보았고, 연나라 관리들 맨 끝에 무명옷을 입고 서 있는 나를 보았다. 그리고 내 발목을 보았다.
그는 나에게 절하지 않았다. 고개를 아주 조금 숙였다가 들었다. 스승이 제자에게 하는 인사도, 신하가 황태자에게 하는 인사도 아니었다. 그 중간 어딘가에서 멈춘 고개였다.
*
곽문이 홍려관 대청에서 사신단을 맞았다. 대청 한가운데에 긴 탁자가 놓였고, 한쪽에 연나라 사람들이, 맞은편에 하나라 사람들이 앉았다. 나는 연나라 쪽 끝자리에 앉았다. 위강이 내 옆이었다. 탁자 건너편 진목의 자리는 내 자리와 비스듬히 마주 보는 곳이었다.
“사신께서 먼 길 오셨습니다.”
곽문이 손난로를 탁자 아래로 내리며 말했다.
“협상 날과 자리를 정하러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연나라는 청령관 아래 고개 밑 들판에 장막을 치고, 동지 지나 사흘째 되는 날로 했으면 합니다.”
“청령관이라면 책사께서 그으신 선 위로군요.”
진목이 말했다. 그는 곽문을 보지 않고 나를 보았다.
“선 위에서 선을 정하는 셈이 됩니다. 정해진 것을 정하러 가는 일이 하나라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연나라에서는 생각해 보셨는지요.”
“정해진 것은 아직 없습니다.”
내가 말했다. 진목이 나를 똑바로 보았다. 열두 살 때 내 손바닥을 회초리로 세 대 때리기 전에 짓던 얼굴이었다.
“전하께서 그 선을 그으셨다는 소식은 연경보다 하나라 조정에 먼저 닿았습니다.”
진목이 말했다.
“재상께서 친절하게도 파발을 따로 보내 주셨습니다. 그 파발이 가져온 것은 지도 사본 한 장과 편지 한 장이었습니다. 편지에는 전하께서 연나라 황제 앞에서 스스로를 하나라를 가르는 쐐기라고 부르셨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곽문이 차를 마셨다. 찻잔 너머로 그의 눈이 웃었다.
“아우님께서 그 편지를 읽으시고 사흘 동안 수라를 물리셨습니다.”
수라는 하나라에서 임금이 드는 밥을 이르는 말이다. 진목은 그 말을 연나라 사람들 앞에서 일부러 하나라 말로 했다. 연나라 쪽에서는 아무도 알아듣지 못했다. 나만 알아들었다.
“사흘이면 아우는 쓰러졌겠군요.”
“쓰러지셨습니다. 나흘째에 일어나셔서 이 차를 싸셨습니다.”
진목이 소매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대나무 껍질로 싼 둥근 덩이였다. 찻잎을 쪄서 틀에 눌러 굳힌 하나라의 덩이 차였다. 하나라 남쪽 산에서 나는 것으로, 아우가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껍질 위에 녹색 실이 열십자로 매여 있었다.
“아우님께서 형님께 보내시는 것입니다.”
연나라 관리들이 곽문을 보았다. 적국 황실이 인질에게 보내는 물건이었다. 열어 보아야 할 물건이었다. 곽문은 그 덩이를 한 번 보고 손을 저었다.
“형제의 정까지 막을 수야 있겠습니까? 책사께서 가지시지요.”
그 손짓이 너무 쉬웠다. 나는 그 쉬움을 기억해 두었다.
*
진목은 협상 날짜에 대해서는 더 다투지 않았다. 동지 지나 사흘째로 정해졌다. 자리도 청령관 아래로 정해졌다. 하나라 쪽 대표가 누구인지 곽문이 물었을 때 진목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정해지지 않은 것이 그 자리의 유일한 대답이었다.
대청을 나서려 할 때 진목이 나를 불렀다. 연나라 사람들이 먼저 나가고, 하나라 사람들이 그 뒤를 따르고, 우리 둘이 대청 문 앞에 남았다. 위강이 문 밖 계단 아래에서 기다렸다. 듣지 않으려는 거리였다.
“전하.”
“스승님.”
“그 선은 셈이 맞습니다.”
진목이 말했다. 낮은 목소리였다.
“제가 사본을 보고 밤새 따져 보았습니다. 열둘을 잃느니 셋을 내주는 것이 맞습니다. 고개 넷을 쥔 쪽이 강을 쥔 쪽보다 낫다는 것도 맞습니다. 셈은 다 맞습니다.”
“그럼 무엇이 틀렸습니까?”
“난곡 사람들은 셈을 하지 않습니다.”
그가 내 무명옷 소매를 보았다. 짧아서 손목이 드러난 소매였다.
“선이 동쪽은 굵고 서쪽은 가늘더군요. 먹을 덜 가셨습니다. 열두 살 때도 그러셨습니다. 획을 시작할 때 다 쏟아붓고 끝에 가서 모자라셨지요. 그 버릇은 여전하십니다.”
나는 웃었다. 웃음이 났다. 진목은 웃지 않았다. 그래도 그의 눈가가 아주 조금 풀렸다.
“먹을 더 갈았으면 서쪽 끝까지 굵었을 겁니다.”
“서쪽 끝이 배나무골입니다, 전하. 배나무골 사람들은 가는 선이 낫다고 할 겁니다. 덜 아프게 잘린 것 같아서요.”
그는 그 말을 하고 돌아섰다. 수레 쪽으로 걸어가다가 한 번 멈췄다.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차는 혼자 드십시오. 꼭 혼자.”
*
장군부로 돌아오는 길에 맹초는 손에 기름종이 꾸러미를 들고 있었다. 홍려관 부엌에서 하나라 사신단 하인에게 얻은 것이었다. 깨와 대추를 넣어 구운 하나라 과자였다. 그는 걸으면서 그것을 하나씩 꺼내 먹었다.
“서생, 하나라 사람들은 이걸 매일 먹소?”
“설에만 먹습니다.”
“그럼 하나라는 설이 몇 번이오?”
“한 번입니다.”
“딱하구먼.”
그는 꾸러미를 다 비우고 손가락을 빨았다. 그 하인에게 만드는 법을 물었는데 하나라 말로 대답해서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고 했다. 오 씨에게 맛을 설명해 주겠다고 했다. 나는 그가 오 씨 앞에서 그 맛을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했다. 이튿날 들은 바로는 “달고, 깨가 있고, 대추가 있고, 달다”였다고 했다. 오 씨는 그 말만 듣고 비슷한 것을 구워 냈다. 깨가 두 배였다.
위강은 말을 끌고 내 옆에서 걸었다. 홍려관에서 나온 뒤로 그는 한 번도 진목에 대해 묻지 않았다. 대신 골목 끝에서 한 가지만 물었다.
“스승이 무섭소?”
“회초리가 무섭습니다.”
“회초리는 안 들고 왔던데.”
“눈에 들고 왔습니다. 장군도 보셨을 겁니다.”
위강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열두 살의 나를 상상하는 얼굴이었다. 나는 그 얼굴이 싫지 않았다.
*
그날 밤 나는 별채에서 그 차 덩이를 풀었다. 녹색 실을 풀고 대나무 껍질을 벗기자 단단하게 눌린 찻잎 덩이가 나왔다. 손바닥보다 컸고, 마른 흙과 꿀을 섞은 것 같은 냄새가 났다. 하나라 남쪽 산의 냄새였다. 아우는 열 살 때 이 차를 처음 마시고 쓰다고 울었다. 열한 살 때는 이 차가 없으면 아침을 먹지 않았다.
차 덩이는 쪼개야 마실 수 있다. 나는 서안 위에 덩이를 놓고 송곳으로 가장자리를 찔렀다. 두 번째 찌른 자리에서 송곳 끝이 무언가 다른 것에 닿았다. 찻잎이 아니었다. 덩이를 반으로 가르자 그 한가운데에 손가락 두 마디만큼 접힌 비단이 박혀 있었다. 접힌 비단을 밀랍으로 봉했고, 밀랍 위에 도장이 찍혀 있었다.
나는 그 도장을 보았다. 오래 보았다.
열네 살 봄이었다. 아우는 열한 살이었다. 우리는 궁 뒤뜰 연못가에 앉아 무른 돌을 깎고 있었다. 진목이 글씨 숙제로 내 준 것이었다. 제 이름 한 글자를 도장으로 새겨 오라고 했다. 나는 내 이름 연 자를 다 새기고 아우의 것을 보아 주었다. 아우는 휘 자를 새기다가 획 하나를 너무 깊이 팠고, 돌 귀퉁이가 떨어져 나갔다. 아우는 울었다. 이걸로는 숙제를 못 낸다고 울었다.
나는 그 도장을 받아 깨진 귀퉁이를 손톱으로 문질러 둥글게 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깨진 데가 있으면 아무도 흉내 내지 못한다. 이건 세상에 하나뿐인 네 도장이다. 아우는 울음을 그치고 그 도장을 진목에게 냈다. 진목은 그 도장을 보고 회초리를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그날 진목이 회초리를 내려놓은 것은 그때 한 번뿐이었다.
비단 위 밀랍에 찍힌 휘 자의 귀퉁이가 둥글게 깨져 있었다.
밀랍을 떼고 비단을 폈다. 아우의 글씨였다. 획 끝이 여전히 조금씩 떨렸다. 아우는 붓을 들면 손에 힘을 너무 주었다.
“형님. 돌아오시면 황위를 드리겠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무섭습니다. 협상 전날 밤 백하 남쪽 나루에 배를 대 두겠습니다. 형님이 그으신 선은 제가 지우겠습니다. 형님 이름도 제가 다시 씻겠습니다. 돌아오십시오.”
나는 그 편지를 세 번 읽었다. 저는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무섭습니다. 그 한 줄을 세 번 읽었다. 아우는 열한 살 때도 무서울 때 그렇게 말했다. 무섭다고 먼저 말하고 나서 울었다.
문 밖에서 발소리가 났다. 맹초의 발소리가 아니었다. 맹초는 서서 자고 있었고, 그 코 고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문이 열렸다. 위강이었다. 그는 내 서안 위에 반으로 갈라진 차 덩이와 펼친 비단을 보았다.
“아우가 무엇을 보냈소?”
나는 비단을 접었다. 천천히 접었다. 거짓말을 하려면 지금이었다. 그는 내가 거짓말을 해도 묻지 않을 사람이었다.
“차입니다.”
내가 말했다.
“아우가 어릴 때부터 좋아한 차입니다. 쓰니까 처음에는 우실 수도 있습니다.”
위강이 서안 앞에 앉았다. 접힌 비단 쪽은 보지 않았다. 보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이 보였다.
“그럼 한 잔 주시오. 우는지 안 우는지 보겠소.”
나는 화로에 물을 올리고 찻잎을 떼어 넣었다. 물이 끓는 동안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는 진한 갈색으로 우러났다. 그가 한 모금 마시고 얼굴을 찌푸렸다. 울지는 않았다. 술 한 잔에 귀가 붉어지는 사람이 차 한 잔에는 아무렇지 않았다.
“쓰오.”
“두 번째 잔부터 답니다.”
그가 두 번째 잔을 받았다. 그는 그 차를 다 마시고 돌아갔다. 끝까지 비단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그가 나간 뒤 나는 서안 위에 떼어 놓은 밀랍 조각을 집어 들었다. 손톱만 한 조각이었다. 귀퉁이 깨진 휘 자가 거기 찍혀 있었다. 아우의 도장이었다. 나는 그것을 코에 가져갔다. 하나라 밀랍은 꿀벌 집에서 떠서 단 냄새가 난다.
그 밀랍에서는 사향 냄새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