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218자)
마을 셋
적국 황태자를 인질로 데려왔더니 내 책사가 되었다 · 윤재하
국경 전도는 정당 바닥 한가운데를 다 차지했다. 비단 두 폭을 이어 붙인 지도였고, 연나라 북쪽 끝 운산부터 하나라 북쪽 고을들까지 산 하나 내 하나가 다 그려져 있었다. 위강이 승전한 해에 북방군 측량병들이 걸어서 그린 것이라 했다. 측량병은 걸음 수로 거리를 재는 군사다. 강가 모래톱 하나까지 걸음 수가 적혀 있었다.
지도는 자꾸 말려 올라갔다. 맹초가 한쪽 끝을 무릎으로 눌렀고, 맹수가 다른 쪽 끝을 눌렀고, 나머지 두 귀퉁이에는 오 씨가 부엌에서 가져온 떡시루 뚜껑을 하나씩 얹었다. 정당 안에 찐 떡 냄새가 돌았다.
“그 뚜껑은 저녁에 써야 하니 다 보고 돌려주시오.”
“저녁 전에 끝내겠습니다.”
“거짓말. 하나라 사람이 저녁 전에 끝내는 걸 못 봤소.”
“하나라 사람을 몇이나 보셨습니까?”
“당신 하나. 그걸로 충분하오.”
오 씨가 나갔다. 위강이 지도 위에 종이 한 장을 내려놓았다. 곽문의 협정 초안을 옮겨 적은 것이었다. 황제를 곁에서 모시는 내관 하나가 해 질 녘에 몰래 가져다주었다고 했다. 황제가 보낸 것인지 내관이 혼자 생각해서 가져온 것인지는 위강도 몰랐다.
“공평하게 싸우라는 뜻이겠지요.”
“폐하가 공평한 걸 좋아하오?”
“구경을 좋아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초안을 읽었다. 첫 줄을 읽고 손바닥이 차가워졌다. 국경선은 백하 물줄기를 따라 긋는다. 백하 북쪽의 하나라 마을 열둘은 연나라에 붙인다. 북방군은 해산하고, 새 국경은 병부가 지킨다. 하나라는 해마다 은 십만 냥을 낸다. 하나라가 이를 어기면 연나라는 인질을 처분한다.
처분이라는 말이 그 자리에 있었다. 깔끔한 말이었다.
“열둘이오.”
위강이 백하 북쪽 평야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그의 손 하나에 마을 열둘이 다 가려졌다.
“병부가 이걸 지킬 수 있소?”
“못 지킵니다. 평야는 막을 데가 없습니다. 하나라가 봄에 군사를 내면 열둘은 다시 하나라 땅이 되고, 그 싸움에서 열둘은 불탑니다. 재상은 그걸 압니다.”
“알면서 왜 이렇게 짰소?”
“하나라가 받지 않을 협정을 짜면 협정이 깨집니다. 협정이 깨지면 인질을 처분합니다. 인질을 둔 장군도 같이 처분합니다. 봄에 국경이 불타면 그 불은 해산당한 북방군 탓이 됩니다. 재상은 이 종이 한 장으로 셋을 한꺼번에 가집니다.”
맹초가 지도를 누른 무릎을 들썩였다. 비단이 한 번 물결쳤다.
“그럼 어떻게 하오? 서생.”
맹초가 나를 서생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아직 혀에 붙지 않은 말이었다.
나는 붓을 들고 지도 위로 몸을 숙였다. 사슬이 비단 위에 끌렸다. 맹수가 얼른 사슬을 들어 자기 무릎 위에 올려 주었다. 나는 백하에서 북쪽으로 손가락 두 마디쯤 올라간 자리를 짚었다. 등고선이 촘촘하게 몰린 곳이었다. 청령 능선이었다. 능선은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백하와 나란히 누워 있었다.
“여기에 긋습니다.”
“능선이오?”
“능선은 막을 데가 있습니다. 고개가 넷이고, 고개마다 성 하나면 됩니다. 그 넷을 지킬 군사는 이 땅을 걸어서 재 본 군사여야 합니다. 병부는 이 고개 이름도 모릅니다.”
위강이 지도를 오래 보았다. 그의 눈이 능선을 따라 동쪽으로 갔다가 서쪽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능선 바로 북쪽, 연나라 쪽 비탈에 작게 적힌 이름 셋 위에서 멈췄다. 난곡, 소천, 배나무골이었다.
“이 셋은 하나라 마을이오.”
“압니다.”
“능선에 그으면 이 셋이 연나라 쪽에 들어오오.”
“압니다.”
“당신 나라 마을을 셋 주자는 거요?”
“셋을 주지 않으면 열둘을 뺏깁니다. 열둘을 뺏기면 봄에 열둘이 탑니다. 셋을 주면 백하가 하나라 쪽에 남고, 열둘 가운데 아홉이 남고, 장군의 북방군이 능선에 남습니다.”
“당신 아우가 그걸 받겠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아우가 받을지 나는 몰랐다. 아우는 나를 하나라 황태자로 연나라에 보내고 아흐레 만에 보위에 앉았다. 그 아흐레 동안 아우가 무엇을 받고 무엇을 내주었는지 나는 몰랐다.
난곡을 나는 안다. 두 해 전 백하에서 사백을 잃고 남쪽으로 물러날 때 그 마을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마을 어귀에 늙은 배나무가 있었고, 우물물이 달았고, 촌장 집 노파가 젖은 군사들에게 수수죽을 쑤어 먹였다. 노파는 내가 누구인지 묻지 않았다. 묻지 않고 죽을 두 그릇 주었다.
붓끝에서 먹이 한 방울 떨어졌다. 난곡 위였다. 맹수가 숨을 들이켰다.
위강이 손을 뻗어 내 붓대 끝을 잡았다. 그의 손가락이 내 손가락 위에 겹쳤다. 손이 따뜻했다. 굳은살이 두꺼웠다.
“선은 내가 긋겠소.”
그가 말했다.
“당신 손으로 긋지 마시오.”
나는 그 손을 오래 보았다. 그다음에 붓대를 그의 손에서 빼냈다. 천천히 뺐다. 그는 힘을 주지 않았다.
“제가 긋겠습니다.”
“담연.”
그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불렀다. 전하도 인질도 서생도 아니었다.
“제 나라 마을을 남의 손으로 내주는 것은 더 비겁합니다. 제가 긋겠습니다. 하나라 사람들이 이 선을 보고 누구를 욕할지는 분명해야 합니다.”
나는 붓을 들어 청령 능선 위에 선을 그었다. 동쪽 고개에서 서쪽 고개까지 한 번에 그었다. 붓을 떼지 않았다. 중간에 떼면 다시 댈 수 없을 것 같았다. 선이 다 그어졌을 때 맹초가 아무 말 없이 무릎을 지도에서 뗐다. 비단이 천천히 말려 올라가다가 떡시루 뚜껑에 걸려 멈췄다.
그때 오 씨가 뚜껑을 가지러 들어왔다. 그녀는 지도 위에 새로 그은 먹선을 내려다보고, 그 선 끝에 얹힌 자기 뚜껑을 보았다.
“이건 뭐요?”
“국경입니다.”
“우리 떡시루 뚜껑이 국경을 누르고 있었구먼.”
그녀는 뚜껑 둘을 집어 들었다. 비단이 끝까지 말려 올라가 선이 감추어졌다. 맹수가 그걸 다시 펴려다가 형에게 머리를 한 대 맞았다.
“떡은 쪘소. 다들 먹고 하시오. 국경도 배가 불러야 긋지.”
그날 저녁 우리는 정당 바닥에서 떡을 먹었다. 아무도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맹초가 떡 세 덩이를 먹는 동안 나는 한 덩이를 다 먹지 못했다. 오 씨가 남은 반을 또 보자기에 쌌다.
*
이튿날 대전 기둥 두 개 사이에 지도 두 장이 걸렸다. 왼쪽이 곽문의 선이었고, 오른쪽이 내 선이었다. 왼쪽은 백하를 따라 굵은 먹으로 그었고, 오른쪽은 능선을 따라 그었다. 오른쪽 선은 한 번에 그은 선이라 굵기가 고르지 않았다. 동쪽 끝이 굵고 서쪽 끝이 가늘었다. 먹이 다해 가는 자리가 그대로 보였다.
오늘은 무명옷을 보내오지 않았다. 나는 그 무명옷을 다시 입고 나갔다. 오 씨가 이번에는 은비녀를 두 개 꽂았다.
“전하의 선은 하나라 마을 셋을 연나라에 주는 척하면서 백하를 하나라 손에 남깁니다.”
곽문이 지도 앞에 서서 말했다. 손난로를 소매 안에 넣은 채였다.
“강을 쥔 쪽이 국경을 쥡니다. 인질이 강을 제 나라에 남기려는 데에는 까닭이 있겠지요. 신의 선은 강을 연나라에 줍니다. 열두 마을과 은 십만 냥도 줍니다. 폐하, 어느 쪽이 연나라를 위한 선입니까?”
신하들이 왼쪽 지도를 보았다. 열둘은 셋보다 많았다. 많은 쪽으로 눈이 가는 것은 사람의 일이었다.
“재상께 여쭙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곽문이 몸을 돌려 나를 보았다. 우리는 지도 두 장 사이에 섰다. 그와 나 사이에 대전 기둥 하나가 있었다.
“재상의 선을 지킬 군사는 몇입니까?”
“병부가 정할 일입니다.”
“평야 백 리에 막을 데가 없으면 오 리마다 진 하나, 진마다 천은 있어야 합니다. 이만입니다. 병부의 군사는 지금 팔천입니다. 나머지 만 이천은 어디서 옵니까? 해산한 북방군을 다시 부르시겠습니까?”
“모자라면 뽑으면 됩니다.”
“봄 전에요? 열두 마을에서 뽑으시겠습니까? 그 마을 사람들은 하나라 사람들입니다. 하나라 사람에게 창을 쥐여 주고 하나라를 막으라 하시겠습니까?”
신하들 사이에서 누가 짧게 웃었다가 입을 막았다. 곽문의 눈이 그쪽으로 한 번 갔다.
“제 선을 지킬 군사는 만 이천입니다. 고개 넷에 삼천씩입니다. 그 만 이천은 이미 국경에 있습니다. 그 고개를 걸어서 잰 군사들입니다. 강은 하나라에 남지만, 강을 건너오는 길은 고개 넷뿐이고 그 넷이 연나라 손에 있습니다. 강을 쥔 쪽이 국경을 쥐는 것이 아니라, 강을 건너 올라오는 고개를 쥔 쪽이 국경을 쥡니다. 은 십만 냥은 하나라가 못 냅니다. 못 내면 협정이 깨지고, 깨지면 그 은은 연나라가 받지 못합니다. 받지 못할 은은 셈에 넣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대신 무엇을 넣었소?”
황제가 물었다. 오늘은 하품을 하지 않았다.
“호시를 넣었습니다. 해마다 봄가을 두 번, 고개 아래에서 두 나라 사람이 만나 물건을 사고파는 장을 엽니다. 하나라는 차와 비단과 백단향을 팔고, 연나라는 말과 모피를 팝니다. 폐하께서 지금 피우시는 그 향도 하나라 향입니다. 전쟁 동안 값이 세 배가 되었습니다.”
황제가 향로를 보았다. 대전에 앉은 신하 절반이 따라서 향로를 보았다. 곽문만 보지 않았다.
*
황제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지도 두 장을 번갈아 보았다. 그다음에 위강을 보았다.
“능선으로 하겠소.”
곽문이 소매 안에서 손을 꺼냈다. 손난로는 꺼내지 않았다.
“다만 국경에 만 이천이면 된다고 했으니, 북방군 이만 가운데 팔천은 해산하시오. 해산 사열은 그대로 하오. 장군.”
위강이 앞으로 나왔다.
“협정은 장군이 짜오. 인질은 장군의 책사로 붙이시오. 하나라가 이 협정을 받지 않으면, 장군은 옥에 들고 북방군은 다 해산하고 인질은 재상부로 가오. 책사가 짠 협정이 깨지면 책사의 목도 같이 가오.”
“명을 받습니다.”
위강이 고개를 숙였다. 팔천이 그 고개 숙임 하나로 고향에 갔다. 나는 그것을 옆에서 보았다. 내 선이 하나라 마을 셋과 함께 연나라 군사 팔천도 집으로 보냈다. 팔천 가운데 몇이 그 고개 이름을 걸음으로 재 본 사람인지 나는 몰랐다.
*
대전을 나와 회랑을 걸을 때 곽문이 내 옆으로 왔다. 위강은 황제에게 붙들려 뒤에 남아 있었다. 맹초는 회랑 끝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회랑 바닥이 차가웠고, 사슬이 바닥 돌 틈마다 걸렸다.
“축하드립니다, 책사.”
곽문이 말했다. 처음으로 나를 전하라고 부르지 않았다.
“오늘 하나라 황태자께서 하나라 마을 셋을 연나라에 파셨습니다. 대전 안의 모든 사람이 보았습니다. 붓으로 한 번에 그으셨다지요.”
“열둘을 지키려고 셋을 그었습니다.”
“하나라 사람들도 그렇게 셈할까요?”
그가 걸음을 멈췄다. 회랑 기둥 그림자가 그의 얼굴 반을 가렸다.
“하나라 조정에 이 소식이 언제쯤 닿을지 궁금하군요. 연나라 파발이 하나라 파발보다 빠르다고 하셨지요.”
그는 소매 안에서 손난로를 꺼내 두 손으로 감쌌다.
“제가 직접 보내 드리지요. 아우님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