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194자)

이틀 값

적국 황태자를 인질로 데려왔더니 내 책사가 되었다 · 윤재하

연나라 조정에 나가는 날 아침, 재상부에서 옷 한 벌이 왔다. 무명을 누렇게 물들인 하인의 옷이었다. 소매가 짧고, 깃에 장식이 없고, 허리끈이 새끼줄처럼 꼬여 있었다. 옷을 들고 온 하인이 말했다.

“재상께서 전하의 옷이 여행에 해졌을 테니 이것을 입으시라고 하셨습니다.”

오 씨가 그 옷을 손끝으로 집어 들어 보더니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나를 보았다. 위강이 별채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는 팔에 다른 옷 한 벌을 걸치고 있었다. 감색 비단에 검은 깃을 댄 연나라 무관의 예복이었다. 그의 옷이었다. 소매가 내 손끝보다 한 뼘 길어 보였다.

“이걸 입으시오.”

“무명옷을 입겠습니다.”

“재상이 당신을 하인으로 세우려는 거요.”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재상께서 보고 싶은 것을 보여 드려야지요. 무명옷을 입은 황태자를요.”

나는 재상부의 옷을 입었다. 짧은 소매 밖으로 손목이 나왔다. 허리끈을 묶고 나니 오 씨가 혀를 차며 내 머리를 다시 빗겨 주었다. 빗이 머리카락을 끌 때마다 그녀가 말했다. “하인 옷을 입었으면 머리라도 황태자처럼 하시오.” 그녀는 내 상투를 높이 틀어 올리고, 장군부 사당에서 꺼내 온 은비녀를 꽂았다. 위강은 아무 말 없이 자기 예복을 도로 접었다. 접는 손이 느렸다.

*

장군부에서 궁까지는 걸어서 갔다. 금군 스물이 앞뒤를 둘러쌌고, 위강이 말을 타고 그 앞에 섰고, 맹초가 내 옆에서 걸었다. 사슬이 연경의 돌길에 끌렸다. 돌길은 장군부 마당보다 거칠어서 쇳소리가 더 크게 났다. 길가에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하나라 황태자래.”

“하인 옷을 입었네?”

“발에 쇠를 찼어.”

아이 하나가 감을 던졌다. 감은 내 어깨 쪽으로 날아왔다. 맹초가 손을 뻗어 그것을 받았다. 받아서 한 입 베어 먹었다. 홍시가 그의 턱으로 흘렀다.

“달다.”

그가 아이를 보며 말했다.

“하나 더 던져라.”

아이가 도망쳤다. 맹초는 감을 끝까지 먹고 꼭지를 길가에 버렸다. 나를 위해 받은 것인지 먹으려고 받은 것인지 그는 말하지 않았다. 둘 다였을 것 같다.

*

연나라 대전은 하나라 대전보다 천장이 낮고 기둥이 굵었다. 기둥마다 붉은 칠이 두껍게 올라 있었는데, 오래된 칠 위에 새 칠을 덧발라서 손톱으로 누르면 들어갈 것 같았다. 대전 안에 향을 피웠다. 남쪽 나무를 깎아 만든 백단향이었다. 하나라 대전에서 피우던 것과 같은 향이었다. 하나라에서 사 온 향이었다.

옥좌에 연나라 황제 소윤이 앉아 있었다. 스물아홉이라고 들었다. 얼굴이 희고 눈 밑이 거뭇했다. 내가 대전 한가운데에 들어서서 사슬을 늘어뜨리고 서자 그가 하품을 반쯤 하다가 멈췄다. 무명옷과 은비녀를 번갈아 보았다.

“그대가 하나라 황태자인가?”

“칙서에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 폐하.”

황제가 웃었다. 대전 양쪽에 늘어선 신하들 가운데 몇이 따라 웃었다가, 곽문이 웃지 않는 것을 보고 그쳤다.

곽문이 앞으로 나와 아뢰었다. 북방 대장군 위강이 하나라 인질의 말을 듣고 병부 군령을 장군 인장 하나로 고쳤다. 같은 날 병부 군량 수레가 백하에서 빠져 수레꾼 열하나가 죽었다. 인질이 얼음이 깨질 날을 미리 알았다. 장군과 인질이 한집에 있다. 그는 그것들을 차례로 늘어놓았고, 늘어놓기만 하고 이어 붙이지는 않았다. 이어 붙이는 일은 듣는 사람들 몫으로 남겨 두었다. 신하들이 이어 붙이는 소리가 대전 안에 낮게 퍼졌다.

“장군.”

황제가 위강을 불렀다. 위강은 대전 왼쪽 무관 줄 맨 앞에 서 있었다.

“인질의 말을 듣고 길을 바꾸었소?”

위강이 입을 열려 했다. 나는 그보다 먼저 말했다.

“아닙니다, 폐하.”

대전이 조용해졌다. 위강이 나를 보았다. 나는 그쪽을 보지 않았다.

“저는 장군께 백하 얼음이 깨진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장군께서는 제 말을 믿지 않으셨습니다.”

“믿지 않았는데 왜 길을 바꾸었소?”

“믿지 않으셨기 때문에 바꾸셨습니다.”

황제가 몸을 조금 앞으로 숙였다. 눈 밑의 그늘이 짙어졌다가 옅어졌다.

“얼음길은 이틀이 빠릅니다. 제 말이 거짓이면 이틀을 벌고, 참이면 이천을 잃습니다. 산길은 이틀이 늦습니다. 제 말이 거짓이어도 참이어도 잃는 것은 이틀뿐입니다. 장군께서는 적국 인질의 말을 믿을 수 없으니, 믿지 않고도 아무것도 잃지 않는 길을 고르셨습니다. 연나라 군 이천을 적국 인질의 혀에 걸 수는 없으니까요.”

나는 한 번 숨을 쉬었다.

“장군께서는 제 말을 이틀 값으로 사셨습니다. 믿어서 사신 것이 아니라 의심해서 사셨습니다. 폐하의 장수는 하나라 황태자 한 사람을 이틀 이상으로 쳐 주지 않았습니다. 그 값이 적당한지는 폐하께서 정하십시오.”

황제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번에는 아무도 따라 웃지 못했다. 황제 혼자 한참 웃었다.

“이틀 값이라. 하나라 황태자가 이틀이라.”

나는 위강 쪽을 보지 않았다. 보면 그의 얼굴에 무엇이 떠 있을지 알았다. 그는 그런 말을 하나도 하지 않았다. 나는 대전에서 그를 대신해 거짓말을 했다. 그는 그날 밤 나를 믿었다. 산길을 그은 붓이 그것을 알고 있었다.

*

“그렇다면 병부의 수레는 어떻게 된 일이오?”

곽문이 물었다. 나에게가 아니라 대전 전체에 물었다.

“전하께서는 병부에도 미리 말씀하셨다지요. 그 말을 들은 사람이 있다면, 병부는 인질의 말을 듣지 않아서 열하나를 잃은 것이고, 들은 사람이 없다면 인질은 연나라 수레가 빠질 줄 알고도 입을 다문 셈이 됩니다. 낭중.”

곽윤이 문관 줄에서 나왔다. 오늘 그의 얼굴에는 핏기가 돌아와 있었다. 하룻밤 사이에 핏기를 되찾는 법을 아는 사람이었다.

“낭중은 인질에게서 수레를 멈추라는 말을 들었소?”

“듣지 못했습니다.”

곽윤이 나를 보지 않고 말했다.

“인질은 장군께만 말씀하셨습니다. 장군부 안에서요. 저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대전이 다시 낮게 웅성거렸다. 나는 곽윤의 옆얼굴을 보았다. 아무것도 걸지 않는다고 한 사람이 거짓말 하나를 걸었다. 거짓말 하나는 그 사람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폐하.”

내가 말했다.

“그날 아침 장군부 마당에는 금군 스물이 있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을 불러 주십시오.”

“누구를?”

“우물 옆에 서 있던 사람입니다. 이름은 모릅니다. 그날 저녁 담장 너머로 저에게 하나라 사람들이 개구리를 먹느냐고 물었습니다.”

대전 맨 뒤에서 누가 컥 하는 소리를 냈다. 금군 줄이었다. 붉은 술 하나가 흔들렸다. 황제가 그쪽을 보았다. 웃음을 참는 얼굴이었다.

“개구리를 물은 자, 나오라.”

젊은 금군 하나가 앞으로 나와 엎드렸다. 귀까지 새빨갰다. 위강이 술 한 잔 마신 얼굴과 같은 색이었다.

“그날 아침 인질이 병부 수레를 멈추라고 했느냐?”

금군은 곽윤 쪽을 한 번 보았다. 그다음에 바닥을 보았다. 그다음에 말했다.

“…했습니다. 흑송령으로 돌리라고 했습니다. 낭중께서는 그러면 저잣거리가 웃는다고 하셨습니다.”

곽윤의 얼굴에서 다시 핏기가 빠져나갔다. 이번에는 하룻밤으로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폐하.”

금군이 엎드린 채로 덧붙였다. 목소리가 떨렸다.

“하나라 개구리는 닭 맛이 난다고 합니다. 연나라 닭보다 조금 낫답니다.”

대전이 무너졌다. 무관 줄에서 먼저 웃음이 터졌고, 문관 줄이 따라 웃었고, 황제가 옥좌 팔걸이를 두드리며 웃었다. 맹초는 대전 문밖에서 그 소리를 듣고 왜 웃는지도 모르고 같이 웃었다고 나중에 말했다. 웃지 않은 사람은 셋이었다. 곽문과 곽윤과 나였다. 나는 그 금군이 내일 병부에서 어떤 일을 당할지 생각하고 있었다.

*

웃음이 가라앉자 곽문이 다시 앞으로 나왔다. 그는 웃음이 지나간 자리를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폐하, 이것으로 인질이 얼마나 영리한지는 대전이 다 보았습니다.”

그가 손을 모았다.

“이토록 영리한 적국 사람을 국경을 지키는 장수의 집에 두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장군이 아무리 의심이 많다 한들 한 지붕 아래서 사람은 물듭니다. 인질을 재상부로 옮기겠습니다. 신이 잘 모시겠습니다.”

대전이 다시 조용해졌다. 황제가 턱을 괴었다. 위강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폐하, 칙서에 인질은 장군부에 둔다고 했습니다.”

“칙서는 짐이 다시 쓰면 그만이오.”

황제가 말했다. 웃음기가 다 가신 목소리였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이 젊은 황제가 웃음과 결정을 따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웃는 동안에도 그는 무엇인가를 재고 있었다.

“하나만 물어보고 정하겠소.”

황제가 나를 보았다.

“하나라 황태자, 그대가 연나라의 책사라면 이 정전의 국경선을 어디에 긋겠소?”

대전 안의 누구도 숨을 쉬지 않았다. 곽문의 손이 소매 안에서 멈췄다.

“재상이 짠 협정 초안이 있소. 내일 이 자리에서 그대가 그은 선을 재상의 선과 나란히 놓고 보겠소. 그대의 선이 하나라를 위한 선이면 그대는 하나라의 첩자이니 재상부로 가고, 연나라를 위한 선이면…”

황제가 말을 멈추고 웃었다.

“연나라를 위한 선이면 그대는 그대 나라를 판 사람이 되겠지. 그다음 일은 그때 정하겠소.”

나는 고개를 숙였다. 사슬이 바닥에서 짤랑거렸다. 곽문이 나를 보며 아주 천천히 웃었다. 문이 둘이었고, 둘 다 그의 집으로 이어져 있었다.

궁을 나설 때 위강이 말에서 내려 내 옆에서 걸었다. 맹초가 그 뒤에서 걸었다. 금군 스물은 앞에서 걸었다. 그중 하나가 귀가 아직 빨갰다. 위강이 내 쪽을 보지 않고 말했다.

“나는 당신을 믿었소. 그날 밤.”

“압니다.”

“대전에서 그렇게 말하지 그랬소.”

“그렇게 말했으면 장군은 오늘 대전에서 나오지 못하셨습니다.”

그가 대답하지 않았다. 장군부까지 가는 동안 그는 한 번도 말을 타지 않았다. 사슬 소리와 그의 발소리가 연경의 돌길 위에서 같은 박자로 갔다. 그는 내 걸음에 맞추고 있었다.

장군부 대문 앞에서 나는 걸음을 멈추고 금군 줄을 돌아보았다. 귀가 빨간 금군이 대열 끝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병부로 돌아가면 그를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 그도 알고 나도 알았다.

“장군, 저 사람을 장군부로 데려올 수 있습니까?”

“금군은 폐하의 군사요.”

“그럼 폐하께 여쭈십시오. 장군부 담장이 높아서 지킬 사람이 하나 더 있어야 한다고요.”

“폐하가 들어주겠소?”

“개구리 이야기를 그렇게 좋아하셨으니, 개구리 맛을 아는 금군 하나쯤은 내주실 겁니다.”

위강이 금군 쪽을 보았다. 젊은 금군이 그 눈길을 받고 몸을 굳혔다. 위강은 맹초를 불러 무엇인가를 낮게 일렀다. 맹초가 투덜거리며 궁 쪽으로 되돌아 걸어갔다. 사흘 뒤 그 금군은 장군부 마당에서 비질을 하고 있었다. 이름은 석두였다. 오 씨가 첫날부터 그에게 고봉밥을 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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