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218자)

그 길로 가면

적국 황태자를 인질로 데려왔더니 내 책사가 되었다 · 윤재하

칼날은 내 목에 닿지 않았다. 위강은 칼을 뽑아 탁자 위로 뉘었고, 칼끝이 내가 그린 붉은 동그라미 바로 위에서 멈췄다. 칼날에 화로 불빛이 한 줄로 누웠다. 그 한 줄이 내 턱 밑까지 와 있었다.

“지우시오.”

“지우면 이천이 죽습니다.”

“지우시오.”

“그 길로 가면 사흘 뒤 이천이 죽습니다, 장군.”

칼끝이 움직이지 않았다. 위강의 얼굴은 아직 술기운으로 붉었는데, 눈은 붉지 않았다. 문 밖에서 갑옷 소리가 났다. 맹초가 문에 귀를 대고 있었다. 그 덩치로 귀를 대면 문살이 휜다.

“말하시오. 짧게.”

“동지 열닷새 전 백하 얼음은 사람은 받칩니다. 말은 못 받칩니다. 짐수레는 더 못 받칩니다. 선발 이천이 사람만 데려옵니까?”

“군마 사백, 수레 마흔이오.”

“그럼 사백과 마흔이 먼저 빠지고, 빠지는 말을 붙잡으려던 사람이 따라 빠집니다. 얼음이 한 군데 깨지면 그 둘레가 같이 갑니다. 이천 다 죽지는 않겠지요. 반쯤 죽고, 살아남은 반은 젖은 옷으로 이틀을 더 걸어 교장에 들어갑니다. 연경의 동짓달 바람에 젖은 옷으로 이틀이면 그 반의 반이 또 앓아눕습니다.”

“병부의 도면이오. 병부에도 강을 아는 사람이 있소.”

“병부에서 강을 아는 사람이 수레를 타 봤겠습니까?”

위강이 대답하지 않았다. 칼끝이 아주 조금 내려갔다. 화로 불빛이 칼날에서 미끄러져 종이 위로 떨어졌다.

“당신은 어떻게 아오?”

나는 대답하기 전에 숨을 한 번 쉬었다. 숨에서 술 냄새가 났다. 내가 마신 술이 아니라 그가 마신 술이었다. 방이 그만큼 좁았다.

“두 해 전 겨울에 제가 그 얼음 위에 있었습니다.”

*

두 해 전, 동지를 스무 날 앞둔 새벽이었다. 하나라 북쪽 군은 백하 북쪽 언덕에서 밀려 내려오고 있었고, 지휘는 내가 맡고 있었다. 스물다섯의 황태자가 처음 받은 군이었다. 아버지는 국경에 황태자가 서 있으면 군사들이 덜 도망친다고 했다. 그 말은 맞았다. 군사들은 도망치지 않고 내 뒤를 따라 얼음 위로 내려왔다.

강 위는 하얬다. 눈이 얇게 덮여 있어서 얼음의 두께가 보이지 않았다. 앞에 선 보병들이 건너는 동안 얼음은 울기만 했다. 낮게, 멀리서, 물소가 우는 것 같은 소리였다. 나는 그 소리를 얼음이 단단하다는 소리로 들었다. 하나라 남쪽에서 자란 사람은 얼음이 우는 소리를 그렇게 듣는다.

말이 강 한가운데에 들어섰을 때 소리가 바뀌었다. 활시위가 끊어지는 소리였다. 한 번이 아니라, 강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이어서 끊어졌다. 첫 수레의 뒷바퀴가 꺼졌고, 그 수레를 끌던 말 두 필이 앞발을 들었고, 말이 앞발을 내리찍는 자리에서 얼음이 접시처럼 기울었다. 물은 검었다. 쇠 냄새가 났다. 그렇게 찬 물에서는 쇠 냄새가 난다. 그날 나는 그것을 처음 알았다.

사백이 그 물에 들어갔다. 나는 강 남쪽 기슭에 서서 사백을 셌다. 다 셀 때까지 해가 다 떴다.

북쪽 언덕 위에는 연나라 기병이 줄지어 서 있었다. 활을 든 기병들이었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활을 쏘았다면 기슭으로 기어 나온 사람들도 살아남지 못했다. 그런데 화살이 한 대도 날아오지 않았다. 언덕 위의 기병들은 해가 다 뜰 때까지 서 있기만 하다가 말머리를 돌렸다. 나는 그날 일을 두 해 동안 한 번도 이해하지 못했다.

*

“알고 있소.”

위강이 말했다. 칼을 칼집에 넣지 않은 채로, 칼끝을 탁자에서 거두었다.

“그날 언덕에 있었소. 기병 오백을 데리고.”

나는 그를 보았다. 그도 나를 보았다. 그는 무언가를 덧붙이려다 그만두는 사람처럼 입술을 한 번 다물었다.

“활을 거두라고 한 사람이 장군입니까?”

“물에 빠진 사람에게 쏜 화살은 군공으로 안 쳐 주오.”

“그게 이유였습니까?”

“그게 이유라고 했소. 위에다가는.”

그가 칼을 칼집에 넣었다. 쇠가 쇠 안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길게 났다. 나는 펠트를 감은 발목을 내려다보았다.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몰라서 그렇게 했다. 두 해 동안 이해하지 못한 일에 대한 답이 장군부 별채의 탁자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그 사람은 딸꾹질을 막 멈춘 얼굴이었다.

“그럼 백하를 아시는데 왜 이 도면에 도장을 찍으려 하셨습니까?”

“날짜를 못 봤소.”

“장군.”

“병부가 날짜를 바꿔 보냈소. 처음 받은 도면은 동지 지나 건너는 길이었소. 오늘 받은 건 이거요.”

“재상이 바꿨습니다.”

“모르오.”

“아십니다.”

위강이 술병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두 잔째를 마시면 잔다고 했다. 그는 지금 자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하나 물어보겠소.”

그가 말했다.

“연나라 군 이천이 얼음에 빠지면 하나라에는 좋은 일 아니오? 당신은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됐소.”

나는 행군도 위쪽 끝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운산 북쪽, 국경선이 하나라 쪽으로 휘어 들어간 자리였다. 그 아래로 하나라 마을 이름이 작게 몇 개 적혀 있었다.

“북방군이 해산되면 국경에 누가 옵니까?”

“병부가 보내는 사람이오.”

“오늘 칙서를 읽던 사람이 오겠지요. 그 사람이 거느릴 군사들은 겨울마다 국경 너머 마을에 가서 양식을 빌려 갈 겁니다. 갚은 적 없는 빌림이 될 겁니다. 장군의 북방군은 지난 한 해 동안 저희 마을에서 쌀 한 됫박을 빌려 가도 값을 치렀습니다. 저는 그것을 인질로 끌려오는 길에 들었습니다. 장군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한테서요.”

위강의 손가락이 탁자 모서리를 한 번 두드렸다.

“그리고 장군이 이천을 잃으면 재상은 이천을 잃은 장군에게서 나머지 만 팔천을 마저 빼앗습니다. 그다음은 장군의 목이고, 그다음은 제 목입니다. 재상이 덤은 오래 두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재상이 그런 말을 했소?”

“정당에서 나가실 때 제 귀에 대고 하셨습니다. 사향 냄새가 아주 좋았습니다.”

*

문이 벌컥 열렸다. 맹초가 들어왔다. 문살 두 개가 그의 어깨에 걸려 따라 들어왔다.

“장군, 안 됩니다!”

“문은 언제 고치겠나.”

“문이 문제요, 지금? 적국 놈 말을 듣고 병부 군령을 바꾸면 그게 역모요! 재상이 바라는 게 그거라고요. 이놈이 그걸 노리고 혀를 놀리는 거요!”

“맹 부장.”

내가 그를 불렀다. 맹초가 나를 노려보았다. 그 눈에 핏줄이 섰다.

“부장께서 문밖에서 다 들으셨으면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동지 열닷새 전이면 오늘부터 며칠 뒤입니까?”

“그거야, 오늘이… 오늘이 동지 열…”

맹초가 손가락을 폈다. 열 개를 다 폈다. 그다음에 한 손을 쥐었다가 다시 폈다. 위강이 눈을 감았다. 그 손가락 셈을 여러 번 본 사람의 눈 감음이었다.

“오늘이 동지 열여드레 전입니다. 사흘 뒤입니다.”

“알아요, 나도!”

“선발 이천 안에 아는 사람이 있습니까?”

맹초의 입이 닫혔다. 그가 위강을 보았다. 위강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것이 이 집 사람들의 대답이었다. 이번에는 맹초가 직접 말했다.

“내 아우가 백 명을 거느리는 백인장이오. 맹수라고. 앞에서 셋째 줄에 서는 놈이오.”

“말을 탑니까?”

“…백인장이니까 탑니다.”

“그럼 사백 안에 있겠군요.”

맹초가 나에게 한 발 다가왔다. 주먹이 올라왔다. 나는 피하지 않았다. 사슬이 있으니 피할 수도 없었다. 주먹은 내 얼굴 앞 한 뼘에서 멈췄다. 멈춘 주먹이 떨렸다.

“네놈이 지어낸 거면, 하나라 놈.”

“지어낸 거면 부장께서 그 주먹을 끝까지 내리시면 됩니다. 사흘 뒤에요. 지금 내리시면 부장 아우님이 얼음 위에 올라가는 것을 못 막습니다.”

*

위강이 행군도를 돌려 자기 앞으로 끌어당겼다. 붓을 들었다. 주묵이 아니라 검은 먹이었다. 그는 백하 나루로 내려가던 붉은 점선 옆에 다른 길을 그었다. 운산에서 서쪽으로 비켜 흑송령을 넘는 산길이었다. 산길은 이틀이 더 걸렸다.

“이틀 늦으면 동지 열흘 전에 들어오오. 병부가 정한 날을 이틀 넘기오.”

“군령 위반이지요.”

“그렇소.”

그는 새로 쓴 군령 끝에 자기 이름을 적고, 허리춤에서 인장을 꺼내 입김을 불었다. 인주는 없었다. 그는 주묵 그릇에 인장을 눌렀다. 붉은 먹이 인장에 묻었고, 그는 그것을 종이에 찍었다. 내가 백하에 그린 동그라미와 같은 색이었다.

“병부 군령을 장군 인장 하나로 바꾸셨습니다.”

“바꾼 게 아니오. 군을 맡은 장수가 길을 고른 거요.”

“재상은 그렇게 읽지 않을 겁니다.”

“재상이 읽으라고 쓴 게 아니오.”

그가 종이를 접어 맹초에게 내밀었다.

“파발을 깨우게.”

“내가 가겠소.”

맹초가 그 종이를 받았다. 받자마자 품 안에 넣고 손바닥으로 눌렀다.

“부장은 인질을 지켜야 하네.”

“인질은 장군이 지키시오. 내 아우는 내가 지키오. 운산까지 이틀이면 가요. 말 두 필 바꿔 타고.”

“셈을 그렇게 빨리 하는 건 처음 보는군.”

“말 바꾸는 셈은 잘합니다.”

맹초가 나갔다. 나가면서 나를 한 번 보았다. 미운 눈이었는데, 미운 것만 있는 눈은 아니었다. 마당에서 말 우는 소리가 났고, 대문 빗장 여는 소리가 났고, 말발굽 소리가 골목 끝으로 멀어졌다. 문살 두 개가 빠진 문으로 찬바람이 들어왔다.

화로 앞에 위강과 나만 남았다. 그가 술병을 봉했다. 다시는 따르지 않을 사람처럼 단단히 봉했다.

“틀렸으면 어떻게 하겠소?”

“제 목을 치십시오.”

“틀리면 내 목이 먼저 가오. 당신 목은 그다음이오.”

그가 일어섰다. 행군도는 두고 갔다. 붉은 동그라미와 검은 산길이 한 종이 위에서 서로 다른 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그 종이를 덮지 않았다. 덮으면 사흘이 더 길어질 것 같았다.

조금 뒤 오 씨가 창호지 한 묶음과 풀 그릇을 들고 들어왔다. 머리에 수건을 쓴 채였다. 빠진 문살 자리를 손가락으로 쑤셔 보고는 혀를 찼다.

“맹가 놈이 또 문을 들고 나갔구먼. 그놈이 이 집에 와서 부순 문이 몇 짝인지 아시오?”

“모릅니다.”

“나도 모르오. 세다가 그만뒀소.”

그녀는 문살 대신 수숫대를 끼우고 창호지를 덧발랐다. 풀 냄새가 방 안에 퍼졌다. 쌀을 쑤어 만든 풀이라 밥 냄새가 났다. 다 바르고 나서 그녀가 내 상을 보았다. 밥이 반 남아 있었다.

“장군이 혼나겠구먼.”

“제가 남겼습니다.”

“그러니까 장군이 혼나지. 손님을 굶겼으니.”

그녀가 남은 밥을 보자기에 싸서 들고 나갔다. 내일 아침에 누룽지가 되어 돌아올 밥이었다. 나는 화로에 숯을 하나 더 얹고 누웠다. 사슬이 이불 밑에서 한 번 짤랑거렸다. 펠트를 감은 자리는 따뜻했다.

새벽에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주먹으로 두드리는 소리가 아니라 창대로 두드리는 소리였다. 오 씨가 마당을 가로질러 뛰어가는 소리가 들렸고, 빗장이 열렸고,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병부 낭중 곽윤이었다.

“장군께서 간밤에 파발을 내보내셨다지요. 그 종이를 좀 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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