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190자)

술은 제가 따르지요

적국 황태자를 인질로 데려왔더니 내 책사가 되었다 · 윤재하

연경 북쪽 장군부의 문턱은 내 정강이 높이였고, 내 발목에 채운 쇠사슬은 한 자 반이었다. 한 자 반으로는 그 문턱을 한 걸음에 넘을 수 없었다. 나는 문턱 앞에서 멈췄고, 뒤에서 말고삐를 쥔 군사가 내 등을 떠밀었고, 나는 사슬을 손으로 걷어 문턱 위에 먼저 올려놓은 다음 한 발씩 넘었다. 쇠가 돌에 끌리는 소리가 대문 안 마당까지 나를 따라 들어왔다.

“황태자 납시오!”

마당을 쓸던 늙은 여자가 비질을 멈추고 소리쳤다. 놀리는 말인지 그 집 나름의 예법인지 알 수 없었다. 군사 몇이 웃었다. 앞서 말에서 내린 장군은 웃지 않았다.

나는 하나라의 황태자 담연이다. 스물일곱 해를 살았고, 그중 마지막 한 달은 연나라 군사들의 수레 뒤를 걸었다. 정전 협정의 첫 조항이 하나라는 황태자를 연나라에 보낸다는 것이었다. 내가 국경을 넘은 지 아흐레 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아우 담휘가 보위에 올랐다는 소식이 길 위로 나를 따라왔다. 그러니 내가 아직 황태자인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 아우에게 아직 아들이 없으니 어쩌면 맞는 말일 수도 있었다. 연나라 사람들은 그런 사정에 관심이 없었다. 칙서에 황태자라고 적혀 있었으니 나는 황태자였다.

나를 끌고 온 사람은 연나라 북방 대장군 위강이다. 서른 살이고, 하나라 국경의 성 일곱을 한 해에 떨어뜨렸고, 한 달 동안 나에게 열한 마디를 했다. 나는 그 열한 마디를 셌다. 길 위에서 셀 것이 그것밖에 없었다. “걷겠소?” “먹으시오.” “비가 오오.” 그런 말들이었다. 열한 번째는 어제 연경 성문 앞에서 했다. “내 집이오.” 그것이 이 집이었다.

마당을 가로질러 집 한가운데 큰 마루방인 정당 앞에 서자 위강이 걸음을 멈췄다. 정당 문이 열려 있었고, 안쪽 맨 윗자리에 누가 먼저 앉아 있었다. 장군의 집 장군의 자리에 장군이 아닌 사람이 앉아 있었다. 위강의 등이 아주 조금 굳었다. 등을 한 달 보고 걸으면 그 정도는 읽힌다.

*

윗자리에 앉은 사람은 예순을 조금 넘긴 노인이었다. 흰 수염을 빗질해 가슴에 가지런히 내렸고, 담비 털을 댄 깃이 목을 감싸고 있었고, 무릎 위에 손난로를 올려 두고 있었다. 정당 안에 숯 냄새와 사향 냄새가 섞여 있었다. 장군의 집에서 날 냄새는 아니었다.

“먼 길 오셨습니다, 전하.”

노인이 일어나지 않고 말했다. 목소리가 느리고 부드러웠다.

“연나라 재상 곽문입니다. 아, 이제 전하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군요. 아우님께서 보위에 오르셨다지요.”

“저도 길에서 들었습니다.”

나는 사슬을 끌고 문지방을 넘었다. 이번에는 아무도 등을 밀지 않았다.

“재상께서 저보다 먼저 아셨다면 연나라 파발이 하나라 파발보다 빠른 모양입니다. 전쟁에서 진 까닭을 오늘 하나 더 배웁니다.”

곽문이 소리 없이 웃었다. 웃을 때 눈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 옆에 선 서른 남짓의 사내가 두루마리를 받쳐 들고 있었는데, 곽문이 손가락을 하나 들자 그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병부 낭중 곽윤입니다. 칙서를 읽겠습니다.”

병부는 연나라에서 군사 일을 맡는 관청이고, 낭중은 그 관청의 중간 관리다. 곽윤은 재상의 조카였다. 그 사실은 나중에 알았지만, 처음 보았을 때 이미 알 수 있었다. 숙부와 조카가 손가락 하나로 말을 나누고 있었다.

곽윤이 읽었다. 하나라에서 보낸 인질은 북방 대장군의 집에 둔다. 인질은 장군부 담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인질이 저지르는 허물은 장군이 진다. 거기까지 읽고 곽윤이 다른 두루마리를 폈다. 병부의 군령이었다. 북방군의 선발 이천은 동지 열이틀 전까지 연경 서쪽의 군사 훈련장인 교장에 들어와 해산 사열을 받는다.

“해산 사열이라는 말은 처음 듣소.”

위강이 말했다. 열두 번째 마디였다. 나에게 한 말은 아니었으니 세지 않아도 됐지만 나는 셌다.

“정전이 됐는데 칼 든 군사 이만을 국경에 둘 까닭이 있습니까?”

곽문이 손난로를 쓰다듬었다.

“장군의 공은 조정이 압니다. 군사들은 고향으로 돌아가 밭을 갈고, 국경은 병부가 새로 지킵니다.”

“병부 누구요?”

“그것까지 장군께서 걱정하실 일은 아니지요.”

곽윤이 고개를 숙였다. 숙인 고개가 대답이었다. 나는 그 고개를 오래 보았다. 국경을 새로 지킬 사람이 거기 서 있었다. 하나라 북쪽 마을 사람들은 그 얼굴을 모른다. 겨울이 오면 알게 된다.

곽문이 나를 보았다.

“전하, 하나라에서는 손님이 주인에게 술을 따릅니까, 주인이 손님에게 따릅니까?”

“이긴 쪽이 진 쪽에게 따르게 합니다.”

“그렇군요. 그럼 한 잔 받지요.”

시종이 술병과 잔을 쟁반에 올려 내 앞에 놓았다. 쟁반은 바닥에 놓였다. 서서 따를 수는 없는 높이였다. 나는 무릎을 꿇었다. 사슬이 무릎 밑에 깔려 정강이뼈에 차갑게 닿았다. 정당 안의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위강도 말하지 않았다. 나는 그쪽을 보지 않았다.

잔을 곽문 앞으로 내밀고 병을 기울였다. 술이 잔에 차올랐다. 잔의 테두리에 닿았다. 나는 병을 세우지 않았다. 술이 테두리를 넘어 곽문의 손가락을 타고 담비 털 소매 끝으로 흘러내렸다.

곽윤이 한 발 나섰다. 곽문이 손을 들어 막았다.

“하나라에서는 이긴 쪽의 잔을 넘치게 채웁니다.”

나는 병을 내려놓고 내 소매를 걷어 곽문의 손등에 묻은 술을 닦았다. 천천히, 손가락 사이까지 닦았다.

“넘친 것은 진 쪽이 닦습니다. 저희 법도가 그렇습니다. 오늘 처음 써 봅니다.”

곽문은 손을 거두지 않았다. 내가 다 닦을 때까지 손을 내맡기고 있다가, 다 닦자 그 잔을 들어 반쯤 마셨다.

“혀가 기신 분이로군요.”

그가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장군, 이분의 혀가 장군의 허물이 되지 않도록 잘 간수하십시오. 칙서에 그렇게 적혀 있으니까요.”

“내 집 사람이오. 내가 간수하오.”

위강이 말했다. 곽문이 일어섰다. 손난로를 곽윤에게 넘기고 내 옆을 지나다가, 걸음을 멈추고 몸을 조금 숙였다. 사향 냄새가 가까워졌다.

“전하, 저는 처음에 전하의 머리만 받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아주 작게 말했다. 나만 들으라는 소리였다.

“몸통까지 오셨으니 덤을 얻은 셈이지요. 덤은 오래 두지 않습니다.”

그가 나갔다. 나는 그 자리에 꿇은 채로, 그가 남긴 잔의 반을 보았다. 테두리에 손가락 자국이 기름처럼 남아 있었다.

*

내 방은 장군부 북쪽 별채였다. 방 하나에 창이 하나, 창 밖에 대추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이부자리와 화로가 있었고, 화로에 숯이 있었다. 인질의 방으로는 사치였다.

“먹으시오.”

마당에서 소리친 늙은 여자가 상을 들고 들어왔다. 부엌을 맡은 오 씨였다. 상 위에 밥 한 그릇이 있었는데, 그 높이가 그릇 높이의 두 배였다. 나는 그릇을 한참 보았다.

“연나라에서는 밥을 이렇게 먹습니까?”

“이 집에서는 그렇게 먹소. 남기면 장군이 혼나오.”

“장군이 왜 혼납니까?”

“내가 혼내니까.”

오 씨가 숟가락을 내 손에 쥐여 주고 나갔다. 문 밖에서 누군가 크게 콧방귀를 뀌었다. 열린 문틈으로 덩치 큰 사내가 문설주에 등을 기대고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갑옷을 벗지 않은 채였고, 칼자루에 손을 얹고 있었다.

“부장 맹초요.”

사내가 나를 보지도 않고 말했다.

“도망치면 다리를 분지르라는 명은 아직 없는데, 그런 명은 없어도 내가 알아서 분지를 거요.”

“명이 없는 일을 알아서 하시면 그게 군령 위반입니다.”

맹초가 고개를 돌렸다.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가 다시 열었다.

“…밥이나 드시오.”

나는 밥을 먹었다. 반쯤 먹었을 때 문 밖에서 코 고는 소리가 났다. 맹초는 서서 잤다. 연나라 군사들은 그런 것도 하는 모양이었다. 나머지 반은 남겼고, 그 일로 오 씨가 장군을 혼냈는지는 끝내 모른다.

*

자정이 가까워서 위강이 왔다. 문 밖의 코 고는 소리가 뚝 그쳤고, 맹초가 갑옷 소리를 내며 바로 서는 소리가 났고, 문이 열렸다. 위강은 한 손에 술병을, 다른 손에 둘둘 만 종이를 들고 있었고, 겨드랑이에 회색 털 뭉치 하나를 끼고 있었다.

그가 털 뭉치를 내 앞에 내려놓았다. 양털을 두툼하게 다져 만든 펠트 조각이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발목을 한 번 보았다. 사슬이 닿는 자리가 한 달 동안 벗겨져서 버선 위로 피가 배어 굳어 있었다. 나는 그 펠트를 발목과 쇠고리 사이에 감았다. 쇠의 찬 기운이 그 두께만큼 멀어졌다.

“고맙다는 말은 하나라 법도에도 있습니다.”

“아오.”

그는 탁자에 종이를 폈다. 연나라 북쪽 국경부터 연경까지를 그린 행군도였다. 산은 먹으로 쌓았고, 강은 쪽빛으로 그었고, 길은 붉은 점선으로 이어져 있었다. 점선 옆에 날짜가 작게 적혀 있었다. 병부 군령에 따라 그려 온 도면이었다. 그는 내일 아침까지 병부에 받았다는 답을 보내야 했다.

“내가 이걸 왜 당신 방에서 보는지 묻지 마시오.”

“묻지 않았습니다.”

“정당은 재상의 냄새가 나오.”

그가 술병을 따서 잔 둘에 따랐다. 한 잔을 내 쪽으로 밀었다. 그리고 자기 잔을 들어 단숨에 비웠다.

나는 내 잔을 들다 말고 그를 보았다. 그의 목덜미부터 붉은 기운이 올라왔다. 귀가 먼저 붉어졌고, 그다음에 뺨이 붉어졌고, 그다음에 딸꾹질이 나왔다. 하나라 성 일곱을 한 해에 떨어뜨린 사람이 딸꾹질을 하고 있었다.

“장군.”

“딸꾹.”

“술을 못 하십니까?”

“한 잔은 하오. 딸꾹.”

“두 잔은요?”

“두 잔이면 자오.”

나는 웃지 않으려고 입 안쪽 살을 깨물었다. 피 맛이 났다. 그래도 어깨가 떨렸다. 위강이 나를 노려보았다. 붉은 얼굴로 노려보니 무섭지 않았다.

“당신 나라에서는 이긴 장수가 술을 못 마시면 뭐라고 하오?”

“운이 좋았다고 합니다.”

그가 딸꾹질을 하며 행군도로 눈을 돌렸다. 나도 그쪽을 보았다. 붉은 점선은 북방군이 모여 있는 운산에서 시작해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연경 사흘 거리 앞에서 강을 하나 건넜다. 백하였다. 강 위에 점선이 곧게 그어져 있었고, 그 옆에 날짜가 있었다. 동지 열닷새 전, 얼음 위로 건넘.

나는 그 날짜를 두 번 읽었다. 화로의 숯이 하나 내려앉는 소리가 났다. 위강은 딸꾹질을 참느라 숨을 멈추고 있었다.

탁자 끝에 붓과 주묵이 놓여 있었다. 주묵은 붉은 먹이다. 장군이 도면에 고칠 자리를 표시할 때 쓰는 것이었다. 나는 붓을 들어 주묵을 찍었다. 위강이 숨을 내쉬었다. 딸꾹질이 멎었다.

나는 백하 나루 위에 붓을 대고, 동그라미를 하나 그렸다. 붓끝이 종이에 닿는 소리가 났다. 붉은 먹이 쪽빛 강 위로 번졌다.

위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잔을 내려놓았다. 잔이 탁자에 닿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그의 오른손이 허리로 갔다. 칼자루를 쥐는 소리는 술잔 소리보다 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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