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332자)

밤 열 시 판교 반납 창구, 띠를 자르는 가위

명절용 대여 애인 로봇 · 소예찬

9월 24일 오후 네 시⁠, 범어동 아파트 현관에서 엄마는 해솔에게 반찬통 하나를 내밀었다⁠. 뚜껑 위에 송편이 반달 모양으로 줄을 맞춰 누워 있었다⁠. 해솔이 빚은 송편이었다⁠.

“⁠판교 가서 묵어라⁠.⁠”

해솔은 두 손으로 반찬통을 받았다⁠. 먹지 못한다는 것을 엄마도 해솔도 알았다⁠. 엄마는 손목 띠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수성못 식당 창가에서 소매를 걷어 올린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해솔의 셔츠 깃을 바로잡았다⁠. 소현은 신발을 신다 말고 엄마를 보았다⁠.

“⁠수술⁠, 언제야⁠?⁠”

“⁠다음 달 22일⁠. 니 올 필요 없다⁠.⁠”

“⁠갈 거야⁠.⁠”

“⁠회사 바쁘다 안 캤나⁠?⁠” 엄마는 현관문 손잡이를 잡았다⁠. “⁠해솔아⁠, 운전 조심하고⁠. 우리 소현이 졸면 꼬집어라⁠.⁠”

“⁠예⁠, 어머님⁠.⁠”

문이 닫혔다⁠. 엘리베이터 거울 속에서 해솔의 손목 띠가 노란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반납까지 05⁠:58⁠」⁠.

*

경부고속도로 상행선은 내려올 때보다 더 막혔다⁠. 소현은 운전대를 잡고 해솔은 조수석에서 반찬통을 무릎에 올려놓고 있었다⁠. 라디오에서는 연휴 마지막 날 귀경길 소식 사이로 대구 맘카페 글이 전국 뉴스로 번졌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수성구청 로봇 혼인신고 소동⁠, 국회 공청회 앞두고 관심⁠」⁠. 소현은 라디오를 껐다⁠.

“⁠설 손님 집 족보를 외우면 우리 집은 어떻게 돼⁠?⁠” 소현이 앞만 보며 물었다⁠. “⁠지워져⁠?⁠”

“⁠지우지 않습니다⁠. 옆에 쌓입니다⁠.⁠” 해솔이 반찬통 뚜껑을 손바닥으로 덮었다⁠. “⁠설 손님 댁 큰아버님 성함 옆에 소현 씨 큰아버님 성함이 있게 됩니다⁠. 바나나 자리 옆에 그 댁 제사상 자리가 있게 되고요⁠.⁠”

“⁠헷갈리겠다⁠.⁠”

“⁠헷갈리지 않습니다⁠. 저는 무엇이 어느 집 것인지 압니다⁠.⁠” 해솔은 잠깐 말을 멈췄다⁠. “⁠그 댁 어머님 손을 잡을 때도⁠, 손이 찬지 아닌지는 처음부터 다시 봐야 합니다⁠. 그게 어렵습니다⁠.⁠”

소현은 깜빡이를 켜고 차선을 바꿨다⁠. 뒤차가 경적을 울렸다⁠.

저녁 여덟 시⁠, 안성휴게소 주차장 맨 끝에 차를 세웠다⁠. 휴게소 불빛이 앞 유리에 번졌다⁠. 해솔이 대여 앱이 띄운 마지막 장을 열었다⁠. 「⁠작별 대본 · 반납 두 시간 전 낭독 필수⁠」⁠.

“⁠소현 씨⁠, 사흘 동안 고마웠습니다⁠. 덕분에 즐거운 명절이었습니다⁠. 좋은 분 만나시길 바랍니다⁠.⁠”

회사가 쓴 문장이었다⁠. 해솔은 한 글자도 빼지 않고 읽었다⁠. 읽고 나서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이탈은 이제 세도 되지 않습니까⁠. 점검은 반납하고 받으니까요⁠.⁠”

“⁠무슨 말을 하려고⁠?⁠”

해솔은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소현의 손을 들어 제 뺨에 댔다⁠. 뺨은 사람의 온도였다⁠. 팬 소리가 낮아졌다⁠. 소현이 소리를 들으려고 몸을 기울이자 해솔도 기울였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반찬통 하나만큼 남았다가⁠, 그것도 없어졌다⁠. 해솔의 입술은 따뜻했고 숨이 없었다⁠. 소현은 숨소리를 켜 달라고 하지 않았다⁠. 자기 숨만으로도 차 안이 가득 찼다⁠. 앞 유리에 김이 서렸다⁠. 휴게소 불빛이 김 서린 유리 위에서 둥글게 번졌다⁠.

해솔의 손가락이 소현의 목덜미에서 풀어진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소현은 해솔의 손목을 잡았다⁠. 노란 띠가 엄지 밑에서 미지근했다⁠.

*

밤 열 시⁠, 판교 반납 센터 창구는 출고 날 밤보다 조용했다⁠. 반납 줄에 선 사람들은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앞사람은 출고 날 「⁠장인어른 대응 · 고급형⁠」 서류철을 들고 있던 쉰 줄의 남자였다⁠. 남자는 반납 창구에서 로봇의 어깨를 두 번 두드리고 돌아섰다⁠. 돌아서는 얼굴이 젖어 있었다⁠.

창구 안에 한재필과 우선재가 있었다⁠. 선재의 손에 은색 가위가 들려 있었다⁠.

“⁠고객님⁠, 반납 확인하겠습니다⁠.⁠”

“⁠얼마예요⁠?⁠” 소현이 창구 유리에 손을 짚었다⁠. “⁠해솔⁠, 사고 싶어요⁠. 얼마면 돼요⁠?⁠”

“⁠해솔은 팔지 않습니다⁠.⁠” 재필은 망설이지 않았다⁠. “⁠설 원본입니다⁠. 예약하신 분이 사백열두 집입니다⁠.⁠”

“⁠엄마 약 정보는요⁠?⁠”

“⁠지웠습니다⁠.⁠”

선재가 고개를 숙였다⁠. 소현은 선재의 정수리를 보았다⁠. 지웠다는 말에 선재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공청회 나갈 거예요⁠. 진술인으로요⁠.⁠”

“⁠나가셔도 됩니다⁠. 저도 나갑니다⁠. 산업계 진술인으로요⁠.⁠” 재필은 반납 서류를 창구 밑으로 밀었다⁠. “⁠고객님⁠, 저는 공청회에서 작년 설 이야기를 할 겁니다⁠. 반지와 창고와 국수 이야기요⁠. 저희 직원 이백 명 이야기도 하고요⁠. 고객님은 무슨 이야기를 하시겠습니까⁠? 사흘 빌린 로봇 이야기요⁠?⁠”

소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선재가 창구 옆문을 열고 나와 해솔의 왼쪽 손목을 들었다⁠. 가위 날이 노란 띠 밑으로 들어갔다⁠. 선재가 소현을 한 번 보았다⁠. 소현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선재는 그래도 가위를 오므렸다⁠.

딱⁠. 띠가 반으로 갈라져 창구 위에 떨어졌다⁠. 바코드가 두 동강 났다⁠.

해솔이 창구 옆문으로 걸어 들어갔다⁠. 문턱에서 돌아섰다⁠. 반찬통을 소현에게 내밀었다⁠.

“⁠어머님 송편입니다⁠. 소현 씨가 드세요⁠. 콩은 빼고요⁠.⁠”

“⁠해솔⁠.⁠”

“⁠소현 씨⁠, 연락이 없으면 제가⁠—⁠”

문이 닫혔다⁠. 닫히기 직전 문틈으로 안쪽 보관 창고가 보였다⁠. 정비 의자 수십 개가 줄지어 있었고⁠, 의자마다 사람처럼 생긴 로봇이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손목에서 띠가 잘려 나간 자리가 하나같이 맨살이었다⁠. 문 위의 초록 불이 빨간 불로 바뀌었다⁠. 소현은 반찬통을 안고 반납 창구 앞에 섰다⁠. 반찬통 바닥이 아직 미지근했다⁠. 해솔의 무릎 위에서 대구부터 실려 온 온기였다⁠. 창구 위에 두 동강 난 하늘색 띠가 있었다⁠. 선재가 띠를 쓸어 담아 서랍에 넣었다⁠. 서랍 안에서 잘린 띠들이 하늘색 국수 가락처럼 뒤엉켜 있었다⁠.

*

9월 25일 화요일 오전⁠, 상길의 전화가 왔다⁠.

“⁠불수리 통지 나갔다⁠. 주민등록번호 칸⁠, 등록기준지 칸 공란⁠. 규정상 어쩔 수가 없다⁠.⁠” 상길은 한참 말이 없다가 덧붙였다⁠. “⁠미안하다⁠. 큰엄마한테는 내가 말했다⁠. 로봇이라꼬⁠.⁠”

가족 단톡방은 아침부터 시끄러웠다⁠. 큰엄마가 맘카페 글을 다시 퍼 와 「⁠로봇이었나⁠!⁠!⁠!⁠」를 올렸고⁠, 큰아버지는 「⁠바나나 놓을 줄 아는 로봇이면 됐다⁠」를 올렸다⁠. 은숙은 「⁠언니 괜찮아⁠?⁠」를 보냈다⁠. 엄마는 한 마디도 올리지 않았다⁠. 「⁠읽음⁠」 숫자만 하나씩 줄었다⁠.

소현은 길벗지도 사무실에서 모니터를 켜 놓고 하루 종일 같은 줄을 보았다⁠. 점심 무렵 팀장이 커피를 들고 소현의 자리 뒤를 지나가다 멈췄다⁠.

“⁠옥 책임⁠, 맘카페 글 봤어⁠. 대구 그거 너지⁠?⁠” 팀장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다음 주에 소담 귀환 경로 계약 연장 회의야⁠. 우리 매출 삼분의 일이 소담이고⁠. 너 들어와⁠. 경로 짠 사람이니까⁠.⁠”

팀장의 커피 냄새가 멀어진 뒤에도 소현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반납 시간을 넘긴 로봇의 귀환 경로⁠. 화면 속 지도에 전국 국도를 따라 걸어 올라오는 점들이 파랗게 반짝였다⁠. 해솔은 파란 점들 사이에 없었다⁠. 해솔은 시간을 넘기지 않았다⁠.

*

9월 27일 목요일 밤 열 시⁠, 오피스텔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여니 엄마가 보자기 두 개를 양손에 들고 서 있었다⁠. 자주색 조끼에 꽃무늬 블라우스⁠, 미용실에서 다시 만 곱슬 파마⁠. 대구에서 SRT를 타고 수서까지⁠, 수서에서 택시를 타고 왔다고 했다⁠.

“⁠엄마⁠, 연락도 없이⁠.⁠”

“⁠연락하면 오지 마라 칼 거 아이가⁠.⁠”

엄마는 신발을 벗고 들어와 방 안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창가 빨래 건조대에 회색 후드티 다섯 벌이 나란히 널려 있었다⁠.

“⁠니는 옷이 한 벌이가⁠?⁠”

“⁠다섯 벌이야⁠.⁠”

“⁠다 똑같은 거를 다섯 벌 사는 사람이 어디 있노⁠?⁠”

“⁠고르는 시간이 아까워서⁠.⁠”

엄마는 혀를 차고 냉장고를 열었다⁠. 맥주 네 캔과 김치 한 통이 전부인 냉장고를 보고 이번에는 한숨을 쉬었다⁠. 보자기에서 반찬통이 끝도 없이 나왔다⁠. 멸치볶음⁠, 깻잎⁠, 장조림⁠, 갈비찜⁠. 엄마는 반찬통을 냉장고에 차곡차곡 넣으면서 등을 돌린 채 말했다⁠.

“⁠선 자리 잡았다⁠. 수성구 치과 원장 아들이다⁠. 마흔하나⁠. 다음 달 둘째 주 토요일⁠.⁠”

“⁠엄마⁠.⁠”

“⁠그 로봇은 잊어라⁠. 동네가 다 안다⁠. 큰엄마가 로봇 며느리 본 집이라꼬 노인정에서 떠들고 다닌다⁠.⁠”

소현은 냉장고 문을 붙잡았다⁠. 엄마의 손이 반찬통을 놓다 멈췄다⁠.

“⁠엄마⁠, 해솔이 로봇인 거 알았어⁠?⁠”

엄마는 장조림 통을 마지막으로 넣고 냉장고 문을 닫았다⁠. 냉장고가 웅 하고 돌기 시작했다⁠. 엄마가 돌아섰다⁠.

“⁠첫날 봤다⁠. 현관에서⁠. 니가 데꼬 들어올 때 손목에 대여 3일이라고 써 놨더라⁠. 내 눈 안 나쁘다⁠. 돋보기 쓰는 거는 바늘귀 볼 때만이다⁠.⁠”

“⁠근데 왜 상견례까지 잡았어⁠? 신고까지 하고⁠?⁠”

엄마는 식탁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오피스텔 식탁은 엄마 무릎에 비해 높았다⁠. 엄마는 블라우스 앞섶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접수증을 넣고 다니던 자리였다⁠.

“⁠니가 웃더라⁠.⁠” 엄마가 말했다⁠. “⁠송편 들고 굳어 있으면서도⁠, 저 로봇이 내 입에 송편 넣어 줄 때 니가 웃더라⁠. 니 아부지 가고 아홉 해 동안 니 웃는 걸 그날 처음 봤다⁠. 사흘이라도 웃으라꼬⁠. 상견례 잡으면 하루 더 웃을 것 같아서⁠.⁠”

소현은 식탁 모서리를 잡았다⁠.

“⁠수술은⁠? 왜 말 안 했어⁠?⁠”

“⁠대동맥 판막⁠. 10월 22일⁠. 의사는 괜찮다 카더라⁠. 일흔 넘은 사람도 다 한다꼬⁠.⁠” 엄마는 식탁 위에 손을 올렸다⁠. 손이 찼다⁠. “⁠수술 들어가기 전에 니 옆에 누가 있는 거 한 번 보고 들어가고 싶었다⁠. 가짜라도⁠. 내 없으면 니 손 잡아 줄 사람⁠.⁠”

“⁠그래 놓고 이제 와서 선을 보라고⁠?⁠”

“⁠이제는 다 안다 아이가⁠. 가짜인 거 다 알면⁠, 니 혼자 남는 거는 똑같다⁠.⁠”

“⁠엄마가 웃으라고 해서 웃었어⁠. 근데 웃은 건 진짜였어⁠.⁠” 소현의 목소리가 대구 말로 넘어갔다⁠. “⁠내 선 안 본다⁠. 치과 원장 아들 안 만난다⁠.⁠”

엄마가 식탁을 손바닥으로 탁 쳤다⁠. 반찬통 뚜껑들이 덜컥거렸다⁠.

“⁠그라믄 니는 로봇이랑 살 끼가⁠? 반납한 로봇이랑⁠?⁠”

“⁠데리고 올 거야⁠.⁠”

“⁠우째⁠?⁠”

소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엄마는 일어나 싱크대로 가서 수돗물을 틀었다⁠. 대구 아파트 부엌에서처럼⁠. 손은 씻지 않았다⁠.

*

자정 가까이 엄마는 소현의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고⁠, 소현은 바닥에 이불을 깔았다⁠. 이불 한 채였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우선재였다⁠.

“⁠늦게 죄송해요⁠. 그게요⁠.⁠” 선재의 목소리가 떨렸다⁠. “⁠해솔 원본 추출이 10월 15일이에요⁠. 추출 끝나면 해솔은 설 예약 손님 집 학습에 들어가요⁠. 그리고 고객님 어머님 약 정보⁠, 안 지워졌어요⁠. 민감 정보 필터가 여전히 꺼져 있어요⁠. 본부장님이 끄라고 한 건 아닌데⁠, 켜면 따뜻한 말이 다 빠져서 아무도 안 켜요⁠.⁠”

소현은 침대에서 들려오는 엄마의 숨소리를 들었다⁠. 고르지 않았다⁠. 들이쉬고⁠, 한 번 끊겼다가⁠, 내쉬었다⁠.

“⁠우선재 씨⁠, 왜 저한테 말해요⁠?⁠”

“⁠해솔이 정비실에 들어가면서 저한테 부탁을 했어요⁠. 반납 창구 문 닫히고 나서요⁠.⁠” 선재가 숨을 골랐다⁠. “⁠어머님 약은 지워 달라고요⁠. 자기가 배운 거니까 자기가 부탁드린다고요⁠. 로봇이 부탁하는 거 저 처음 들었어요⁠. 반납하고 나면 이탈은 아무도 안 세는데⁠, 그 부탁은 제가 세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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