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321자)
상견례에 나온 시부모님은 고개를 똑같이 끄덕였다
명절용 대여 애인 로봇 · 소예찬
2029년 9월 24일 대체공휴일 아침 열 시, 소현은 상견례에 후드티를 입고 가겠다고 우기다가 엄마와 한바탕 붙었다. 엄마는 옷장에서 소현의 대학 졸업식 원피스를 꺼내 흔들었고, 소현은 원피스가 열다섯 해 전 치수라고 버텼다. 둘은 회색 후드티 위에 아버지가 입던 남색 재킷을 걸치는 것으로 타협했다. 소매가 손등을 덮었다.
“상견례에 츄리닝 바지 입고 오는 가시나는 대구에 니 하나다.”
“바지는 검은색이야. 정장 바지처럼 보여.”
“무릎이 나와서 정장 바지가 절을 한다.”
*
오전 열한 시 반, 수성못 둑길 옆 한정식집 못둑집 주차장에 흰 정비 밴이 들어왔다. 뒷문이 열리고 우선재가 먼저 내렸다. 이어서 쉰여덟 살쯤으로 맞춰 놓은 남자와 여자가 차례로 내렸다. 남자는 반백의 머리를 단정하게 넘기고 회색 양복을 입었다. 여자는 진주 귀걸이에 남색 투피스를 입고, 왼쪽 가슴에 은빛 꽃 모양 브로치를 달았다. 두 사람이 동시에 소현에게 고개를 숙였다. 각도가 똑같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해솔이 아버지입니다.”
“해솔이 엄마예요.”
두 사람의 손목에는 금빛 시계와 진주 팔찌가 감겨 있었다. 소현은 시계 밑으로 삐져나온 하늘색 끄트머리를 보았다. 「대여 1일」. 선재가 손가락으로 팔찌를 밀어 끄트머리를 가렸다.
“브로치가 사진기예요. 그게요, 광고 찍는 거요.” 선재는 밴 안을 흘끔 돌아보았다. 운전석 뒤 모니터 앞에 한재필이 앉아 있었다. “어머니 쪽 대본은 제가 안 짰어요. 본부장님이 밤새 넣으셨어요.”
소현이 뭐라고 묻기 전에 선재는 밴 문을 닫았다.
식당 현관에서 주인 아주머니가 엄마를 맞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아주머니의 눈길이 엄마의 꽃무늬 블라우스에 오래 머물렀다.
“사모님, 어제 맘카페 구청 사진에 나온 블라우스 아입니꺼?”
“대구에 이 블라우스 천 장은 있습니더.” 엄마가 단칼에 잘랐다. “창가 자리 맞지예?”
아주머니는 더 묻지 않고 창가 방 미닫이를 열어 주었다. 엄마는 신발을 벗으며 조끼 단추를 하나 더 채웠다. 맘카페 글은 아침부터 동네를 한 바퀴 돌았고, 엄마는 맘카페 글을 보고도 상견례를 물리지 않았다.
*
열두 시, 창가 방에서 수성못이 한눈에 보였다. 물 위에 어제 탄 오리배들이 줄지어 묶여 있었다. 엄마는 아침에 새로 다린 꽃무늬 블라우스에 자주색 조끼를 입고, 미용실에서 곱슬 파마를 한 번 더 말고 왔다. 해솔은 엄마가 마트에서 골라 준 흰 셔츠를 입었다. 엄마 말로는 사위 셔츠는 무조건 흰색이었다.
상이 차려지자 엄마가 먼저 술잔을 들었다.
“사돈, 먼 길 오셨습니더. 부산서 한 시간 반 걸리지예?”
“한 시간 반 걸렸습니다.” 아버지가 말했다.
“한 시간 반 걸렸어요.” 어머니가 말했다.
두 사람이 동시에 허허, 호호 웃었다. 웃음이 끝나는 때도 같았다. 소현은 물컵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해솔은 부모를 처음 보는 얼굴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실제로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다.
갈비가 나오고 회가 나오고 전복죽이 나왔다. 사돈 둘은 젓가락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저희가 부산서 아침을 늦게 먹고 와서요.”
“늦게 먹고 와서요.”
“아이고, 그라믄 회라도 한 점 드이소. 부산 분들이 회를 잘 아시지예.”
“자갈치에서 마흔 해 회를 떴습니다.” 아버지가 대본대로 말했다. 마흔 해 회를 뜬 사람이 회 접시를 쳐다보기만 했다.
엄마가 해솔의 어린 시절을 물었다. 어머니가 막힘없이 풀어놓았다. 세 살에 한글을 뗐고, 다섯 살에 바다에 빠졌다가 혼자 헤엄쳐 나왔고, 중학교 때 반장을 세 번 했다. 해솔은 자기가 다섯 살에 바다에 빠졌다는 이야기를 처음 듣는 얼굴로, 고개를 기울이고 흥미롭게 들었다. 소현은 상 밑으로 해솔의 정강이를 찼다. 해솔이 고개를 바로 했다.
사돈 앞의 회 접시는 그대로였다. 엄마가 고개를 돌려 종업원에게 물을 더 달라고 하는 사이, 소현은 아버지 앞의 광어 두 점과 어머니 앞의 전복 한 점을 제 입에 넣었다. 접시가 비어 있어야 사돈이 드신 줄 알 것이었다. 엄마가 돌아보았을 때 소현의 볼이 양쪽으로 불룩했다.
“니는 상견례에서 시부모 회까지 뺏어 묵나?”
“사돈이 드시라고 하셨어.”
“드시라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말했다.
“드시라고 했어요.” 어머니가 말했다.
엄마는 셋을 번갈아 보더니 아무 말 없이 소현 앞에 물컵을 밀어 주었다. 깍두기에서 시작한 딸의 버릇은 상견례 회 접시까지 와 있었다.
*
상 밑에서 소현의 휴대전화가 떨었다. 맹남희 의원실 보좌관이었다. 「진술인 수락 여부를 오늘 중으로 알려 주시면 명단에 올리겠습니다. 의원님께서 사연에 크게 공감하셨습니다」. 소현은 답장 칸을 열었다가 닫았다. 공감한다는 의원은 소현의 엄마도 해솔도 본 적이 없었다.
전복죽 그릇이 비어 갈 무렵 엄마가 술잔을 내려놓았다.
“사돈, 신혼집은 어데로 합니꺼? 우리 소현이는 판교서 일하니까 그짝이 낫겠는데, 대구에도 방 하나는 비워 놔야 될 낀데.”
“두 사람 뜻대로 하시지요.” 어머니가 웃었다.
“예단은 우째 할까예? 요새는 안 한다 카던데, 우리는 이불 한 채는 해야 될 것 같아서.”
“두 사람 뜻대로 하시지요.”
“날은 언제쯤으로 잡을까예? 봄이 좋은데.”
“두 사람 뜻대로 하시지요.”
엄마의 젓가락이 상 위에서 멈췄다. 엄마는 같은 대답을 세 번 들은 얼굴로 어머니를 보았다. 어머니는 같은 웃음을 세 번 지었다.
“사돈은 아들 장가보내는데 뜻이 하나도 없습니꺼?”
“아들 뜻이 제 뜻이에요.”
“그라믄 아들 뜻이 뭔지는 압니꺼? 해솔이가 우리 소현이 어디가 좋다 카던가예?”
어머니의 입이 반쯤 열렸다가 닫혔다. 대본에 없는 물음이었다. 아버지가 옆에서 허허 웃었다. 엄마는 웃지 않았다. 대신 손에 든 젓가락을 상 밑으로 툭 떨어뜨렸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동시에 허리를 숙였다. 같은 각도, 같은 빠르기였다. 두 사람의 이마가 상 모서리 밑에서 부딪혔다. 쿵. 사람의 이마에서 날 소리가 아니었다. 묵직하고 둔한, 속이 꽉 찬 상자를 부딪치는 소리였다. 두 사람은 아무 일 없다는 얼굴로 동시에 허리를 폈다. 아버지가 젓가락을 엄마 앞에 내려놓았다.
“여기 있습니다, 사부인.”
엄마는 젓가락을 받아 들고 아버지 이마를 한참 보았다. 빨개지지도 않은 이마였다. 부딪힌 자리에 자국 하나 없이 매끈했다. 소현은 숨을 멈췄다. 엄마의 눈이 아버지 이마에서 해솔에게로, 해솔에게서 소현에게로 천천히 옮겨 왔다.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젓가락을 상에 가지런히 놓았다.
“사돈 이마가 단단하시네예.”
“운동을 좀 합니다.” 아버지가 말했다.
“헬스장을 끊었어요.” 어머니가 말했다.
해솔이 물을 마시는 시늉을 하며 소현을 보았다. 헬스장 3일권은 큰집 조카 앞에서 해솔이 쓴 말이었다. 조카 앞에서 한 말이 하루 만에 부산 사돈 입에서 나왔다.
*
한 시 반, 식당 앞에서 헤어질 때 엄마는 갑자기 순해졌다. 어머니의 두 손을 잡고 고개를 숙였다.
“사돈, 우리 소현이 잘 부탁합니더. 성질은 지 아부지 닮아서 급해도, 속은 착합니더. 내가 오래 몬 볼 수도 있어서 하는 말입니더.”
소현은 엄마의 마지막 말에 귀를 세웠다. 오래 못 볼 수도 있다는 말은 엄마가 명절마다 하는 엄살이었다. 오늘은 목소리가 달랐다.
어머니가 엄마의 손을 두 손으로 감쌌다. 브로치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사부인, 저녁 아홉 시 약 잊지 마세요. 흰 거 하나, 분홍 거 반 알. 판막 수술 날까지는 짠 거 드시지 마시고요.”
엄마의 손이 어머니의 손 안에서 굳었다. 소현은 어머니의 말을 다시 들으려고 귀를 기울였다. 판막. 수술. 엄마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지는 것이 보였다.
“그거를 사돈이 우째 압니꺼?”
어머니는 웃기만 했다. 대본이 거기서 끝난 것이었다. 엄마가 고개를 돌려 해솔을 보았다. 해솔은 피하지 않았다.
“어머님, 그건 제가 들은 겁니다. 어제 오후 약국에서요. 약사님이 수술 전까지 드실 약이라고 하셨습니다.”
소현은 엄마를 보았다. 엄마는 소현을 보지 않았다. 대신 어머니의 손에서 제 손을 빼서 조끼 주머니에 넣었다. 첫날 송편 상 앞에서 해솔이 손이 차다고 했을 때와 같은 동작이었다.
“수술이 뭐야, 엄마.”
“니는 들어가 있어라.”
“무슨 수술이냐고!”
“다음 달이다. 별거 아이다. 판막 하나 갈면 된다 카더라.” 엄마는 둑길 쪽으로 몸을 돌렸다. “해솔아, 니는 소현이 데꼬 들어가라.”
*
소현은 들어가지 않았다. 주차장을 가로질러 흰 밴의 옆문을 열어젖혔다. 밴 안에는 식은 커피 냄새와 장비 열기가 고여 있었다. 모니터 앞에서 재필이 헤드셋을 벗고 있었다. 화면에는 브로치가 찍은 엄마의 손이 멈춰 있었다. 어머니 로봇의 손 안에서 굳은 엄마의 손이었다.
“엄마 약을 왜 저 로봇이 알아요?”
재필은 화면을 끄지 않았다.
“해솔이 배운 건 밤마다 저희 서버로 올라옵니다. 부모님 역할 대본은 해솔 기록으로 짰습니다. 그래야 진짜 같으니까요.”
“진짜 같으라고 우리 엄마 수술을 넣었어요?”
“약 이야기는 빼라고 했는데 걸러지지 않았습니다. 실수입니다.” 재필은 모니터 옆에 놓인 태블릿을 돌려 보였다. 「2030 설 · 검증된 가족 패키지 · 원본: 해솔(2029 추석 대구) · 사전 예약 412」. “설에 나갈 로봇 마흔 대가 이번 추석 해솔이 배운 걸로 말을 합니다. 어머님 손이 차다는 말, 바나나 자리, 웃을 때 코에 주름 세 개. 다 해솔이 이번에 처음 배운 겁니다. 이런 기록은 처음입니다.”
“그걸 사백 집에 팔아요?”
“나눠 파는 겁니다.” 재필이 의자를 돌려 소현을 마주 보았다. “고객님, 정을 한 대에 붙이면 사고가 납니다. 반지를 끼우고, 창고에 숨기고, 경찰이 옵니다. 사백 대에 똑같이 나눠 붙이면 상품이 됩니다. 어느 집도 그 한 대만 붙잡지 않습니다. 작년 설 같은 일이 다시는 안 납니다.”
“엄마는 동의한 적 없어요. 동기화는 제가 약관에 동의한 거지, 엄마가 한 게 아니잖아요.”
“어머님은 저희 고객이 아니십니다.” 재필은 태블릿을 거두었다. “고객님이 동의하셨고, 해솔은 고객님 댁에서 배웠습니다. 고객님 댁에서 배운 건 고객님이 빌려 가신 로봇의 것이고, 로봇은 저희 것입니다.”
밴 뒷자리에서 선재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선재의 무릎 위 노트북에 「동기화 기록 · 민감 정보 필터 — 꺼짐」이 떠 있었다. 선재는 화면을 덮지 않았다.
소현은 밴 문틀을 잡았다. 손가락이 하얘졌다.
“해솔이 우리 엄마한테 한 말을, 설에 사백 집 엄마들이 듣는 거예요?”
“네. 똑같이.”
소현은 밴에서 물러나 식당을 돌아보았다. 통유리창 너머 창가 방에 엄마가 다시 들어와 앉아 있었다. 맞은편에 해솔이 있었다. 엄마가 해솔의 왼쪽 손목을 잡고 흰 셔츠 소매를 천천히 걷어 올리고 있었다. 하늘색 띠가 드러났다. 엄마는 놀라지 않았다. 엄지로 「대여 3일」 글자를 한 번 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