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328자)

일요일 밤 구청 당직실, 로봇이랑 혼인신고 하러 왔습니다

명절용 대여 애인 로봇 · 소예찬

2029년 9월 23일 일요일 오전 열 시⁠, 수성못 물 위에 오리배가 열두 척 떠 있었다⁠. 엄마가 아침상을 물리자마자 둘이 바람 쐬고 오라며 등을 떠밀었다⁠. 블라우스 앞섶에 접어 넣은 신고서는 그대로였다⁠.

오리배 안은 좁았다⁠. 소현의 무릎과 해솔의 무릎이 페달을 밟을 때마다 부딪혔다⁠. 처음에는 소현이 빠르고 해솔이 느렸는데⁠, 못 가운데쯤 왔을 때는 두 사람의 페달이 같은 박자로 돌고 있었다⁠. 해솔이 소현의 발에 맞춘 것이었다⁠. 물 위로 햇빛이 잘게 부서졌고⁠, 오리 머리 모양의 뱃머리가 물결을 밀 때마다 플라스틱 냄새와 물비린내가 섞여 올라왔다⁠.

“⁠혼인신고가 뭔지 알아⁠?⁠”

“⁠「⁠혼인은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에 정한 바에 의하여 신고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긴다⁠.⁠」 민법 812조입니다⁠. 2항은 당사자 쌍방과 성년자인 증인 2인이 연서한 서면으로 해야 한다고 정합니다⁠.⁠”

“⁠외웠어⁠?⁠”

“⁠어제 신고서가 어머님 블라우스로 들어갈 때 찾아봤습니다⁠.⁠” 해솔이 페달을 멈췄다⁠. 오리배가 물 위에서 천천히 돌았다⁠. “⁠저는 주민등록번호가 없습니다⁠. 등록기준지도 없습니다⁠. 화요일에 불수리가 나옵니다⁠.⁠”

“⁠알아⁠.⁠”

“⁠그런데 왜 가십니까⁠?⁠”

소현은 대답을 고르느라 물을 보았다⁠. 물속에 오리배 그림자와 두 사람의 그림자가 흔들렸다⁠. 서른여섯 해 동안 엄마 앞에서 무엇 하나 제 손으로 내밀어 본 적이 없었다⁠. 대학도 회사도 오피스텔도 엄마가 묻기 전에 다 정해 놓고 통보만 했다⁠. 엄마가 물으면 말이 막혔으니까⁠.

“⁠엄마 앞에서 한 번 말해 보고 싶어서⁠. 이 사람이라고⁠.⁠”

“⁠빌린 사람이라도요⁠?⁠”

“⁠응⁠.⁠”

해솔이 소현의 손을 잡았다⁠. 손바닥이 어제 밤보다 조금 더 따뜻했다⁠.

“⁠체온을 0⁠.5도 올렸습니다⁠.⁠”

“⁠왜⁠?⁠”

“⁠물바람이 찹니다⁠.⁠”

소현은 웃다가 해솔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니트 너머로 팬이 웅웅 돌았다⁠. 귀를 해솔의 가슴에 대자 심장 대신 팬 소리가 들렸다⁠. 일정하게⁠, 조금 빠르게⁠. 해솔의 턱이 소현의 정수리에⁠, 풀어진 똥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숨소리가 소현의 머리카락을 아주 조금 흔들었다⁠. 둘은 기댄 채로 페달을 밟지 않고 오래 떠 있었다⁠. 오리배 관리인이 확성기로 시간이 다 됐다고 소리칠 때까지⁠.

*

오후 네 시⁠, 재필의 전화가 왔다⁠. 소현은 아파트 놀이터 그네에 앉아 받았다⁠. 해솔은 엄마와 함께 마트에 상견례 때 입을 셔츠를 사러 가 있었다⁠.

“⁠고객님⁠, 오늘 오전 수성못 대화 확인했습니다⁠.⁠”

“⁠그것도 보세요⁠?⁠”

“⁠해솔이 보고 들은 건 밤마다 저희 서버로 올라옵니다⁠. 약관 사 조에 있습니다⁠.⁠” 재필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반 박자 빨랐다⁠. “⁠대여 로봇은 고객님 대신 서류에 서명할 수 없습니다⁠. 법률 행위를 대신하는 건 계약 위반입니다⁠. 서명하면 그 자리에서 회수합니다⁠.⁠”

“⁠수리도 안 되는 서류예요⁠.⁠”

“⁠수리가 되고 안 되고는 저희 일이 아닙니다⁠. 서명한 사진이 한 장이라도 돌아다니면 저희 일이 됩니다⁠.⁠”

소현은 전화를 끊었다⁠. 그네가 끽끽 울었다⁠. 놀이터 모래밭에서 아이 하나가 모래로 송편을 빚고 있었다⁠.

*

밤 열한 시⁠, 수성구청 1층 당직실은 불이 반만 켜져 있었다⁠. 로비 한가운데 민원 안내 로봇이 충전대에 서서 눈을 감고 있었다⁠. 손목에 해솔과 같은 바코드 띠가 감겨 있었다⁠. 띠 색은 회색이었다⁠. 셋이 로비를 지나가자 안내 로봇의 눈이 반짝 켜졌다⁠.

“⁠해솔 님⁠, 반갑습니다⁠.⁠”

엄마가 걸음을 멈췄다⁠. 소현의 심장이 발끝까지 내려앉았다⁠.

“⁠니 여기도 아는 사람 있나⁠?⁠”

해솔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본에 없었다⁠. 소현이 엄마 팔짱을 꼈다⁠.

“⁠판교 회사에서 만든 로봇이야⁠. 해솔이네 회사에서 지도를 깔아 줬대⁠. 그래서 알아보는 거야⁠.⁠”

“⁠기계도 사람을 알아보나⁠?⁠”

“⁠요새는 다 알아봐⁠.⁠”

엄마는 안내 로봇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안내 로봇도 고개를 숙였다⁠. 거짓말이 이제 로봇한테까지 붙고 있었다⁠.

당직실 창구 너머에 상길이 앉아 있었다⁠. 구청 점퍼를 입고 책상에 컵라면 하나를 올려놓았는데⁠, 면이 불어 국물이 하나도 없었다⁠. 창구 옆 의자에는 먼저 온 젊은 부부가 앉아 있었다⁠. 연휴에 신고하면 기념일이 쉬워진다며 둘이서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신부 말로는 신랑이 등록기준지 칸을 잘못 써서 신고서를 세 번이나 다시 썼다고 했다⁠. 엄마는 젊은 부부를 한 번 보고 해솔을 한 번 보더니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블라우스 앞섶에서 신고서를 꺼내 창구에 펼쳤다⁠. 접힌 자국이 십자로 나 있었다⁠. 증인 칸에는 큰엄마의 이름과 큰아버지의 지장이 벌써 들어가 있었다⁠.

“⁠상길아⁠, 써라 카는 데 다 썼다⁠. 니가 봐 줘라⁠.⁠”

“⁠작은어머니⁠, 당사자 서명은 본인이 직접 해야 됩니다⁠. 규정상⁠.⁠”

상길이 볼펜 두 자루를 창구 밑으로 밀었다⁠. 소현이 먼저 서명했다⁠. 손이 떨려서 옥 자의 받침이 두 번 꺾였다⁠. 해솔이 볼펜을 집었다⁠. 소현은 해솔의 손목을 보았다⁠. 니트 소매가 내려와 띠를 가리고 있었다⁠. 복도 끝 유리문 너머에서 차 한 대가 헤드라이트를 끄는 것이 보였다⁠. 흰 밴이었다⁠.

해솔은 서명 칸에 이름을 썼다⁠. 글씨는 인쇄한 것처럼 반듯했다⁠. 주민등록번호 칸과 등록기준지 칸에서는 볼펜을 들고 멈췄다⁠. 십 초⁠, 이십 초⁠. 해솔은 두 칸을 그대로 두고 볼펜을 내려놓았다⁠.

“⁠해솔이 니 번호 모르나⁠?⁠”

“⁠어머님⁠, 그건⁠…⁠…⁠”

“⁠외우고 다니는 사람이 어딨노⁠. 상길아⁠, 화요일 전에 전화로 불러 주면 되제⁠?⁠”

상길은 안경 너머로 해솔을 보았다가 소현을 보았다⁠. 컵라면 국물이 없는 것처럼 상길의 얼굴에도 표정이 없었다⁠.

“⁠보완 요구는 할 수 있습니다⁠. 규정상⁠.⁠”

*

소현은 화장실에 간다며 당직실을 나왔다⁠. 복도 자판기 불빛 아래 한재필이 서 있었다⁠. 이번에는 구두를 신고 있었다⁠.

“⁠서명하셨습니까⁠?⁠”

“⁠제가 했어요⁠. 해솔은 이름만 썼고요⁠.⁠”

“⁠이름을 쓰는 게 서명입니다⁠.⁠” 재필이 당직실 문을 향해 한 걸음 내디뎠다⁠. “⁠지금 회수하겠습니다⁠.⁠”

소현이 자판기와 재필 사이로 몸을 밀어 넣었다⁠. 츄리닝 바지에 후드티⁠, 반쯤 풀린 똥머리로 본부장의 앞길을 막았다⁠.

“⁠약관 십일 조요⁠. 대여 중 고객 신분을 제삼자 앞에서 드러내지 않는다⁠. 회사 의무예요⁠. 지금 저 안에 우리 엄마랑 구청 공무원이 있어요⁠. 본부장님이 들어가서 해솔을 데려가면 회사가 먼저 약관을 어기는 거예요⁠. 내일 상견례 광고도 못 찍고요⁠.⁠”

재필의 걸음이 멈췄다⁠. 재필은 소현을 오래 보았다⁠. 출고 창구에서 대본을 읽던 눈이었다⁠.

“⁠약관을 다 읽으셨군요⁠.⁠”

“⁠개발자예요⁠. 약관은 다 읽어요⁠.⁠”

“⁠그러면 고객님도 아시겠지요⁠. 신고서는 화요일에 불수리가 나옵니다⁠. 그런데 왜 하십니까⁠?⁠”

“⁠엄마 앞에서 처음으로⁠, 내가 고른 사람이라고 말해 보고 싶어서요⁠.⁠”

“⁠고르신 게 아닙니다⁠. 빌리신 겁니다⁠.⁠” 재필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낮아졌다⁠. “⁠고객님⁠, 저희 로봇은 고객님 어머님 손이 찬 것도⁠, 바나나 우유 병도⁠, 고객님이 코에 주름 세 개 잡고 웃는 것도 다 압니다⁠. 그게 저희가 파는 겁니다⁠. 파는 걸 사셨으면 돌려주셔야 합니다⁠.⁠”

자판기가 웅 하고 돌았다⁠. 재필이 소매를 걷어 시계를 보았다⁠.

“⁠내일 상견례는 대본대로 해 주십시오⁠. 부모님 역할 두 대는 열한 시 반에 못둑집 주차장에 도착합니다⁠. 반납은 밤 열 시 정각입니다⁠. 서류에 한 번 더 손대시면 귀환 모드를 켜겠습니다⁠. 그러면 해솔은 상견례 자리에서 일어나 판교까지 걸어갑니다⁠. 고객님 회사가 짠 길로요⁠.⁠”

재필은 돌아서서 유리문 쪽으로 걸어갔다⁠. 소현은 자판기에 이마를 댔다⁠. 유리가 차가웠다⁠.

*

당직실로 돌아오자 상길이 신고서에 접수 도장을 찍고 있었다⁠. 탁⁠, 하는 소리가 텅 빈 로비에 울렸다⁠. 엄마는 도장 소리에 두 손을 모았다⁠. 상길이 접수증을 창구 밑으로 내밀었다⁠.

“⁠접수만 된 겁니다⁠, 작은어머니⁠. 수리는 화요일입니다⁠.⁠”

“⁠알았다⁠, 알았다⁠.⁠” 엄마는 접수증을 받아 블라우스 앞섶에 도로 넣었다⁠. “⁠우리 창수가 이거 봤으면 좋았을 낀데⁠.⁠”

창구 옆 의자의 젊은 신부가 엄마의 말을 듣고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신부의 눈이 해솔의 손목에 멈췄다⁠. 해솔이 볼펜을 돌려주느라 팔을 뻗는 사이 니트 소매가 올라가 하늘색 띠가 드러나 있었다⁠. 신부는 띠를 알아보는 얼굴이었다⁠. 휴대전화를 든 손이 아주 자연스럽게 해솔 쪽으로 기울었다⁠. 찰칵 소리는 나지 않았다⁠.

*

자정 넘어 집에 돌아오자 엄마는 접수증을 아버지 사진 액자 뒤에 끼워 넣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작은방 이불 위에서 해솔이 천장을 보며 물었다⁠.

“⁠귀환 모드가 켜지면 저는 소현 씨 회사가 짠 길로 걷습니까⁠?⁠”

“⁠응⁠.⁠”

“⁠어떤 길입니까⁠?⁠”

소현은 베개를 끌어안았다⁠. 작년 봄⁠, 회의실 화이트보드에 그린 선들이 떠올랐다⁠.

“⁠고속도로는 안 타⁠. 갓길은 위험하니까⁠. 국도로 가고⁠, 편의점이 많은 길로 짰어⁠. 충전하라고⁠. 밤에는 불 켜진 길로만⁠. 비 오면 버스 정류장 지붕 밑에서 기다리게⁠.⁠”

“⁠대구에서 판교까지는 며칠 걸립니까⁠?⁠”

“⁠닷새쯤⁠.⁠”

해솔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팬 소리만 낮게 돌았다⁠.

“⁠소현 씨가 짠 길이면 무섭지 않겠습니다⁠.⁠”

“⁠그런 말 대본에 없어⁠.⁠”

“⁠예⁠. 그래서 휴대전화가 울릴 겁니다⁠.⁠”

머리맡에서 휴대전화가 짧게 떨었다⁠. 「⁠대본 이탈 3/3 — 상견례 패키지 진행 중⁠. 점검은 반납 뒤로 미룹니다⁠」⁠. 해솔은 멈추지 않았다⁠. 상견례 장면을 찍어야 하는 회사가 점검을 내일 밤으로 미뤄 둔 것이었다⁠. 정해진 규칙도 회사가 필요하면 하룻밤 늦게 왔다⁠. 소현은 화면을 엎었다⁠. 소현은 엎어 둔 휴대전화 위에 손바닥을 얹고⁠, 다른 손을 이불 밑으로 뻗었다⁠. 해솔의 손이 먼저 와 있었다⁠.

*

9월 24일 월요일 아침 일곱 시⁠, 소현은 휴대전화 진동에 눈을 떴다⁠. 알림이 마흔 개 넘게 쌓여 있었다⁠. 맨 위는 은숙이 가족 단톡방에 퍼 온 글이었다⁠.

「⁠수성구 맘카페 · 어젯밤 수성구청 당직실에서 소담 명절 띠 찬 남자가 혼인신고 하는 거 봄⁠. 로봇이랑 혼인신고 됨⁠?⁠?⁠」

사진 속에는 창구에 기댄 해솔의 팔과 하늘색 띠⁠, 그리고 꽃무늬 블라우스의 뒷모습이 있었다⁠. 얼굴은 나오지 않았다⁠. 엄마를 아는 사람이라면 블라우스 하나로 알아볼 수 있었다⁠. 댓글이 백 개를 넘었다⁠. 「⁠소담이면 그 렌탈 회사⁠?⁠」 「⁠반납 안 하면 경찰 온다던데⁠」 「⁠어머님 불쌍해⁠」 「⁠로봇 동반자법 통과되면 되는 거 아님⁠?⁠」⁠.

큰엄마가 단톡방에 물음표를 열두 개 보냈다⁠. 상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모르는 서울 번호였다⁠.

“⁠옥소현 씨 되시지요⁠? 국회 맹남희 의원실 보좌관입니다⁠. 맘카페 글 보고 연락드렸습니다⁠. 다음 달 로봇 동반자 등록법 공청회에 진술인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외신에서도 벌써 문의가 들어왔습니다⁠.⁠”

소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작은방 문 너머에서 엄마가 프라이팬을 두드렸다⁠.

“⁠일어나라⁠! 열두 시 상견례다⁠! 해솔이 셔츠 다려 놨다⁠!⁠”

옆 이불에서 해솔이 숨소리를 켠 채로 눈을 떴다⁠. 손목의 띠에는 「⁠반납까지 14⁠:58⁠」이 떠 있었다⁠.

5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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