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340자)

인사팀장이 파쇄기 앞에서 멈췄다

면접관 속마음이 들린다 · 피오담

2026년 12월 1일 화요일 새벽 여섯 시 반⁠, 결담 5층 인사팀에는 불이 하나만 켜져 있었다⁠. 복사기 옆 파쇄기 위의 형광등이었다⁠. 파쇄기는 이미 돌고 있었다⁠. 위잉⁠, 하는 소리 끝에 종이가 국수 가락처럼 잘려 통 안으로 떨어졌다⁠.

소경민 팀장은 베이지 재킷을 의자에 걸어 두고 셔츠 소매를 걷은 채였다⁠. 발밑에 상자 세 개가 있었다⁠. 옆면에 매직으로 「⁠2024 채용⁠」 「⁠2025 채용⁠」 「⁠2026 채용⁠」⁠. 2024년 상자는 반쯤 비어 있었다⁠.

“⁠왔어요⁠?⁠”

‘⁠왜 불렀지⁠, 이 애를⁠. 혼자 갈면 못 버틸 것 같아서⁠. 누가 보고 있으면 끝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아니다⁠, 누가 보고 있으면 못 갈 것 같아서⁠.⁠’

경민 팀장의 속은 두 갈래였다⁠. 나를 재는 눈도 두 갈래였다⁠.

“⁠팀장님⁠, 그거 다 가시게요⁠?⁠”

“⁠전무님이 일곱 시에 내려와서 보신대요⁠. 다 갈렸는지⁠.⁠” 경민 팀장이 종이 한 묶음을 파쇄기 입구에 밀어 넣었다⁠. 위잉⁠. “⁠갈아야 해요⁠. 안 갈면 내가 다쳐요⁠.⁠”

“⁠갈아도 다치세요⁠. 갈면 팀장님 손글씨만 남아요⁠. 전무님 목소리는 아무 데도 없고요⁠.⁠”

“⁠알아요⁠.⁠”

“⁠아시는데 왜 가세요⁠?⁠”

“⁠딸이 수시 붙었어요⁠.⁠” 경민 팀장이 다음 묶음을 들었다⁠. “⁠1차요⁠. 2차가 다음 주예요⁠. 2차 붙으면 등록금 고지서가 나와요⁠. 고지서가 나오는 날 나는 회사에 있어야 해요⁠.⁠”

말에는 틀린 데가 하나도 없었다⁠. 나는 대답하지 못하고 파쇄기 통을 내려다보았다⁠. 잘린 종이 가락 사이로 「⁠면접⁠」 「⁠총점⁠」 「⁠서명⁠」 같은 글자 조각이 흰 국수처럼 엉켜 있었다⁠.

*

여섯 시 오십 분⁠, 엘리베이터 소리가 나고 노미란 대리가 들어왔다⁠. 패딩 지퍼를 턱밑까지 올리고 안경에 김이 서려 있었다⁠. 전무가 미란 대리에게도 일찍 나와서 거들라고 했다는 것을⁠, 미란 대리의 속이 먼저 알려 주었다⁠.

‘⁠상환일이 26일⁠. 이번 달하고 다음 달이면 다 갚는다⁠. 다 갚고 나서 이 일을 계속하면 나는 뭘 갚는 거지⁠.⁠’

미란 대리가 안경을 벗어 김을 닦았다⁠. 다시 쓰고 나서 상자를 보았다⁠. 「⁠2026 채용⁠」⁠.

“⁠팀장님⁠.⁠” 미란 대리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작고 빨랐다⁠. “⁠저 이거 못 갈겠어요⁠. 제가 입력한 숫자도 여기 들어 있어요⁠. 탁성우 씨 3등이요⁠. 전무님이 불러 주시는 대로 제가 쳤어요⁠.⁠”

경민 팀장이 손을 멈췄다⁠. 파쇄기만 혼자 돌았다⁠.

“⁠미란 씨는 시키는 대로 한 거예요⁠.⁠”

“⁠팀장님도요⁠.⁠”

경민 팀장이 「⁠2026 채용⁠」 상자를 열었다⁠. 맨 위에 투명 파일 하나가 있었다⁠. 파일 안에 평가표 석 장이 들어 있었다⁠. 지원자 41⁠, 42⁠, 43⁠. 칸마다 손글씨 점수가 있고⁠, 맨 아래 면접관 넷의 서명이 있었다⁠. 도형석⁠, 소경민⁠, 차동만⁠, 노미란⁠. 합계 칸에 원래 순위가 볼펜으로 동그라미 쳐져 있었다⁠. 41번 1위⁠, 43번 2위⁠, 42번 3위⁠.

경민 팀장이 파일을 들고 파쇄기 앞에서 멈췄다⁠. 파쇄기 입구가 종이를 기다리며 웅웅거렸다⁠. 경민 팀장의 속도 웅웅거렸다⁠.

‘⁠이걸 넣으면 끝난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 된다⁠. 백윤아는 1등인 줄도 모르고 다니고⁠, 탁성우는 3등으로 남고⁠, 미란이는 다음 달 대출을 다 갚고⁠, 나는 고지서를 받는다⁠. 넣으면 된다⁠. 손만 밀면⁠.⁠’

손이 밀리지 않았다⁠.

‘⁠내 딸이 어디 원서 넣었다가 3등이 되면⁠.⁠’

경민 팀장이 몸을 돌려 파일을 내게 내밀었다⁠. 손이 떨려서 파일 모서리가 내 손등을 두 번 쳤다⁠.

“⁠가방에 넣어요⁠. 지금⁠.⁠”

나는 에코백에 파일을 넣었다⁠. 경민 팀장이 책상 서랍에서 갈색 수첩을 꺼내 파일 위에 얹었다⁠.

“⁠전무님이 불러 준 순서⁠, 세 해 치예요⁠. 날짜랑 시간이랑⁠, 전무실이었는지 전화였는지⁠. 메일은 지우라고 하셔서 지웠는데 수첩은 아무도 지우라고 안 했어요⁠.⁠”

“⁠팀장님⁠.⁠”

“⁠일곱 시 오 분 전이에요⁠. 올라가 있어요⁠.⁠”

*

나는 올라가지 않았다⁠. 에코백을 내 자리에 두고 빈손으로 내려왔다⁠. 일곱 시 정각⁠,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도형석 전무가 나왔다⁠. 검은 코트를 벗지 않은 채 파쇄기 앞으로 와서 상자 셋을 내려다보았다⁠. 「⁠2026 채용⁠」 상자는 비어 있었다⁠.

“⁠다 갈았어요⁠?⁠”

“⁠2024년은 갈았어요⁠.⁠” 경민 팀장이 말했다⁠. “⁠2025년하고 2026년은 안 갈았어요⁠. 원본은 이제 회사에 없어요⁠.⁠”

전무의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안경 너머 눈이 상자에서 경민 팀장으로⁠, 경민 팀장에서 파쇄기 옆의 나에게로 옮겨 왔다⁠. 재고 있었다⁠.

‘⁠원본이 41번한테 갔다⁠. 그래도 서명만 있다⁠. 내가 고치라고 한 말은 없다⁠.⁠’

“⁠소 팀장⁠, 그거 회사 밖으로 나가면 공범 자백입니다⁠. 점수를 고친 사람이 소 팀장이니까요⁠.⁠” 전무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낮았다⁠. “⁠딸 생각해요⁠. 큰딸 수시 붙었다면서요⁠. 축하해요⁠.⁠”

경민 팀장의 어깨가 움찔했다⁠. 딸 이야기를 전무에게 한 적이 없었다⁠. 경민 팀장의 속이 그렇게 말했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안 갈았어요⁠.⁠”

“⁠그럼 소 팀장 혼자 한 일이 됩니다⁠. 나는 고치라고 말한 적 없어요⁠.⁠”

“⁠말씀하신 거 제가 다 적어 뒀어요⁠. 세 해 치⁠. 날짜랑 시간이랑⁠.⁠”

전무가 처음으로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러고도 목소리는 높아지지 않았다⁠.

‘⁠수첩⁠. 소경민이 수첩을⁠. 그래도 손글씨다⁠. 손글씨는 소경민 것이다⁠. 내 목소리는 어디에도 없다⁠. 지원이한테 보낸 것 말고는⁠…⁠… 집안 단톡방이었고⁠, 보내고 바로 지웠다⁠. 모두에게서⁠.⁠’

전무의 속에서 지원의 이름이 지나갔다⁠. 지원이한테 보낸 것⁠. 무엇을 보냈는지는 전무의 속이 더 말하지 않았다⁠. 전무는 휴대전화를 꺼내 번호를 눌렀다⁠.

“⁠보안팀이죠⁠. 5층으로 두 명 올라와요⁠. 인사팀장 대기발령 처리하고⁠, 개인 물품 외에는 들고 나가지 못하게 해요⁠. 회사 문서 무단 반출 시도입니다⁠.⁠”

전화를 끊은 전무가 나를 보았다⁠.

“⁠백윤아 씨는 여기서 뭐 해요⁠?⁠”

“⁠파쇄 도와드리러 왔어요⁠.⁠”

“⁠파쇄기가 잘 돌던가요⁠?⁠”

“⁠네⁠. 2024년은 잘 갈렸어요⁠.⁠”

‘⁠이 애도 정리해야 한다⁠. 오늘 안에⁠.⁠’

전무는 코트 깃을 바로 하고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 보안팀 두 사람이 엇갈려 내렸다⁠. 경민 팀장은 의자에 걸어 둔 베이지 재킷을 입었다⁠. 단추를 위에서부터 하나씩 끼웠다⁠. 미란 대리가 경민 팀장의 가방을 들어 주었다⁠. 가방 안에는 립밤 하나⁠, 지갑⁠, 딸들 사진이 든 액자가 있었다⁠. 개인 물품이었다⁠.

*

아홉 시 사내 메일이 왔다⁠. 「⁠인사발령 — 인사팀장 소경민⁠, 12월 1일 자 대기발령⁠」⁠. 사유는 한 줄이었다⁠. 「⁠회사 문서 관리 규정 위반⁠」⁠.

6층이 들끓었다⁠. 입은 조용했는데 속이 들끓었다⁠. ‘⁠소 팀장이⁠?⁠’ ‘⁠뭘 했길래⁠.⁠’ ‘⁠신입 둘 들어오고 나서부터 이상하다⁠.⁠’ ‘⁠41번 오늘 새벽에 5층에 있었다던데⁠.⁠’ 소문은 이번에도 사실보다 빨랐고 방향이 정확했다⁠.

차동만 팀장은 모니터를 보지 않고 책상 위 화분만 보았다⁠. 점심 생각이 나지 않는 얼굴이었다⁠. 팀장의 속이 내게로 왔다⁠. 나를 재면서 자기를 재고 있었다⁠.

‘⁠소 팀장이 대기발령이면⁠, 서명한 면접관 넷이 다 엮인다⁠. 나도 서명했다⁠. 나는 점수만 줬다⁠. 1등한테 1등 점수를⁠. 그다음은 내가 모르는 일이다⁠. 모르는 일이었다고 해도 되나⁠.⁠’

“⁠팀장님⁠, 점심은요⁠?⁠” 내가 물었다⁠.

차 팀장이 나를 보았다⁠. 처음으로 대답을 못 했다⁠. ‘⁠점심이 안 떠오른다⁠. 이런 날이 다 있네⁠.⁠’ 팀장은 배달 앱을 열었다가 닫고⁠, 다시 열었다가 닫았다⁠. 열한 시 반이 되자 결국 편의점 김밥 한 줄을 사 와서 반만 먹고 반은 내 책상에 올려 두었다⁠. 김밥 은박지에 「⁠참치⁠」라고 쓰여 있었다⁠. 팀장이 참치김밥을 반이나 남기는 것을 6층 누구도 본 적이 없었다⁠.

지원은 자리에 없었다⁠. 지원의 책상 위에 드럼 스틱 한 짝만 놓여 있었다⁠. 열 시쯤 DM이 왔다⁠. 「⁠큰아버지 집에 가요⁠. 할 말 있어서⁠. 무슨 말인지는 묻지 마요⁠.⁠」

*

저녁 일곱 시⁠, 성수역 2번 출구 앞 벤치에 경민 팀장이 앉아 있었다⁠. 베이지 재킷 위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아 어깨가 굳어 있었다⁠. 무릎 위에 액자를 든 채였다⁠.

“⁠팀장님⁠, 저녁 드셨어요⁠?⁠”

“⁠아뇨⁠.⁠”

“⁠저희 엄마가 라면을 잘 끓여요⁠. 계란도 넣어 줘요⁠.⁠”

경민 팀장은 대답 대신 일어났다⁠. 우리는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면목동까지 갔다⁠. 가는 동안 경민 팀장은 한 번도 휴대전화를 보지 않았다⁠. 딸들에게 뭐라고 말할지 속으로 연습하고 있었다⁠. 나를 재는 대신 자기를 재고 있어서 경민 팀장의 속은 들리지 않았다⁠. 대신 지하철 맞은편 사람들이 우리를 재었다⁠. ‘⁠저 둘은 회사 사람인가⁠. 엄마랑 딸인가⁠.⁠’

백조세탁 셔터 밑으로 김이 새어 나왔다⁠. 엄마는 경민 팀장을 보자마자 다리미를 내려놓았다⁠. 손님을 보는 눈으로 경민 팀장의 재킷부터 보았다⁠.

“⁠재킷 벗어요⁠. 주름이 다 갔네⁠.⁠”

경민 팀장이 영문도 모르고 재킷을 벗었다⁠. 엄마가 재킷을 다리미판에 펼쳤다⁠. 엄마는 다리면서 나를 재었다⁠.

‘⁠우리 딸이 사람을 데려왔다⁠. 상사라는데 얼굴이 반쪽이다⁠. 무슨 일인지는 묻지 말자⁠. 라면에 계란 두 개⁠.⁠’

엄마는 라면 세 그릇에 계란을 하나씩⁠, 경민 팀장 그릇에만 두 개 넣었다⁠. 경민 팀장은 라면을 먹다가 젓가락을 내려놓고 울었다⁠. 소리 없이 어깨만 울었다⁠. 엄마는 모르는 척 재킷 소매를 다렸다⁠. 다리미에서 칙⁠, 하고 김이 올라왔다⁠.

“⁠우리 큰딸이 수시 1차 붙었어요⁠.⁠” 경민 팀장이 말했다⁠.

“⁠잘했네요⁠. 엄마 닮아서⁠.⁠” 엄마가 말했다⁠. 엄마는 경민 팀장을 처음 보았다⁠.

열한 시가 넘어 지원에게서 DM이 왔다⁠. 「⁠큰아버지가 나가래요⁠. 집에서⁠. 회사 그만둘 거면 집안 사람도 그만두라고⁠.⁠」 이어서 한 줄이 더 왔다⁠. 「⁠합주실에서 자요⁠. 드럼 옆이라 따뜻해요⁠.⁠」 나는 다리미판 옆에서 답장을 썼다⁠. 「⁠내일 아침에 크림 갖다줄게요⁠. 여섯 통 중에 다섯 통 남았어요⁠.⁠」 엄마가 내 어깨 너머로 화면을 보았다⁠. ‘⁠크림을 왜 남 줘⁠.⁠’ 엄마는 소리 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경민 팀장 재킷의 마지막 단추를 끼웠다⁠.

*

이튿날 아침 일곱 시 사십 분⁠, 「⁠취준 생존방⁠」에 예슬이 기사 링크를 올렸다⁠.

「⁠[단독] 중견 화장품사 신입⁠, 면접장서 회사 협박해 합격⁠… 상장 앞둔 결담 “⁠법적 대응⁠”⁠」

기사에는 내 이름 대신 「⁠신입사원 A 씨(⁠26⁠)⁠」가 있었다⁠. A 씨는 최종 면접에서 근거 없는 내정설을 제기하고⁠, 대표이사 면담에서 이를 빌미로 정규직 채용을 요구했다⁠. 회사는 A 씨를 협박 혐의로 고소할 방침이며⁠, 같은 날 내부 문서를 무단 반출하려 한 인사팀장을 대기발령했다⁠. 기사 끝에 회사 관계자의 말이 붙어 있었다⁠. 「⁠채용 과정은 공정했다⁠.⁠」

틀린 문장이 하나도 없어서 더 무서운 기사였다⁠. 나는 정말로 사장실에서 정규직을 요구했다⁠.

여덟 시 반⁠, 6층 문을 밀고 들어가자 서른 명의 속이 한꺼번에 나를 돌아보았다⁠. 출근 첫날과 같은 숫자였고⁠, 첫날과 다른 소리였다⁠. 내 책상 위에 노란 포스트잇이 한 장 붙어 있었다⁠.

「⁠백윤아 님⁠, 오전 열 시 법무팀 면담⁠. — 7층⁠」

나는 포스트잇을 떼어 사원증 뒤에 붙였다⁠. 에코백 속 투명 파일의 모서리가 손등에 닿았다⁠.

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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