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647자)
채용박람회에서 들은 마흔한 번의 탈락 이유
면접관 속마음이 들린다 · 피오담
2026년 11월 26일 목요일 아침 아홉 시, 성수동 옛 창고를 고친 전시장에 「성수 뷰티 채용박람회」 현수막이 올라갔다. 화장품 회사 마흔 곳이 부스를 냈다. 결담 부스는 입구에서 세 번째 줄, 로아랩 부스와 등을 맞대고 있었다. 부스 벽에는 결담의 문구가 큼직하게 붙어 있었다. 「당신의 결을 봅니다」.
차동만 팀장이 부스 한편에 의자 두 개를 마주 놓고 종이를 붙였다. 「모의 면접 체험 — 결담 현직자가 면접관이 되어 드립니다」. 팀장은 의자를 놓고 나서 도시락 상자를 세었다.
‘박람회 도시락 김밥이면 어떡하지. 제육이면 좋겠다. 41번한테 물어볼까. 아니다, 도시락은 고를 수가 없다.’
“팀장님, 도시락은 제육이에요. 상자에 쓰여 있어요.”
차 팀장이 상자 옆면을 보았다. 정말 「제육」이라고 찍혀 있었다. 팀장이 나를 보는 눈이 존경에 가까워졌다.
지원은 부스 테이블 밑에 드럼 스틱을 숨겨 두었다. 손님이 없을 때마다 테이블 모서리를 두드렸다. 쿵, 따, 쿵쿵, 따. 로아랩 부스 직원이 벽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가 들어갔다. 지원은 모르는 척 박자를 한 번 더 쳤다.
*
열 시가 되자 취준생들이 밀려 들어왔다. 첫 손님은 졸업반이라는 남학생이었다. 모의 면접을 해 보고 싶다고 했다. 차 팀장이 면접관 의자에 앉았고, 나는 지원자 의자에 먼저 앉아 시범을 보였다.
앉는 순간, 전시장이 통째로 들어왔다.
‘결담 부스 단발 직원, 취준 마당에 나온 사람 아냐?’ ‘협박 입사자래.’ ‘실물이 낫네.’ ‘저 회사 붙으려면 협박하면 되나.’ ‘사람 많다, 나가고 싶다.’ ‘저 직원 구두 굽 다 닳았다.’ ‘엄마가 꼭 명함 받아 오랬는데.’
수백 개였다. 박람회장 끝에서 끝까지, 나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들의 속이 파도처럼 겹쳤다. 소리에는 크기가 없는데도 머리가 울렸다. 다리미와 탈수기와 손님 소리를 한꺼번에 밀어내던 연습도 수백 개 앞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나는 눈을 감고 한 목소리를 찾았다. 차 팀장이었다.
‘41번 얼굴이 왜 하얘. 제육 먹으면 낫겠지.’
차 팀장의 제육볶음에 매달려 숨을 골랐다. 점심 걱정만 하는 목소리가 세상에서 제일 고마웠다.
“괜찮아요?” 남학생이 물었다.
“네. 지원자 의자가 원래 좀 무서워요. 앉아 보세요. 일어나는 게 더 힘들어요.”
남학생이 앉았고 나는 일어났다. 귀는 줄어들지 않았다. 한 번 넓어진 귀는 그대로였다. 남학생은 차 팀장의 질문에 또박또박 대답했다. 남학생의 속은 대답보다 빨랐다. ‘이 회사도 정해진 사람 있겠지. 그래도 해 보자.’ 나는 남학생에게 결담 볼펜을 두 자루 쥐여 주었다.
*
점심 무렵 로아랩 인사 상무가 결담 부스에 인사를 왔다. 회색 정장에 은테 안경, 목에 「협의회 운영위원」 명찰을 걸었다. 도형석 전무와 악수를 하고 커피를 받아 들었다. 상무는 부스를 둘러보다 나를 보았고, 재었다.
‘저 애가 협박 입사자. 생각보다 어리네. 도 전무 아들은 우리가 받아 줬지. 결담이 우리 상무 조카를 경력으로 받아 주기로 했고. 지난주 면접 봤다던데. 저 애가 시끄럽게 굴면 다음 순번이 꼬인다.’
다음 순번. 상무의 속에서 줄이 이어졌다. 솔빛화장품 사장 딸은 로아랩 마케팅으로, 로아랩 회장 손녀는 솔빛 연구소로, 협의회 회장 외손자는 결담 영업으로 갈 차례였다. 상무는 순서를 외우려 애쓰지 않았다. 너무 오래 해 온 일이라 외울 필요가 없었다.
지원이 테이블 밑에서 스틱을 꺼내다 상무와 눈이 마주쳤다. 상무가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마 대표님 조카분이시죠? 아버님께 안부 전해 주세요.”
지원은 대답하지 않고 스틱을 도로 넣었다. 상무가 가고 나서 지원이 나를 보았다. 무언가를 가늠하는 눈이었다.
‘저 사람도 알아. 다 알아. 나만 몰랐던 게 아니네. 나는 줄의 한 칸이었네.’
“지원 씨.”
“알아요. 들었어요. 나도 귀 있어요.” 지원이 테이블 모서리를 세게 쳤다. 이번에는 박자가 없었다.
*
오후 두 시, 솔빛화장품의 인사팀장이 결담 부스 앞을 지나갔다. 짧은 커트 머리에 진한 립스틱, 손에 박람회 안내 책자를 말아 쥐었다. 부스 벽의 「당신의 결을 봅니다」를 읽다가 내 사원증을 보았다. 사원증의 이름을 읽었다.
‘백윤아. 이름 낯익다. 작년 봄 우리 마케팅 서류에서 내가 잘랐지. 서류 점수가 1등이었는데. 자리는 협의회 회장님 손녀 거였고. 1등을 남겨 두면 면접에서 비교가 되니까 서류에서 미리.’
박람회장의 수백 목소리가 한꺼번에 멀어졌다. 귀에는 한 문장만 남았다. 서류 점수가 1등이었는데.
마흔한 통의 문자가 떠올랐다. 「귀하의 뛰어난 역량에도 불구하고」. 뛰어났는데 떨어졌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던 문자가 적어도 하나 있었다.
“팀장님.” 내가 솔빛 인사팀장을 불렀다. “작년 봄에 솔빛 마케팅 서류에서 떨어졌어요.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솔빛 팀장이 웃었다. 박람회용 웃음이었다. “서류 결과는 여러 항목을 종합해서요. 개별 사유는 말씀드리기 어려워요.”
‘1등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
“네. 감사합니다.”
솔빛 팀장이 가고, 이번에는 맞은편 부스의 다른 인사 담당자가 나를 보았다. 「모아온 코스메틱」 명찰이었다. 이 사람도 내 이름을 읽었다.
‘백윤아? 우리도 재작년에 서류에서 잘랐는데. 자기소개서에 우리 회사 이름을 딴 회사로 써서.’
웃음이 터질 뻔했다. 재작년, 새벽 세 시에 자기소개서 열 개를 돌려 쓰던 밤이 있었다. 회사 이름 하나를 못 고치고 냈다. 마흔한 번 가운데 몇 번은 진짜 내 탓이었다. 이상하게 내 탓이 섞여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됐다. 전부 남의 탓이었다면 나는 오늘 박람회장 바닥에 주저앉았을 것이다.
*
두 시 반, 차 팀장이 제육 도시락 두 번째 상자를 뜯으러 간 사이 모의 면접 손님이 왔다. 남색 패딩에 에코백, 접은 하드보드지를 옆구리에 낀 사람이었다. 탁성우는 면접관 의자에 앉은 나를 보고 잠깐 망설이다가 지원자 의자에 앉았다.
“모의 면접 받으러 왔어요. 현직자가 해 준다길래.”
‘이 사람이 면접관이네. 웃기다. 3등 만든 회사 직원이 2등한테 면접을.’
나는 차 팀장이 두고 간 질문지를 들었다. 첫 줄을 읽었다.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세요?”
“팻말 들고요.” 성우가 말했다. “요즘엔 그걸로 풀어요. 마라톤보다 힘들어요. 서 있기만 하는데.”
부스 앞을 지나던 취준생 둘이 우리를 보고 걸음을 늦췄다. 성우의 속이 조용히 이어졌다. ‘아버지가 어제 그만하라고 했다. 내 아들이 회사 앞에서 그러는 거 보기 싫다고. 그만하면 3등으로 끝난다.’
“성우 씨, 원본이 있어요.” 나는 질문지를 내려놓고 목소리를 낮췄다. “면접관 서명까지 있는 원본 평가표요. 아직은 못 가져와요.”
성우가 의자 등받이에서 몸을 뗐다. “언제요?”
“곧이요.”
“곧은 날짜가 아니잖아요.”
“다음 주 안에요.”
성우가 접은 하드보드지를 무릎 위에서 한 번 폈다가 다시 접었다. ‘믿어도 되나. 협박 입사자를.’
“면접 결과는요?” 성우가 일어나며 물었다.
“합격이요. 모의 면접은 다 합격이에요.”
성우가 처음으로 웃었다. 웃는 얼굴이 생각보다 어렸다. 성우는 결담 볼펜을 한 자루 집어 들고 다음 부스로 갔다.
*
세 시에는 무대 세미나가 있었다. 「공정 채용, 업계가 먼저」. 연사는 성수 뷰티기업 협의회 인사분과장 도형석이었다. 전무는 마이크를 잡고 한 번도 원고를 보지 않았다.
“중견기업은 사람 하나가 회사를 바꿉니다. 그래서 더 공정해야 합니다. 협의회는 내년부터 블라인드 서류 전형과 외부 면접위원 제도를 검토하겠습니다.”
객석의 취준생들이 박수를 쳤다. 박수 위로 앞줄 인사 담당자들의 속이 들렸다. 무대 옆 부스의 나를 힐끔거리며 재고 있었다. ‘저 애 앞에서 공정 얘기를 하네.’ ‘도 전무 배짱 좋다.’ ‘내년엔 우리 차례인데.’ 박수 치는 손과 속이 따로 놀았다.
*
세미나가 끝나고 부스 뒤 창고 칸에서 전무가 나를 불렀다. 판촉물 상자가 천장까지 쌓인 좁은 틈이었다. 상자마다 결담 수분크림 샘플이 들어 있었다.
“솔빛 팀장한테 무슨 질문을 했어요?”
“제 서류가 떨어진 이유요. 회장님 손녀 자리였더라고요.”
전무는 놀라지 않았다. 안경을 고쳐 썼다.
“업계는 서로 사람을 믿고 받는 겁니다. 모르는 지원자 서류 몇 장보다 아는 집 자식이 덜 위험해요. 중견기업은 사람 하나 잘못 뽑으면 휘청합니다. 수천 명 뽑는 대기업이 아니에요. 백윤아 씨가 사장이면 모르는 사람한테 금고 열쇠를 주겠어요?”
맞는 말처럼 들렸다. 전무의 말은 늘 맞는 말처럼 들렸다.
“그럼 공고를 내지 마세요. 한 명 뽑는다고 써 놓고, 번호표 나눠 주고, 마흔한 번 떨어뜨리지 말고요.”
“공고를 안 내면 그건 그것대로 말이 나와요. 내면 들러리라 하고, 안 내면 밀실이라 하고.” 전무가 상자 하나를 손바닥으로 눌렀다. “백윤아 씨는 어떤 회사를 원하는 거예요?”
“점수를 안 고치는 회사요.”
전무가 웃었다. 웃는 동안 속이 들렸다. 재는 눈이었다. 나라는 위험을 재고 있었다.
‘이 애는 끝까지 간다. 터지면 소경민이다. 보정 파일 만든 것도, 원본 숨긴 것도, 결과 보고서 결재도 소경민. 나는 말로만 했다. 메일은 다 지웠다. 12월 1일 아침에 원본까지 갈면 남는 건 소경민 손글씨뿐이다. 소경민은 딸 때문에 끝까지 입을 다문다.’
“점수를 안 고치는 회사는 없어요. 고친 사람이 누구냐가 있을 뿐이지.” 전무가 상자에서 손을 떼었다. “제육은 맛있게 드셨어요?”
“네.”
“다행이네요. 오늘 수고 많았어요.”
전무가 창고 칸을 나갔다. 판촉물 상자 사이에서 크림 샘플 냄새가 났다. 나는 상자 틈에서 숨을 세 번 쉬었다. 전무는 경민 팀장을 방패로 세워 둔 채 웃고 있었다. 경민 팀장은 방패인 줄도 모르고, 아니면 알면서도, 12월 1일 아침 일곱 시에 원본을 자기 손으로 갈 생각이었다.
*
경민 팀장은 박람회장 출구 앞 안내 데스크에서 리플릿을 접고 있었다. 채용에서 빠진 뒤로 인사팀이 맡긴 일이 이런 것이었다. 회사 소개 리플릿을 세 번 접어 상자에 넣고, 또 접고. 표지에 「당신의 결을 봅니다」가 반으로 접혔다가 펴졌다.
내가 다가가기도 전에 경민 팀장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경민 팀장이 화면을 보고 얼굴이 펴졌다. 스피커 너머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엄마! 나 수시 1차 붙었어! 그리고 학원비 문자 왔어. 이번 달 거.”
“잘했다. 잘했어. 학원비는 엄마가…… 응, 엄마가 낼게.”
전화를 끊은 경민 팀장이 나를 보았다. 웃음이 아직 얼굴에 남아 있었다. 남은 웃음 아래서 속이 움직였다.
‘붙었다. 등록금. 입학금. 기숙사비. 내가 지금 잘리면 안 된다.’
나는 리플릿 상자 옆으로 다가갔다. 말하면 경민 팀장의 웃음이 지워질 것이었다. 말하지 않으면 12월 1일에 경민 팀장 이름만 남을 것이었다.
“팀장님, 따님 축하드려요.”
“고마워요.”
“그리고요. 터지면 전무님은 다 팀장님 이름으로 넘기실 거예요. 보정 파일 만든 것도, 원본 숨긴 것도, 결재도요. 메일은 이미 다 지우셨대요. 12월 1일 아침에 원본까지 갈면 남는 건 팀장님 손글씨뿐이에요.”
경민 팀장의 손에서 리플릿이 미끄러졌다. 바닥에 떨어진 리플릿이 반쯤 펴진 채 「당신의 결을」까지만 보였다.
‘알고 있었다. 모르는 척했을 뿐이다. 이 애는 대체 어디서.’
경민 팀장은 리플릿을 주워 다시 세 번 접었다. 접는 손이 정확했다. 상자에 넣고 나서 나를 보지 않고 말했다.
“백윤아 씨, 화요일 아침 여섯 시 반에 5층으로 와요.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