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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박람회에서 들은 마흔한 번의 탈락 이유

면접관 속마음이 들린다 · 피오담

2026년 11월 26일 목요일 아침 아홉 시⁠, 성수동 옛 창고를 고친 전시장에 「⁠성수 뷰티 채용박람회⁠」 현수막이 올라갔다⁠. 화장품 회사 마흔 곳이 부스를 냈다⁠. 결담 부스는 입구에서 세 번째 줄⁠, 로아랩 부스와 등을 맞대고 있었다⁠. 부스 벽에는 결담의 문구가 큼직하게 붙어 있었다⁠. 「⁠당신의 결을 봅니다⁠」⁠.

차동만 팀장이 부스 한편에 의자 두 개를 마주 놓고 종이를 붙였다⁠. 「⁠모의 면접 체험 — 결담 현직자가 면접관이 되어 드립니다⁠」⁠. 팀장은 의자를 놓고 나서 도시락 상자를 세었다⁠.

‘⁠박람회 도시락 김밥이면 어떡하지⁠. 제육이면 좋겠다⁠. 41번한테 물어볼까⁠. 아니다⁠, 도시락은 고를 수가 없다⁠.⁠’

“⁠팀장님⁠, 도시락은 제육이에요⁠. 상자에 쓰여 있어요⁠.⁠”

차 팀장이 상자 옆면을 보았다⁠. 정말 「⁠제육⁠」이라고 찍혀 있었다⁠. 팀장이 나를 보는 눈이 존경에 가까워졌다⁠.

지원은 부스 테이블 밑에 드럼 스틱을 숨겨 두었다⁠. 손님이 없을 때마다 테이블 모서리를 두드렸다⁠. 쿵⁠, 따⁠, 쿵쿵⁠, 따⁠. 로아랩 부스 직원이 벽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가 들어갔다⁠. 지원은 모르는 척 박자를 한 번 더 쳤다⁠.

*

열 시가 되자 취준생들이 밀려 들어왔다⁠. 첫 손님은 졸업반이라는 남학생이었다⁠. 모의 면접을 해 보고 싶다고 했다⁠. 차 팀장이 면접관 의자에 앉았고⁠, 나는 지원자 의자에 먼저 앉아 시범을 보였다⁠.

앉는 순간⁠, 전시장이 통째로 들어왔다⁠.

‘⁠결담 부스 단발 직원⁠, 취준 마당에 나온 사람 아냐⁠?⁠’ ‘⁠협박 입사자래⁠.⁠’ ‘⁠실물이 낫네⁠.⁠’ ‘⁠저 회사 붙으려면 협박하면 되나⁠.⁠’ ‘⁠사람 많다⁠, 나가고 싶다⁠.⁠’ ‘⁠저 직원 구두 굽 다 닳았다⁠.⁠’ ‘⁠엄마가 꼭 명함 받아 오랬는데⁠.⁠’

수백 개였다⁠. 박람회장 끝에서 끝까지⁠, 나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들의 속이 파도처럼 겹쳤다⁠. 소리에는 크기가 없는데도 머리가 울렸다⁠. 다리미와 탈수기와 손님 소리를 한꺼번에 밀어내던 연습도 수백 개 앞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나는 눈을 감고 한 목소리를 찾았다⁠. 차 팀장이었다⁠.

‘⁠41번 얼굴이 왜 하얘⁠. 제육 먹으면 낫겠지⁠.⁠’

차 팀장의 제육볶음에 매달려 숨을 골랐다⁠. 점심 걱정만 하는 목소리가 세상에서 제일 고마웠다⁠.

“⁠괜찮아요⁠?⁠” 남학생이 물었다⁠.

“⁠네⁠. 지원자 의자가 원래 좀 무서워요⁠. 앉아 보세요⁠. 일어나는 게 더 힘들어요⁠.⁠”

남학생이 앉았고 나는 일어났다⁠. 귀는 줄어들지 않았다⁠. 한 번 넓어진 귀는 그대로였다⁠. 남학생은 차 팀장의 질문에 또박또박 대답했다⁠. 남학생의 속은 대답보다 빨랐다⁠. ‘⁠이 회사도 정해진 사람 있겠지⁠. 그래도 해 보자⁠.⁠’ 나는 남학생에게 결담 볼펜을 두 자루 쥐여 주었다⁠.

*

점심 무렵 로아랩 인사 상무가 결담 부스에 인사를 왔다⁠. 회색 정장에 은테 안경⁠, 목에 「⁠협의회 운영위원⁠」 명찰을 걸었다⁠. 도형석 전무와 악수를 하고 커피를 받아 들었다⁠. 상무는 부스를 둘러보다 나를 보았고⁠, 재었다⁠.

‘⁠저 애가 협박 입사자⁠. 생각보다 어리네⁠. 도 전무 아들은 우리가 받아 줬지⁠. 결담이 우리 상무 조카를 경력으로 받아 주기로 했고⁠. 지난주 면접 봤다던데⁠. 저 애가 시끄럽게 굴면 다음 순번이 꼬인다⁠.⁠’

다음 순번⁠. 상무의 속에서 줄이 이어졌다⁠. 솔빛화장품 사장 딸은 로아랩 마케팅으로⁠, 로아랩 회장 손녀는 솔빛 연구소로⁠, 협의회 회장 외손자는 결담 영업으로 갈 차례였다⁠. 상무는 순서를 외우려 애쓰지 않았다⁠. 너무 오래 해 온 일이라 외울 필요가 없었다⁠.

지원이 테이블 밑에서 스틱을 꺼내다 상무와 눈이 마주쳤다⁠. 상무가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마 대표님 조카분이시죠⁠? 아버님께 안부 전해 주세요⁠.⁠”

지원은 대답하지 않고 스틱을 도로 넣었다⁠. 상무가 가고 나서 지원이 나를 보았다⁠. 무언가를 가늠하는 눈이었다⁠.

‘⁠저 사람도 알아⁠. 다 알아⁠. 나만 몰랐던 게 아니네⁠. 나는 줄의 한 칸이었네⁠.⁠’

“⁠지원 씨⁠.⁠”

“⁠알아요⁠. 들었어요⁠. 나도 귀 있어요⁠.⁠” 지원이 테이블 모서리를 세게 쳤다⁠. 이번에는 박자가 없었다⁠.

*

오후 두 시⁠, 솔빛화장품의 인사팀장이 결담 부스 앞을 지나갔다⁠. 짧은 커트 머리에 진한 립스틱⁠, 손에 박람회 안내 책자를 말아 쥐었다⁠. 부스 벽의 「⁠당신의 결을 봅니다⁠」를 읽다가 내 사원증을 보았다⁠. 사원증의 이름을 읽었다⁠.

‘⁠백윤아⁠. 이름 낯익다⁠. 작년 봄 우리 마케팅 서류에서 내가 잘랐지⁠. 서류 점수가 1등이었는데⁠. 자리는 협의회 회장님 손녀 거였고⁠. 1등을 남겨 두면 면접에서 비교가 되니까 서류에서 미리⁠.⁠’

박람회장의 수백 목소리가 한꺼번에 멀어졌다⁠. 귀에는 한 문장만 남았다⁠. 서류 점수가 1등이었는데⁠.

마흔한 통의 문자가 떠올랐다⁠. 「⁠귀하의 뛰어난 역량에도 불구하고⁠」⁠. 뛰어났는데 떨어졌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던 문자가 적어도 하나 있었다⁠.

“⁠팀장님⁠.⁠” 내가 솔빛 인사팀장을 불렀다⁠. “⁠작년 봄에 솔빛 마케팅 서류에서 떨어졌어요⁠.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솔빛 팀장이 웃었다⁠. 박람회용 웃음이었다⁠. “⁠서류 결과는 여러 항목을 종합해서요⁠. 개별 사유는 말씀드리기 어려워요⁠.⁠”

‘⁠1등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

“⁠네⁠. 감사합니다⁠.⁠”

솔빛 팀장이 가고⁠, 이번에는 맞은편 부스의 다른 인사 담당자가 나를 보았다⁠. 「⁠모아온 코스메틱⁠」 명찰이었다⁠. 이 사람도 내 이름을 읽었다⁠.

‘⁠백윤아⁠? 우리도 재작년에 서류에서 잘랐는데⁠. 자기소개서에 우리 회사 이름을 딴 회사로 써서⁠.⁠’

웃음이 터질 뻔했다⁠. 재작년⁠, 새벽 세 시에 자기소개서 열 개를 돌려 쓰던 밤이 있었다⁠. 회사 이름 하나를 못 고치고 냈다⁠. 마흔한 번 가운데 몇 번은 진짜 내 탓이었다⁠. 이상하게 내 탓이 섞여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됐다⁠. 전부 남의 탓이었다면 나는 오늘 박람회장 바닥에 주저앉았을 것이다⁠.

*

두 시 반⁠, 차 팀장이 제육 도시락 두 번째 상자를 뜯으러 간 사이 모의 면접 손님이 왔다⁠. 남색 패딩에 에코백⁠, 접은 하드보드지를 옆구리에 낀 사람이었다⁠. 탁성우는 면접관 의자에 앉은 나를 보고 잠깐 망설이다가 지원자 의자에 앉았다⁠.

“⁠모의 면접 받으러 왔어요⁠. 현직자가 해 준다길래⁠.⁠”

‘⁠이 사람이 면접관이네⁠. 웃기다⁠. 3등 만든 회사 직원이 2등한테 면접을⁠.⁠’

나는 차 팀장이 두고 간 질문지를 들었다⁠. 첫 줄을 읽었다⁠.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세요⁠?⁠”

“⁠팻말 들고요⁠.⁠” 성우가 말했다⁠. “⁠요즘엔 그걸로 풀어요⁠. 마라톤보다 힘들어요⁠. 서 있기만 하는데⁠.⁠”

부스 앞을 지나던 취준생 둘이 우리를 보고 걸음을 늦췄다⁠. 성우의 속이 조용히 이어졌다⁠. ‘⁠아버지가 어제 그만하라고 했다⁠. 내 아들이 회사 앞에서 그러는 거 보기 싫다고⁠. 그만하면 3등으로 끝난다⁠.⁠’

“⁠성우 씨⁠, 원본이 있어요⁠.⁠” 나는 질문지를 내려놓고 목소리를 낮췄다⁠. “⁠면접관 서명까지 있는 원본 평가표요⁠. 아직은 못 가져와요⁠.⁠”

성우가 의자 등받이에서 몸을 뗐다⁠. “⁠언제요⁠?⁠”

“⁠곧이요⁠.⁠”

“⁠곧은 날짜가 아니잖아요⁠.⁠”

“⁠다음 주 안에요⁠.⁠”

성우가 접은 하드보드지를 무릎 위에서 한 번 폈다가 다시 접었다⁠. ‘⁠믿어도 되나⁠. 협박 입사자를⁠.⁠’

“⁠면접 결과는요⁠?⁠” 성우가 일어나며 물었다⁠.

“⁠합격이요⁠. 모의 면접은 다 합격이에요⁠.⁠”

성우가 처음으로 웃었다⁠. 웃는 얼굴이 생각보다 어렸다⁠. 성우는 결담 볼펜을 한 자루 집어 들고 다음 부스로 갔다⁠.

*

세 시에는 무대 세미나가 있었다⁠. 「⁠공정 채용⁠, 업계가 먼저⁠」⁠. 연사는 성수 뷰티기업 협의회 인사분과장 도형석이었다⁠. 전무는 마이크를 잡고 한 번도 원고를 보지 않았다⁠.

“⁠중견기업은 사람 하나가 회사를 바꿉니다⁠. 그래서 더 공정해야 합니다⁠. 협의회는 내년부터 블라인드 서류 전형과 외부 면접위원 제도를 검토하겠습니다⁠.⁠”

객석의 취준생들이 박수를 쳤다⁠. 박수 위로 앞줄 인사 담당자들의 속이 들렸다⁠. 무대 옆 부스의 나를 힐끔거리며 재고 있었다⁠. ‘⁠저 애 앞에서 공정 얘기를 하네⁠.⁠’ ‘⁠도 전무 배짱 좋다⁠.⁠’ ‘⁠내년엔 우리 차례인데⁠.⁠’ 박수 치는 손과 속이 따로 놀았다⁠.

*

세미나가 끝나고 부스 뒤 창고 칸에서 전무가 나를 불렀다⁠. 판촉물 상자가 천장까지 쌓인 좁은 틈이었다⁠. 상자마다 결담 수분크림 샘플이 들어 있었다⁠.

“⁠솔빛 팀장한테 무슨 질문을 했어요⁠?⁠”

“⁠제 서류가 떨어진 이유요⁠. 회장님 손녀 자리였더라고요⁠.⁠”

전무는 놀라지 않았다⁠. 안경을 고쳐 썼다⁠.

“⁠업계는 서로 사람을 믿고 받는 겁니다⁠. 모르는 지원자 서류 몇 장보다 아는 집 자식이 덜 위험해요⁠. 중견기업은 사람 하나 잘못 뽑으면 휘청합니다⁠. 수천 명 뽑는 대기업이 아니에요⁠. 백윤아 씨가 사장이면 모르는 사람한테 금고 열쇠를 주겠어요⁠?⁠”

맞는 말처럼 들렸다⁠. 전무의 말은 늘 맞는 말처럼 들렸다⁠.

“⁠그럼 공고를 내지 마세요⁠. 한 명 뽑는다고 써 놓고⁠, 번호표 나눠 주고⁠, 마흔한 번 떨어뜨리지 말고요⁠.⁠”

“⁠공고를 안 내면 그건 그것대로 말이 나와요⁠. 내면 들러리라 하고⁠, 안 내면 밀실이라 하고⁠.⁠” 전무가 상자 하나를 손바닥으로 눌렀다⁠. “⁠백윤아 씨는 어떤 회사를 원하는 거예요⁠?⁠”

“⁠점수를 안 고치는 회사요⁠.⁠”

전무가 웃었다⁠. 웃는 동안 속이 들렸다⁠. 재는 눈이었다⁠. 나라는 위험을 재고 있었다⁠.

‘⁠이 애는 끝까지 간다⁠. 터지면 소경민이다⁠. 보정 파일 만든 것도⁠, 원본 숨긴 것도⁠, 결과 보고서 결재도 소경민⁠. 나는 말로만 했다⁠. 메일은 다 지웠다⁠. 12월 1일 아침에 원본까지 갈면 남는 건 소경민 손글씨뿐이다⁠. 소경민은 딸 때문에 끝까지 입을 다문다⁠.⁠’

“⁠점수를 안 고치는 회사는 없어요⁠. 고친 사람이 누구냐가 있을 뿐이지⁠.⁠” 전무가 상자에서 손을 떼었다⁠. “⁠제육은 맛있게 드셨어요⁠?⁠”

“⁠네⁠.⁠”

“⁠다행이네요⁠. 오늘 수고 많았어요⁠.⁠”

전무가 창고 칸을 나갔다⁠. 판촉물 상자 사이에서 크림 샘플 냄새가 났다⁠. 나는 상자 틈에서 숨을 세 번 쉬었다⁠. 전무는 경민 팀장을 방패로 세워 둔 채 웃고 있었다⁠. 경민 팀장은 방패인 줄도 모르고⁠, 아니면 알면서도⁠, 12월 1일 아침 일곱 시에 원본을 자기 손으로 갈 생각이었다⁠.

*

경민 팀장은 박람회장 출구 앞 안내 데스크에서 리플릿을 접고 있었다⁠. 채용에서 빠진 뒤로 인사팀이 맡긴 일이 이런 것이었다⁠. 회사 소개 리플릿을 세 번 접어 상자에 넣고⁠, 또 접고⁠. 표지에 「⁠당신의 결을 봅니다⁠」가 반으로 접혔다가 펴졌다⁠.

내가 다가가기도 전에 경민 팀장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경민 팀장이 화면을 보고 얼굴이 펴졌다⁠. 스피커 너머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엄마⁠! 나 수시 1차 붙었어⁠! 그리고 학원비 문자 왔어⁠. 이번 달 거⁠.⁠”

“⁠잘했다⁠. 잘했어⁠. 학원비는 엄마가⁠…⁠… 응⁠, 엄마가 낼게⁠.⁠”

전화를 끊은 경민 팀장이 나를 보았다⁠. 웃음이 아직 얼굴에 남아 있었다⁠. 남은 웃음 아래서 속이 움직였다⁠.

‘⁠붙었다⁠. 등록금⁠. 입학금⁠. 기숙사비⁠. 내가 지금 잘리면 안 된다⁠.⁠’

나는 리플릿 상자 옆으로 다가갔다⁠. 말하면 경민 팀장의 웃음이 지워질 것이었다⁠. 말하지 않으면 12월 1일에 경민 팀장 이름만 남을 것이었다⁠.

“⁠팀장님⁠, 따님 축하드려요⁠.⁠”

“⁠고마워요⁠.⁠”

“⁠그리고요⁠. 터지면 전무님은 다 팀장님 이름으로 넘기실 거예요⁠. 보정 파일 만든 것도⁠, 원본 숨긴 것도⁠, 결재도요⁠. 메일은 이미 다 지우셨대요⁠. 12월 1일 아침에 원본까지 갈면 남는 건 팀장님 손글씨뿐이에요⁠.⁠”

경민 팀장의 손에서 리플릿이 미끄러졌다⁠. 바닥에 떨어진 리플릿이 반쯤 펴진 채 「⁠당신의 결을⁠」까지만 보였다⁠.

‘⁠알고 있었다⁠. 모르는 척했을 뿐이다⁠. 이 애는 대체 어디서⁠.⁠’

경민 팀장은 리플릿을 주워 다시 세 번 접었다⁠. 접는 손이 정확했다⁠. 상자에 넣고 나서 나를 보지 않고 말했다⁠.

“⁠백윤아 씨⁠, 화요일 아침 여섯 시 반에 5층으로 와요⁠.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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