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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앞 1인 시위, 팻말 속 낙하산은 나

면접관 속마음이 들린다 · 피오담

2026년 11월 9일 월요일 여덟 시 반⁠, 결담 사옥 앞 보도에서 탁성우가 팻말을 들고 있었다⁠. 남색 패딩에 에코백을 메고 두 손으로 하드보드지를 들었다⁠.

「⁠결담 채용은 들러리 오디션입니다 — 공고 1명⁠, 합격 2명⁠, 나는 몇 등이었습니까⁠?⁠」

팻말 맨 아래에 작은 글씨가 한 줄 더 있었다⁠. 「⁠토익 990 · 한국사 1급 · 마라톤 풀코스 3회⁠」⁠. 출근하던 사람들이 팻말을 읽고⁠, 맨 아래 줄까지 읽고⁠, 웃음을 참으며 지나갔다⁠. 1인 시위는 집회 신고가 필요 없다는 것을 성우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팻말 귀퉁이에 「⁠1인 시위 중입니다⁠」라는 쪽지가 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무엇이든 서류처럼 준비하는 사람이었다⁠.

차동만 팀장이 편의점 봉지를 들고 성우 앞에 멈췄다⁠. 따뜻한 캔커피를 내밀었다⁠.

“⁠드세요⁠. 아침은 먹었어요⁠?⁠”

‘⁠마라톤 하던 친구네⁠. 추운데⁠. 점심은 어디서 먹나⁠.⁠’

성우는 캔커피를 받지 않고 팻말을 더 높이 들었다⁠. 차 팀장은 캔커피를 성우 발밑 보도블록에 세워 두고 들어갔다⁠. 나는 회전문 앞에서 멈췄다⁠. 지나가면 그만이었다⁠. 팻말 속 「⁠합격 2명⁠」 가운데 하나가 나였다⁠. 성우가 나를 보았고⁠, 재었다⁠.

‘⁠저 여자다⁠. 얼굴 보면 화가 나야 하는데 피곤해 보인다⁠. 왜 피곤하지⁠. 붙은 사람이⁠. 아버지 명퇴금 반을 3년 동안 까먹었다⁠. 이번엔 진짜 될 줄 알았는데⁠.⁠’

“⁠협박해서 들어가니까 좋아요⁠?⁠” 성우가 먼저 말했다⁠.

“⁠안 좋아요⁠.⁠”

“⁠그럼 나와요⁠.⁠”

“⁠내가 나오면 그 자리가 성우 씨한테 가요⁠?⁠”

성우의 입술이 달싹이다 멈췄다⁠. ‘⁠…⁠…아니겠지⁠. 조카 하나 남겠지⁠.⁠’

“⁠당신 2등이었어요⁠.⁠” 내가 말했다⁠. “⁠원래 점수로요⁠. 내가 1등⁠, 성우 씨가 2등⁠, 조카가 3등⁠. 둘을 붙이려고 성우 씨를 3등으로 내렸어요⁠.⁠”

성우가 팻말을 내렸다⁠. 팻말 끝이 보도블록에 닿아 툭 소리가 났다⁠.

“⁠어떻게 알아요⁠?⁠”

“⁠들었어요⁠.⁠”

“⁠누구한테요⁠?⁠”

대답할 수 없었다⁠. 속마음이라고 하면 팻말이 하나 더 늘 것이었다⁠. 「⁠협박 입사자⁠, 독심술 주장⁠」⁠.

“⁠증거 있어요⁠?⁠” 성우가 물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도형석 전무가 내게 했던 말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았다⁠. 처음엔 내가 들었고⁠, 이번엔 내가 들어야 했다⁠. 같은 말이 이렇게 다르게 아팠다⁠.

“⁠찾을게요⁠.⁠”

“⁠찾으면 와요⁠. 그때까지 여기 있을 거예요⁠.⁠” 성우가 팻말을 다시 들었다⁠. 발밑의 캔커피에서 김이 올라왔다⁠. 성우는 끝내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

오전 열 시⁠, 도형석 전무가 6층에 내려왔다⁠. 전무가 6층에 온 것도 6년 만이라고 누군가 속으로 말했다⁠. 전무는 창가에 서서 보도의 팻말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몸을 돌려 내 자리로 왔다⁠.

“⁠백윤아 씨⁠, 바깥 저분하고 같이 면접 봤죠⁠?⁠”

“⁠네⁠.⁠”

“⁠동기 같은 분이니 잘 말씀드려 봐요⁠. 회사 앞에서 저러시면 본인한테도 안 좋다고⁠.⁠”

‘⁠탁성우는 업무방해로 고소해서 막는다⁠. 회사 앞 시위로 영업에 지장⁠. 41번이 설득하면 좋고⁠, 못 하면 41번 탓으로 돌린다⁠.⁠’

전무의 속에서 「⁠업무방해⁠」라는 말이 나오자 나는 웃음이 날 뻔했다⁠. 은행 채용 비리 재판에서 행장들에게 실형을 안긴 죄목이 업무방해였다⁠. 점수를 고쳐서 면접위원들의 일을 방해했다는 죄였다⁠. 고친 사람이 고치지 않은 사람에게 같은 죄목을 들이밀고 있었다⁠.

“⁠말씀드려 볼게요⁠. 들어 주실지는 모르겠지만요⁠.⁠”

“⁠들어 주시겠죠⁠. 백윤아 씨는 말을 잘하니까⁠.⁠”

*

점심시간에 지원이 나를 옥상으로 불렀다⁠. 옥상 난간에서 보도가 내려다보였다⁠. 성우는 팻말을 무릎에 세우고 앉아 삼각김밥 비닐을 뜯고 있었다⁠. 비닐이 잘못 뜯겨 김이 반쯤 찢어졌다⁠. 성우는 찢어진 김을 손가락으로 붙여 보다가 그냥 먹었다⁠.

“⁠저 사람 진짜 2등이었어요⁠?⁠” 지원이 물었다⁠.

“⁠네⁠.⁠”

‘⁠나는 3등이었구나⁠. 큰아버지가 3등을 붙였구나⁠. 3등이 붙고 2등이 떨어졌구나⁠.⁠’

지원은 난간에 두 팔을 걸치고 한참 내려다보았다⁠. 바람이 후드티 모자를 뒤로 넘겼다⁠.

“⁠내 자리 저 사람 주면 되잖아요⁠. 나 나가고⁠.⁠”

“⁠회사가 안 줘요⁠. 지원 씨가 나가면 자리가 없어지는 거지⁠, 성우 씨한테 가는 게 아니에요⁠.⁠”

“⁠그럼 어떻게 해야 가는데요⁠.⁠”

“⁠원래 점수가 밝혀져야죠⁠.⁠”

지원이 난간을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쿵⁠, 따⁠, 쿵쿵⁠. 마지막 따가 오지 않았다⁠. ‘⁠원래 점수⁠. 큰아버지 회사가 시끄러워진다⁠. 우리 집이 먼저 터진다⁠. 그래도⁠.⁠’

지원은 그래도 다음 말을 속으로도 끝내지 않았다⁠. 나는 재촉하지 않았다⁠. 아래에서 성우가 삼각김밥을 다 먹고 팻말을 다시 들었다⁠.

*

11월 16일 월요일⁠, 결담은 마케팅 경력직 한 자리를 뽑았다⁠. 차 팀장이 나에게 면접 진행을 맡겼다⁠. 지원자를 대기실에서 면접장까지 데려가고⁠, 물을 따르고⁠, 시간을 재는 일이었다⁠. 면접 한 시간 전⁠, 차 팀장이 7층 대회의실에서 녹화용 카메라를 세우며 나를 불렀다⁠.

“⁠백윤아 씨⁠, 저기 좀 앉아 봐요⁠. 조명 각도 보게⁠.⁠”

저기는 지원자 의자였다⁠. 3주 전에 내가 앉았던 의자였다⁠. 나는 망설이다 앉았다⁠. 의자에 등이 닿는 순간이었다⁠.

건물이 통째로 들어왔다⁠.

‘⁠저 신입 또 왔네⁠.⁠’ 1층 경비실이었다⁠. ‘⁠택배 박스 몇 개 남았지⁠. 41번 사원 박스도 하나 있던데⁠.⁠’ 3층 물류팀이었다⁠. ‘⁠저 애가 41번이야⁠? 사장실 크림⁠.⁠’ 4층 영업팀⁠. ‘⁠신입 둘 중 드럼 치는 애가 낫다던데⁠.⁠’ 5층 인사팀⁠. ‘⁠탁성우 반환 서류 언제 보내지⁠.⁠’ 7층 비서실⁠. 일곱 개 층이 한꺼번에 나를 두고 떠들었다⁠. 지원자 의자는 평가받는 의자였다⁠. 앉기만 해도 귀가 넓어졌다⁠.

“⁠표정이 왜 그래요⁠?⁠” 차 팀장이 카메라 뒤에서 물었다⁠. ‘⁠조명이 너무 센가⁠.⁠’

“⁠팀장님⁠.⁠”

“⁠네⁠.⁠”

“⁠다음부터는 팀장님이 앉아 주세요⁠.⁠”

차 팀장은 영문을 모른 채 웃었다⁠. ‘⁠조명 각도는 좋네⁠. 점심은 뭐 먹지⁠. 41번한테 물어봐야지⁠.⁠’

나는 일곱 개 층의 목소리를 하나씩 뒤로 밀었다⁠. 세탁소 다리미 소리를 밀어내던 것처럼⁠. 1층부터 밀고⁠, 3층을 밀고⁠, 4층을 밀었다⁠. 다 밀어내지는 못했다⁠. 등 뒤에서 내내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

경력직 지원자는 셋이었다⁠. 면접관은 도형석 전무⁠, 차동만 팀장⁠, 노미란 대리⁠. 소경민 팀장 자리는 비어 있었다⁠. 나는 문 옆 의자에 앉아 초시계를 들었다⁠. 지원자들이 들어올 때마다 나를 재었고⁠, 면접관들도 이따금 나를 재었다⁠. 들렸다⁠.

2번 지원자가 자기소개를 시작하자 전무의 속이 움직였다⁠. 전무는 2번을 보면서 나를 함께 쟀다⁠. 내가 무엇을 눈치채는지 보고 있었다⁠.

‘⁠2번은 로아랩 인사 상무 조카⁠. 지원이를 받으면서 로아랩이 우리 영업이사 아들을 받아 줬으니 이번엔 우리가 한 자리 갚는다⁠. 41번은 문 옆에 앉혀 놨으니 아무것도 모르겠지⁠.⁠’

나는 초시계 버튼을 눌렀다가 잘못 눌러 다시 눌렀다⁠. 지원이 사장 조카로 앉은 자리 하나에 로아랩의 자리 하나가 맞물려 있었다⁠. 자리가 자리를 갚고 있었다⁠.

미란 대리가 평가표를 넘기며 나를 힐끗 보았다⁠.

‘⁠이번엔 메일이 아니다⁠. 전무님이 끝나고 말로 불러 주신다고 했다⁠. 손으로 받아 적으라고⁠. 메일은 남는다고⁠. 상환일 26일⁠. 끝이 보이는데⁠.⁠’

전무는 증거가 남는 길을 막고 있었다⁠. 메일에서 말로⁠, 파일에서 손글씨로⁠. 하나씩 지우고 있었다⁠.

2번 지원자가 대답을 끝냈다⁠. 전무가 웃으며 말했다⁠. “⁠아주 좋습니다⁠.⁠” 1번과 3번에게도 똑같이 말했다⁠. 셋에게 다 같은 미소였다⁠. 미소만 보면 공정했다⁠.

지원자들도 나를 재었다⁠. 1번은 내가 초시계를 두 번 누르는 것을 보았다⁠. ‘⁠직원이 초시계도 제대로 못 누르네⁠. 이 회사 괜찮나⁠.⁠’ 3번은 내가 따라 준 물잔을 보았다⁠. ‘⁠물을 끝까지 따라 주네⁠. 친절하다⁠. 붙고 싶다⁠.⁠’ 3번은 물을 다 마시고 들어갔고⁠, 붙을 사람은 이미 2번이었다⁠. 나는 3번에게 물을 한 잔 더 따라 주었다⁠. 물 한 잔 말고는 해 줄 것이 없었다⁠.

*

이튿날 오후⁠, 나는 5층 인사팀 작은 회의실 문을 두드렸다⁠. 소경민 팀장은 채용 업무에서 빠진 뒤 교육 일정표를 만들고 있었다⁠. 모니터에 「⁠2027 신입 교육 안⁠」이 떠 있었다⁠. 경민 팀장은 나를 보자 모니터를 껐다⁠.

“⁠팀장님⁠, 「⁠최종_보정⁠」 파일이요⁠.⁠”

경민 팀장의 손이 마우스에서 미끄러졌다⁠.

“⁠세 해요⁠. 전무님이 메일로 순서를 보내면 팀장님이 표를 다시 만드셨잖아요⁠. 원본 평가표는 면접관 서명까지 다 있는데 아직 안 버리셨죠⁠.⁠”

‘⁠누가⁠. 미란이⁠? 아니⁠, 미란이는 원본을 몰라⁠. 전무님은 아니고⁠. 이 애가 어떻게⁠.⁠’

“⁠누가 그래요⁠?⁠”

“⁠그건 말 못 해요⁠.⁠”

“⁠그럼 나도 할 말 없어요⁠.⁠” 경민 팀장이 일어났다⁠. 의자 바퀴가 바닥을 긁었다⁠. “⁠백윤아 씨⁠, 나 딸이 둘이에요⁠. 큰애가 고3⁠, 작은애가 고1이에요⁠. 내년 2월에 큰애 등록금이 나가요⁠.⁠”

“⁠성우 씨는 아버지가 지난봄에 명예퇴직하셨어요⁠. 3년 동안 명퇴금으로 버텼고요⁠.⁠”

“⁠그건 내가 정한 게 아니에요⁠.⁠”

“⁠고친 건 팀장님이잖아요⁠.⁠”

말이 나가자마자 주워 담고 싶었다⁠. 경민 팀장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속이 들렸다⁠.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이라서 나가라고 해야 한다⁠.⁠’

“⁠나가요⁠.⁠”

경민 팀장은 소리 지르지 않았다⁠. 문을 가리키는 손끝이 떨렸다⁠. 나는 나왔다⁠. 복도에 나와서도 경민 팀장의 속은 따라왔다⁠. 같은 건물 안이었다⁠.

‘⁠이 애 말이 맞다⁠. 그런데 이 애는 등록금을 안 낸다⁠.⁠’

*

수요일 밤 아홉 시⁠, 6층에는 나 혼자 남아 기획전 문구를 고치고 있었다⁠. 위층에서 발소리가 났고⁠, 이어서 속이 내려왔다⁠. 7층 전무실이었다⁠. 전무는 나를 생각하고 있었다⁠. 생각하는 동안 나를 쟀다⁠.

‘⁠41번이 어디까지 아나⁠. 「⁠최종_보정⁠」까지 안다면 원본도 안다⁠. 원본만 없으면 41번은 아무것도 증명 못 한다⁠. 실사단이 12월 1일 오후에 온다⁠. 오기 전에⁠.⁠’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5층에서 7층으로⁠. 잠시 뒤 경민 팀장의 속이 7층에서 들렸다⁠. 전무실에 불려 간 경민 팀장은 거기 없는 나를 떠올리고 있었다⁠.

‘⁠백윤아 말이 맞았다⁠.⁠’

전무의 목소리는 벽을 넘어오지 않았지만⁠, 전무의 속은 넘어왔다⁠. 경민 팀장에게 무엇을 시키는지⁠, 속으로 한 번 더 굴리고 있었다⁠.

‘⁠지난 세 해 채용 자료 전부 파쇄⁠. 12월 1일 아침 일곱 시⁠. 실사단 오기 전에⁠. 소 팀장 손으로⁠. 원본 남아 있으면 소 팀장이 다친다고 하면 알아서 없앤다⁠.⁠’

나는 모니터 앞에서 손을 떼고 계단으로 갔다⁠. 7층 계단참까지 올라가자 전무실 문이 열렸다⁠. 경민 팀장이 나왔다⁠.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았는데 무언가를 무겁게 든 사람처럼 어깨가 내려가 있었다⁠. 계단참의 나를 보았다⁠. 놀라지 않았다⁠.

‘⁠12월 1일⁠. 일곱 시⁠. 내 손으로⁠.⁠’

경민 팀장은 아무 말 없이 나를 지나 계단을 내려갔다⁠. 구두 굽 소리가 한 층씩 멀어졌다⁠. 5층에서 소리가 멈췄다⁠. 나는 계단참 창문으로 보도를 내려다보았다⁠. 가로등 밑에 팻말이 벽에 기대어 놓여 있었고⁠, 팻말 앞에서 성우가 보온병 뚜껑에 무언가를 따라 마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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