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327자)
회사 앞 1인 시위, 팻말 속 낙하산은 나
면접관 속마음이 들린다 · 피오담
2026년 11월 9일 월요일 여덟 시 반, 결담 사옥 앞 보도에서 탁성우가 팻말을 들고 있었다. 남색 패딩에 에코백을 메고 두 손으로 하드보드지를 들었다.
「결담 채용은 들러리 오디션입니다 — 공고 1명, 합격 2명, 나는 몇 등이었습니까?」
팻말 맨 아래에 작은 글씨가 한 줄 더 있었다. 「토익 990 · 한국사 1급 · 마라톤 풀코스 3회」. 출근하던 사람들이 팻말을 읽고, 맨 아래 줄까지 읽고, 웃음을 참으며 지나갔다. 1인 시위는 집회 신고가 필요 없다는 것을 성우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팻말 귀퉁이에 「1인 시위 중입니다」라는 쪽지가 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무엇이든 서류처럼 준비하는 사람이었다.
차동만 팀장이 편의점 봉지를 들고 성우 앞에 멈췄다. 따뜻한 캔커피를 내밀었다.
“드세요. 아침은 먹었어요?”
‘마라톤 하던 친구네. 추운데. 점심은 어디서 먹나.’
성우는 캔커피를 받지 않고 팻말을 더 높이 들었다. 차 팀장은 캔커피를 성우 발밑 보도블록에 세워 두고 들어갔다. 나는 회전문 앞에서 멈췄다. 지나가면 그만이었다. 팻말 속 「합격 2명」 가운데 하나가 나였다. 성우가 나를 보았고, 재었다.
‘저 여자다. 얼굴 보면 화가 나야 하는데 피곤해 보인다. 왜 피곤하지. 붙은 사람이. 아버지 명퇴금 반을 3년 동안 까먹었다. 이번엔 진짜 될 줄 알았는데.’
“협박해서 들어가니까 좋아요?” 성우가 먼저 말했다.
“안 좋아요.”
“그럼 나와요.”
“내가 나오면 그 자리가 성우 씨한테 가요?”
성우의 입술이 달싹이다 멈췄다. ‘……아니겠지. 조카 하나 남겠지.’
“당신 2등이었어요.” 내가 말했다. “원래 점수로요. 내가 1등, 성우 씨가 2등, 조카가 3등. 둘을 붙이려고 성우 씨를 3등으로 내렸어요.”
성우가 팻말을 내렸다. 팻말 끝이 보도블록에 닿아 툭 소리가 났다.
“어떻게 알아요?”
“들었어요.”
“누구한테요?”
대답할 수 없었다. 속마음이라고 하면 팻말이 하나 더 늘 것이었다. 「협박 입사자, 독심술 주장」.
“증거 있어요?” 성우가 물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도형석 전무가 내게 했던 말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았다. 처음엔 내가 들었고, 이번엔 내가 들어야 했다. 같은 말이 이렇게 다르게 아팠다.
“찾을게요.”
“찾으면 와요. 그때까지 여기 있을 거예요.” 성우가 팻말을 다시 들었다. 발밑의 캔커피에서 김이 올라왔다. 성우는 끝내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
오전 열 시, 도형석 전무가 6층에 내려왔다. 전무가 6층에 온 것도 6년 만이라고 누군가 속으로 말했다. 전무는 창가에 서서 보도의 팻말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몸을 돌려 내 자리로 왔다.
“백윤아 씨, 바깥 저분하고 같이 면접 봤죠?”
“네.”
“동기 같은 분이니 잘 말씀드려 봐요. 회사 앞에서 저러시면 본인한테도 안 좋다고.”
‘탁성우는 업무방해로 고소해서 막는다. 회사 앞 시위로 영업에 지장. 41번이 설득하면 좋고, 못 하면 41번 탓으로 돌린다.’
전무의 속에서 「업무방해」라는 말이 나오자 나는 웃음이 날 뻔했다. 은행 채용 비리 재판에서 행장들에게 실형을 안긴 죄목이 업무방해였다. 점수를 고쳐서 면접위원들의 일을 방해했다는 죄였다. 고친 사람이 고치지 않은 사람에게 같은 죄목을 들이밀고 있었다.
“말씀드려 볼게요. 들어 주실지는 모르겠지만요.”
“들어 주시겠죠. 백윤아 씨는 말을 잘하니까.”
*
점심시간에 지원이 나를 옥상으로 불렀다. 옥상 난간에서 보도가 내려다보였다. 성우는 팻말을 무릎에 세우고 앉아 삼각김밥 비닐을 뜯고 있었다. 비닐이 잘못 뜯겨 김이 반쯤 찢어졌다. 성우는 찢어진 김을 손가락으로 붙여 보다가 그냥 먹었다.
“저 사람 진짜 2등이었어요?” 지원이 물었다.
“네.”
‘나는 3등이었구나. 큰아버지가 3등을 붙였구나. 3등이 붙고 2등이 떨어졌구나.’
지원은 난간에 두 팔을 걸치고 한참 내려다보았다. 바람이 후드티 모자를 뒤로 넘겼다.
“내 자리 저 사람 주면 되잖아요. 나 나가고.”
“회사가 안 줘요. 지원 씨가 나가면 자리가 없어지는 거지, 성우 씨한테 가는 게 아니에요.”
“그럼 어떻게 해야 가는데요.”
“원래 점수가 밝혀져야죠.”
지원이 난간을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쿵, 따, 쿵쿵. 마지막 따가 오지 않았다. ‘원래 점수. 큰아버지 회사가 시끄러워진다. 우리 집이 먼저 터진다. 그래도.’
지원은 그래도 다음 말을 속으로도 끝내지 않았다. 나는 재촉하지 않았다. 아래에서 성우가 삼각김밥을 다 먹고 팻말을 다시 들었다.
*
11월 16일 월요일, 결담은 마케팅 경력직 한 자리를 뽑았다. 차 팀장이 나에게 면접 진행을 맡겼다. 지원자를 대기실에서 면접장까지 데려가고, 물을 따르고, 시간을 재는 일이었다. 면접 한 시간 전, 차 팀장이 7층 대회의실에서 녹화용 카메라를 세우며 나를 불렀다.
“백윤아 씨, 저기 좀 앉아 봐요. 조명 각도 보게.”
저기는 지원자 의자였다. 3주 전에 내가 앉았던 의자였다. 나는 망설이다 앉았다. 의자에 등이 닿는 순간이었다.
건물이 통째로 들어왔다.
‘저 신입 또 왔네.’ 1층 경비실이었다. ‘택배 박스 몇 개 남았지. 41번 사원 박스도 하나 있던데.’ 3층 물류팀이었다. ‘저 애가 41번이야? 사장실 크림.’ 4층 영업팀. ‘신입 둘 중 드럼 치는 애가 낫다던데.’ 5층 인사팀. ‘탁성우 반환 서류 언제 보내지.’ 7층 비서실. 일곱 개 층이 한꺼번에 나를 두고 떠들었다. 지원자 의자는 평가받는 의자였다. 앉기만 해도 귀가 넓어졌다.
“표정이 왜 그래요?” 차 팀장이 카메라 뒤에서 물었다. ‘조명이 너무 센가.’
“팀장님.”
“네.”
“다음부터는 팀장님이 앉아 주세요.”
차 팀장은 영문을 모른 채 웃었다. ‘조명 각도는 좋네. 점심은 뭐 먹지. 41번한테 물어봐야지.’
나는 일곱 개 층의 목소리를 하나씩 뒤로 밀었다. 세탁소 다리미 소리를 밀어내던 것처럼. 1층부터 밀고, 3층을 밀고, 4층을 밀었다. 다 밀어내지는 못했다. 등 뒤에서 내내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
경력직 지원자는 셋이었다. 면접관은 도형석 전무, 차동만 팀장, 노미란 대리. 소경민 팀장 자리는 비어 있었다. 나는 문 옆 의자에 앉아 초시계를 들었다. 지원자들이 들어올 때마다 나를 재었고, 면접관들도 이따금 나를 재었다. 들렸다.
2번 지원자가 자기소개를 시작하자 전무의 속이 움직였다. 전무는 2번을 보면서 나를 함께 쟀다. 내가 무엇을 눈치채는지 보고 있었다.
‘2번은 로아랩 인사 상무 조카. 지원이를 받으면서 로아랩이 우리 영업이사 아들을 받아 줬으니 이번엔 우리가 한 자리 갚는다. 41번은 문 옆에 앉혀 놨으니 아무것도 모르겠지.’
나는 초시계 버튼을 눌렀다가 잘못 눌러 다시 눌렀다. 지원이 사장 조카로 앉은 자리 하나에 로아랩의 자리 하나가 맞물려 있었다. 자리가 자리를 갚고 있었다.
미란 대리가 평가표를 넘기며 나를 힐끗 보았다.
‘이번엔 메일이 아니다. 전무님이 끝나고 말로 불러 주신다고 했다. 손으로 받아 적으라고. 메일은 남는다고. 상환일 26일. 끝이 보이는데.’
전무는 증거가 남는 길을 막고 있었다. 메일에서 말로, 파일에서 손글씨로. 하나씩 지우고 있었다.
2번 지원자가 대답을 끝냈다. 전무가 웃으며 말했다. “아주 좋습니다.” 1번과 3번에게도 똑같이 말했다. 셋에게 다 같은 미소였다. 미소만 보면 공정했다.
지원자들도 나를 재었다. 1번은 내가 초시계를 두 번 누르는 것을 보았다. ‘직원이 초시계도 제대로 못 누르네. 이 회사 괜찮나.’ 3번은 내가 따라 준 물잔을 보았다. ‘물을 끝까지 따라 주네. 친절하다. 붙고 싶다.’ 3번은 물을 다 마시고 들어갔고, 붙을 사람은 이미 2번이었다. 나는 3번에게 물을 한 잔 더 따라 주었다. 물 한 잔 말고는 해 줄 것이 없었다.
*
이튿날 오후, 나는 5층 인사팀 작은 회의실 문을 두드렸다. 소경민 팀장은 채용 업무에서 빠진 뒤 교육 일정표를 만들고 있었다. 모니터에 「2027 신입 교육 안」이 떠 있었다. 경민 팀장은 나를 보자 모니터를 껐다.
“팀장님, 「최종_보정」 파일이요.”
경민 팀장의 손이 마우스에서 미끄러졌다.
“세 해요. 전무님이 메일로 순서를 보내면 팀장님이 표를 다시 만드셨잖아요. 원본 평가표는 면접관 서명까지 다 있는데 아직 안 버리셨죠.”
‘누가. 미란이? 아니, 미란이는 원본을 몰라. 전무님은 아니고. 이 애가 어떻게.’
“누가 그래요?”
“그건 말 못 해요.”
“그럼 나도 할 말 없어요.” 경민 팀장이 일어났다. 의자 바퀴가 바닥을 긁었다. “백윤아 씨, 나 딸이 둘이에요. 큰애가 고3, 작은애가 고1이에요. 내년 2월에 큰애 등록금이 나가요.”
“성우 씨는 아버지가 지난봄에 명예퇴직하셨어요. 3년 동안 명퇴금으로 버텼고요.”
“그건 내가 정한 게 아니에요.”
“고친 건 팀장님이잖아요.”
말이 나가자마자 주워 담고 싶었다. 경민 팀장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속이 들렸다.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이라서 나가라고 해야 한다.’
“나가요.”
경민 팀장은 소리 지르지 않았다. 문을 가리키는 손끝이 떨렸다. 나는 나왔다. 복도에 나와서도 경민 팀장의 속은 따라왔다. 같은 건물 안이었다.
‘이 애 말이 맞다. 그런데 이 애는 등록금을 안 낸다.’
*
수요일 밤 아홉 시, 6층에는 나 혼자 남아 기획전 문구를 고치고 있었다. 위층에서 발소리가 났고, 이어서 속이 내려왔다. 7층 전무실이었다. 전무는 나를 생각하고 있었다. 생각하는 동안 나를 쟀다.
‘41번이 어디까지 아나. 「최종_보정」까지 안다면 원본도 안다. 원본만 없으면 41번은 아무것도 증명 못 한다. 실사단이 12월 1일 오후에 온다. 오기 전에.’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5층에서 7층으로. 잠시 뒤 경민 팀장의 속이 7층에서 들렸다. 전무실에 불려 간 경민 팀장은 거기 없는 나를 떠올리고 있었다.
‘백윤아 말이 맞았다.’
전무의 목소리는 벽을 넘어오지 않았지만, 전무의 속은 넘어왔다. 경민 팀장에게 무엇을 시키는지, 속으로 한 번 더 굴리고 있었다.
‘지난 세 해 채용 자료 전부 파쇄. 12월 1일 아침 일곱 시. 실사단 오기 전에. 소 팀장 손으로. 원본 남아 있으면 소 팀장이 다친다고 하면 알아서 없앤다.’
나는 모니터 앞에서 손을 떼고 계단으로 갔다. 7층 계단참까지 올라가자 전무실 문이 열렸다. 경민 팀장이 나왔다.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았는데 무언가를 무겁게 든 사람처럼 어깨가 내려가 있었다. 계단참의 나를 보았다. 놀라지 않았다.
‘12월 1일. 일곱 시. 내 손으로.’
경민 팀장은 아무 말 없이 나를 지나 계단을 내려갔다. 구두 굽 소리가 한 층씩 멀어졌다. 5층에서 소리가 멈췄다. 나는 계단참 창문으로 보도를 내려다보았다. 가로등 밑에 팻말이 벽에 기대어 놓여 있었고, 팻말 앞에서 성우가 보온병 뚜껑에 무언가를 따라 마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