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450자)

신입 환영 회식, 서른 명이 나를 채점했다

면접관 속마음이 들린다 · 피오담

2026년 11월 2일 월요일 여덟 시 사십 분⁠, 결담 6층 마케팅팀 문을 밀고 들어가자 서른 명의 속이 한꺼번에 나를 돌아보았다⁠.

‘⁠왔다⁠.⁠’ ‘⁠신입이다⁠.⁠’ ‘⁠둘 중 누가 조카야⁠?⁠’ ‘⁠단발이 사장실에서 크림 받았다는 애래⁠.⁠’ ‘⁠가방 어디 거지⁠.⁠’ ‘⁠구두 굽 닳았네⁠.⁠’ ‘⁠내 자리 옆이면 안 되는데⁠, 나 점심 혼자 먹는 거 좋아하는데⁠.⁠’

입으로 인사한 사람은 셋이었다⁠. 속으로 인사한 사람은 서른이었다⁠. 목에 건 사원증이 가슴뼈에 닿아 차가웠다⁠. 「⁠결담 마케팅팀 백윤아⁠」⁠. 번호표 대신 사진이 들어간 목줄이었다⁠. 사진 속 나는 잇몸을 감추려고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나는 사장실에서 배운 대로 한 사람에게 귀를 모았다⁠. 팀장 자리의 차동만 팀장이었다⁠. 면접 날과 같은 넥타이였고 배가 셔츠 단추를 조금 더 밀고 있었다⁠.

‘⁠신입 둘이네⁠. 점심 메뉴 둘 더 생각해야 하나⁠. 아니다⁠, 신입한테 고르라고 하자⁠. 41번은 메뉴를 잘 고른다⁠.⁠’

“⁠백윤아 씨⁠, 반가워요⁠. 오늘 점심은 백윤아 씨가 고르는 걸로⁠.⁠”

“⁠성수역 뒤 칼국수는 월요일엔 열어요⁠.⁠”

차 팀장 얼굴이 환해졌다⁠. 서른 명의 속이 일제히 웅성거렸다⁠. ‘⁠팀장님이 웃는다⁠.⁠’ ‘⁠신입이 점심 담당 됐다⁠.⁠’ ‘⁠살았다⁠.⁠’

아홉 시 오 분 전에 마지원이 들어왔다⁠. 검정 정장 대신 검은 후드티에 슬랙스⁠, 백팩 옆구리에 드럼 스틱 두 개가 꽂혀 있었다⁠. 지원은 내 옆자리에 가방을 내려놓으며 나를 재었다⁠.

‘⁠결국 같이 들어왔네⁠. 이 사람이 사장실에서 무슨 짓을 한 거지⁠. 쿵⁠, 따⁠, 쿵쿵⁠, 따⁠. 출근이라니⁠.⁠’

“⁠안녕하세요⁠, 동기님⁠.⁠” 지원이 소리 내어 말했다⁠.

“⁠안녕하세요⁠, 동기님⁠.⁠”

*

자기소개는 회의실이었다⁠. 차 팀장이 의자 두 개를 화이트보드 앞에 놓았다⁠. 서른 명이 맞은편에 앉았다⁠. 지원이 먼저 일어났다⁠.

“⁠마지원입니다⁠. 드럼 칩니다⁠.⁠”

끝이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속은 조용하지 않았다⁠. ‘⁠조카다⁠.⁠’ ‘⁠조카네⁠.⁠’ ‘⁠이름부터 마 씨잖아⁠.⁠’ ‘⁠드럼⁠? 사장님 조카가 드럼⁠?⁠’ ‘⁠의외로 멋있는데⁠.⁠’

내 차례였다⁠.

“⁠백윤아입니다⁠. 점심 메뉴를 잘 고릅니다⁠. 성수동 식당 휴무일은 이번 주 안에 다 외우겠습니다⁠.⁠”

서른 명 가운데 누군가 소리 내어 웃었고⁠, 스물몇 명이 속으로 웃었다⁠. 차 팀장은 박수를 쳤다⁠. ‘⁠이 친구 진짜 쓸 만하다⁠.⁠’

자리로 돌아가는 동안 회의실 구석의 한 사람이 다르게 생각했다⁠. 6년 차라는 홍보 담당 대리였다⁠. ‘⁠조카 하나에 협박해서 들어온 애 하나⁠. 올해는 둘이네⁠. 작년엔 하나였는데⁠.⁠’

*

오전에 차 팀장이 첫 일을 주었다⁠. 결담 수분크림 겨울 기획전 SNS 문구 열 개⁠. 나는 한 시간 만에 열두 개를 써서 냈다⁠. 차 팀장이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나를 재었다⁠. 일을 평가하는 동안 차 팀장의 속은 일 바깥으로 자꾸 미끄러졌다⁠.

‘⁠잘 쓴다⁠. 「⁠손 튼 엄마에게 먼저⁠」⁠, 좋네⁠. 진짜 1등이었구나⁠. 이번엔 둘이라서 티가 덜 나서 다행이다⁠. 작년 홍보팀 박 군은 거래처 대표 아들이었고⁠, 재작년 영업팀 하 씨는 주거래 은행 지점장 딸이었고⁠. 다들 공채로 들어왔지⁠. 번호표 받고⁠. 면접관인 나는 웃으면서 점수 줬고⁠.⁠’

나는 모니터 속 내 문구를 보는 척했다⁠. 「⁠손 튼 엄마에게 먼저⁠」⁠. 엄마 손이 떠올랐고⁠, 같은 자리에 작년과 재작년의 번호표가 겹쳤다⁠. 결담에는 해마다 한 자리씩 주인이 있었다⁠. 올해만의 일이 아니었다⁠.

“⁠좋아요⁠. 이걸로 갑시다⁠.⁠” 차 팀장이 말했다⁠. ‘⁠저녁은⁠…⁠… 아⁠, 회식은 금요일이지⁠.⁠’

*

점심은 성수역 뒤 칼국수 집이었다⁠. 정말로 월요일에 열었다⁠. 나는 출근 전날 밤 지도 앱으로 휴무일을 세 번 확인했다⁠. 차 팀장은 바지락 칼국수 곱빼기를 시키고 김치를 두 번 더 달라고 했다⁠. 국물을 한 숟갈 뜨더니 눈을 감았다⁠. ‘⁠살았다⁠. 이 신입 평생 데리고 다녀야지⁠.⁠’

지원은 젓가락으로 면만 휘저었다⁠. 차 팀장이 화장실에 간 사이 지원이 나를 보았다⁠. 재는 눈이었다⁠.

“⁠사장실에서 뭐 했어요⁠?⁠”

“⁠제안했어요⁠. 두 자리⁠.⁠”

“⁠나 빼 달라고 했잖아요⁠.⁠” 지원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당신 혼자 들어가면 나는 떨어지는 거였어요⁠. 그게 내가 바란 거였고⁠. 근데 당신이 두 자리를 만들어서 나는 빠져나갈 데가 없어졌어요⁠.⁠”

‘⁠큰아버지가 웃더라⁠. 41번이 똑똑하다고⁠. 나는 이제 똑똑한 동기 옆에서 사람이 돼야 한대⁠.⁠’

“⁠나는 들어가고 싶었어요⁠. 마지원 씨는 나가고 싶었고⁠. 나는 내가 원하는 걸 했어요⁠.⁠”

“⁠알아요⁠. 그래서 화가 난다고요⁠.⁠” 지원이 칼국수를 한 젓가락 크게 떠 넣었다⁠. 볼이 불룩해진 채로 말했다⁠. “⁠맛있네⁠. 그래서 더 화가 난다고요⁠.⁠”

차 팀장이 돌아와 우리를 보았다⁠. ‘⁠신입들 벌써 친하네⁠. 좋다⁠.⁠’ 우리는 둘 다 대답하지 않고 국물을 마셨다⁠.

*

수요일 오후에는 5층 탕비실에서 노미란 대리와 마주쳤다⁠. 미란 대리는 종이컵에 믹스커피를 타다가 나를 보고 컵을 떨어뜨릴 뻔했다⁠. 안경 너머 눈이 바쁘게 나를 재었다⁠.

‘⁠이 사람이 1등이었다⁠. 내 손으로 탁성우를 3등에 넣었다⁠. 전무님이 불러 주는 숫자 그대로⁠. 이 사람은 그걸 알까⁠. 모르겠지⁠. 상환일 26일⁠. 이번 달 넣고 나면 두 번 남는다⁠.⁠’

“⁠대리님⁠, 커피 넘쳐요⁠.⁠”

미란 대리가 종이컵을 내려다보았다⁠. 커피가 손가락까지 흘러 있었다⁠. “⁠아⁠, 확인해 보겠습니다⁠.⁠” 무엇을 확인한다는 건지 미란 대리 자신도 몰랐다⁠. 미란 대리는 젖은 손으로 컵을 들고 빠르게 나갔다⁠. 탕비실에 믹스커피 냄새만 남았다⁠.

*

신입 환영 회식은 금요일 저녁 성수동 고깃집이었다⁠. 돼지 목살이 불판 위에서 기름을 튀겼다⁠. 연기가 천장 환풍구로 빨려 올라가는 소리가 컸다⁠. 도형석 전무가 회식에 온 것은 6년 만이라고 옆자리 대리가 속으로 말했다⁠. 전무는 하필 내 맞은편에 앉았다⁠. 남색 넥타이를 풀지 않은 채 소주잔을 받았다⁠. 고깃집 사장이 불판을 갈아 주러 오자 전무는 일어나서 집게를 받아 들었다⁠. 남이 고기를 굽게 두지 않는 사람이었다⁠. 목살 여섯 점이 불판 위에 줄을 맞춰 올라갔다⁠.

“⁠백윤아 씨⁠, 회사 생활 어때요⁠?⁠”

“⁠배우는 중이에요⁠.⁠”

“⁠회사 생활은 듣는 게 반이에요⁠.⁠” 전무가 잔을 비우지 않고 내려놓았다⁠. “⁠들은 걸 말하는 순간 끝나고요⁠.⁠”

‘⁠이 애가 어디서 들었는지 알아야 한다⁠. 1년 지켜보고⁠, 탈 없으면 계약대로 두고⁠, 탈 나면 정리⁠.⁠’

목살이 탔다⁠. 전무가 말하는 사이 집게를 넘겨받은 차 팀장이 목살을 뒤집으며 우리 둘을 번갈아 보았다⁠. ‘⁠전무님이 왜 신입한테 저런 말을⁠.⁠’

“⁠그럼 듣기만 할게요⁠.⁠” 나는 상추에 목살을 얹었다⁠. “⁠작년 홍보팀 박 대리님도 공채로 들어오셨죠⁠? 거래처 대표님 아드님이요⁠. 신입 때 회식은 어땠는지 여쭤봐도 되나 해서요⁠.⁠”

불판 위에서 기름만 튀었다⁠. 차 팀장이 상추쌈을 입에 넣다가 사레가 들려 기침을 했다⁠. 테이블 끝의 박 대리가 젓가락을 떨어뜨렸다⁠. 지원이 내 옆구리를 팔꿈치로 찔렀다⁠.

도형석 전무는 웃었다⁠. 이번에는 진짜 웃음처럼 보였다⁠.

“⁠회사 사람 뒷조사는 좋은 버릇이 아니에요⁠. 소문은 소문일 뿐이고요⁠.⁠”

‘⁠작년 것까지 안다⁠. 누가 말하고 다니는 거다⁠. 차동만인가⁠. 사람 좋은 척하는 것들이 입이 싸지⁠.⁠’

전무의 의심이 내게서 차 팀장에게로 옮겨 갔다⁠. 나는 상추쌈을 입에 넣고 씹었다⁠. 쌈장이 짰다⁠. 내가 들은 것을 말할 때마다 누군가가 대신 의심을 받았다⁠. 처음엔 경민 팀장이었고⁠, 오늘은 점심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팀장님⁠, 쌈장 너무 짜요⁠.⁠” 내가 말했다⁠.

차 팀장이 물을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친구 왜 저래⁠. 나 무섭게⁠.⁠’

*

2차는 노래방이었다⁠. 지원이 탬버린을 잡았다⁠. 탬버린을 무릎과 손바닥과 테이블 모서리로 번갈아 쳤는데⁠, 노래방 반주보다 박자가 정확했다⁠. 대리 둘이 노래를 멈추고 지원을 보았다⁠. ‘⁠사장님 조카가 탬버린 신이다⁠.⁠’ 지원은 속으로 처음 웃었다⁠. ‘⁠여기서는 아무도 큰아버지 얘기를 안 한다⁠.⁠’

인사팀 사람들도 왔다⁠. 소경민 팀장은 소파 끝에 앉아 맥주 한 잔을 오래 들고 있었다⁠. 노미란 대리가 마이크를 넘기자 경민 팀장은 트로트를 불렀다⁠. 꺾는 데마다 정확히 꺾었다⁠. 박수가 터졌다⁠. 노래를 끝낸 경민 팀장이 내 옆자리에 앉았다⁠. 얼굴이 붉었고⁠, 나를 오래 보았다⁠.

‘⁠미안하다⁠. 이 애한테⁠.⁠’

경민 팀장은 땅콩을 하나씩 집었다⁠.

‘⁠세 해⁠. 세 번 고쳤다⁠. 전무님이 메일로 순서를 보내면 내가 표를 다시 만들었다⁠. 파일 이름은 「⁠최종_보정⁠」⁠. 원본 평가표는 면접관 서명까지 다 있는데 버리지를 못했다⁠. 지우라고 하셨는데 못 지웠다⁠. 내가 한 일이니까⁠. 올해는 미란이가 했다⁠. 탁성우를 3등으로⁠.⁠’

화면에서 다음 곡 반주가 시작되었다⁠.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나는 땅콩 그릇만 보았다⁠. 원본이 있었다⁠. 서명까지 있는 원본이⁠.

“⁠팀장님⁠, 노래 잘하세요⁠.⁠”

“⁠딸들이 싫어해요⁠. 엄마 노래 부르지 말라고⁠.⁠” 경민 팀장이 소리 내어 웃었다⁠. ‘⁠큰애 고3⁠, 작은애 고1⁠. 큰애 원서비만 육십만 원이었다⁠.⁠’

“⁠팀장님 딸들은 좋겠어요⁠.⁠”

경민 팀장이 땅콩을 집다가 멈췄다⁠. ‘⁠이 애가 왜 이런 말을⁠.⁠’ 잠깐 나를 보더니⁠, 대답 대신 마이크를 내 손에 쥐여 주었다⁠. 마이크가 땀에 젖어 미끈했다⁠.

*

자정 가까이 면목동에 돌아오니 백조세탁 셔터 아래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엄마가 다리미판 위에서 무언가를 다리고 있었다⁠. 사원증 목줄이었다⁠. 아침에 내가 식탁 위에 던져 놓고 간 여분 목줄이 꼬여 있었던 모양이었다⁠.

“⁠엄마⁠, 그건 안 다려도 돼⁠.⁠”

“⁠꼬였더라⁠.⁠” 엄마는 다리미를 들지 않고 손바닥으로 목줄을 쓸었다⁠. ‘⁠우리 딸 회사 목줄⁠. 결담⁠. 크림 회사⁠. 손님들한테 벌써 다섯 번 말했다⁠. 여섯 번째는 내일 아침에 한다⁠.⁠’

엄마는 사장이 준 수분크림을 손등에 바르고 있었다⁠. 여섯 통 가운데 한 통이 벌써 반이 비어 있었다⁠. 엄마 손등의 튼 자리가 하얗게 번들거렸다⁠.

나는 계단에 앉아 엄마 등을 보았다⁠. 엄마가 다섯 번 자랑한 자리는 원래 2등이 앉을 자리 하나를 밀어내고 생긴 자리였다⁠. 엄마는 몰랐고⁠, 나는 알았다⁠.

*

열한 시 사십 분⁠, 「⁠취준 생존방⁠」에 예슬이 링크를 올렸다⁠.

「⁠야 이거 너야⁠?⁠」

링크를 누르자 취준 앱 「⁠취준 마당⁠」의 게시판이 열렸다⁠. 제목은 「⁠결담 최종 후기 2 — 저는 들러리였습니다⁠」⁠. 글쓴이는 「⁠토익990⁠」이었다⁠. 3주 전 같은 사람이 올린 첫 후기에는 「⁠마지막에 내정자 있냐고 물은 지원자가 있었음⁠」 한 줄뿐이었고 댓글이 셋이었다⁠.

「⁠결담 마케팅 최종 3인 중 2명 합격했습니다⁠. 원래 공고는 1명이었습니다⁠. 한 명은 사장 조카입니다⁠. 다른 한 명은 면접장에서 내정자 있냐고 회사를 협박하고⁠, 며칠 뒤 사장실에 불려 가서 쇼핑백 들고 내려온 사람입니다⁠. 저는 그 사람이 합격 문자 받는 걸 로비에서 봤습니다⁠. 저는 들러리였습니다⁠.⁠」

댓글이 이백 개를 넘어 있었다⁠. 「⁠단발이라던데⁠」 「⁠협박으로 입사 ㄷㄷ⁠」 「⁠이게 공정이냐⁠」⁠. 맨 위 댓글이 가장 많이 추천을 받았다⁠. 「⁠결국 걔도 낙하산이네⁠」⁠.

예슬이 하나 더 올렸다⁠. 「⁠너 아니지⁠? 아니라고 해⁠.⁠」

나는 답장 칸에 손가락을 올렸다⁠. 아래층에서 다리미가 칙⁠, 하고 김을 뿜었다⁠. 엄마가 목줄을 다 펴서 다리미판 위에 가지런히 놓았다⁠. 나는 「⁠나야⁠」라고 쳤다가 지우지 않고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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