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436자)

사장실 소파에서 정규직 두 자리를 받아 냈다

면접관 속마음이 들린다 · 피오담

2026년 10월 21일 수요일 아침⁠, 나는 백조세탁 다리미판 옆에서 휴대전화로 결담 기사를 읽었다⁠. 「⁠결담⁠, 코스닥 상장 예비심사 청구⁠… 12월 결과 주목⁠」⁠. 상장은 회사 주식을 누구나 사고팔 수 있게 시장에 올리는 일이고⁠, 올리기 전에 주관사라는 증권사가 회사 속을 샅샅이 들여다본다⁠. 취준 카페의 누군가는 주관사가 채용 과정도 들여다본다고 써 두었다⁠. 기사 밑에는 결담 수분크림이 지난해 면세점에서 얼마나 팔렸는지 그래프가 붙어 있었다⁠. 그래프는 오른쪽 위로 가파르게 올라갔다⁠.

엄마가 남색 재킷을 내 어깨에 걸쳐 주었다⁠.

‘⁠사장이 왜 보자고 해⁠. 혹시 붙은 거 아냐⁠. 아니면 혼나는 건가⁠. 혼나면 내가 가서 혼내 준다⁠.⁠’

“⁠혼나러 가는 거 아니야⁠.⁠”

“⁠누가 혼난대⁠?⁠”

“⁠얼굴에⁠.⁠”

“⁠너 그 말 좀 그만해라⁠. 무섭다⁠.⁠” 엄마가 다리미 코로 재킷 소매 주름을 마지막으로 눌렀다⁠. 칙⁠, 하고 김이 올라와 엄마 안경이 하얗게 흐려졌다⁠. 엄마는 안경을 벗어 앞치마에 닦으면서도 내 소매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

7층 비서실 앞 소파는 가죽이 차가웠다⁠. 비서는 모니터만 보며 손가락을 움직이다가 이따금 나를 힐끗 보았고⁠, 볼 때마다 들렸다⁠.

‘⁠이 사람이 41번이구나⁠. 사장님한테 대들었다던⁠.⁠’

대든 적은 없었다⁠. 질문을 했을 뿐이었다⁠. 소문은 질문보다 빨랐다⁠.

열 시 정각에 도형석 전무가 전무실에서 나왔다⁠. 면접 날과 같은 검은 정장에 넥타이만 남색으로 바뀌었다⁠. 전무는 나를 보고 고개를 숙였다⁠. 깍듯했다⁠.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편하게 하세요⁠.⁠”

‘⁠편하게 하다가 실수해라⁠.⁠’

“⁠네⁠, 편하게 할게요⁠.⁠”

*

사장실은 넓었다⁠. 창 두 면이 통유리였고⁠, 진열장에 결담 수분크림이 색깔별로 줄지어 있었다⁠. 책상 뒤에서 마상구 대표가 일어났다⁠. 예순셋이라고 들었는데 짧게 깎은 흰머리 말고는 나이가 잘 안 보였다⁠. 회색 니트 조끼에 와이셔츠 소매를 걷었고⁠, 손목에 굵은 나무 염주를 찼다⁠. 손바닥으로 소파를 가리켰다⁠.

“⁠앉아요⁠, 앉아⁠.⁠”

소파에 앉는 순간이었다⁠. 귀가 터졌다⁠.

‘⁠저 애가 41번이야⁠?⁠’ ‘⁠단발이네⁠.⁠’ ‘⁠사장님 오늘 기분 어떠시대⁠?⁠’ ‘⁠전무님 표정 봐라⁠.⁠’ ‘⁠커피 내가야 하나⁠.⁠’ ‘⁠41번 얼굴 생각보다 착하게 생겼네⁠.⁠’

목소리가 열 개⁠, 스무 개였다⁠. 비서실⁠, 복도⁠, 전무실⁠, 회의실⁠, 탕비실⁠. 벽 너머에서 나를 두고 무언가를 가늠하는 사람들의 속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카페에서 책상 하나 반이던 거리가 7층 한 층으로 넓어져 있었다⁠. 면접 자리에 앉자마자였다⁠. 평가받는 의자에 앉을 때마다 귀가 넓어지는 모양이었다⁠.

나는 오른손을 귀에 댔다⁠. 아무 소용이 없었다⁠. 탕비실에서는 누군가 커피잔 두 개를 놓고 고민하고 있었다⁠. ‘⁠41번 커피에 시럽 넣나⁠? 얼굴 보니 단 거 좋아하게 생겼는데⁠.⁠’ 단 것은 좋아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비서가 쟁반을 들고 들어오자 나는 먼저 말했다⁠. “⁠시럽은 빼 주세요⁠.⁠”

비서가 쟁반 위의 시럽 병을 내려다보고 다시 나를 보았다⁠. ‘⁠아직 안 물어봤는데⁠.⁠’ 비서는 시럽 병을 쟁반째 들고 도로 나갔다⁠. 마 대표가 비서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귀가 안 좋아요⁠?⁠” 마 대표가 물었다⁠.

“⁠높은 데 올라오면 좀⁠…⁠…⁠.⁠”

“⁠7층인데⁠.⁠”

“⁠저희 집이 2층이라서요⁠.⁠”

마 대표가 웃었다⁠. 웃음소리는 귀로 들어왔고 속은 다른 데로 들어왔다⁠.

‘⁠배짱은 있다⁠. 이 애 입 하나에 상장이 날아간다⁠. 주관사 실사가 12월 첫 주⁠. 실사 전에 조용히 시켜야 한다⁠.⁠’

나는 귀에 들어오는 수십 개의 목소리 가운데 마 대표 하나에 마음을 모았다⁠. 세탁소에서 스팀다리미와 탈수기와 손님 소리가 한꺼번에 날 때 엄마 목소리만 골라 듣던 것처럼⁠. 다른 목소리들이 조금 뒤로 물러났다⁠.

*

“⁠백윤아 씨⁠, 우리 회사 좋아해요⁠?⁠”

“⁠수분크림 좋아해요⁠. 엄마가 세탁소에서 손이 다 터서 겨울마다 발라 드렸어요⁠.⁠”

“⁠그거 내가 만든 거예요⁠. 처음 거는 우리 집 부엌에서⁠.⁠” 마 대표가 진열장을 턱으로 가리켰다⁠. ‘⁠이 대답은 진짜다⁠.⁠’

“⁠우리 지원이는 드럼인지 뭔지 친다고 집에도 안 들어와요⁠. 회사 들어오면 사람 될 거예요⁠. 백윤아 씨처럼 말 잘하는 동기가 옆에 있으면 더 좋고⁠.⁠”

‘⁠동생한테 빌려준 돈은 못 받아도 조카는 사람 만들어야 한다⁠. 자식 없는 내가 회사를 누구한테 주나⁠.⁠’

마 대표의 속은 겉말보다 늙어 있었다⁠. 드럼 이야기를 하면서 손목의 염주를 한 알씩 굴렸다⁠. 염주 알 굴리는 소리가 탁⁠, 탁⁠, 났다⁠. 지원이 무릎 위에서 치던 박자보다 느렸다⁠.

도형석 전무가 서류 두 장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한 장은 근로계약서⁠, 한 장은 서약서였다⁠.

“⁠마케팅팀 1년 계약직입니다⁠. 근무 성과를 보고 정규직 전환을 검토합니다⁠. 함께 회사 내부 정보에 대한 비밀유지 서약서를 써 주시면 됩니다⁠.⁠”

‘⁠1년 쓰고 계약 만료로 정리⁠. 서약서만 받아 두면 나가서도 입을 못 연다⁠.⁠’

전무의 속은 겉말과 한 글자도 다르지 않은 말투로 다른 말을 했다⁠. 나는 계약서 위에 손을 얹지 않았다⁠.

“⁠정규직이요⁠.⁠”

마 대표의 눈썹이 올라갔다⁠. 전무는 그대로였다⁠.

“⁠그리고 서약서는 안 쓸게요⁠.⁠”

“⁠지금 회사에 조건을 거시는 겁니까⁠?⁠” 전무가 낮게 물었다⁠. “⁠근거 없는 말로 회사 명예를 훼손하면 법적 책임이 따릅니다⁠.⁠”

“⁠근거 없는 말을 한 적은 없어요⁠. 면접장에서 질문을 했어요⁠. 질문은 명예훼손이 아니잖아요⁠.⁠”

‘⁠말이 막힌다⁠. 법을 아는 애는 귀찮다⁠.⁠’

마 대표가 다리를 꼬았다⁠. “⁠하나만 물어봅시다⁠. 누구한테 들었어요⁠? 합격자 정해졌다는 거⁠.⁠”

전무의 속이 마 대표의 질문에 바짝 붙었다⁠. ‘⁠소경민이라고 해라⁠. 그럼 깔끔하다⁠.⁠’

여기서 경민 팀장 이름이 나오면 경민 팀장은 끝이었다⁠. 나는 마 대표의 염주를 보았다⁠. 나무알 하나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마⁠」⁠.

“⁠성이요⁠.⁠”

“⁠성⁠?⁠”

“⁠42번 지원자 성이 마 씨였어요⁠. 마 씨가 흔한 성은 아니잖아요⁠. 사장님도 마 씨고요⁠. 면접관 네 분이 42번만 안 쳐다보시길래 맞혀 봤어요⁠. 찍었는데 맞았어요⁠.⁠”

비서실에서 누군가 속으로 웃었다⁠. ‘⁠미쳤다⁠.⁠’ 회의실에서 누군가 속으로 감탄했다⁠. ‘⁠와⁠.⁠’ 마 대표는 소리 내어 웃었다⁠. 염주가 손목에서 달그락거렸다⁠.

‘⁠머리 좋네⁠. 소경민은 아니구나⁠. 찍은 거면 증거도 없다⁠.⁠’

전무의 속은 웃지 않았다⁠. ‘⁠찍은 게 아니다⁠. 들은 거다⁠. 어디서 들었는지 모를 뿐⁠.⁠’

*

증거가 없다는 것을 들킨 채로 거래를 해야 했다⁠. 나는 마 대표가 속으로 거듭 굴리는 말을 들었다⁠. ‘⁠취준 앱에 벌써 글이 하나 올라왔다던데⁠. 주관사가 그런 글까지 본다⁠. 실사 때 채용 얘기 나오면 골치 아프다⁠.⁠’

“⁠사장님⁠, 12월에 실사 있으시죠⁠.⁠”

마 대표의 웃음이 멈췄다⁠.

“⁠신입을 두 명 뽑으시면 돼요⁠. 마케팅 정규직 두 자리요⁠. 조카분도 들어가고 저도 들어가요⁠. 최종에 간 사람 둘이 붙었으니 시끄러울 일이 없어요⁠. 한 자리 더 만드는 게 소문 하나 막는 것보다 싸요⁠.⁠”

“⁠그거 협박이에요⁠?⁠”

“⁠제안이에요⁠. 면접 날 전무님이 마케팅에는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하셔서요⁠.⁠”

전무가 처음으로 입꼬리를 조금 움직였다⁠. 웃음은 아니었다⁠.

마 대표는 한참 나를 보았다⁠. 보는 동안 속에서 숫자가 굴러갔다⁠. ‘⁠신입 연봉 하나⁠. 소문 하나⁠. 상장 하나⁠. 싸다⁠.⁠’ 숫자가 멈추자 마 대표가 무릎을 쳤다⁠.

“⁠좋아요⁠. 정규직 둘⁠. 마케팅⁠. 11월 2일 출근⁠.⁠” 마 대표가 서약서를 손가락으로 밀어 냈다⁠. “⁠서약서는 안 받을게요⁠. 대신 입은 닫아요⁠. 회사 사람이 됐으면 회사 편이 되는 거예요⁠. 회사는 내 돈으로 굴러가요⁠.⁠”

“⁠입은 제가 알아서 닫을게요⁠.⁠”

마 대표가 비서를 불러 진열장의 수분크림 세트를 쇼핑백에 담게 했다⁠. “⁠어머니 드려요⁠. 손 튼 데⁠.⁠”

‘⁠이 애는 써먹을 데가 있다⁠.⁠’

쇼핑백은 무거웠다⁠. 크림 여섯 통이 들어 있었다⁠. 이긴 무게였다⁠. 나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등 뒤에서 전무실 문이 닫혔다⁠. 문이 닫혔는데도 전무의 속은 넘어왔다⁠. 한 층 전체가 내 귀였다⁠. 전무는 문 안에서 나를 떠올리며 재고 있었다⁠.

‘⁠두 자리면 최종 순서를 다시 맞춰야 한다⁠. 원래 1등 백윤아⁠, 2등 탁성우⁠, 3등이 조카⁠. 둘을 붙이려면 탁성우를 3등으로 내리고 조카를 2등으로⁠. 소경민은 빠졌으니 노미란한테 불러 주자⁠.⁠’

쇼핑백 손잡이가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자리 하나를 더 만든 줄 알았다⁠. 만든 게 아니었다⁠. 2등 자리를 비켜 앉힌 것이었다⁠. 내가 사장실에서 거래하는 사이⁠, 대기실에서 토익 990을 세 번 외우던 사람이 3등이 되었다⁠. 성수역 뒤 칼국수처럼⁠, 나는 잘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고 이겼다⁠.

엘리베이터가 5층에서 멈췄다⁠. 문이 열리고 소경민 팀장이 탔다⁠. 복사지 상자를 들고 있었다⁠. 내 손의 쇼핑백을 보고 눈이 쇼핑백에 머물렀다⁠.

‘⁠됐구나⁠. 다행이다⁠. 이 사람은 됐다⁠.⁠’ 경민 팀장의 속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두 자리면 점수표를 또 고쳐야 할 텐데⁠. 이번엔 내가 안 하는구나⁠. 미란이가 하겠구나⁠. 미란이한테 이 짐까지⁠.⁠’

“⁠축하드려요⁠.⁠” 경민 팀장이 소리 내어 말했다⁠. “⁠좋은 결과 있을 거라고 했잖아요⁠.⁠”

“⁠팀장님⁠.⁠”

“⁠네⁠.⁠”

‘⁠무슨 말을 하려고⁠.⁠’

할 말이 목까지 올라왔다⁠. 2등을 3등으로 내리는 일을 알고 있다고⁠. 팀장님이 지난번까지 하던 일을 이제 대리님이 한다는 것을 안다고⁠. 말하면 어떻게 아느냐는 질문이 돌아올 것이었다⁠. 들었다고 하면 누구한테서라는 질문이⁠, 귀로 들었다고 하면 정신과 주소가 돌아올 것이었다⁠.

“⁠크림 하나 드릴까요⁠. 여섯 통이에요⁠.⁠”

경민 팀장이 웃었다⁠. 웃는 얼굴로 속은 울었다⁠. ‘⁠이 사람이 웃기는 사람이라서 다행이다⁠.⁠’ 경민 팀장은 크림을 받지 않고 3층에서 내렸다⁠. 상자 옆면에 매직으로 「⁠2024 채용⁠」이라고 쓰여 있었다⁠.

*

1층 로비 안내 데스크 앞에 낯익은 에코백이 있었다⁠. 「⁠탁성우⁠」라고 수놓인 에코백을 멘 43번이 데스크 직원에게 서류 봉투를 내밀고 있었다⁠.

“⁠채용절차법에 채용서류 반환 청구가 있잖아요⁠. 제 서류 돌려받고 싶고요⁠, 제 최종 순위도 알고 싶습니다⁠.⁠”

“⁠순위는 공개하지 않습니다⁠.⁠” 직원이 말했다⁠.

“⁠그럼 반환이라도요⁠.⁠”

직원이 반환 청구서 양식을 내밀었다⁠. 성우는 필통에서 볼펜을 꺼내 한 글자씩 눌러 썼다⁠. 글씨가 너무 반듯해서 시험 답안지 같았다⁠. 마지막 줄에 서명을 하고 날짜를 적은 뒤⁠, 성우는 볼펜 뚜껑을 딸깍 소리 나게 닫았다⁠.

성우가 몸을 돌렸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7층에서 내려온 엘리베이터⁠, 결담 로고가 크게 박힌 쇼핑백⁠, 정장⁠. 성우의 눈이 쇼핑백에서 내 얼굴로 올라왔다⁠.

‘⁠저 여자가 왜 사장실 층에서 내려와⁠. 쇼핑백까지 들고⁠. 내정자 있냐고 묻던 여자가⁠.⁠’

성우가 입을 열려는 순간 내 휴대전화가 울렸다⁠. 문자였다⁠. 나는 화면을 보았고⁠, 성우도 보았다⁠. 화면 위쪽에 첫 줄이 떴다⁠.

「⁠백윤아 님⁠, 결담 신입사원 최종 합격을 축하합니다⁠.⁠」

마흔세 번째 문자는 「⁠뛰어난 역량⁠」으로 시작하지 않았다⁠. 나는 화면을 끄지 못한 채 서 있었고⁠, 성우는 서류 봉투를 가슴에 안고 내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로비 바닥의 가죽 냄새 위로 쇼핑백 속 크림 냄새가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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