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336자)

엄마 속마음은 볼륨이 크다

면접관 속마음이 들린다 · 피오담

2026년 10월 13일 열한 시 사십 분⁠, 7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복도 끝에서 소경민 팀장이 걸어오고 있었다⁠. 태블릿을 가슴에 안고⁠, 묶은 갈색 머리 끝이 걸음마다 흔들렸다⁠. 전무실로 가는 길이었다⁠.

“⁠팀장님⁠.⁠”

경민 팀장이 멈췄다⁠. 나를 보는 눈이 커졌다⁠.

‘⁠왜 다시 왔지⁠. 전무님이 부르셨는데⁠. 지금 이 사람이랑 같이 있으면 안 되는데⁠.⁠’

“⁠아까 그 말이요⁠, 제가 혼자 짐작한 거예요⁠. 아무한테도 안 들었어요⁠. 전무님께도 그렇게 말씀드리려고 올라왔어요⁠.⁠”

“⁠백윤아 씨⁠.⁠” 경민 팀장이 목소리를 낮췄다⁠. “⁠지금 이러시면 제가 더 곤란해요⁠.⁠”

‘⁠아무한테도 안 들었다는 말을 왜 나한테 하지⁠. 전무님이 나를 의심하시나⁠. 이 사람은 그걸 어떻게 알고⁠.⁠’

내가 지키려던 말이 거꾸로 경민 팀장을 더 의심하게 만들고 있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무실 문이 열렸다⁠. 도형석 전무가 문고리를 잡은 채 우리 둘을 보았다⁠. 복도의 공기가 식었다⁠.

“⁠소 팀장⁠, 들어와요⁠.⁠” 전무의 눈이 나에게 왔다⁠. “⁠백윤아 씨는 무슨 일로⁠?⁠”

‘⁠둘이 아는 사이다⁠.⁠’

“⁠우산을 두고 가서요⁠.⁠”

전무가 창밖을 보았다⁠. 10월의 성수동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파랬다⁠.

“⁠접는 우산이요⁠. 햇빛 가리는 거요⁠.⁠”

복도 저편에서 차동만 팀장이 점퍼를 걸치며 나타났다⁠. 우리를 보더니 반가운 얼굴로 손을 들었다⁠.

“⁠아⁠, 41번⁠! 성수역 뒤 칼국수 집⁠, 화요일 쉬던데요⁠? 지금 가 봤어요⁠.⁠”

“⁠…⁠…양산은 제가 찾아볼게요⁠.⁠” 경민 팀장이 내 팔꿈치를 잡아 엘리베이터 앞으로 돌려세웠다⁠. 문이 닫히기 전에 들어온 마지막 속은 경민 팀장의 것이었다⁠. ‘⁠이제 나도 끝이다⁠.⁠’

*

이튿날 아침 백조세탁은 다리미 김으로 가득했다⁠. 엄마는 와이셔츠 깃을 다리면서 나를 보지 않았다⁠. 보지 않는데도 들렸다⁠. 등 뒤에서 나를 재고 있었다⁠.

‘⁠얼굴 보니 또 떨어졌다⁠. 말 꺼내지 말자⁠. 세탁기 할부 석 달 남았고⁠. 쟤 적금 깨서 학원 다닌 거 알고 있고⁠. 밥은 먹여야지⁠.⁠’

“⁠밥 먹어⁠.⁠”

엄마 입에서 나온 말은 한마디였다⁠. 속에서 나온 말은 열 배였고⁠, 볼륨은 스팀다리미보다 컸다⁠.

‘⁠머리는 왜 또 잘랐어⁠. 단발 안 어울린다니까⁠. 아니다⁠, 어울린다⁠. 내 딸이니까 어울린다⁠. 근데 잇몸⁠.⁠’

“⁠엄마⁠, 나 잇몸 안 나왔어⁠.⁠”

엄마가 다리미를 든 채 돌아보았다⁠. “⁠누가 잇몸 얘기 했냐⁠?⁠”

“⁠…⁠…얼굴에 쓰여 있어서⁠.⁠”

세탁물을 찾으러 온 아주머니가 계산대 앞에서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세탁소 딸 아직 백수구나⁠. 우리 아들은 공무원 됐는데⁠.⁠’ 아주머니는 소리 내어 “⁠따님 예뻐졌네⁠”라고 했다⁠. 나는 웃으며 영수증을 내밀었다⁠. 영수증에는 「⁠바지 2⁠, 와이셔츠 3⁠, 4⁠,500원⁠」이 찍혀 있었고⁠, 아주머니 속에는 아들 자랑이 세 번 더 지나갔다⁠.

규칙은 조금씩 보였다⁠. 나를 보고 무언가를 가늠하는 사람만 들렸다⁠. 엄마가 와이셔츠를 다리는 데 마음을 쏟으면 끊겼다가⁠, 다리미를 내려놓고 내 뒤통수를 보면 다시 들렸다⁠. 손님이 세탁물 태그를 보는 동안은 조용했고⁠, 나를 보면 시끄러웠다⁠.

*

목요일 오후 망우역 앞 카페에서 홍예슬은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빨대를 깨물었다⁠. 예슬은 대학 동기였고 은행 공채만 일곱 번째였다⁠.

“⁠그러니까 네가 독심술이 생겼다고⁠.⁠”

“⁠독심술은 아니고⁠, 평가술⁠.⁠”

“⁠그게 뭔데⁠.⁠”

“⁠나를 평가하는 사람 속만 들려⁠.⁠”

예슬이 팔짱을 끼고 나를 아래위로 보았다⁠. 바로 들렸다⁠.

‘⁠단발 또 잘랐네⁠. 망했다⁠. 근데 얘 눈은 진짜 크다⁠. 말하면 삐지겠지⁠.⁠’

“⁠단발 망한 거 알아⁠. 말 안 해도 돼⁠.⁠”

예슬이 빨대를 놓쳤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컵이 기울었다가 겨우 제자리를 찾았다⁠. 예슬은 곧바로 실험을 하자고 했다⁠. 은행 면접 준비하는 애답게 순서가 있었다⁠.

첫 번째⁠, 거리⁠. 예슬이 의자를 끌고 한 칸씩 물러났다⁠. 두 칸째까지는 들렸다⁠. ‘⁠진짜야⁠? 진짜면 대박인데⁠.⁠’ 세 칸째⁠, 창가 자리쯤에서 소리가 뚝 끊겼다⁠. 책상 하나 반 정도⁠. 면접장 책상 너비와 비슷했다⁠.

두 번째⁠, 전화⁠. 예슬이 카페 밖으로 나가 영상통화를 걸었다⁠. 화면 속 예슬이 나를 노려보았는데 아무것도 안 들렸다⁠. 단톡방 「⁠취준 생존방⁠」에 예슬이 「⁠지금 내 생각 맞혀 봐⁠」를 올렸다⁠. 나는 「⁠배고프다⁠」라고 답했고⁠, 예슬은 「⁠땡⁠. 너 사기꾼⁠」이라고 보냈다⁠. 같은 방에 있어야 했다⁠.

세 번째⁠, 평가⁠. 예슬이 자리에 돌아와 메뉴판을 열심히 읽었다⁠. 조용했다⁠. 메뉴판을 내려놓고 나를 보며 생각했다⁠. ‘⁠얘 이번에 붙었으면 좋겠다⁠.⁠’ 들렸다⁠.

“⁠들렸어⁠.⁠”

“⁠뭐라고 했는데⁠.⁠”

“⁠붙었으면 좋겠다고⁠.⁠”

예슬이 얼굴을 붉히더니 내 컵을 빼앗아 마셨다⁠. “⁠당연한 걸 들었네⁠. 기계 고장이야⁠.⁠”

*

금요일 오후 네 시 이 분에 문자가 왔다⁠.

「⁠백윤아 님⁠, 결담 신입사원 최종 전형에 보여 주신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귀하의 뛰어난 역량에도 불구하고⁠…⁠…⁠.⁠」

마흔두 번째였다⁠. 처음으로 최종에서 받은 문자였고⁠, 최종이라고 문장이 다르지는 않았다⁠. 나는 「⁠뛰어난 역량⁠」 폴더에 문자를 옮겼다⁠. 폴더 숫자가 42로 바뀌었다⁠.

금요일 밤 열 시⁠, 셔터를 반쯤 내린 세탁소에서 엄마와 나는 다리미판을 식탁 삼아 라면을 먹었다⁠. 엄마는 문자를 못 봤고⁠, 나는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소용이 없었다⁠. 엄마가 젓가락을 든 채 나를 보았다⁠.

‘⁠떨어졌구나⁠. 최종까지 갔는데⁠. 뭐라고 해 줘야 하나⁠. 거기 아니어도 된다고 하면 쟤가 더 속상하겠지⁠. 할부는 내가 알아서 하고⁠. 라면에 계란 하나 더 넣어 줄걸⁠.⁠’

“⁠엄마⁠.⁠”

“⁠왜⁠?⁠”

“⁠속으로 말하지 마⁠. 그냥 소리 내서 말해⁠.⁠”

엄마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내가 뭐라고 했는데⁠.⁠”

“⁠계란 하나 더 넣어 줄걸⁠, 이라고⁠.⁠”

엄마는 한참 나를 보다가 일어나서 냉장고 문을 열었다⁠. 계란을 하나 꺼내 들고 돌아서는 얼굴이 이상하게 구겨져 있었다⁠.

“⁠너 요새 무섭다⁠.⁠”

“⁠알아⁠.⁠”

“⁠떨어졌냐⁠.⁠”

“⁠응⁠. 최종에서⁠.⁠”

“⁠거기가 눈이 삐었다⁠.⁠” 엄마가 계란을 냄비에 깨 넣었다⁠. 소리 내어 한 말과 속으로 한 말이 처음으로 같았다⁠. ‘⁠거기가 눈이 삐었다⁠.⁠’ 노른자가 라면 국물 위에 동그랗게 떴다⁠. 엄마는 젓가락으로 노른자를 내 그릇 앞까지 밀어 주었다⁠. 다리미판 끝에 다림질을 기다리는 남색 재킷이 걸쳐 있었다⁠. 다음 면접이 언제일지 몰라도 엄마는 재킷부터 다려 둘 사람이었다⁠.

“⁠엄마⁠, 세탁기 할부 석 달 남았지⁠.⁠”

“⁠그것도 얼굴에 쓰여 있냐⁠?⁠”

“⁠응⁠. 크게⁠.⁠”

엄마가 웃었다⁠. 엄마 잇몸도 나왔다⁠. 우리 집 잇몸은 엄마한테서 왔다⁠.

라면 그릇을 개수대에 넣을 때 DM이 왔다⁠. 모르는 계정이었다⁠. 프로필 사진은 심벌즈 한 장이었다⁠.

「⁠마지원입니다⁠. 42번⁠. 얘기 좀 해요⁠. 내일 문래동⁠.⁠」

*

토요일 오후 문래동 철공소 골목은 쇳가루 냄새가 났다⁠. 용접 불꽃이 튀는 가게 두 곳을 지나 지하 계단을 내려가자 「⁠합주실 B⁠」 문 안에서 드럼 소리가 새어 나왔다⁠. 문을 열자 마지원이 땀에 젖은 반팔 티셔츠 차림으로 스틱을 돌리고 있었다⁠. 면접장의 검정 정장과는 딴사람이었다⁠. 벽에는 「⁠반지하 사중주⁠」라는 밴드 이름이 박힌 공연 포스터가 붙어 있었는데⁠, 멤버 넷 가운데 셋의 얼굴에 누가 매직으로 수염을 그려 놓았다⁠. 수염이 없는 하나가 지원이었다⁠.

“⁠붙으셨죠⁠.⁠” 내가 먼저 말했다⁠.

“⁠붙었죠⁠. 붙을 줄 알았죠⁠.⁠” 지원이 심벌즈를 손바닥으로 눌러 소리를 죽였다⁠. “⁠그래서 불렀어요⁠. 터뜨려 줘요⁠.⁠”

“⁠뭘요⁠?⁠”

“⁠다요⁠. 면접장에서 정해져 있냐고 물은 거⁠, 녹음했다고 해요⁠. 취준 앱에 올려요⁠. 큰아버지 회사 상장 앞두고 있어서 시끄러워지면 나 못 넣어요⁠. 그럼 나는 안 가도 되고⁠.⁠”

지원은 드럼 의자에 걸터앉아 나를 보았다⁠. 재고 있었다⁠. 들렸다⁠.

‘⁠이 사람 겁먹었나⁠. 아니다⁠, 화났다⁠. 화난 사람이 터뜨려 준다⁠. 큰아버지한테 빚진 거 아빠지 내가 아니잖아⁠. 드럼 팔아서라도 독립할 거다⁠.⁠’

“⁠녹음 안 했어요⁠.⁠”

“⁠그럼 했다고 하면 되잖아요⁠.⁠”

“⁠나는 떨어졌어요⁠.⁠” 목소리가 생각보다 높게 나왔다⁠. “⁠당신은 붙었고⁠. 내가 왜 거짓말까지 해서 당신 탈출을 도와요⁠? 그 자리 원래 내 거였어요⁠. 서류 점수 내가 제일 높았대요⁠.⁠”

“⁠누가 그래요⁠?⁠”

‘⁠이 사람 그걸 어떻게 알아⁠.⁠’

“⁠…⁠…얼굴에 쓰여 있었어요⁠.⁠”

지원이 스틱 하나를 내 쪽으로 던졌다⁠. 나는 받지 못했다⁠. 스틱이 바닥에서 두 번 튀었다⁠.

“⁠가져가요⁠, 그 자리⁠. 가져갈 수 있으면⁠.⁠” 지원이 다른 스틱으로 하이햇을 툭 쳤다⁠. “⁠우리 집에선 이걸 예약석이라고 불러요⁠. 큰아버지 친구 아들은 로아랩⁠, 로아랩 사장 조카는 다른 데⁠, 사촌 오빠는 또 다른 데⁠. 다들 공채로 들어가요⁠. 면접도 보고⁠, 번호표도 받고⁠. 나는 42번이었고⁠.⁠”

‘⁠말해 버렸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

“⁠그럼 본인이 터뜨려요⁠.⁠”

“⁠나는 못 해요⁠. 아빠가 큰아버지 회사 지분 담보로 돈 빌렸어요⁠. 내가 터뜨리면 우리 집이 먼저 터져요⁠.⁠”

지원이 드럼을 쳤다⁠. 쿵⁠, 따⁠, 쿵쿵⁠, 따⁠. 면접장 무릎 위에서 손가락으로 치던 박자를 이제 진짜로 쳤다⁠. 소리가 지하 벽을 울려 내 갈비뼈까지 왔다⁠. 우리는 서로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았고⁠, 원하는 것이 서로 달랐다⁠. 지원은 나가고 싶었고 나는 들어가고 싶었다⁠. 같은 문 하나를 두고 반대로 밀고 있었다⁠.

나는 바닥에서 스틱을 주워 드럼 위에 올려놓고 나왔다⁠. 계단을 올라가는데 지원의 속이 마지막으로 따라왔다⁠. ‘⁠다시 올 거다⁠.⁠’ 골목으로 나오자 용접 불꽃이 아까보다 크게 튀었다⁠. 철공소 아저씨가 마스크를 내리고 나를 훑었다⁠. ‘⁠정장 입은 아가씨가 여긴 왜 왔대⁠.⁠’ 토요일에 정장을 입고 온 것은 나였다⁠. 면접 말고 입을 옷이 없었다⁠.

*

월요일 아침 아홉 시 반⁠,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백윤아 님 휴대전화죠⁠? 결담 인사팀 소경민입니다⁠.⁠”

전화로는 아무것도 안 들렸다⁠. 경민 팀장의 목소리만 있었다⁠. 속을 모르는 목소리가 이렇게 낯선 줄 처음 알았다⁠.

“⁠사장님께서 한 번 뵙자고 하십니다⁠. 수요일 오전 열 시⁠, 7층 사장실입니다⁠. 오실 수 있으세요⁠?⁠”

“⁠불합격 문자 받았는데요⁠.⁠”

“⁠압니다⁠.⁠” 잠깐 숨소리가 끊겼다⁠. “⁠면접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만요⁠.⁠” 경민 팀장의 목소리가 한 칸 낮아졌다⁠. “⁠그날 들은 얘기⁠, 누구한테서 들으셨어요⁠?⁠”

복도에서 내가 한 말을 경민 팀장은 그대로 믿지 않았다⁠. 얼굴을 보고 있었다면 속이 들렸을 텐데⁠, 전화선 너머에는 숨소리만 있었다⁠.

“⁠아무한테도요⁠. 정말이에요⁠.⁠”

“⁠그럼 다행이에요⁠.⁠” 경민 팀장이 말했다⁠. “⁠저는 오늘부터 채용 업무에서 빠집니다⁠. 수요일엔 전무님이 같이 들어가십니다⁠.⁠”

전화가 끊겼다⁠. 아래층에서 엄마가 다리미를 내려놓는 소리가 났다⁠. 엄마는 계단 밑에서 나를 올려다보았고⁠, 나는 들었다⁠.

‘⁠누구 전화길래 저렇게 하얘⁠.⁠’

나는 옷장 문을 열고 남색 재킷을 꺼냈다⁠. 엄마에게 내려가서 다려 달라고 하기 전에⁠, 수요일까지 무엇을 들고 갈지부터 정해야 했다⁠.

2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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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필깎이2026.11.06· 2화

    나를 평가하는 사람 속마음만, 같은 방에서만 들린다는 규칙을 세탁소에서 시험하는 장면 너무 웃겨요. 엄마 속마음 볼륨이 제일 크다는 건 다들 아는 얘기 아닌가요?

    • 피오담작가2026.11.06

      윤아 엄마는 입으로 하는 말과 속으로 하는 말이 거의 같아서 더 시끄러워요. 합주실에서 지원과 맞선 날부터 윤아의 귀가 조금씩 달라집니다.